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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낙동강
- 조명희
낙동강 칠백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뭄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 같은 들이 바다를 향하여 아득하게 열려 있고 그 넓은 들 품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 강과 이 들과 거기에 사는 인간 -- 강은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었다. 이 강과 이 인간 지금 그는 서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인가?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 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 넘쳐흐르네
철렁철렁 넘친 물
들로 벌로 퍼지면
만 목숨 만만 목숨의
젖이 된다네 -
젖이 된다네 - 에 - 헤 - 야
이 벌이 열리고 -
이 강물이 흐르 제
이 젖 먹고 자라 왔네
자라 왔네 - 에 -헤 - 야
천 년을 산, 만 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하늘가에 간들
꿈에나 잊을소냐 -
잊힐소냐 - 이 -히 -야
어느 해 이른봄에 이 땅을 하직하고 빨리 서북간도로 몰려가는 한 떼의 무리가 마지막 이 강을 건널 제 그네들 틈에 끼여 가는 한 청년이 있어 뱃전을 두드리며 구슬프게 이 노래를 불러서, 가뜩이나 슬퍼하는 이사꾼들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한다.
과연 그네는 뭇강아지 떼같이 이 땅 어머니의 젖꼭지에 매달려 오래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그 젖꼭지는 벌써 자기네 것이 아니기 시작한지도 오래였다. 그러던 터에 엎친데 덮친다고 난데없는 이리 떼 같은 무리가 닥쳐와서 물러 박지르며 빼앗아 먹게 되었다. 인제는 한 모금의 젖이라도 입으로 들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이 땅에서 표박하여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을 우리는 잠깐 생각하여 보자.
이네의 조상이 처음으로 이 강에 고기를 낚고 이 벌에 곡식과 열매를 딴 때부터 세지도 못할 긴 세월을 오래오래 두고 그네는 참으로 자유로웠었다. 서로서로 노래 부르며 서로서로 일하였을 것이다. 남쪽별도 자기네 것이요, 북쪽별도 자기네 것이었다. 동쪽도 자기네 것이요, 서쪽도 자기네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한 바퀴 굴렀었다. 놀고먹는 계급이 생기고, 일하며 먹여 주는 계급이 생겼다. 다스리는 계급이 생기고 다스려지는 계급이 생겼다. 그러므로부터 임자 없던 벌판에 임자가 생기고 주림을 모르던 백성이 굶주려 가기 시작하였다. 하늘에 햇빛도 고운 줄을 몰라 가게 되고 낙동강의 맑은 물도 맑은 줄을 몰라 가게 되었다. 천 년이다. 오천 년이다. 이 기나긴 세월을 불평의 평화 속에서 아무 소리없이 내려왔었다. 그네는 이 불평을 불평으로 생각지 아니하게까지 되었다. 흐린 날씨를 참으로 맑은 날씨인 줄 알 듯이. 그러나 역사는 또 한바퀴 구르려고 한다. 소낙비 앞잡이 바람이다. 깃발이 날리었다. 갑오 동학이다. 을미 운동이다. 그 뒤에 이 땅에는 아니, 이 반도에는 한 괴물이 배회한다. 마치 나래치고 다니는 독수리같이, 그 괴물은 곧 사회주의다. 그것이 지나치는 곳마다 기어가는 암나비 궁둥이에 수없는 알이 쏟아지는 셈으로 또한 알을 쏟아 놓고 간다. 청년 운동, 농민 운동, 형평 운동, 노동 운동, 여성 운동... 오천 년을 두고 흘러가는 날씨가 인제는 먹장구름에 싸여 간다. 폭풍우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 비 뒤에는 어떠한 날씨가 올 것은 뻔히 알 노릇이다.
이른 겨울의 어두운 밤, 멀리 바다로 통한 낙동강 어구에는 고기잡이 불이 근심스레 졸고 있고 강기슭에는 찬 물결이 울리는 소리가 높아질 때다. 방금 차에서 내린 일행은 배를 기다리느라고 강 언덕 위에 옹기종기 등불에 얼비쳐 모여 섰다. 그 가운데에는 청년 회원, 형평 사원, 여성 동맹원, 소작인 조합 사람, 사회 운동 단체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동저고릿바람에 헌 모자 비스듬히 쓰고 보따리 든 촌사람, 검정 두루마기, 흐니 두루마기, 구지레한 양복, 혹은 루바슈카 입은 사람, 자켓 깃 위에 짧은 머리털이 다팔다팔하는 단발랑, 혹은 그대로 틀어 얹은 신여성, 인력거 위에 앉은 병인, 그들은 ㅇㅇ감옥의 미결수로 있다가 병이 위중한 까닭으로 보석 출옥하는 박성운이란 사람을 고대 차에서 받아서 인력거에 실어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과연, 들리는 말과 같이 지독했구먼. 그같이 억대호 갔던 사람이 저렇게 될 때야 여간 지독한 형벌을 하였겠니, 에라 이 몹쓸 놈들.”
이 정거장에 마중을 나와서야 비로서 병인을 본 듯한 사람의 말이다.
“그래 가지고도 죽으면 병이 나서 죽었닥 하겠지”
누가 받는 말이다.
“그러면 와 바로 병원을 갈 일이지, 곧장 이리 온단 말꼬?”
“내사 모른다. 병인 당자가 한사코 이리 온닥 하니”
“이기 와 이리 배가 더디노?”
“아, 인자 저기 뱃머리 돌렸다. 곧 올락 한다”
한 사람이 저쪽 강기슭을 바라보며 지껄인다. 인력거 위의 병인을 쳐다보며
“늬 춥지 않나?”
“괜찮다. 내 안 춥다.”
“아니, 늬 춥거든, 외투 하나 더 주까?”
“언제. 아니다 괜찮다.”
병인의 병든 목소리의 대답이다.
“보소, 배 좀 빠리 지오소.”
강 저편에서 뱃머리를 인제 겨우 돌려서 저어 오는 뱃사공을 보고 소리를 친다.
“예 ---.”
사이 뜨게 울려오는 소리다. 배를 저어 오다가 다시 멈추고 섰다.
“저 뭘하고 있노?”
각중에 담배를 퓌워 무는 모양이로구나. 에라, 이 문둥아.“
여러 사람의 웃음은 와그르 쏟아졌다. 배는 왔다. 인력거 탄 사람이 먼저다.
“보소. 늬 인력거. 사람 탄 채 그대로 배에 오를 수 있능가?”
한 사람이 인력거꾼보고 묻는 말이다.
“어찌 그러 수 있능기오.”
“아니다. 내사 내리겠다.”
병인은 인력거에서 내리며 부축되어 배에 올랐다. 일행이 오르자 배는 삐걱삐걱하는 노짓 맞추는 소리와 수라수라하는 물 젓는 소리를 내며 저쪽 기슭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뱃전에 앉은 병인은 등불 빛에 보아도 얼굴이 참혹하게도 야위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보소, 배 부리는 양반. 뱃소리나 한마디하소 예.”
“각중에 이 사람, 소리는 왜 하라꼬?”
옆에 앉은 친구의 말이다.
“내 듣고 싶다---. 내 살아서 마지막으로 이 강을 건너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에라 이 백주 짬 없는 소리만 탕탕...”
“아니다, 내 참 듣고 싶다. 보소, 배 부리는 양반, 한마디 아니하겠소?”
“언제, 내사 소리할 줄 아능기오.”
“아, 누가 소리해 줄 사람이 없능가?... 아, 로사! 참 소리하소, 의...내가 지은 노래하소”
옆에 앉은 단발랑을 조른다.
“노래하라꼬?”
“응, ‘봄마다 봄마다’해라 의.”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 넘쳐흐르네...
흐르네-에-헤-야...“
경상도의 독특한 지방색을 띤 민요 ‘닐리리조’에다가 약간 창가 조를 섞은 그 노래는 강개하고도 굳센 맛이 띠어 있다. 여성의 음색으로서는 핏기가 과하고 음률로서는 선이 좀 굵다고 할 만한, 그러나 맑은 로사의 육성은 바람에 흔들리는 강물결의 소리를 누르고 밤하늘에 구슬프게 떠돌았다. 하늘의 별들도 무엇을 느낀 듯이 눈을 꿈벅꿈벅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배에 오른 삶들이 서북간도 이사꾼들은 비록 아니었지마는 새삼스러이 가슴이 울리지 아니할 수는 없었다.
그 노래 제 3절을 마칠 때에 박성운은 몹시 히스테리컬하여진 모양으로 핏대를 올려 가지고 합창을 한다.
천 년을 산 만 년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하늘가에 간들
꿈에나 잊을 소냐--
잊힐소냐-아-하-야
노래는 끝낫따. 성운은 거진 미친 사람 모양으로 날뛰며, 바른팔 소매를 걷어들고 강물에다 잠그며, 팔에 물을 적셔 보기도 하며, 손으로 물을 만지기도 하고 끼얹어 보기도 한다. 옆사람이 보기에 딱하든지,
“이 사람, 큰일났구만. 이 병인이 지금 이 모양에, 팔을 찬물에다 잠그고 하니, 어쩌잔 말꼬.”
“내사 이래 죽어도 좋다. 늬 너무 걱정 말아.”
“늬 미쳤구나...백죄...”
그럴수록에 병인은 더 날뛰며, 옆에 앉은 여자에게 고개를 돌려
“로사! 늬 팔 걷어라. 내 팔하고 같이 이 물에 잠가 보자 의.”
여자의 손을 잡아다가 잡은 채 그대로 물에다 잠그며 물을 저어 본다.
“내가 해외에 다섯 해 동안을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강이라는 것이 생각날 때마다 낙동강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낙동강이 생각날 때마다, 내가 이 낙동강의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임을 잊어본 적도 없었다. 따라서, 조선이란 것도.”
두 사람의 손이 힘없이 그대로 뱃전 너머 물위에 축 쳐져 있을 뿐이다. 그는 다시 눈앞의 수면을 바라다보며 혼잣말로
“그 언제인가 가을에 내가 송화강을 건늘 적에, 이 낙동강을 생각하고 울은 적도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나간 사람 같도 보면 비록 만리 밖을 나가 산다하더라도 그같이 상심이 돌 리 없으련마는...”
이 말이 떨어지자, 좌중은 호흡조차 은근히 끊어지는 듯이 정숙하였다. 로사는 들었던 고개가 아랠로 떨어지며 저편의 손이 얼굴로 올라갔다.
성운의 눈에서도 한 방울의 굵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동안 물소리만 높았다. 로사는 뱃전에 늘어져 있던 바른손으로 사나이의 언 손을 꼭 잡아당기며
“인제 그만둡시대 의.”
이 말끝 악센트의 감칠맛이란 것도 경상도 여자의 쓰는 말 가운데에도 가장 귀엄성이 드는 말투였다. 그는 그의 손에 묻은 물을 손수건으로 씻어 주며 걷었던 소매를 내려 준다.
배는 저쪽 언덕에 가 닿았댜.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 먼저 병인을 인력거 위에다 싣고는 건너 마을을 향하여 어둠을 뚫고 움직여 나갔다.
그의 말과 같이, 박성운은 과연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로 일생을 보냈었었고 그의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일생을 보냈었었다. 자기네 무식이 한이 되어 그 아들이나 발전을
시켜 볼 양으로 그리하였던지, 남 하는 시세에 좇아 그대로 해보느라고 그리하였던지, 남의 논밭을 빌려 농사를 지어 구차한 살림을 하여 나가면서도, 어쨌든 그 아들은 가르쳐 놓았다. 서당으로, 보통학교로, 도립 간이 농업 학교로...
그가 농업 학교를 마치고 나서, 군청 농업 조수로도 한두 해를 있었다.그럴 때에 자기 집에서는 자기 아들이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같이 여기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아들 자랑하기가 일이었었다. 그러할 것 같으
면 동네 사람들은 또한 못내 부러워하며, 자기네 아이들도 하루 바삐 어서 가르쳐 내놀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독립 운동이 폭발하였다. 그는 단연히 결심하고 다니던 것을 헌신짝같이 집어던지고는 독립 운동에 참가하였다. 일 마당에 나서고 보니 그는 열렬한 투사였다. 그때쯤은 누구나 예사지만 그도 또한 일
년 반 동안이나 철창 생활을 하게 되었었다.
그것을 치르고 집이라고 나와 보니 그 동안에 자기 모친은 돌아가고, 늙은 아버지는 집도 없게 되어 자기 딸(성운의 자씨)에게 가서 얹혀 있게 되었다. 마침 그 해에도 이곳에서 살 수가 없게 되어 서북간도로 떠나가는 이사꾼이 부를 판이다. 그들의 부자도 그 이사 꾼들 틈에 끼여 멀리 고향을 등지고 떠나가게 되었었다(아까 부르던 그 낙동강 노래란 것도 그때 성운이가 지어서 읊던 것이었다.)
서간도로 가보니, 거기도 또한 편안히 살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 나라의 관헌의 압박, ‘호인의 횡포, ’마적의 등쌀‘은 여간이 아니었다. 그의 부자도 남과 한가지 이리저리 떠돌았었다. 떠돌다가, 그야말로 이역 타향에서
늙은 아버지조차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었었다.
그 뒤에 그는 남북 만주, 노령, 북경,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시종이 일관하게 독립 운동에 노력하였었다. 그러는 동안에 다섯 해의 세월이 갔다. 모든 운동이 다 침체하고 쇠토하여 갈 판이다. 그는 다시 발길을 돌
려 고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가 조선으로 들어올 무렵에, 그이 사상 상에는 큰 전환이 생기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때껏 열렬하던 민족주의자가 변하여 사회주의자로 되었다는 말이다.
그가 갓 서울로 와서, 일을 하여 보려 하였으나 드도 뜻과 같이 못 하였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사회 운동 단체라는 것이 일에는 힘을 아니 쓰고 아무 주의 주장에 틀림도 없이, 공연히 파벌을 만들어 가지고 동지끼리 다투기만 일삼는 판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끼리 어울려, 양방의 타협 운동도 일으켰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고, 여론을 일으켜 보기도 하였으나 파쟁에 눈이 뻘건 사람들의 귀에는 그도 크게 울리지 못하였다. 그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며
“이 파벌이란 시기가 오면 자연히 파멸될 때가 있으리라.”
고 예언같이 말을 하여 던지고서는, 자기 출생지인 경상도로 와서 남조선 일대를 망라하여 사회 운동 단체를 만들어서 정당한 운동에만 힘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는 자기 고향인 낙동강 하류 연안 지방의 한 부분을 떼어 맡아서 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의 사정을 보아
“대중 속으로 브 나로드 ---”
하고 부르짖었다.
그가 처음로, 자기 살던 예마을을 찾아와 볼 때에 그이 신세(심사)는 서글프기 가이없었다. 다섯 해 전 떠날 때에는 백여 호 대촌이던 마을이 그 동안에 인가가 엄청나게 줄었다. 그 대신에 예전에는 보지도 못하던 크나큰 함석 지붕 집이 쓰러져 가는 초가집들을 멸시하고 위압하는 듯이 둥두렷이 가로 길게 놓여 있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동척 창고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중농이던 사람은 소농으로 떨어지고, 소농이던 사람은 소작농으로 떨어지고, 예전에 소작농이던 많은 사람들은 거의 다 풍지박산하여 나가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정들었던 동무들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도회로, 서북간도로, 일본으로 산지사방 흩어져 갔었다. 대대로 살아오던 자기네집터에는 엣날의 흔적이라고는 주춧돌 하나 볼 수 없었고(그 터는 지금 창고 앞마당이 되었으므로) 다만 그 시절에 사립문 앞에 있던 해묵은 느티나무만이 지금도 그저 그 넓은 마당 터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뿐이다. 그는 쫓아가서 어린아이 모양으로 그 나무 닡중을 껴안고 맴을 돌아보았다. 빰을 대어 보았다 하며 좋아서 또는 슬퍼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는 나무를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지나간 날의 생각이 실마리 같이 풀려 나갔다. 어렸을 때에 지금 하듯이 껴안고 맴돌기, 여름철에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 매매 잡다가 대머리 벗어진 할아버지에게 꾸지람 당하던 일, 마을의 젊은이들이 그네를 메고 놀 때엔 자기도 그네를 뛰겠다고 성화 바치던 일, 앞집에 살던 순이란 계집아이와 같이 나무 그늘 밑에서 소꿉질하고 놀 제 자기는 신랑이 되고 순이는 새악시가 되어 시집가고 장가가던 흉내를 내던 일, 그러다가 과연 소년 때에 이르러 그 순이란 처녀와 서로 사모하게 되던 일, 그 뒤에 또 그 순이가 팔려서 평양인가 서울로 가게 될 제, 어둔 밤 남 모르게 이 나무 뒤에 숨어서 서로 붙들고 울던 일, 이 모든 일이 다 생각에서 떠돌아 지나가자 그는 흐르륵 느껴지는 숨을 길게 한 번 내쉬고는 눈을 딱 떴다.
“내가 이까짓 것을 지금 다 생각할 때가 아니다. ...에잇...째...”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이때껏 하던 생각을 떨어 없애려는 듯이 휙 발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는 원래 정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근래에 그 감정을 의지로 누르려는 노력이 많은 터이다.
“혁명가는 생무쇠쪽 같은 시퍼런 의지의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그의 생활의 지표이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가끔 의지의 굴레를 벗어나서 날뛸 대가 많았다.
근 먼저 일할 프로그램을 세웠다. 선전, 조직, 투쟁 -- 이 세 가지로, 그리하여 그는 먼저 농촌 야학을 실시하여 가지고 농민 교양에 힘을 썼었다. 느네와 감정을 같이 살 양으로 벗어 부치고 들어 덤비어 그네들 틈에 끼여 생 일도 하고, 농사 일터나, 사랑 구석에 모인 좌석에서나, 야학 시간에서나, 기회가 있는 대로 교화에 전력을 썼었다.
그 다음에는 소작 조합을 만들어 가지고 지주, 더구나 대지주인 동척의 횡포와 착취에 대하여 대항 운동을 일으켰었다.
첫해 소작 쟁의에는 다소간 희생자도 내었지마는 성공이다. 그 다음해에는 아주 실패다. 소작 조삽도 해산 명령을 받았다. 노동 야학도 금지다. 동척과 관영의 횡포, 압박,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인정이 있으나, 아무리 참을성이 있으나, 이 땅에서는 어찌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침체되고 말뿐이었다. 그리하여 작년 가을에 그의 친구 하나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며
“내 구마 밖으로 갈란다.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하자면 테러지.테러밖에는 더 없다.“
“아니다. 그래도 여기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계급의 일을 하기 위하여는 중국에 가서 해도 좋고 인도에 가서 해도 좋고 세계의 어느 나라에 가서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마는 우리 경우에는 여기 있어 일하는 편이 가장 편리하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도 이 땅 사람들과 같이 죽어야 할 책임감과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권유도 하였으나, 필경에 그는 그의 가장 신뢰하던 동무 하나를 떠나 보내게 되고 만 일도 있었다.
졸고 있는 이 땅, 아니 움츠러들고 있는 이 땅, 그는 피칠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마을 앞 낙동강 기슭에 여러 만평되는 갈말이 하나있었다. 이 갈발이란 것도 낙동강이 흐르고 이 마을이 생긴 뒤로부터, 그 갈을 베어 자리를 치고 그 갈을 털어 삭갓을 만들고 그 갈을 팔아 옷을 구하고, 밥을 구하였었다.
기러기 떳다. 낙동강 우예
가을 바람 부누나 갈꼬칭 나부낀다.
이 노래도 지금은 부를 경황이 없게 되었다. 그 갈발은 벌써 남의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이 촌민의 무지로 말미암아, 십 년 전에 국유지로 편입이 되었다가 일본 사람 가등이란 자에게 국유 미간지 처리라는 명의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 가을부터는 갈도 벨 수가 없었다. 도 당국에 몇 번이나 사정을 하였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촌민끼리 손가락을 끊어 맹서를 써서 혈서 동맹까지 조직하여서 항거하려 하였다. 팰경에는 모두가 다 실패뿐이다. 자기네 목숨이나 다름없이 알던 촌민들은 분김에 눈이 뒤집혀 가지고 덮어놓고 갈을 베어 제쳤다. 저편의 수직군하고 시비가 생겼다. 사람까지 상하였다. 그 끝에 성운이가 선동자라는 혐의로 붙들여 가서 가뜩이나 경찰 당국에서 미워하던 끈에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나서 검사국으로 넘어가서 두어 달 동안이나 있다가 병이 급하게 되어 나온 터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것은 이 해 여름 어느 장날이다. 장거리에서 형평 사원들과 장꾼 -- 그 중에서도 장거리 사람들과 큰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 시초는 장거리 사람 하나가 이곳 형평사 지부 앞을 지나면서 모욕하는 말을 한 까닭으로 피차에 말이 오락가락하다가 싸움이 되고 또 떼 싸움이 되어서 난폭한 장거리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형평 사원 촌락을 습격한다는 급보를 듣고, 성운이가 앞장을 서서, 청년 회원, 소작인 조합원, 심지어 여성 동맹원까지 총 출동을 하여 가지고 형평 사원 편을 응원하러 달려갔었다. 싸움이 진정된 후
“늬도 이놈들, 새 백정이로구나”하는 저편 사람들의 조소와 만 매를 무릅쓰고도 그는
“백정이나 우리나 다 같은 사람이다... 다만 직업의 구별만 있을 따름이다... 무릇 무슨 직업이든지, 직업이 다르다고 사람의 귀천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옛날 봉건 시대 사람들의 하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 무산 계급은 형평 사원과 같이 손을 맞붙잡고 일을 하여 나가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형평 사원과 우리 무산 계급은 한 형제요, 동무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열렬히 부르짖은 일이 있었다.
이 뒤에, 이곳 여성 동맹에는 동맹원 하나가 더 늘었다. 그것이 곧 형평사원의 딸인 로사다. 로사가 동맹원이 된 뒤에는 자연히 성운과도 상종이 잦아졌다. 그럴수록에 두 사람의 사이에는 점점 가까워지며 필경에는 남 다른 정이 가슴속에 깊이 들어 베게까지 되었었다.
로사의 부모는 형평 사원으로서 그도 또한 성운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딸일망정 발전을 시켜 볼 양으로 그리하였던지 서울을 보내어 여자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시키고 사범과까지 마친 뒤에 여훈도가 되어 멀리 함경도 땅에 있는 보통 학교에 가서 있다가 하기 방학에 고향에 왔던 터이다. 그의 부모는 그 딸이 판임관이라는 벼슬을 한 것이 천지 개벽 후에 처음 당하는 영광으로 알았었다. 그리하여 그는
“내 딸이 판임관 벼슬을 하였는데, 나도 이 노릇을 더 할 수 있는가?”
하고는 하여 오던 수육업이라는 직업도 그만두고, 인제 그 딸이 가 있는 곳으로 살러 가서 새 양반 노릇을 좀 하여 볼 뱃심이었다. 이번에 딸이 집에 온 뒤에도 서로 의논하고 작정하여 놓은 노릇이다. 그러나 천만 뜻밖에 그 몹쓸 큰 싸움이 난 뒤부터 그 딸이 무슨 여자 청년회 동맹이니 하는데 푸떡푸떡 드나들며, 주의자니 무엇이니 하는 사나이 틈바구니에 끼여 놀고, 하더니 그만 가 있던 곳도 아니 가겠다, 다니던 벼슬도 내어놓겠다 하고 야단이다. 그리하여 이네의 집안에는 제일 큰 걱정거리가 생으로 하나 생겼다. 달래다, 구슬리다, 별별 소리로 다 타일러야 그 딸이 좀처럼 듣지를 않는다.
필경에는 큰 소리까지 나가게 되었다.
“이 년의 가시네요! 늬 백정 놈의 딸로 벼슬을 했으면 무던하지 그보다 무엇이 더 나은 것이 있더노?”
하고 그의 아버지가 야단을 칠 때에 “아배는 몇백 년이나 조상 때부터 그 몹쓸 놈들에게 온갖 학대를 다 받아 왔으며, 그래도 그 몹쓸 놈들의 썩어 자빠진 생각을 그저 그대로 가지고 있구만. 내사 그까짓 더러운 벼슬이고 무엇이고 싫소구만... 인자 참 사람 노릇을 좀 할란다.”
하고 딸이 대거리를 할 것 같으면
“아따 그년의 가시네, 건방지게... 늬 뭐락 했노? 뭐락 해?...
그의 어머니는 옆에서 남편의 말을 거드느라고
“야, 늬 생각해 보아라. 우리가 그 노릇을 해가며 늬 공부시키느라고 얼마나 애를 먹었노. 늬 부모를 생각기로 그럴 수가 있능가? 자식이라고 딸자식 형제에서 늬만 공부를 시킨 것도 다 늬 덕을 보자꼬 한 노릇이 아니냐?”
“그러면 어매 아베는 날 사람 노릇 시킬라고 공부시킨 것이 아니라, 돼지 키워서 이 보듯이 날 무슨 덕 볼라고 키워 논 물건으로 알았다는게오?”
“늬 다 그 무슨 쏘리고? 내사 한마디 못 알아듣겠다... 아나, 늬 와 이라노? 와?”
“구마, 내 듣기 싫소... 내 맘대로 할라요.”
할 때에, 그 아버지는 화가 버럭 나서
“에라 이... 늬 이년의 가시내, 내 눈앞에 뵈지 말아. 내사 딱 보기 싫다구마”
하고는 벌떡 일어나 나가 버린다.
이리하고 난 뒤에 로사는 그 자리에 폭 엎으러져서 흑흑 느껴 가며 울기도 하였다. 그것은 그 부친에게 야단을 만나고 나서 분한 생각을 참지 못하여그러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이 부모가 아무리 무지해서 그렇게 굴지마는, 그 무지함이 밉다가도 도리어 불쌍한 생각이 난 까닭이었다.
이러할 때도 로사는 으레같이 성운에게로 달려가서 하소연한다. 그럴 것 같으면 성운은
“당신은 최하층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탄 같아야 합니다. 가정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같은 여성에 대하여, 남성에게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여야 합니다.”
하고 격려하는 말도 하여 준다. 그럴 것 같으면 로사는 그만 감격에 떠는 듯이 성운의 무릎 위에 쓰러져 얼굴을 파묻고 운다. 그러면, 성운은 또“당신은 또 당신 자신에 대하여서도 반항하여야 되오. 당신의 그 눈물 -
약한 것을 일부러 자랑하는 여성들의 그 흔한 눈물도 걷어치워야 되오.. 우리는 다 같이 굳센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같이 로사는 사랑의 힘, 사상의 힘으로 급격히 변화하여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본 성명도 로사가 아니었다. 어느 때 우연히 로사 룩셈부르크의 이야기가 나올 때에 성운이가 웃는 말로
“당신 성도 로가고 하니, 아주 로사라고 지읍시다 의.”
그리고 참말 로사가 되시오 하고 난 뒤에, 농이 참 된다고, 성명을 아주 로사로 고쳐 버린 일이 있었다.
병든 성운을 둘러싼 일행이 낙동강을 건너 어둠을 뚫고 건너 마을로 향하여 가던 며칠 뒤 낮절이었다. 갈 때보다도 더 멏 배 긴긴 행렬이 마을 어구에서부터 강 언덕을 향하고 뻗쳐 나온다. 수많은 깃발이 날린다. 양렬로 늘어선 사람의 손에는 긴 외올 베 자락이 잡혀 있다. 맨 앞에 선 검정 테 두른 기폭에는 ‘고 박성운 동무의 영구’
라고 써 있다.
그 다음에는 가지각색의 기다. 무슨 ‘동맹’, 무슨 ‘회’, 무슨 ‘조합’, 무슨‘회’, 무슨 ‘사’. 각 단체 연합장임을 알 수 있다. 또 그 다음에는 수많은 만장이다.
‘옹사는 갔다. 그러나 그의 더운 피는 우리의 가슴에서 뛴다.’
‘갔구나. 너는 -- 날 밝기 전에 너는 갔구나! 밝는 날 해맞이 춤에는 네 손목을 잡아볼 수 없구나.’
‘........’
‘.........’
이루 다 셀 수가 없다. 그 가운데에는 긴 사구같이 이렇게 벌려서 쓴 것도 있었다.
‘그대는 평시에 날더러 너는 최하층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탄이 되라. 하였나이다. 옳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겠나이다. 그대는 죽을 때에도 날더러 너는 참으로 폭발탄이 되라. 하였나이다. 옳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겠나이다.’
이것은 묻지 않아도 로사의 만장임을 알 수 있었다.
이 해의 첫눈이 푸뜩푸뜩 날리는 어느 날 늦은 아침, 구포역에서 차가 떠나서 북으로 움직여 나갈 때이다. 기차가 들녘을 다 지나갈 때까지, 객차 안 들창으로 하염없이 바깥을 내다보고 앉은 여성이 하나 있었다. 그는 로사이다. 아마 그는 돌아간 애인이 밟던 길을 자기도 한번 밟아 보려는 뜻인가 보다. 그러나 필경에는 그도 멀지 않아서 다시 잊지 못할 이 땅으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