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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가회의
 
 
 
카페 게시글
회원 작품방 스크랩 으아리 씨처럼 비상하길
김창집 추천 0 조회 52 09.01.14 00: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작년은 무자년 제주 4. 3의 60주년을 맞는 해였다. 여러 가지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제주작가회의에서 기념 시선집 ‘곶자왈 바람 속에 묻다’를 낸 일이다.

제주 작가회의 소속 31명의 시인이 70여 편의 4. 3을 제재로 한 시를 묶어냈다.

‘진실 너머의 것을 향해’라는 서문에 밝힌 내용의 일부를 옮겨본다.


 --꼭 10년만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4. 3의 진실에 대한 해석은 얼핏 진일보 한 듯 보이나,/ 무자년 세밑에 벌어지고 있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아예 뒷걸을 치는 듯하다.// 섬사람들의 아물지 못한 상처를 다시 헤집어내고,/ 색깔 덧씌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세력들의/ 천박한 역사 인식 앞에서 가끔 할 말을 잃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침묵하진 않았다.


 4. 3의 역사를 문학으로 증언하고 고발하며/ 그 진실 너머의 것을 향한 통찰과 모색을/ 고통스럽게, 그러나 기꺼이 감내해왔다./ 그것은 이 섬의 작가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 앞으로도 오래 짊어지고 가야 할 등짐 같은 것이다./ 4. 3은 피돌기가 멈춰 죽은 역사가 아니라./ 섬의 곳곳 실핏줄까지 이어져 뜨겁게 맥동하는/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여기 묶인 시편들은 기나긴 여정의 한 궤적일 따름이다./ 우리들의 작가적 고민과 성찰은 계속 될 것이다./ 4. 3의 역사, 그 진실 너머의 것을 향해/ 무겁고 진중한 마음으로 작은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으아리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다 익은 씨는 바람에 날려 번식한다. 그 동안 갇혀 있던 4. 3의 영혼이 으아리 씨앗처럼 비상(飛翔)하기 바라며 우선 5편을 뽑아 싣는다.

 

 

♧ 찔레꽃 - 강금중


한라산 바람

망월동 푸른 벌판에

찔레꽃 두고 왔다


수의를 찢긴 가슴

섧은 꽃

무덤을 감싼 찔레꽃


산(山)

사안(生)

사람이

우리의 말 전할 수 없음

안다


아직

한라 혼백은

시들은 찔레꽃


바당 속 누이들

앙가슴

섧다

 


♧ 잃어버린 마을 - 강덕환


  수목원 나무 그늘 평상에 누웠다가, 하, 글쎄 시끄러운

매미 탓에 자리를 옮기는데, 나무 밑둥에 살그랑이 남아

있는 매미의 둥지를 보았지요 떠나버린 집터만 옹송그리

고 있었던 거지요 멀리 떠난 매미는 기억하고 있을까, 돌

아올 수 있을까


  적꼬치로 쓰던 뒤란의 대나무 숲은 서걱이는데, 풋감즙

을 내어 갈옷에 물들이던 감나무의 노동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쩌자고 무자년의 흔적 지우지 못하고 버팅겨선

팽나무 너는


  떠난 게 아니라 밀려난 거지요 잊은 게 아니라 꽁꽁 저며

두고 있던 거지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빼앗긴 거지요


 쉽게 으스러지는 탈피의 잔해를 엉거주춤 밟고 선 나는

다만, 우화등선羽化登仙을 빌 뿐

 


♧ 유채꽃 피는 이유 - 강창범


아비는 피뿌리풀 핏빛으로 피어나고

어미는 엉겅퀴 붉은 꽃으로 피어나고

아들은 천남성으로 피어 비탈을 떠돌고

딸은 새우난초로 피어 몸을 숨기는


일가족이 모여 사는

봄,

제주 오름


그 들녘에선 해마다

살아남은 씨앗들이 모여들어

노란 만장(輓章)을 그린다

 

 

♧ 금악오름 바람까마귀 - 고정국


  구릉에 잔솔을 깨우는 빛이다가 바람이다가, 쓰레기 매

립장의 비닐 조각 날리다가 돌아와 마른 풀잎에 피 묻은

부리를 닦는,


  먹이를 앞에 두고 사생결단을 내야 하리, 황사 자욱한

떼까마귀 싸우는 골엔 파르르 아사 직전의 새끼가축이 놓

이고……


  무자년 까마귀 울 때 화염이라도 삼킨 것일까, 금악리 상

동 입구 백발성성 팽나무가 돌에다 뿌리를 막고 빈 마을을

지킨다.


  막판엔 날짐승조차 스크럼을 짠다더라, 일백 아흔 세 마

리 검정부리의 난신적자여, 비양도 바다 불빛이 탄핵처럼

아리다.


  발 끊긴 지점에서야 하늘길이 열린단다. 까맣게 회오리치

는 바람 바람까마귀, 다 뜯긴 억새밭 위로 거친 획을 긋는다.

 

 

♧  아픔을 잇고 기억을 나누는 바느질집 - 김경훈

   - 진아영 할머니 삶터 개관에 부쳐


단 한 번

남 앞에서 밥 아니 드시던

누가 볼세라 할머닌 홀로

먼 마실 가셨지만


말 못한 유언처럼 휑하니 남은

집 한 칸,

헐고 낡고 터져 아픈 기억을

고운 마음이 매웠나니


한 땀 한 땀

바느질이 고운 옷 짓듯

한 땀 한 땀

아픔을 잇고 기억을 나누듯


아들 되고 딸 되고 조카 되고 손주 되어

울담답고 도배하고 장판 깔고 지붕 칠해

새 보금자리 틀었으니


선인장 핏빛 상처 속에

샛노란 꽃이 돋듯 화안히

마실 다녀오신 할머니


참빗 정결히 머리 빗고

갓 지은 따순 새 옷 곱게 입어

아이들 맑은 노래 고운 웃음 받으리

 

 

♬ Snow In The Morning -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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