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한국인이 삶
글쓴이 윤 무
2023년 4월 4일
파친코 ( 이민진 장편소설 1 )을 읽고
소설은 19세기 초 부산 영도섬에서 고기잡이 하는 노부부로부터 3대 자손까지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기적으로는 1910년부터 시작된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였으며 지역적으로는 한국의 부산과 일본 오사카가 주 무대이다.
노부부는 슬하에 세 아들을 낳았지만 언청이에 한쪽 발이 뒤틀린 기형아인 첫째 훈이만 살아남았다. 훈이의 부모는 불구아들을 부지런한 건강한 아이로 키웠고 조선어와 일본어도 가르쳤다. 자신들이 죽고 나면 그 아이를 누가 돌봐주겠나 싶어 살림도 알뜰히 하여 가족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끔 재산도 모았다. 그런 덕분에 훈이가 28살 되던 1911년 봄에 신체 불구임에도 이웃 마을 15살 젊은 처녀 ‘양진’을 아내로 맞이한다. 일본인들에게 토지 임차권을 빼앗긴 양진 아버지는 가난에 못 이겨 암탉 몇 마리와 수수 예닐곱 자루를 받고 훈이에게 시집 보낸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 훈이 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셨다. 그리고 넷째로 태어나 살아남은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날 딸 선자를 지극히도 사랑했던 남편 훈이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양진과 선자 모녀는 어부들과 생선가게 종업원을 상대로 하숙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늦게 찾아온 한 젊은이가 10년 전에 이곳을 거쳐 일본 오사카로 간 형님 요셉의 소개로 왔다고 하면서 당분간 머물 것을 간청하였다. 젊은이는 백이삭 목사로 평양에서 오사카까지 여행하기에는 너무 허약하고 더구나 각혈까지 하는 결핵환자였다. 양진 모녀는 감염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이삭 목사의 건강을 회복시킨다.
한편 선자는 부유한 생선 중개상 고한수의 집요한 유혹에 빠져 남몰래 사귀게 되었고 결국에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고한수는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 최대 고리대금업자의 양자가 되어 일본과 한국에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선자는 곧 고한수를 따라 일본으로 가는 꿈을 꾸고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선자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고한수는 본처와 3딸이 있는 오사카로 데려 갈 수 없다고 고백한다. 대신 부산에 좋은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제의하나 선자는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한다.
이에 이삭 목사는 선자의 딱한 사정을 알고 나서 자기를 살려준 모녀의 신세를 갚으려고 요셉 형님과 평양의 부모 허락 하에 선자와 결혼한다.
오사카에 함께 온 이삭 목사와 선자는 어렵게 사는 요셉 시아주버님과 경희 동서와 함께 살면서 아들 노아와 동생 모자수를 낳는다.
오사카 한인 교회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삭 목사는 교회 사목 일을 열심히 하는 한편 일본인 들로부터 박해 받는 신자들의 애로사항 해결에도 노력한다 그러나 곧 선임 류 목사와 후 교회 관리인과 함께 신사 참배를 성실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다. 당시 3.1독립운동이 기독교인이 주축이 되었다는 이유로 일제는 교회를 철저히 탄압하고 있었다. 경희 동서와 선자는 부족한 생활비 마련을 위해 김치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았으나 곧 맛있는 김치로 소문이 난다. 이 소문을 듣고 찾아 온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 김창호씨에 의해 김치요리사로 스카우트 되어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된다. 그 동안 경찰서에 끌려갔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망하고 이삭 목사만 4년 만에 풀려났으나 모진 고문 때문에 곧 숨을 거둔다.
한편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불리해 지고 식자재 공급도 어려워졌으며 하물며 식당 놋그릇과 숟가락 마저 전쟁 물자로 징발되는 관계로 식당도 문을 닫게 된다. 이때 갑자기 고한수가 나타나서 곧 있을 미군의 폭격을 피해 시골 농장에 모두를 피신시킨다. 그러나 요셉 형님은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 받고 가족들을 위해 혼자 나가사키시로 간다.
대형식당 관리인 김창호도 고한수 사장의 부하였으며 선자가 오사카로 온 이후 모든 행적을 고한수는 알고 있었다. 선자를 찾게 된 것은 부산에서 고한수가 선물한 값비싼 회중시계가 전당포를 통해 자기에게 매수 문의가 왔기 때문이었다.
고한수는 원폭 화상을 입은 요셉 시아주버님은 물론 부산에 있는 양진 어머니도 모두 찾아 이곳 농장에 데려온다.
고한수는 자기 아들 노아를 일본에서 교육시켜 와세다 대학에 입학할 꿈을 꾸고 있으나 선자와 경희는 부산이나 평양으로 귀국하기를 고민하고 있다. 그 이후의 얘기는 파친코 2권에서 다루어질 모양이다.
. 백이삭 목사 부모님은 물론 첫째 형 사무엘을 포함 백이삭 목사 가족 전체가 일제경찰의 고문에 희생되었고 류 목사 그리고 후 교회관리인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독립운동에 귀중한 목숨을 바친 얘기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고 깊은 감명을 준다. 고한수의 경제적 지원아래 첩으로 사는 편한 길을 거부하고 꿋꿋하게 독자적인 삶을 추구한 선자의 의지는 한국인 어머니들의 기개를 잘 보여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족들을 보살피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요셉 형 또한 한국인 남자들의 높은 책임감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인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선자와 그 가족들을 끝까지 보살피는 의리 또한 한국인의 기질을 잘 보여준 사례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삭 목사가 당시 관례를 깨고 선자와 결혼한 것은 선지자 호세아의 가여운 창녀와의 결혼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기독교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파친코 소설은 일제시대를 살아온 한국인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세심하게 잘 표현한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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