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백성의 예배: 영성체
신호철 비오 신부님
성찬례의 본성이요 제정적 요소인 영성체
그리스도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셨을 때에 빵과 잔을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뒤 그것을 ‘먹고 마시라고 내어주셨다’(마태 26,26; 마르 14,22; 루카 22,17.19; 1코린 11,24. 25-26 참조). 영성체는 성찬례의 제정적 요소로서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고 그분께서 거행하시는 미사이기 위하여 꼭 있어야 하는 요소다.
또한, 성찬례는 그리스도이신 어린양이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제사인 동시에 모든 신자가 함께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식사요 잔치이다(1코린 11,20 참조). 따라서 미사에 참여하는 이들의 영성체는 생략할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다. 최소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만이라도 꼭 영성체를 하도록 교회가 당부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초라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며, 성찬례는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이 같은 성체를 ‘영하여’ 주님 안에서 한 몸으로 일치하는 데에서 그 충만한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1코린 10,16-17).
이렇게 성찬례의 본성과 그 제정적 요소로부터 모든 신자의 영성체가 강조된다. 성체를 분배하는 성직자는 영성체를 합당하게 원하는 이들을 막을 권한이 없으며, 세례를 받은 모든 가톨릭 신자는 교회법에 저촉되지 않는 이상 영성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구원의 성사”, 91항; 교회법, 843항 참조). 예를 들어 무릎을 꿇거나 서서 성체를 영하기를 원한다거나 양형 영성체 때에 성체만을 영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단순한 이유로 신자들의 영성체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때로 성가대원들이 영성체 성가를 부르다 보면 성체를 영할 시기를 놓치는 수가 있다. 주례사제는 성찬례의 최종적인 책임자로서, 전례 임무를 맡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신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편하게 영성체할 수 있도록 미리 배려해야 한다(“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 86항 참조. 이하 항목 번호만 표기함).
양형 영성체의 이상과 현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내어주시며 당신의 몸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명하셨고 뒤에 제자들은 그대로 행하였다(1코린 11,26-37 참조).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요한 6,54 참조). 이러한 주님의 말씀에서 교회는 양형 영성체를 주님의 원의로 알아들었고 여러 세기 동안 예외 없이 신자들에게도 양형으로 성체를 분배하였는데, 먼저 성체를 영하고 이어서 성혈을 마시는 방식이었다. 이 관습은 디다케, 유스티노, 테르툴리아노, 치프리아노, 사도 전승 그리고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살았던 교부들의 증언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이후로는 일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대략 14세기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9세기 이후로는 일 년에 서너 차례 정도로 영성체의 횟수가 줄어든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성체를 영한 뒤에 성작에서 바로 성혈을 마시는 방식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1코린 11,26) 성체성사의 ‘표지(signum)’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초세기부터 이어져 오는 교회의 관습이었다. 그래서 “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 85항에는 양형 영성체에 관하여 “미리 허용된 경우에는(283항 참조) 성작에서 성혈을 모시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성작에서 직접 성혈을 영하는 방식은 성혈을 쏟을 수 있는 등 불경의 우려가 있으며, 특히 영성체할 신자의 수가 많을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더욱 복잡하고 불편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많은 신자가 양형으로 성체를 영할 때에는 성작에서 바로 성혈을 마시는 것은 권장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구원의 성사”, 102항 참조).
양형으로 성체를 영하는 또 다른 방법이 성체를 성혈에 적셔서 영하는 것인데 이를 ‘인팅시오(intinctio)’라고 한다. 이 관습은 7세기 말엽에 일부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신자들의 양형 영성체를 더욱 간편화하려는 의도에서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주님의 몸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성체성사의 표지가 축소되는 단점이 있다. 그리하여 당장 675년의 브라가 공의회에서는 편의만을 추구하는 ‘오용’으로 판단하여 금지하였다. 그 뒤로도 많은 이들이 이에 반대하였으며 찬반 논란이 계속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9세기 이후로 신자들이 일 년에 서너 차례만 성체를 영하게 되고 한번 영성체할 때는 엄청난 수의 신자가 몰렸기에 성작에서 성혈을 영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인팅시오’에 대한 시각이 다소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곧 ‘인팅시오’는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은 신자들이 양형으로 영성체를 할 경우에 ‘인팅시오’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285ㄴ; 287항). 그러나 부제가 이 방식으로 성체를 영할 경우에는 스스로 영하지 못하고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하면 그에 대해 “아멘.” 하고 대답하면서 영하도록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부제는 다른 이에게 성체를 분배하며 또한 스스로 성체를 영할 수 있음(Sacrum Diaconorum Ordinem 22,3)에도 이런 특별한 규정이 있다는 것은 편의라는 장점과 표지의 축소라는 단점을 동시에 지닌 ‘인팅시오’의 특별한 면모를 뒤에 안고 있는 것이다.
성체분배 때 유의할 점
평신도에게 성체를 분배할 때에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경으로 성체 공경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염려해야 한다. 평신도는 스스로 성체를 영할 수 없으며, 다른 이에게 성체를 건네주어서도 안 된다(“구원의 성사”, 94항). 따라서 받은 성체를 스스로 집어서 성혈에 적셔 영해서도 안 된다. 사제가 성체를 성혈에 적셔서 주면 “입으로 성사를 받아 모신 다음 물러난다”(287항). 마찬가지로, 평신도가 성작을 직접 받아 들고 성혈을 마시는 것이나 성작을 받아서 성혈을 마시고 다른 이에게 건네주는 것도 안 된다.
종종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영성체 행렬에 동참하여 앞으로 나오면 성체 대신 다른 먹을 것을 주거나, 미사 중 또는 미사를 전후하여 축성되지 않은 제병을 아이들에게 주는 경우를 보게 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도 예식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려는 의도에서라고 이해할 수는 있으나, 성체 대신에 다른 먹을 것을 분배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며 이는 금지된다(“구원의 성사”, 96항). 이는 교회의 전통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신자들로 하여금 성찬례에 관한 교회의 교의를 혼동하게끔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신호철 비오 - 부산 가톨릭 대학교 교수 · 신부. 전례학 박사.
경향잡지, 2010.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