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수필
개와 골목
김명숙
뒷동산 밤송이 거친 갑옷 벗고 매끈한 속살을 내 보이는 계절이다. 마을 어귀에서 시작된 단풍은 우리집 골목을 돌아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3 년 만에 오는 친정 나들이 길에 눈에 들어오는 기억 속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돌담 아래서 따스한 가을 볕 쬐며 공기놀이를 했다. 여름에 냇가에 물놀이 갔다 올망졸망 어여쁜 차돌을 골라 왔었다. 물결 무늬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매끈한 차돌은 손바닥에서 잘도 놀았다. 처음부터 공기를 잘 한 것은 아니다. 공기를 못해서 놀아주지 않으려는 언니를 매일 같이 쫒아 다니며 졸라 배운 것이다. 하나의 돌이 하늘 높이 올라 다른 돌을 만나 둘이 되고 셋이 되는 놀이는 정말 신기했다. 옆집 명희와 공기해서 이겨 집으로 돌아 온 날은 언니가 더 좋아했다. 명희의 언니와 친하면서도 경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골목 중간 쯤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한쪽 끈, 나무에 매어 놓고 아래 위로 높이 조절하며 사뿐사뿐 뛰어 넘는 고무줄 놀이를 했다. ‘강남 갔던 제비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하는 노래를 수도 없이 불렀다. 놀던 자리는 맨들맨들 길이 들었고 고무줄을 매단 나무는 나날이 자랐다.
고무줄 놀이하는 옆에서 함께 풀짝거리며 뛰어 오르던 강아지 한 마리. 내가 노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나를 지키던 ‘똘똘이’이다. 지금은 손 때 묻은 사진첩 귀퉁이에 웅크리고 찍혀있다.
동네 떠돌이 개한테 다리를 물려 집이 발칵 뒤집한 적이 있었다. 개 한테 물렸을 때는 개털을 태워 바르면 좋다는 할머니 말에 똘똘이 털을 잘라 태워 바르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똘똘이를 멀리 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단지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배신 당한 것이다. 자기의 털까지 희생하며 주인을 도왔는데 얼마나 억울했을까.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걸어가는 동안 나를 감싸고 돈다. 흙길이 시멘트 바닥으로 변하고 돌담이 벽돌 담으로 바뀌었다. 부드러운 흙의 감촉과 손톱사이 때 조차 이토록 아리게 그리울까. 옛 모습 그대로 였다면 이런 가슴 절임으로 다가 오지는 않았겠지. 골목도 사람도 같이 나이 들어가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