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석상진
변절과 부끄러움
어젯밤에도 혼자서 산책을 했다. 성당 앞 꾸며둔 작은 화단에서 장미를 보았다. 5월의 장미와 10월에 피는 장미의 차이가 뭘까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자연이 품은 종(種)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누군가 고엽이 피어날 이즈음까지 인위적으로 불러들이고 싶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그의 심사가 무엇이었을까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난 곧 생각을 고쳤다. 처음 만난 이에게 대뜸 나이부터 묻는 실례를 범한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어린 아이에게조차도 오직 숫자 하나로만 우위를 점하려 드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5월이든, 10월이든 그것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점차 짙어가는 계절을 각자 앞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색깔은 그 자체로 자신을 스스로 증명하는 시간표이었던 셈이다. 아니, 시간표에 적힌 거추장스런 숫자들마저 잊어버리자 생각했다. 기차역 플랫폼마다 있기 마련인 어느 벤치에 앉아 무작정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멀리 터널을 뚫고 달려오는 기차를 상상하며 우리는 각자의 낱말들을 긁적거린다. 가끔은 그것들이 독백에 머물지 않기를 욕망한다. 부디 나의 그 욕망이 변절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건 내 속옷을 함부로 내보이는 부끄러움에 비하면 더 사치스러운 것일 테지만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와 주면 나는 쓸 수 있을 것이고, 그 순간을 놓친다면 나는 영원히 받아 적지 못할 것이다. 단 한 가지 내가 부러웠던 건 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에게 시를 쓴다는 건 꽁꽁 싸맨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일기장을 광장에서 펼칠 숨긴 욕망을 품었습니다. 「사이펀」 배재경 선생님께서 직접 주신 당선 연락 전화를 받고는 이제는 그 변절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구나 아찔해졌습니다. 공모에 보냈던 원고를 다시 꺼내 읽으며 한 번 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외진 방에서 홀로 읽고 긁적이던 저에게 다 함께 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과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가장 먼저 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석상진
-1977년 경남 밀양 출생
-한양대 법학과 졸업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졸업
-eflatmin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