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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나, 偈頌讚歎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以自功德으로 復承如來威神之力하사 普觀一切衆會海하고 卽說頌言하사대
佛所莊嚴廣大刹이 等於一切微塵數어늘
淸淨佛子悉滿中하야 雨不思議最妙法이로다
如於此會見佛坐하야 一切塵中悉如是하니
佛身無去亦無來호대 所有國土皆明現이로다
顯示菩薩所修行인 無量趣地諸方便하시며
及說難思眞實理하사 令諸佛子入法界로다
出生化佛如塵數하사 普應群生心所欲하시며
入深法界方便門하사 廣大無邊悉開演이로다
如來名號等世間하사 十方國土悉充遍이라
一切方便無空過하사 調伏衆生皆離垢로다
佛於一切微塵中에 示現無邊大神力하사
悉坐道場能演說하사대 如佛往昔菩提行이로다
三世所有廣大劫을 佛念念中皆示現하사
彼諸成壞一切事를 不思議智無不了로다
佛子衆會廣無限이여 欲共測量諸佛地호대
諸佛法門無有邊하야 能悉了知甚爲難이로다
佛如虛空無分別하시며 等眞法界無所依하사대
化現周行靡不至하사 悉坐道場成正覺이로다
佛以妙音廣宣暢하사대 一切諸地皆明了하야
普現一一衆生前하사 盡與如來平等法이로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자신의 공덕과 여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회중(會衆)들을 두루 살펴보고 나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이 장엄하신 넓고 큰 세계가
모든 먼지수와 같거늘
청정한 불자들이 그 속에 가득하여
부사의하고 가장 미묘한 법을 비 내리도다
이 모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보듯
모든 먼지 속에도 다 그러하나
부처님 몸은 가지도 오지도 않아
모든 국토에 다 나타나셨네
보살이 수행하여
지위에 나아가는 한량없는 방편 보이시며
생각하기 어려운 진실한 이치를 연설하사
모든 불자를 법계에 들게 하네
화신불을 먼지수처럼 출생하사
중생들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을 널리 맞추시며
깊은 법계의 방편문에 들어가도록
넓고 크고 그지없이 다 연설하시네
여래의 명호를 세간과 같게 하여
시방 국토에 다 충만함이라
모든 방편 헛되이 지나치지 않으시고
중생들을 조복하여 때를 여의게 하네
부처님이 모든 먼지 속에서
그지없는 큰 신통의 힘을 나타내보이사
모두 도량에 앉아 연설하시되
부처님의 지난 옛적 보리행 같네
삼세의 광대한 겁을
부처님은 생각생각 속에 다 나타내보이사
저 이뤄지고 무너지는 모든 일들을
부사의한 지혜로 다 아시네
불자들의 모임 넓고 무한함이여
다함께 부처님의 지위를 측량하려 하나
모든 부처님의 법문 그지없어서
모두 다 알기란 심히 어렵네
부처님은 허공 같아 분별없으시며
진법계와도 같아서 의지 없으사
화현(化現)으로 다니심이 안 간 데 없어
도량마다 모두 앉아 정각(正覺) 이루네
부처님은 묘한 음성으로 널리 선양(宣揚)하시며
일체 모든 지위를 다 아시고
일일이 중생들 앞에 널리 나타나사
여래의 평등한 법 모두 주시네
*
보현보살의 찬탄
*
그 때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자신의 공덕으로써 다시 여래 위신력을 받들어서 널리 일체 대중들을 관찰하고 곧 송을 설해 말하대
*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은 자신의 공덕으로써 여래 위신력을 받든다. 앞서 나왔던 수많은 세간 주인들은 그 게송을 설할 때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무엇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보현보살은 자공덕(自功德)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든다.
*①
불소장엄광대찰(佛所莊嚴廣大刹)이: 부처님께서 장엄한 바 넓고 큰 세계가
등어일체미진수(等於一切微塵數)어늘 : 일체 미진수와 같다. 어떤 한 세계만을 장엄한 것이 아니라. 일체미진수와 같은 숫자의 광대차를 장엄했다.
청정불자실만중(淸淨佛子悉滿中)하야 : 청정불자는 뛰어난 불자, 훌륭한 불자를 말한다. 아주 뛰어난 불자, 훌륭한 불자가 그 많고 많은 세계에 가득하다.
우부사의최묘법(雨不思議最妙法)이로다 : 그리고 불가사의 하고 가장 미묘한 법을 비 내리듯이 쏟아 붓고 있다.
거기서 낮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니다. 불가사의한 가장 미묘한 법을 한 두 마디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비 내리듯이 쏟아 붓는 것이다.
이것이 보현보살의 첫째 게송이다.
이 게송 중에 부처님이 근사하게 그려져 있다.
부처님을 통해서 일체 미진수와 같은 국토가 장엄이 잘 되어 있고 부처님을 통해서 모든 훌륭한 불자가 그 세계에 가득하다.
불교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불교적 안목으로 사람을 보았을 때 모두가 청정불자이다.
우리는 일체사람을 청정불자로 봐야 한다.
그가 기독교인이든 어느 종교인이든 따질 것 없이 전부 청정불자이고 훌륭한 불자이다. 불교의 안목, 불교의 이치로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
최소한도 화엄경의 차원, 불교 궁극의 차원에서는 내 종교 네 종교를 나눌 일이 아니다.
가끔 진담인지 농담인지 스님들이 ‘예수보살’이라는 말을 잘 쓴다. ‘아 예수보살 오신 날이다’라는 말도 잘 하는 데 그것이 옳은 말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종교를 믿든지 그가 불교를 보호하든 불교를 비방하든 상관없이 불교적 안목으로서는 무조건 전부 청정한 불자 훌륭한 불자가 있을 뿐이다.
알량한 우리 중생심으로서는 마음에 잘 용납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원칙은 모든 사람은 그냥 불자도 아니고 아주 훌륭한 불자, 청정한 불자임을 알아야 한다.
‘아 이 세상에 청정한 불자가 가득 차 있구나. 우부사의최묘법(雨不思議最妙法)이로다’
보현보살의 첫 게송이 그렇다.
*②
여어차회견불좌(如於此會見佛坐)하야 : 이 법회에 부처님이 앉아있는 것과 같이
일체진중실여시(一切塵中悉如是)하니 :실여시(悉如是) 대신 역여시(亦如是)라고 한 책도 있다. 그것도 좋다.
일체 모든 먼지 먼지 가운데도 똑같이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역시 청정한 불자가 가득 차 있고 최상 가는 미묘한 법을 설하고 있다. 설해도 그냥 설하는 것이 아니라 폭우가 쏟아지듯이 설하고 있다.
불신무거역무래(佛身無去亦無來)호대 : 부처님의 몸은 감도 없고 또한 옴도 없다. 무래무거역무주(無來無去亦無 住)그런 말도 있다.
소유국토개명현(所有國土皆明現)이로다 : 있는 바 국토가 다 밝게 다 드러나 있다.
*③
현시보살소수행(顯示菩薩所修行)인 : 보살이 수행한 바인
무량취지제방편(無量趣地諸方便)하시며 : 한량없는 취지 제 방편을 현시한다. 취지(趣地)는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의 수행 지위점차를 말한다.
사실 사람은 그냥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이다.
그런데 완전무결한 존재에 그야말로 비단 위에 수를 놓듯이 수행의 지위점차를 따라서 수를 놓아가는 것이다.
수를 안 놓아도 좋은 비단이다. 비단은 비단 값을 다 한다. 꼭 수를 놓았다고 해서 그렇게 특별히 그 비단이 다른 것은 아니다. 이것부터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
사람은 그 사람이 착한 일만 하고, 봉사만 하고, 겸손하고, 사양하고, 자비심이 넘치는 것과는 상관없이 도둑놈이든 사기꾼이든 그대로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그야말로 비단에 꽃이 수놓아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단은 비단 대로의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 무량취지제방편(無量趣地諸方便)을 보인다고 하는 것은 그런 완전무결한 존재 위에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행으로써 하나하나 실천해 가고 있는 인생, 그러한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것이 화엄(華嚴)이다. 꽃으로 장엄되는 것이다.
비단 위에 꽃 모양의 수를 하나하나 놓아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보살행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급설난사진실이(及說難思眞實理)하사 : 또한 생각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진실한 이치를 설하사
영제불자입법계(令諸佛子入法界)로다: 모든 불자로 하여금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한다.
보현보살의 게송이다. 이것은 아주 귀한 게송이다.
*④
출생화불여진수(出生化佛如塵數)하사 : 거기에 출생한 변화의 부처님이 미진수와 같이 많다.
보응군생심소욕(普應群生心所欲)하시며 :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생명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맞춰준다.
응(應)이라고 하는 글자는 언제나 응해준다, 맞추어준다는 뜻이다.
보응군생심소욕이라고 했다. 모든 군생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다 맞춰준다.
화엄의 안목에서는 도둑놈 사기꾼이 내칠 존재가 아니다.
도둑놈은 도둑질 잘 하게 하고 사기꾼은 사기 잘 치게 한다는 말이다. 냉정하게 해석하자면 그렇다.
화엄의 안목은 이렇게 보통 일반 불교의 안목과 다르다.
여러분들 각자도 ‘화엄산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게 하고, ‘그저 일 년에 몇 번만 와도 되겠다’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또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포살법회라고 해서 이 법회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빠지게 해 주는 것이다. 한 생각을 조금만 탁 열고 보면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다. 최소 화엄의 안목은 그렇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중생심이라고 하는 틀과 잣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불교를 좀 더했다 해도 사실 얼마나 더해지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늘 갈등한다.
‘부처님은 이러라고 하는데 내 마음은 안 그렇고’ ‘착하게 살라고 했는데’ ‘이것은 속인 짓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중의 일이라고 했는데’ 하고 늘 갈등하다가 세월이 다 간다. 그러나 이제 화엄에 오면 갈등할 필요가 없다.
화엄은 갈등이 없다. 사기치고 싶으면 사기치고 도둑질 하고 싶으면 도둑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치를 제대로 안다면 거기에 무슨 도둑질이 나올 것이며 무슨 사기가 나오겠는가. 이것은 내가 결론으로써 하는 이야기일 뿐 화엄에서는 이 같은 소리가 없다. 그저 보응군생심소욕(普應群生心所欲)이다. 온갖 생명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에 그냥 다 맞춰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실천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화엄의 안목은 이렇게 근사하다. 사실 화엄경에서는 실천하고 못하고도 없다. 그냥 다 옳을 뿐이다.
이 탁자 위에 꽃꽂이를 해 놓은 것이 있는데 우리는 늘 꽃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그런데 꽃 밑에 사기로 된 그릇이 없다면 이 꽃꽂이가 존재할 수 없다. 또 잎이 없으면 꽃이 무슨 빛을 발하겠는가. 잎을 다 떼버리고 꽃만 있다고 상상해보면 무슨 볼품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 옳고 다 훌륭하다.
화엄의 안목은 그런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자꾸 공부하고 우리 마음속에 입력을 자꾸 함으로 해서 차원 높은 이런 이치도 우리의 인격이 될 수가 있다.
입심법계방편문(入深法界方便門)하사 : 진리의 세계 그대로가 방편문인 데에 깊이 들어가서
광대무변실개연(廣大無邊悉開演)이로다: 광대하고 무변하게 다 열어서 연설해 준다.
*⑤
여래명호등세간(如來名號等世間)하사 : 여래의 명호가 세간과 똑같다. 부처님의 명호가 세간 그대로다.
그러면 꽃은 그대로 꽃 부처님이다. 시계는 그대로 시계부처님이다. 이 찍찍거리는 마이크는 찍찍거리는 마이크 부처님이다. 그냥 그대로 다 부처님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대로다.
시방국토실충변(十方國土悉充遍)이라 : 그래서 시방국토 에 실충변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방편으로 모셔놓은 이렇게 근사한 부처님이 진짜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세간 국토에 다 충만하게 채울 수가 있겠는가. 채울 수가 없다. 그런 것은 아예 맞지도 않는 소리이다.
현재 존재하는 그 모습 그대로 다 우리가 이해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불교는 최소한도 그렇다. 화엄경은 그렇다. 배척하고 취사선택함이 있을 수가 없다.
일체방편무공과(一切方便無空過)하사 : 일체방편을 다 헛되이 지나지 않고, 그대로 다 수용하고 활용한다.
조복중생개이구(調伏衆生皆離垢)로다 : 중생들을 조복해서 다 때를 여의게 한다.
목욕 안했다고, 빨래 안했다고 생기는 때가 아니라 이 때[垢]는 차별심이고 분별심이다.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대로만 우리가 이해한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편안하다.
우리가 갈등하는 것은 분별심과 차별심 때문이다. 마치 대단한 것처럼 알량한 자기의 어떤 기준, 자기 틀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⑥
불어일체미진중(佛於一切微塵中)에 : 부처님께서 일체 미진 가운데서
시현무변대신력(示現無邊大神力)하사: 가없는 큰 신통력을 시현해서
실좌도량능연설(悉坐道場能演說)하사대 : 다 도량에 앉아서 능히 연설한다.
여불왕석보리행(如佛往昔菩提行)이로다 : 부처님이 그 옛날 보리행을 닦을 때와 똑같더라.
*
그대로 이 자리에 이렇게 있으면서 능히 연설한다[悉坐道場能演說]이에 관해서 소동파의 유명한 게송이 있다.
소동파(蘇東坡)는 당송팔대가로서 유명한 분이고, 불교에 대해서도 아주 대단한 분이었다. 그는 훌륭한 선지식 훌륭한 큰스님이 있다고 하면 꼭 가서 법거량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상총(常聰)스님이라고 하는 이를 만나러 가서 좋은 법문을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상총스님은 ‘당신은 왜 사람이 하는 유정설법만 들으려고 하느냐, 무정설법도 좀 들을 줄 알아라.’ 라고 하였다.
*
소동파에게는 관음예문을 지은 소소매(蘇小妹)라고 하는 누이동생이 있다. 문장가 집안 여인답게, 보살답게 소소매가 지은 관세음보살을 찬탄하는 그 글은 너무나 아름답다.
50년대 60년대 우리 어릴 때는 정초에 일주일간 관음예배를 했는데 관음예문을 가지고 했다.
한 번 하면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걸리는 의식을 하루에 네 번씩을 했다. 연비도 책에 나오는 대로 꼭 꼭 다했는데 한 회에 스물 한 번씩 하루 네 번하고 일주일간 하니까, 원이삼점(圓伊三點) 이라고 해서 나는 세 개를 잡아서 돌아가면서 연비를 했는데, 그 하나하나가 찻종지 만하게 헐었다. 그때는 좀 그렇게 미련했다.
지금은 연비하면 향을 가지고 살짝 댔다가 마는데 미련하게도 초심지나 삼배를 풀어서 초에 푹 담가서 길이 3센티미터 만큼씩을 잘라서 쿡 눌러 놓고 불을 당겼다. 옛날 삼배는 또 얼마나 굵은가. 자기가 연비할 것을 전부 자기 손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때는 신심이 있으니까 뜨거운 줄을 모르고 했고,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기분이 참 좋았다.
소동파가 지은 게송을 소개하려다가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다. 아무튼 그런 아름다운 글을 쓴 이가 소소매라고 하는 소동파의 여동생이다.
*
소동파가 상총스님한테 가서 ‘무정설법’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그만 꽉 막혀 버렸다.
‘아니 무정이 설법한단 말인가? 그러면 저 산이나 나무나 바위나 돌이나 이런 것이 설법하는가?’ 그야말로 은산철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꽉 막혀버렸다.
화두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고봉스님 말씀대로 진짜 화두는 그렇게만 되면 그야말로 3일, 길어야 7일이면 깨진다.
아무리 둔한 사람도 7일이면 깨지는데 7년을 해도 그만, 20년을 해도 그만, 아니 70년을 해도 그만이 되면 안 된다. 그럴 때는 그냥 참선을 생활로 봐야 된다.
화두공부를 고시공부라고 하는데 이것을 생활로 안 보고 깨닫기 위해서 한다면 큰일이다.
집안에 10년 동안 고시 준비하는 사람 있으면 그 집안이 망한다. 10년 이상 고시 공부를 했다면 그 인생도 망하고 그 사람에게 시집 장가 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고시공부는 한 2,3년 해보고는 때려치워야 한다.
참선도 정말 깨치기 위해서 한다면 2,3년 해보고는 안 되면 때려치워야 한다. 그런데 ‘깨치고 안 깨치고 그런 것은 나는 상관없고’ 그러한 고고한 생활이 좋아서 한다면 세세생생 해도 괜찮다.
선방에 묵묵히 앉아있으면 건강 좋고, 때 되면 밥 잘 주고, 시간 맞춰서 요가 잘하고, 등산 잘하면 그야말로 건강 생활이다. 깨끗하고 청정한 생활이다.
그 생활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면 100년을 해도 상관없지만, 깨치기 위해서는 2,3년 안에 끝내야 된다.
옛날 법어에도 마음이 공한 자는 급제해서 돌아간다[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라]는 말이 있다. 고시 공부를 해서 패스 하고 금의환향하는 것과 똑같다는 표현을 어록에서는 많이 해 놓았다.
소동파처럼만 되면 3일이면 끝난다. 또 그렇게 마음과 정신이 몰입 되어야 제대로 공부가 되는 것이다. 정말 깨치기 위해서 했다면 최소한도 3년 안에 끝나야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쓸모는 없어도 한 폭의 동양화처럼 좋은 그림이 되는 참선생활이 좋아서 그렇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 생활을 10년 이상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10년이 이익도 많고 또 손해도 많았다. 처음에 바짝 하고 빨리 끝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소동파는 무정설법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그만 그렇게 일념이 되어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우레 같은 폭포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그때 게송은 유명하다.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이다.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이 폭포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그대로 훌륭한 설법이라면 물이 흘러가는 것은 그대로 비로자나 부처님 아니냐. 산색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니냐. 당연히 그렇다.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하니
밤이 되면 팔만사천, 이 화엄경의 게송과 같은 많고 많은 게송을 설하게 되니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가
누구에게 이 도리를 이야기해야 알아듣겠느냐, 아는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
여기는 실좌도량(悉坐道場)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미진 가운데 앉아있으면서도 무변대신력을 나타내고 전부 도량에서 능히 연설을 한다.
그 연설이 이렇게 우리처럼 마이크를 대고 떠들어야 연설이 아니다. 이것은 ‘진짜로 가짜배기이고 진짜로 진짜는’ 우주 삼라만상 모든 소리, 시장 잡배들이 떠드는 소리, 물건 흥정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 치고받고 하는 소리 그 모두가 다 그대로 설법이다. 무정설법이다.
*⑦
삼세소유광대겁(三世所有廣大劫)을 : 과거 현재 미래에 있는 광대한 겁을.
미래도 무한한 미래가 있고 과거도 무한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광대겁이다.
불념념중개시현(佛念念中皆示現)하사 : 부처님이 순간순간 가운데 그 길고 긴 시간들을 다 나타낸다.
사실은 우리도 똑같다. 예를 들어서 이 순간 이 연필 속에는 무한한 과거가 있고 무한한 미래가 있다.
여기에 있는 꽃 한 송이, 나뭇잎 하나도 마찬가지이다.
이 꽃이 한 달 만에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이 공기를 마시고 꽃이 살았다. 물을 마시고 꽃이 살았다. 흙을 마시고 꽃이 살았다. 흙의 역사, 물의 역사, 공기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가? 일 이 년이 아니다. 무한한 과거이며 무한한 미래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 만에 핀 이 꽃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다 포함한다.
그런 것은 우리도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순간순간 가운데 삼세소유광대겁을 다 나타낸다.
피제성괴일체사(彼諸成壞一切事)를 : 저 모든 성주괴공 생주이멸 생로병사 춘하추동 이 모든 일들을
부사의지무불요(不思議智無不了)로다: 불가사의한 지혜로써 다 깨달아 안다.
*⑧
불자중회광무한(佛子衆會廣無限)이여: 불자의 그 대중 모임이 넓어서 한이 없음이며
욕공측량제불지(欲共測量諸佛地)호대: 함께 부처님의 그 지위를 다 측량하고자 하되
제불법문무유변(諸佛法門無有邊)하야 : 모든 부처님의 법문이 가이없어서
능실요지심위난(能悉了知甚爲難)이로다 : 능히 다 요지하는 것이 심히 어려움이 되더라.
사실은 그래서 화엄경은 어렵다.
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기가 어렵다. ‘착한 일 하라’ ‘어떻게 하라’ ‘뭐를 지켜라’ 하는 것은 못하면 못했지 이해하기는 쉽다.
그런데 화엄경은 제불법문무유변이다. 그 끝 간 데가 어디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다 알기가 너무 어렵다.
*⑨
불여허공무분별(佛如虛空無分別)하시며 : 부처님은 허공과 같이 분별이 없으시며
등진법계무소의(等眞法界無所依)하사대 : 진법계와 같이 의지하는 바가 없다. 분별이 없다.
허공이 분별이 없듯이 모든 존재도 다 나눌 일이 아니다. ‘하늘과 땅은 나와 한 뿌리며[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 라는 말이 있듯이 불여허공무분별이다.
화엄경의 부처님은 법당의 불상이나 과거 2700년 전의 역사적인 석가모니부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 이 순간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가치를 말한다.
화현주행미부지(化現周行靡不至)하사 : 화현해서 두루두루 행하는데 이르지 아니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곳곳에 다 있다.
*
경전이나 어록에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불교 중에 쏠쏠한 것이 많다.
그렇게 구전되는 이야기 중에 춘성스님과 어느 목사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옆자리에 스님이 앉으면 공연히 불교 이야기를 한다든지, 다른 종교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전에 많이 당했는데 나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에 거의 반응을 안 한다.
그런데 춘성스님은 옆의 목사가 하도 귀찮게 해서 그랬는지 ‘하나님은 우주 만물에 가득하다. 아니 계신 곳 없으시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저 화장실 똥에도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목사는 ‘앗 어디 하나님을 똥에다 비유하냐’고 발끈하면서 ‘부처님은 그럼 똥에 있느냐?’하고 춘성스님에게 물었다. 그래서 춘성스님이 ‘똥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니까 그만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들으면 별 것 아닌 이야기인데 우리 어릴 때는 그런 소리가 하도 신기해서 지대방에 흘러 다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다.
*
부처님은 허공과 같아 분별이 없으시며 진법계와 같이 의지한 바가 없다. 그래서 어디든지 안가는 데가 없다.
*
실좌도량성정각(悉坐道場成正覺)이로다: 모두 도량에 앉아서 정각을 이룬다.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 것 역시 무슨 특별한 어떤 일이 아니다. 그대로가 정각이다.
여기 도량이라는 표현이 나오니까 특별히 성도하신 도량으로 생각할 수가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⑩
불이묘음광선창(佛以妙音廣宣暢)하사대 : 부처님이 미묘한 음성으로써 널리 선창하사대
일체제지개명료(一切諸地皆明了)하야 :일체 모든 지위 제지가 다 명료해서. 제지는 앞서 나왔지만,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 이라고 하는 보살의 지위점차를 말한다.
보현일일중생전(普現一一衆生前)하사: 일일 중생 앞에 다 나타나서
진여여래평등법(盡與如來平等法)이로다 :여래의 평등법과 다 같이 하더라.
이렇게 보현보살의 해탈문을 열 가지로 표현했고 게송도 굳이 열 개의 숫자로 채웠다. 10이라는 숫자는 원만구족 완전무결을 뜻한다.
무엇이 원만구족하고 완전무결한가, 일체 만물 삼라만상이 그대로 원만구족하고 완전무결한 존재다.
우리는 자신을 생각해도 늘 부족한 것이 많다. 남을 볼 때도 언제나 제 허물은 생각 안하고 남만 그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본다. 또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여진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엄의 안목으로 왜 굳이 열이라고 하는 원만숫자를 맞추는가, 이것만을 우리가 마음에 잘 이해해도 화엄경을 어지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일체 삼라만상이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다. 원만 구족한 존재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른 와 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화엄의 이치다. 그래서 굳이 게송도 열 개가 나오고 해탈문도 열 개가 나온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
(2) 淨德妙光과 十菩薩
가, 菩薩衆의 得法
復次淨德妙光菩薩摩訶薩은 得遍往十方菩薩衆會하야 莊嚴道場解脫門하고 普德最勝燈光照菩薩摩訶薩은 得一念中에 現無盡成正覺門하야 敎化成熟不思議衆生界解脫門하고 普光師子幢菩薩摩訶薩은 得修習菩薩福德하야 莊嚴出生一切佛國土解脫門하고 普寶焰妙光菩薩摩訶薩은 得觀察佛神通境界하야 無迷惑解脫門하고 普音功德海幢菩薩摩訶薩은 得於一衆會道場中에 示現一切佛土莊嚴解脫門하고 普智光照如來境菩薩摩訶薩은 得隨逐如來하야觀察甚深廣大法界藏解脫門하고 普覺悅意聲菩薩摩訶薩은 得親近承事一切佛供養藏解脫門하고 普淸淨無盡福威光菩薩摩訶薩은 得出生一切神變하야 廣大加持解脫門하고 普寶髻華幢菩薩摩訶薩은 得普入一切世間行하야 出生菩薩無邊行門解脫門하고 普相最勝光菩薩摩訶薩은 得能於無相法界中에 出現一切諸佛境界解脫門하시니라
또한 정덕묘광보살마하살은 시방의 보살 회중(會衆)에 두루 가서 도량을 장엄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덕최승등광조(普德最勝燈光照)보살마하살은 한 생각 중에 그지없는 정각을 이루는 문을 나타내서 부사의한 중생세계를 교화하고 성숙시키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광사자당(普光師子幢)보살마하살은 보살의 복덕을 닦아서 모든 불국토를 장엄하고 출생시키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보염묘광(普寶焰妙光)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신통경계를 관찰해서 미혹을 없애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음공덕해당(普音功德海幢)보살마하살은 한 회중의 도량에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장엄을 나타내 보이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지광조여래경(普智光照如來境)보살마하살은 여래를 따라서 심히 깊고 광대한 법계창고를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각열의성(普覺悅意聲)보살마하살은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드리는 창고의 해탈문을 얻었고, 보청정무진복위광(普淸淨無盡福威光)보살마하살은 모든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넓고 크게 가지(加持)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보계화당(普寶髻華幢)보살마하살은 온갖 세간의 행에 널리 들어가서 보살의 그지없는 행문을 출생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상최승광(普相最勝光)보살 마하살은 능히 형상 없는 법계 속에서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출현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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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묘광 등 열 명의 보살들이 찬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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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보현보살 혼자 나왔고 여기는 십보보살이다. 처음 에 정덕묘광보살이 나오고 정덕묘광보살과 아울러서 나머지 아홉 분 보살은 그 이름 첫 자에 보(普)자가 든 보살들이다.
여기에 넓을 보(普)자가 많이 나오는데 온 세상 전체를 말할 때 이 보(普)자를 쓴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모두를 다 말한다.
보현보살(普賢菩薩) 역시 넓을 보(普)자를 쓰는데, 어느 한 분야에만 어진[賢] 것이 아니고 어느 곳에서든지 또 누구에게든지 모든 분야에서 어질다는 뜻이다.
넓을 보(普)자의 의미가 그렇게 광대무변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 중에서도 보현보살이 왕이다.
이 십보살까지는 동생중(同生衆)이고, 다음으로는 십이명보살(十異名)이 나오는데 이생중(異生衆)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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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들이 얻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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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정덕묘광보살마하살(復次淨德妙光菩薩摩訶薩)1은 :또다시 정광보살마하살은
득변왕시방보살중회(得遍往十方菩薩衆會)하야 : 대중들이 모인 법회에 두루두루 가서
장엄도량해탈문(莊嚴道場解脫門)하고: 도량을 장엄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앞서 보현보살은 열 가지 해탈문을 얻었다. 이제부터는 보살들이 한 가지씩의 해탈문을 얻는다. 보현보살에 대한 뜻을 표현하려는 의도이기는 하지만 차이가 아주 많이 난다.
그런 비중을 봐도 우리는 화엄경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를 캐치(catch)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안목도 소위 경안(經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런 것을 잘 아는 것이 ‘참선자 의단독로(參禪者 疑團獨露) 간경자 혜안통투(看經者 慧眼通透)’할 때의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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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최승등광조보살마하살(普德最勝燈光照菩薩摩訶薩)2은
득일념중(得一念中)에 : 일념가운데
현무진성각문(現無盡成正覺門)하야 : 다함이 없는 정각을 이루는 몸을 나타내서
교화성숙부사의중생계해탈문(敎化成熟不思議衆生界解脫門)하고 :불가사의한 중생세계를 교화하고 성숙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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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자당보살마하살(普光師子幢菩薩摩訶薩)3은
득수습보살복덕(得修習菩薩福德)하야 : 보살의 복덕을 수습해서. 보살이 지어야할 복과 덕을 수습한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서 불교는 복덕을 닦는 일이다.
장엄출생일체불국토해탈문(莊嚴出生一切佛國土解脫門)하고: 일체 불국토를 장엄하고 만들어 내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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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염묘광보살마하살(普寶焰妙光菩薩摩訶薩)4은
득관찰불신통경계(得觀察佛神通境界)하야: 부처님의 신통경계를 관찰해서
무실혹해탈문(無迷惑解脫門)하고 : 미혹이 없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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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음공덕해당보살마하살(普音功德海幢菩薩摩訶薩)5은
득어일중회도량중(得於一衆會道場中)에 : 하나의 대중들이 모인 모임 중에.
예를 들어서 ‘문수경전연구회’ 하면 문수경전연구회 이 도량 가운데서
시현일체불토장엄해탈문(示現一切佛土莊嚴解脫門)하고 :
일체 부처님 국토의 장엄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다.
한 모임에서 일체 불국토의 장엄을 시현하는 해탈문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불교의 본보기, 승려의 본분,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 느끼고 실천에 옮김으로 써 일체 불교, 모든 승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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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광조여래경보살마하살(普智光照如來境菩薩摩訶薩)6은
득수축여래(得隨逐如來)하야 : 여래를 쫓아다니면서
관찰심심광대법계장해탈문(觀察甚深廣大法界藏解脫門)하고: 매우 깊고 넓고 큰 법계의 장(藏)을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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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열의성보살마하살(普覺悅意聲菩薩摩訶薩)7은
득친근승사일체불공양장해탈문(得親近承事一切佛供養藏解脫門)하고 : 일체부처님을 친근하고 받들어 섬겨서[承事]공양 올리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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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정무진복위광보살마하살(普淸淨無盡福威光菩薩摩訶薩)8은
득출생일체신변(得出生一切神變)하야 : 일체 신통변화를 출생해서
광대가지해탈문(廣大加持解脫門)하고 : 광대하게 가지(加持)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가지는 가피와 같은 뜻이다. 가(加)는 부처님이 위신력을 내려주시는 것이고, 지(加持)는 우리가 가지는 것이다. 가피 역시 가(加)는 부처님이 내려주고 더해주는 것이고, 피(被)는 우리가 입는 것이다.
같은 뜻인데 우리는 가피라는 말을 잘 쓰고 경에는 가지라는 말을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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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계화당보살마하살(普寶髻華幢菩薩摩訶薩)9은
득보입일체세간행(得普入一切世間行)하야 : 일체 세간에 두루두루 들어가서
출생보살무변행문해탈문(出生菩薩無邊行門解脫門)하고: 보살들의 가없는 행을 출생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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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최승광보살하마살(普相最勝光菩薩摩訶薩)10은 :
득능어무상법계중(得能於無相法界中)에 : 능히 형상이 없는 법계 가운데서
출현일체제불경계해탈문(出現一切諸佛境界解脫門)하시니라 : 일체 제불 경계를 출현하는 해탈문을 얻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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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불교적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불교적 안목으로 사람을 보았을 때 모두가 청정불자이다...> 慧明華보살님! 화엄의 바다를 반짝반짝 눈부시게 장엄하여 주셔서 공부 잘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_()()()_
普應群生心所欲...고맙습니다. _()()()_
示現無邊大神力하사 悉坐道場能演說하사대...혜명화 님! 수고하셨습니다. _()()()_
令諸難思眞實理하사 令諸佛子入法界로다...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모두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
여래의 명호를 세간과 같게 하여 시방 국토에 다 충만함이라...고맙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
불념념중개시현(佛念念中皆示現)하사 ... 부처님이 순간순간 가운데 그 길고 긴 시간들을 다 나타낸다...고맙습니다_()()()_
諸佛法門無有邊 能悉了知甚爲難....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여래의 명호를 세간과 같게 하여 시방 국토에 다 충만함이라 ..._()()()_
화엄에서는 그저 普應群生心所欲이다. 온갖 생명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에 그냥 다 맞춰 주는 것이다. 우리는 다 옳고 다 훌륭하다.
꽃이 피어난 역사는 공기, 물, 흙의 역사와 똑 같다.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다 포함한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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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이 한 달 만에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이 공기를 마시고 꽃이 살았다. 물을 마시고 꽃이 살았다. 흙을 마시고 꽃이 살았다. 흙의 역사, 물의 역사, 공기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가?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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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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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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