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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올해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사진 이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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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드민턴은 전통적으로 단식보다는 복식이 강했다. 정재성-이용대(이상 삼성전기, 세계 5위)조는 최근 벌어진 유럽투어에서 독일오픈 준우승과 ‘배드민턴의 윔블던’으로 불리는 전영오픈 우승 그리고 스위스오픈 정상에 오르며 박주봉-김문수조, 김동문-하태권조의 뒤를 잇는 복식조로 떠올랐다.
베이징올림픽 메달이 눈앞에 보인다. 그러나 남녀단식은 여전히 세계정상과 거리가 있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여자단식에서 방수현이 딴 금메달이 유일한 올림픽 단식 금메달이다.
한국배드민턴의 미래를 책임질 주니어선수들이 3월 9일 독일 보트롭에서 끝난 2008 독일주니어배드민턴선수권대회 남녀단식, 여자복식, 혼합복식 등에서 우승한 가운데 주니어랭킹 1위 박성민은 남자단식 결승에서 홍콩의 윙키웡을 2-0(21-19 21-18)으로 꺾어 남자단식에 한줄기 희망을 던졌다.
박성민은 유도를 한 아버지의 권유로 운동을 하게 됐다. 운동을 하기 위해 배드민턴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셔틀콕과 인연을 맺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 처음 출전한 삼성전기배 초등학교 5학년부에서 2패로 예선 탈락의 쓰라린 경험을 했다.
그러나 6개월 뒤 박성민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코트에 섰다. 삼성전기배 후반기 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그 대회 이후 박성민은 성장을 거듭해 중2 때 주니어대표로 뽑히며 한국배드민턴 남자단식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거의 모든 운동선수들이 겪는 슬럼프도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운동이 하기 싫던 중3 때 임종우(화순실고)에게 계속 졌다.
왼손잡이인 임종우는 무척이나 힘든 상대였다. 임종우만 만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임)종우를 이긴 뒤에야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껄끄러운 상대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언제든 이길 수 있을 만큼 내 기량이 많이 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박성민의 성장세는 이어졌다. 지난해 독일주니어오픈 단식 2위, 세계주니어단체전 2위에 이어 올해 드디어 독일주니어오픈 정상에 올랐다.
전통적으로 복식이 강한 한국배드민턴 환경으로 볼 때 복식을 택할 만도 하지만 박성민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단식 전문선수의 길을 택했다.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는 단식이 자신의 성격과 맞기 때문이다.
박성민은 조용한 데다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간혹 선생님들이 ‘경기를 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않은 거야’라고 말하시며 혼낼 때도 있다. 난 그저 경기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인데 오해를 받기도 한다.”
주니어선수이니 파이팅을 외치며 활기찬 경기 운영을 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포커 페이스’가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손목의 힘이 강한 게 박성민의 최대 무기다. 손목의 힘을 활용하는 스매싱이 뛰어나다. 힘에서는 국제무대에서도 밀리는 일이 없다.
특히 대각으로 꽂아 넣는 스매싱이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튼튼한 하체와 빠른 발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가대표팀에 하루빨리 합류해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쌓아야 한다.
국가대표 선배들을 꺾어도 올림픽 메달은 쉬운 목표가 아니다. 남자단식의 경우 세계 4강이 현실적인 기대치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박성민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꿈을 안고 도전할 생각이다. 올해는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이루는 해가 될 것이다.
박성민
생년월일ㅣ1990년 5월 12일
신체조건ㅣ171cm/ 68kg
약력ㅣ인천 신흥초-인천 화도진중-인천 해양과학고 3년*이유미 스포츠칼럼니스트는 KBS 1 라디오 <스포츠하이라이트> 작가로 활동 중이며 SPORTS2.0에 루키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