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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배경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너무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나사로(나자로스)의 뜻은 “하나님이 돕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함입니다 → 영광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 그러면 오늘 말씀의 중요한 키워드인 “영광”(헬, 독사 / 히, 카보드)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영광이란 단어를 영광의 빛, 영광의 광채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항상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현현하심과 함께 나타납니다.
,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평판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모습입니다.
[계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 모세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 33:18)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하나님의 손으로 그를 덮은 후에 하나님의 등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 없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신 것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인격,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에 죽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2) 기적을 베푸시는 첫 번째 이유가 “영광”이라면, 기적을 베푸시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 믿게 하는 것
[요 11:15]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이 사건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들의 사역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로 기적이 일어나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보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사역을 통해서 “내 영광”이 드러나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난다면 궁극적인 유일한 목적은 예수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고자 함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능력을 주신 것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역에 기적이 일어난다고 겸손해지고 교만해지면 큰일 납니다.
2.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왜, 예수님처럼 죽은 나사로와 같이 살아나는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1) 오늘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면, 먼저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계량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자신도 얼마나 크고 작은 믿음을 가졌는지 잘 모릅니다.
믿음이 필요한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 믿음이 없거나 너무 작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초기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들도 성령을 체험하기 전에는 믿음이 크지 않았습니다.
주님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없느냐”라며 책망을 받은 그들입니다 (막 4:40, 마 8;26,14:31,16:8)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막 16:11]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더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아직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마 28: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것이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생전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는데 (마 16:21, 17:23, 20:19) 예수님이 실제 살아나셨을 때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하물며 오늘날 우리들은 제자들보다 믿음이 더 좋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가 가는 만큼 믿고자 합니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믿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로마서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러므로 믿음의 분량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하실 때 거의 대부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믿음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의 믿음의 분량은 어느 수준입니까?
겨우 구원받은 수준입니까? 이것도 큰 믿음이지만, 이제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같이 큰 기적을 경험할 만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은사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겨자씨 한알 만큼만 있어도 이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7:20)
겨자씨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마리와와 마르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마리아와 마르다는 최소한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오시면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은 그동안 예수님의 병 고치는 사역을 많아 보아왔기 때문에 그 정도의 믿음은 가지게 된 것입니다. 경험적인 믿음입니다.
어쩌면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오시면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 3일 동안에도 그들은 주님 오시면 살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을 치르지만, 당시 사람들도 3일 동안 그 영혼이 그 주변에 있다가 떠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나사로가 이미 죽어 무덤에 들어간 상태이며 사흘을 지나 나흘이 되어습니다. 그래서 썩어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의 영혼이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그들에게는 나사로가 산다는 소망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산다는 믿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의 한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실 때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니까 그들이 대답이 죽은 지가 사흘이 지나 나흘이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제는 안됩니다. 늦었습니다. 돌을 옮겨 놓아도 헛수고 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완전한 소망이 없는 때가 되도록 지체하신 것일까요?
나사로가 병들었다고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베다니로 가셨다면 나사로가 죽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요단강 저편 베뢰아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 10:40), 그런데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신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보아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한 그날 죽었을 것으로 보여 시간적으로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체하시고 도착하시니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살 소망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흘이 되었으매 이미 썩어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설 때가 된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됨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다시 산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우리들도 마리아와 마르다의 처지에 놓였다면, 생물학적으로 이미 눈도 썩어 들어가고, 피는 응고 되고, 썩은 진물들이 흘러나오고 냄새가 나는 상황속에서 주님 하신 말씀은 하나도 믿어지지 않고 거저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실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런 때에는 낙심하고 슬퍼하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면 안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을 볼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방법 동원하지 말고요.
나사로가 무덤에 들어가 있든지, 썩고 있든지 그것은 하나님에게는 상관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분입니다 (요 2:9)
이것도 대단한 기적입니다. 이것 만으로도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도나무도 만드시는 분입니다.
이제는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신다는 믿음을 지나서 이제는 “완전히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도 믿지 못하십니까?
죽을 병도 아닌데 조금만 아프면 하나님께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바로 병원부터 달려가는 사람들, 과연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잘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붙잡고 지금 나에게 다가온 질병이 또는 나의 가족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까? 한번쯤은 기도해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믿음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 죽은 자를 살리시는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ㄹ)네 2)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를 보더라도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상태에서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아기 낳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죽은 것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은 또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것을 믿는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
[롬 4: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신 것은 믿는데, 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은 믿지 못하십니까? 오늘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왜, 우리들은 믿지 못하십니까?
똑 같은 영적 원리인데 말입니다.
다 썩어 냄새가 나고 안나고는 인간적인 기준입니다. 말기암 환자를 의사가 시한부 인생으로 선언했지만 하나님은 살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것은 그동안 우리들의 믿음이 가짜였거나 작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기초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에 기초한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신에 불과합니다. 가짜 믿음인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사실에 기초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사실에 근거한 것을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데, 커피가 나올 것에 대하여 “믿음”을 가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는 이성적으로는 과학적으로는 지식적으로는 보이지 않고 이해가 안되는 것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기적은 초자연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참으로 기적을 볼 수 있는 믿음은 초자연적인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사고에 기초한 믿음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하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자는 “헛소리 한다”고 할 것입니다.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들은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초자연적인 믿음을 가졌으므로 동일한 역사가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말씀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초월적인 기적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믿음은 반드시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 마 14장에 베드로가 잠시 물 위를 걷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 14: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4)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베드로가 초반에는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초월적인 믿음을 가지고 바다로 뛰어 들었지만, 주변에 일어나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그만 바다에 빠져들어가고 맙니다.
바람을 보는 순간 기적을 볼 수 있는 믿음이 그에게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의심은 믿음의 반대 개념입니다. 믿음을 잃는 순간 기적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가 잠시 동안 바다위를 걸은 것은 초반에는 초월적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간 것입니다.
잠시이지만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은 “오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한 믿음의 행동이라는 사실에 유념하셔야 합니다.
초월적 믿음을 보인다고 하면서 높은 고층에서 뛰어 내리면 죽습니다. 왜요, 하나님 말씀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이성적으로 믿어지든 그렇지 않든 믿음의 행동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믿음 부족으로 기적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날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믿는 자가 아닙니다.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성경의 초자연적인 내용을 마치 신화로 치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신학교 교수하면 안됩니다.
상식적으로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믿어야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분입니다. 그런데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못한다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교회는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 믿는 교회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모두 믿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말씀 등 절대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3) 오늘 말씀이 육신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에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 가족이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자 같아서 소망이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내 사업장이 누가봐도 완전히 거들나서 망했습니까?
죽은 사업장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 선고를 내리실 때 그 때는 포기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에 근거하여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면 안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그 영광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죽음이 없습니다.
이 땅에 그런 하나님의 영광이 덮혀진다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이런 영광을 끌어당겨 오는 것입니다. 이것도 천국을 침노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씀>
우리의 믿음 부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 만큼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만큼 기적을 볼 것입니다.
내 이성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그렇게 된다면 된다고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믿음이 다 있을까요? 아닙니다. 죽은 믿음도 있고 작은 믿음도 있고 큰 믿음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종말로 갈수록 믿음은 점점 더 없어질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기가 더 어려운 시대에 살 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8:8)
주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사업장이 망했습니까? 누가 죽었습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까?
참 믿음, 큰 믿음을 가지고 살리는 역사,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기적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