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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봉~용문산 연계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23년01월30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약12.66km
산행시간: 8시간05분(10:45~18:50)
산행코스:세수골 들머리(10:45)-두리봉(11:20)-헬기장(11:59)-백운봉(12:45)-전망암봉(14:00)-함왕봉(14:56)-장군봉(15:15)-정상밑3거리(16:13)-용문산정상(16:22)-정상밑3거리(16:37)-마당바위(17:40)-용문사(18:25)-용문관광단지종점 날머리(18:50)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10:25~10:38 양평역에서 택시로 세수골로 이동
10:45 세수골 용문산 휴양림에서 산행시작 해발238m
10:52 두리봉 능선안부
11:20~25 두리봉, 산행거리0.88km, 산행소요시간35분, 해발543.2m
11:35 579.7봉
11:59~12:02 헬기장, 산행거리2.23km, 산행소요시간1시간15분, 해발681m
12:19 형제우물 갈림길
12:45~13:07 백운봉, 산행거리3.34km, 산행소요시간2시간00분, 해발941.2m
13:18 연수리 갈림길
13:29 형제우물 갈림길
13:32 구름재(사나사갈림길1), 산행거리3.96km, 산행소요시간2시간47분, 해발770m
14:00~14:07 전망 암봉, 산행거리4.35km, 산행소요시간3시간15분, 해발863m
14:14 헬기장
14:16 사나사갈림길이정표2, 산행거리4.65km, 산행소요시간3시간31분, 해발839m
14:20~25 함왕성 암봉, 산행거리4.71km, 산행소요시간3시간35분, 해발868m
14:40 사나사갈림길이정표3, 산행거리5.23km, 산행소요시간3시간55분, 해발883m
14:56 함왕봉(사나사갈림길이정표4), 산행거리5.57km, 산행소요시간4시간11분, 해발963m
15:15~29 장군봉(상원사갈림길), 산행거리6.16km, 산행소요시간4시간30분, 해발1055m
15:40 정상 갈림길이정표, 산행거리6.71km, 산행소요시간4시간55분, 해발1082m
16:13 정상밑3거리, 산행거리7.73km, 산행소요시간5시간28분, 해발1106m
16:22~25 용문산 정상, 산행거리7.83km, 산행소요시간5시간37분, 해발1157m
16:37 정상밑3거리(용문사3.3km↔정상0.11km,장군봉↑1.41km)
17:16 능선이정표(상원사2.4km↔정상0.9km,용문사↓2.1km), 산행거리8.74km, 산행소요시간6시간30분, 해발842m
17:35 합수곡 목교
17:40 마당바위, 산행거리9.40km, 산행소요시간6시간55분, 해발608m
17:55 계곡 목교2
18:18 상원사갈림길3거리
18:25~30 용문사, 산행거리11.17km 소요시간7시간40분, 해발282m
18:43 용문사 일주문
18:50 용문관광단지종점 날머리, 산행거리12.66km 소요시간8시간05분, 해발192m
○산행 전 이야기
2023년 2번째 산행은 용문산으로 정했습니다.
용문산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하며 산림청 100대명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산이면서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입니다.
또한 용문산 동남방향에는 용문산보다 더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고, 이 은행나무의 유명세를 등에 없고 용문사가 덩달아 유명해졌으며 사찰입구가 되는 신점리 일대는 용문관광단지로 개발되어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용문산은 여러 차례 올랐던 산으로 용문산 뿐 아니라 용문산 인근에 있는 여러 산들과 한강기맥의 능선을 모두 섭렵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용문산을 다시 찾은 건 2002년 12월31일 눈 쌓인 용문산 능선을 걸으며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하루가 지나면 2003년이 되고 2003년이 되면 50살인 지천명이었습니다.
이후 20년이 지나 종심이 되었습니다.
공자는 만년에 논어에 회고하기를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리고 했으니 15세를 지학, 30세를 이립, 40세를 불혹, 50세를 지천명, 60세를 이순, 70세를 종심이라 합니다.
공자의 종심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면상의 문제로 적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천명을 하루 앞 둔 2002년12월31일 용문산 능선을 걸었던 같은 코스를 걸으며 지천명과 종심에서 서로 다른 느낌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생각으로 20년전 지났던 길을 다시 걷기로 합니다.
09시55분 청량리에서 탄 기차는 10시25분 경 양평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들머리가 되는 백안리 세수골로 가는 버스는 1일3회로 맞출 수가 없어 택시를 이용합니다.
이용요금은 7.300원이 나오며 산행들머리는 용문산 자연휴양림 정문과 붙어 있습니다.
○세수골 자연휴양림에서 두리봉 구간
세수골 용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하차한다.
세수골 등산 들머리는 자연휴양림 입구와 붙어 있기 때문으로 5분여 산행채비를 마치고 들머리에 있는 계수대를 지난다.
계곡 옆 등로를 따라 4~5분 오르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이정표(↑백운봉2.7km, →두리봉1km)가 있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 계곡길과 우측 능선길로 갈라지는데 능선길은 두리봉으로 직접 오르는 길로 이번에는 미답지인 두리봉으로 직등하기로 하고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갈림길에서 3분 정도 올라 두리봉 주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능선에도 이정표(백운봉2.75km, 두리봉0.53km)가 있는데 두리봉의 거리가 조금전 1km에서 530m로 줄어들었다.
처음부터 두리봉의 거리가 헷갈리게 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530m가 맞는 거리다.
능선 이정표에서 두리봉으로 가는 등로는 여는 산과 다름없는 밋밋한 오름이 지속되다가 약12~13분 정도 지나면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로프지대가 나온다.
등로는 능선을 중심으로 좌측 음지쪽과 우측 양지쪽을 번갈이 오가는데 음지쪽으로 오를 때면 바람도 강했고 추위도 온몸으로 느낄 정도로 춥다.
양평 어딘가 사격장이 있는지 이곳을 오를 때마다 느꼈던 소리로 포사격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간간이 이어지는 포사격 같은 소리를 들으며 좌측으로 암봉이 하능로 솟구친 693.1봉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정상을 엄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 등로 좌측으로 암봉이 있는데 이곳에서 693.1봉 조망이 좋아 조심스럽게 암봉 전망대로 올라서 693.1봉을 보니 멋있게 보였는데 693.1봉 정상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붉은 깃발은 경고를 뜻하는 것으로 693.1봉 아래 사격장이 있는 것 같았고 두리봉으로 오르며 들렸던 소리가 포사격장에서 난 소리인 것 같았다.
산행을 처음 시작했던 거의 30년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웃집 형님들과 산악회를 만들어 백운봉을 올랐을 때 693.1봉을 올랐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르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아 오늘은 693.1봉을 왕복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잠시 조망을 마치고 음지로 들어서면 눈이 아직 많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들이닥치는 것 같은 강풍이 사정없이 불어대고, 고개를 숙이고 가파른 오름으로 위로 올라서니 돌탑이 있는 두리봉이 반긴다.(들머리에서 두리봉까지, 0.88km35분 소요)
두리봉
두리봉의 본 뜻은 둘레라는 의미로 주변을 제대로 굽어 볼 수 있는 봉우리라고 하는데 두리봉은 이곳뿐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봉우리가 많다고 하는데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2013년 온맵을 보면 용문산에서도 이곳이 아닌 백운봉 북벽 주변 능선에 또 다른 두리봉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12년 일제강점기 때 만든 지도에도 두리봉이라는 봉명은 나오지 않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지도상에도 두리봉이라는 봉명이 표시되고 있다.
두리봉 정상은 위험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안부로 장상부에 1.5m 높이에 돌탑이 있고 이정목에 두리봉 정상이라는 명패를 고정시켰다.
두리봉 정상에서 조망은 주변 잡목들 때문에 좋은 편이 아닌데 북쪽으로는 690봉과 백운봉이 잡목 뒤로 보이며 정상 명패가 달린 이정목 뒤로 양평시가지와 한강이 시원스럽게 보이며 한강 뒤로 이천의 원적산, 여주의 양자산, 광주의 해협산, 하남의 검단산, 국수의 청계산이 조망된다.
두리봉에서 잠시 머물다 가파른 내림 등로를 따라 4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들머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이며 이곳에서 소나무 숲이 우거진 가파른 길을 따라 7분 정도 오르면 579.7봉이다.
579.7봉에서 평지같은 길을 지나 서서히 오름이 지속되는 길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면 평상이 있는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하산하는 산객한사람을 만나는데 오늘 처음만난 사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반응은 별로다.
평상이 있는 쉼터에서 1분 정도 지나면 넓은 헬기장으로 이곳이 682.5고지이다.
헬기장에 올라서니 먼저 올라온 한 사람이 쉬고 있는 산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사람과 백운봉을 올랐고 백운봉에서도 20여분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헬기장에서 조망은 백운봉을 보는 면에서는 최고지만 그밖의 풍경은 잡목이 커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며 가깝게 있는 693.1봉도 잡목에 가려 형체만 볼 수 있으며 두리봉의 풍경은 잘 나타나며 두리봉 우측으로 청계산과 검단산아 가물거린다.
그러나 이곳에서 주변 조망이 좋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 백운봉에서 최고의 조망이 터지므로 아무런 걱정이 없다.
잠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고 693.1봉을 왕봉하기 위해 서쪽으로 나있는 길로 내려서자 들머리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주등산로를 만나고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야하는데 몇 발자국 들어가다가 693.1봉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때는 스패치를 착용하지 않아 눈이 많이 쌓였기 때문인데 하산하며 느낀 것이지만 이곳에서 693.1봉 포기는 아주 적절한 결정이었다.
693.1봉을 포기하고 백운봉으로 향한다.
헬기장에서 U곡 저점을 찍는 곳이 지도상에 삼태재로 우측 연수리에서 좌측 신애리를 넘던 고개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서서히 오름이 지속되는 등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낯익은 이름을 기록한 이정표를 만나는데 바로 샘터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인데 이정표에는 형제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운봉 오름을 생략하고 우회하여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한 샘터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헬기장에서 쉬고 있던 산객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백운봉으로 오른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최고의 비경이 펼쳐지는데 두리봉과 헬기장 그리고 693.1봉의 능선 풍경이 나래를 편 듯 펼쳐지고 양평시가지 건너편으로 한강이 상류 여주부터 하류 분원까지 한눈에 보이고, 어느 지점을 지나는 곳에는 절벽 위 소나무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여름철 백운봉을 오르다 이곳에서 쉬어가며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한다면 최고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망쉼터를 지나고 다시 계단을 2차례 오르면 눈앞에 안부의 풍경이 펼쳐지니 바로 백운봉 정상이다.
▷세수골 자연휴양림들머리에서 백운봉 정상까지 산행거리3.34km, 산행시간2시간00분, 해발941.2m, 현재시간 12시45분이다.
○백운봉(白雲峰)에서 용문산 정상 구간
백운봉(白雲峰)
백운봉은 용문산3대봉우리의 하나이다.
조선말 해동지도에 표기된 것을 보면 좌측으로 백운봉(白雲蜂), 가운데 미지산(弥智山) 그리고 우측으로 향로봉(香爐蜂)이라고 표기했다.
최근에 와서는 이외에도 장군봉, 함왕봉, 두리봉, 천사봉, 중원산, 도일봉 등이 많은 봉우리를 표기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명칭을 기록한 봉우리는 1산2개봉이 전부였다.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백운봉은 양평 주변을 지나며 보면 하늘로 치솟은 위풍당당한 모습이 마테호른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백운봉(白雲峰)은 한문을 직역하면 흰구름속에 묻혀 있는 봉우리 또는 흰구름이 휘감고 있는 봉우리로 해석해야할 것 같은데 이는 예로부터 산이 높아 흰구름이 머무는 신비스러운 봉우리로 느껴졌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 같다.
백운봉에는 단순한 하나의 산정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백운봉에는 정상표지석 이외 또 다른 탑이 있으니 통일염원탑으로 백두산에서 돌과 흙을 이곳에 묻고 세워 남북이 하나 되어 통일을 이루자는 의미인데 최근 들어 전국 사방에 간첩들이 득실거리고 있으니 평화로운 통일이 아닌 피로 물든 통일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크다.
백운봉은 이번이 5번째는 되는 것 같다.
30여년전에 동네지인들과 만든 산악회에서 오른 것을 처음으로 이후 집사람과 둘이서 오른 적도 있고, 20년전 지천명을 하루 앞두고 올랐으며, 몇 년 전 대구 참사람산악회 후배들과 올랐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백운봉에서 조망은 아주 뛰어나다.
동서남북 사방에 막힘이 전혀 없이 탁 트였으니 이러한 조망처는 그리 흔하지 않다.
북동방향으로 가야할 용문산 정상이 있고, 우측 가까운 곳에 용문봉과 중원산, 도일봉이 있고 동쪽으로 신당고개 건너편으로 한강기맥 산릉을 따라 갈기산과 성지봉, 오음산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성지봉 앞쪽으로 금왕산, 삼각산 뒤로 원주의 치악산이 위치하고, 치악재 우측으로 백운산과 십자봉이 희미하게 보이며 십자봉 앞쪽으로 미륵산과 덕가산, 명봉산이 보인다.
정남향으로 원덕의 추읍산이 보이고 추읍산을 마주보고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북성산 자락의 영릉 숲이 희미하게 보이고, 북성산 뒤로 보이는 산은 오갑산과 국망산으로 여겨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양평군 강하면 일대를 보면 양자산과 앵무봉이 머리만 겨우 드러내고, 양자산 좌측으로 앵무지맥인 원적산이, 양자산 우측으로는 해협산과 하남의 검단산과 그 너머로 남한산이 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 검단산을 마주보고 예봉산과 운길산이 있고 앞 쪽으로는 청계산이 높게 보이며, 서북 방향으로 가깝게는 유명산과 대부산이 보이고 그 뒤로 천마산이 있다.
그런가하면 남서방향으로 조금전 지나온 헬기장을 가운데 두고 봉황이 날개를 편 듯 우측으로 693.1봉 능선이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두리봉 능선이 펼쳐진 모습이 금방이라도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를 형태이며 두리봉 좌측 뒤로 추읍산이 우뚝한데 제가 자란 여주에서도 추읍산인 벌판에 우뚝 솟아오른 산으로 산꼭대기에서면 7개읍이 보인다해서 칠읍산이라고 부르고 자랐던 산이며 칠읍산과 마주보고 있는 세종릉인 영릉은 지금 서울 내곡동 헌릉터에 있던 영릉을 여주로 천장을 할 때 영릉터와 칠읍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 산이다.
배운봉 정상에서 요주 신륵사 입구에 있는 고층주상복합아파트와 영월루 위치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정상 데크전망대에서 점심 대용으로 준비한 빵2개를 먹고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며 20여분을 머문 뒤 백운봉을 뒤로하고 급한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가파르고 눈이 대부분 녹지 않은 상태로 많았으며 내리막 계단으로 접어드는 곳에서의 유명산 조망이 제대로 열리는데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는 넓은 밭이 보이고 대부산 가기전 능선은 관상 등 여러 영화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그리고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바위암봉, 함왕봉, 장군봉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가야할 산릉이 길기만 하다.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대고 전과 달리 계단이 많았는데 계단에는 눈이 많고 가팔라 무척 위험했으니 조심스럽게 한 차례 내려선 뒤 지나온 백운봉을 보고 다시 앞르호 나가면 아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벼랑에 눈이 쌓인 계단이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이어지는 2번째 계단을 내려서서 이제 등로사정이 좋아지나 기대를 했는데 다시 아슬아슬한 3번째 계단이 이어지는데 주변 상황에 위축되고 기온이 낮아 춥고 강풍 때문에 기를 펼 수가 없고, 눈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내려가다가 스패치를 착용하고 내려선다.
위험한 길을 따라 내려서 마지막계단을 내려서기까지 10분이 걸렸는데 마음같아서는 1시간은 내려선 득 했으며 마지막 철계단을 지나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연수리로 가는 탈출로가 있는 곳인데 내려선 흔적도 있다.
이정표에서 다시 10분을 더 내려서자 형제우물 이정표가 있는 3거리에 도착하면서 험지를 벗어났다는 안도에 뒤돌아 백운봉 방향을 보고는 다시 능선을 따라 약3분을 지나자 사나사로 탈출하는 3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 구름재다.
사나사.
사나사는 용문산 백운봉과 함왕봉 사이 계곡에 있는 절로 용문사, 상원사와 함께 용문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한 곳이다.
사찰에대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1912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도를 보면 용문산 3대사찰로 불리는 곳 중 용문사와 상원사는 사찰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사나사는 절 표시인 卍(만)으로만 기록했다.
이곳 구름재에서 사나사까지는 2.31km라고 표기했으며 사나사로 하산한 흔적도 많이 나 있다.
사나사 갈림길을 지나면 등로를 따라가며 앞에 우뚝 솟은 암봉이 기를 죽인다.
옛날을 소환해보지만 암봉으로 올라서 지났는지, 우회하여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앞으로 나간다.
높은 암봉을 가기전 작은 암봉인 814봉을 넘어서며 위압적으로 보이는 높은 암봉인 868봉을 우회하며 지나가기를 기대했는데 현실은 바람과는 반대로 868암봉으로 정상적으로 넘어야 했다.
암봉으로 오르는 곳곳에 소나무가 받쳐주는 그림같은 전망대를 지나고 14시가 되어 868암봉에 올라섰는데 이곳에는 암봉 정상부에 데크전망대를 설치했다.
여름같으면 어렵게 올라선 보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전망대에서 쉬어갈 특전을 주는 곳이며 데크전망대를 내려서 용문산 방향으로 절벽위에 노송이 있는 전망대로 이동하면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전망대에서도 조망은 뛰어난데 조금전 백운봉에서와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으며 다만 용문산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 868암봉에서 내려서는 것도 눈이 있어 쉽지 않다.
조심스럽게 암봉을 내려서면 능선은 성곽의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내게는 아주 의미있는 곳으로 오늘 용문산을 찾은 건, 이곳 함왕성터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곳 능선을 포함해 좌측으로 예전에 함왕성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는 이곳 능선 어딘가에 함왕성 안내표지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성곽흔적이 있는 능선을 따라 조금 지나면 2번째 이정표가 있는 사나사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정표에서 2~3분을 지나면 성곽 역할을 하는 암봉이 나오는데 가던길에서 암봉으로 올라 잠시 옛날을 회상해 본다.
2002년12월31일
나는 그날 이곳 용문산을 올랐다.
내 나이 마흔아홉
오늘이 지나면 50으로 공자가 말하기를 50은 지천명(知天命)이라했으니 이러하다.
『공자는 만년에 위정편(爲政篇)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지천명으로 하늘이 나를 이땅에 세운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나이라고 했는데 ‘나‘에 대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추위속에서 20여분을 머물다 간 곳이다.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1달이 지나면 공자가 말하는 종심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지천명에서 20년이 지나 종심이 되었거늘 나는 무식해서인지 천명도 깨달을 수가 없고 현대를 살면서 법도에 어긋나게 살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
불어대던 강풍도 지금은 고요해졌다.
5분여 동안 지천명에서 종심으로 스쳐 지나는 시간을 타임머신을 타고 오고갔다.
다시 등로로 내려서서 능선을 지난다.
눈은 더 많이 쌓였고, 바람이 만든 설구(雪丘)를 지날 때면 무릎까지 차는 곳도 있다.
암봉에서 15분 정도 올라 이정표가 있는 3번째 사나사 갈림길이 있는 883봉에 도착하는데 밑에서 이곳으로 오를 때는 이곳이 함왕봉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함왕봉이 아니다.
883봉에서 특징없는 능선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자 이정표가 있는 4번째 사나사 갈림길있는 봉우리로 올라서는데 이정목에 누군가가 함왕봉이라고 표식을 남겼다.
함왕봉의 이름은 능선 아래 있는 함왕성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산정에 특별한 지형지물은 없으며 산정이 위험하지 않은 돔형의 안부로 이정표가 있는데 백운봉을 내려선 이후 이곳까지 오면서 사나사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이번까지4곳이 있는 것이다.
함왕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능선을 따른다.
등로 주변으로 잡목이 많아 조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늦어지면서 하산할 때 늦을 것 같은 생각에 빨리 장군봉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다.
함왕봉을 떠나 20분 가까이 능선을 오르자 눈앞에 전망데크가 보이니 장군봉에 도착하는 것 같았는데 반갑게도 산객 한사람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어 빠른 걸음으로 장군봉으로 접근하니 이 산객은 상원사 방향 능선으로 내려서니 텅빈 장군봉에 도착한다.
장군봉(將軍峰)
장군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전망데크가 있는 이곳, 데크 우측 아래 작은 장군봉 정상표지석이 있어 사실상 장군봉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도를 보면 등고선의 형태로 보면 데크전망대에서 약50~60m정도 떨어진 곳이 장군봉의 위치가 되며 정상표지석이 있는 곳은 상원사 갈림봉이되는 것이 맞다.
장군봉을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은 산행이 있다.
10여년쯤 지난 이야기로 고딩친구들과 용문산 산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산행대장을 맡아 친구들을 인솔했는데, 부부팀이 여럿이 있어 짧고 간단한 산행코스를 택해야 했는데 용문사~용문산 정상~장군봉~상원사~용문사를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산행을 마친 뒤 친구들이나 여성대원들이 너무 힘들었다며 이후 나와함께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후담이 있었는데 이곳을 지나던 고딩 친구들이나 여성대원들이 불현 듯 떠오른다.
예전에 없던 데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의 조망은 부분적으로 좌측 오음산에서 우측 추읍산까지는 가림이 없이 조망이 좋지만 그 외의 방향은 잡목으로 전혀 조망을 할 수가 없다.
잠시 조망을 마치고 체력유지를 위해 억지로 간식을 취하며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등로를 따라 나선다.
장군봉 데크에서 1~2분지나, 본래의 장군봉을 지나고 이곳에서 350m를 지나자 또 하나의 이정표(장군봉0.5km↔용천리7.7km,→용문산정상우측1.0km)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용문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곳이며 우측 사면길로 들어서면 용문산 정상과, 용문사로 가는 길이고, 직진으로는 약400m를 가면 한강기맥 능선과 만나며 용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군사용도로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카카오 지도를 보면 착각하게 만든다.
오늘 산행을 하며 용문산 정상을 간지가 너무 오래되어 예습을 했는데 이곳 3거리에서 우측길은 나오지 않고 좌측길로 우회해서 정상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 한동안 용문산을 찾자 않은 동안 등산로가 변경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좌측길로 간 흔적은 있지만 많은 사람이 지난 흔적이 아니었고, 우측길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역력했다.
카카오 지도의 오류는 이것뿐이 아닌데 거리에 따른 시간으로 카카오 지도에는 길의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거리를 평지로 지나는 시간을 기록한 느낌이다.
이곳에서 우측 길로 들어선다.
산도 높고, 음지인지 대부분의 눈이 녹지 않았으며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 길은 뚜렷했다.
정상 아래를 잇는 사면은 약1km정도인데 특별하게 위험한 구간은 없다.
중간에 여성 한 사람을 만났는데 조금 늦었다고 인사를 하고 교행을 했는데 차림도 등산 차람이 아니었고, 배낭도 없이, 아이젠도 착용하지 않았는데...... 이 여자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곧 어둠이 찾아올 텐데 하산은 어떻게...... 그러다가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푼 정답은 이 여자는 분면 용문산 정상에서 근무하는 여군일 것이라는 답을 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하산했을 시간에 군부대를 나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과 여자에 대한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오래전부터 용문산 정상으로 여겼던 곳, 이정표(용문사3.3km↔정상0.11km,↑장군봉)가 있는 3거리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정상까지 오를 수 없어 이곳을 정상으로 여기고 산행을 했던 곳이다.
용문산은 여러 차례 올랐는데 아주 오래전 회사 사람들과 용문산을 왔다가 2명만 정상을 올랐던 적, 동네 부부들로 만든 중동산악회원들과 올랐던 적, 대구 참사랑산악회 회원들과 올랐던 적....... 제일 기억에 남는 용문산 산행은 10여년도 더 지난 기억으로 구정 다음날, 눈이 무척 많이 내리고 몹시 추웠던 날, 포천 국망봉에서 2명이 실종된 후 사망한 채로 다음날 발견되었을 때 나는 아무도 찾자 않았던 눈을 헤치고 이곳까지 온 뒤 당시 한강기맥을 알지 못했을 때 가슴까지 차는 눈을 헤치며 한강기맥길 문래재를 지나고 계곡을 건너 중원산으로 하산했던 적이 있었는데 젊어서였는지 겁도 없이 다녔는데 이제는 산을 간다고 계획을 세우면 겁부터 난다.
암튼 오랫동안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했던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배려해준 지차체나 군부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3거리에서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계단인데 계단의 턱이 고르지 못해 높은 곳, 낮은 곳이 혼재되어 있는데 대부분 계단이 높아 오르고 내려서는데 힘도 들고 시간도 더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힘이 빠져서인지 100m가 1km처럼 느껴지는 오르막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정상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세수골 자연휴양림들머리에서 용문산정상까지 산행거리7.83km, 산행시간5시간37분, 해발1157m, 현재시간 16시22분이다.
○용문산 정상에서 용문자연관광단지 날머리 구간
용문산(龍門山)
용문산은 어떤 산인가?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명지산.국망봉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용문산에 대한 자료를 보면 조선제12대왕인 성종 때인 1481년에 각도의 지리를기록한 『동국여지승람』과 좀 더 자세히 적어 1530년에 새로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 양근군 편에 「다른 이름은 미지산인데, 군 동쪽 33리 되는 곳에 있다.」라고 기록했으며, 지평현 편에 「미지산은 현 서쪽 20리 되는 곳에 있는데 곧 용문산(龍門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제16대왕인 영조 때인 1757년에 각각의 군과 읍의 기록한 지리지인 『여지도서』 양근군 편에는 「미지산이라고도 하며 관아의 동쪽 3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만든 지리지인 『조선지지자료』에는 「용문산이 고읍면(현 옥천면) 사천리와 상서면 연안리, 하서면 문촌리, 답곡리, 신촌리, 하현리,상현리, 북상도면 묵안리에 위치한 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명은 용문산으로 1175m이며, 장군봉은 산명표기 없이 1031m, 백운봉은 산명표기 없이 946m로 표기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지리서인 『대동여지도』에는 어떻게 기록했을까?
『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인 철종 때 김정호가 청구도를 수정 보완해서 만든 지도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지리지이다.
『대동여지도』 한양, 광주, 양근편에 있는 용문산은 지평에 속해있으며 용문산 남쪽 정상(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 능선을 따라 백운봉으로 오면서 지평과 양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명은 용문산 이외의 다른 산명인 장군봉이나 백운봉은 기록되지 않았으며 해방이후 양근과 지평의 행정구역 재편성에 의해 양근과 지평의 한글짜씩을 따서 양평이 탄생했으며 지금의 양평 자리는 예전 양근의 자리이다.
용문산을 공부하다가 『해동지도』의 용문산 사진을 보게 되었다.
위에서 설명한바에 의하면 용문산의 옛 이름이 미지산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해동지도에는 용문산에 1산2개봉을 명시하고 있는데 가운데 미지산을 두고 좌측으로는 백운봉, 우측으로는 향로봉을 표기했다.
그런데 의문인 것은 지도에 향로봉을 높게 그렸고 가운데 미지산을 낮게 그렸다는게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현재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용문산 정상은 남과 북으로 길게 능선을 이루며 가운데 가협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가협재 좌측봉은 미지산이 되고, 가협재 우측 봉우리는 향로봉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용문산의 옛 이름인 미지산(彌智山)
미지산의 彌(미)는 두루미이고, 智(지)는 슬기를 뜻한다.
한문을 직역하면 슬기로운 두루미산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옛 선인들은 이 산과 두루미가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산의 형상이 두루미를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용문산 정상에는 작은 정상표지석과 옆에는 철재로 만든 은행나무 잎 2개를 세우고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했다.
나는 산을 다니며 수많은 산봉우리 이름을 불교 용어로 부르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이 보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옛 문헌 어디에도 용문산 정상이 가섭봉이라고 나오는 곳은 없는데 산정 아래 있는 용문사의 중들이 그들만의 이름을 만들고 부르던 것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불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나중에는 국가에서 만드는 지도에도 실리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용문산의 신성한 이름에 있지도 않은 가섭봉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큰 예로 설악산의 제1 계곡으로 비선대를 품고있는 계곡의 원래 이름은 설악골이었다.
1933년 설악산을 찾은 노산 이은상은 마등령에서 와선대로 내려서며 설악의 주계곡을 이곳 주민들은 설악골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하며 이에 부연하여 신흥사 일부 중들이 천불동계곡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적었는데 현재에 와서는 천불동계곡이 주계곡이 되었고 원래 주계곡 이름이었던 설악골은 천불동계곡의 지계곡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산행들머리에 용문산에 산행 안내도에 용문산의 유래와 가섭봉의 유래등을 등에 가섭봉, 석가봉, 아난봉이라고 적었는데 이러한 산명이 우리 역사 고문헌 어디에 나온다는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의 안내판을 세웠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해동지도에 용문산의 3봉이 백운봉, 미지산, 향로봉이라고 나와 있으니 지금이라도 지자체는 가섭봉이니, 석가봉, 아난봉이라는 단어는 수정해야할 것이다.
이제 용문산에 대한 옛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현실에서의 용문산 정상을 본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 용문산 정상은 예전에 철조만 안에 있던 것을 철조망을 안쪽으로 설치해 정상부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으므로 공간이 넓지 못하다.
군부대쪽으로는 철조망과 대형 간판을 설치해 부대안의 투시를 막았으며 정상 주변으로 난간을 세워 안전을 확보했다.
용문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아주 좋은 편이고 시계도 오늘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서인지 멀리까지 확보가 되는 상태다.
그러나 남서방향으로는 군부대가 가려 조망이 없고 북에서 남쪽으로 조망이 가능하다.
남쪽으로 추읍산과 고래산, 우두산이 조망되며 여주지방은 현장에서는 희미하게 판단할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고래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산일 보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백운산에서 치악재를 지나 치악산 능선이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방향을 조금 좌측으로 돌리면 용문산에서 이어지는 한강기맥을 따라 용문봉, 천사봉, 중원산, 도일봉을 지나 신당고개를 지나 성지봉, 오음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또한 천사봉에서 한줄기 능선이 북으로 시작되니 봉미산을 만들고 계속해서 장락산 , 왕터산으로 달리고. 봉미산 건너편으로는 종자산에서 대명콘도가 있는 두륭산으로 이어가는데 흰 눈이 덮인 스키장을 확인할 수 있다.
용문산 정상에서 잠시 주변의 산릉을 보며 나만의 감흥에 빠지고.... 오래 머물수 없음을 생각하고 하산을 한다.
정상에서 3거리로 내려서는 곳에 예쁜 정자가 있는데 겨울철이라 사람들에게 큰 인기는 끌지 못하지만 여름철이면 대단한 인기가 있을 정자쉼터이다.
이제 계속 음지로 내려서면서 빙판이 예상되었기 때문인데 아이젠을 착용했고, 정상주변을 보게 되었는데 잎새가 모두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는 수정얼음이 달렸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3거리에 도착한다.
3거리에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하며 조금 내려서서 좌측으로 누군가 한사람 지난 흔적이 있었는데 이곳이 한강기맥으로 연결되는 등로같아 보였는데 안내판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등로는 아주 가파른 길로 바닥은 낮에 녹아내리던 물이 빙판을 만드니 미끄러워 급하게 내려서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은 생각에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가기로 몇 번을 다짐하며 내려선다.
용문산을 여러번 올랐는데 예전에 올랐던 길이 이리도 경사가 심하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산인줄 미처 알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뛰어 내려가던 곳을 종심이 되면서 한발자국 내려설 때마다 몸 중심 잡으랴, 바위나 얼음을 밟으며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 또 걱정이다.
때로는 눈 덮인 암봉을 , 때로는 로프를 잡고 씨름을 하며 천천히 내려서기를 40분, 마음속으로 그리던 능선3거리에 도착한다.
능선3거리에는 이정표(상원사2.4km↔정상0.9km,↓마당바위0.6km,용문사2.1km)가 있고 주변으로는 평상과 긴의자등이 눈에 덮인 채로 덩그러니 있었는데 여름철이라면 자릿세를 받아야 할 곳이 아무도 찾지 않아 내린 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잇다.
능선길 보다는 기억이 선명한 계곡길로 내려서기로 했다.
계곡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은 정상에서 한동안 내려섰는데도 음지라 눈이 아직도 많이 쌓였으며 급한 내리막이라 때로는 스틱으로 균형을 잡기도 하지만 대부분 난간과 로프를 잡고 씨름을 해야 했다.
계곡으로 내려서서 계곡 위로 보이는 용문봉에는 햇볕이 비치고 있지만 계곡안은 어둑어둑했는데 능선보다 어둠이 먼저 찾아 올 것은 자명한 일인데 상황이 눈덮인 암릉지대이므로 빨리 내려갈 방법이 없다.
조심스럽게 계곡을 내려서서 첫 번째 목교를 지나고 목교를 지나 5분을 지나자 마당바위에 도착한다.
마당바위는 용문사에서 정상으로 가는 계곡의 특별한 지형지물의 한 곳으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어느 지점을 지칭할 때 기점으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큼지막한 마당바위 위에는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이정표에는 용각바위롤 표시하고 있다.
그렇지! 조금 더 내려가면 용각바위가 있지, 사라졌던 용각바위를 소환하며 어두워지는 계곡을 조심스럽게 내려서게 되는데 바닥을 찍는 스틱소리만이 어두워져가는 계곡을 울린다.
마당바위에서 10분을 지난 사면길, 오래된 큰 소나무가 중간이 동강나며 등산로를 가로막았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눈보라에 강풍이 불며 동강이 난 것 같았는데 우회할 수 없는 지대로 이곳을 먼저 지난 산객들이 손으로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길을 터놓아 어렵지 않게 지나 5분 정도 내려서자 2번째 목교를 지난다.
이어지는 계곡길은 사진을 찍을 시간도 없이 앞만 보며 급히 내려서야 했는데 어느 때인지 3번째 목교를 건너며 좌측 위가 용각바위가 있는 곳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주변에 이정표가 없다.
어두워지는 계곡에 용각바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빨리 용문사까지 내려서는 일이다.
물론 야간 산행도 아주 여러 차례 하기도 했으므로 어두워진다고 해서 두려울 것은 없는데 수시로 전화를 하는 집사람에게 걱정거리를 주는 것 같아 야간산행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인생사 내 맘대로 되는 건 거의 없듯이 어둠이 천천히 찾아오기를 바라지만 바람과 달리 어둠이 계곡을 완전히 덮었다.
그래도 등로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고....
더 이상 랜턴없이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상원사갈림길에 도착했고, 멀지 않은 곳에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안도에 한숨을 쉬며 용문사 은행나무 앞에 도착한다.
용문산하면 용문사가 떠오르고, 용문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은행나무이다.
전국적으로 1000년 이상된 은행나무는 여러 곳에 있을 것이고 그러한 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라고 해서 같은 취급할 수 없는 것은 이곳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용문산 은행나무는 1500년이나 되는 수령과 식목의 유래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그 지팡이의 주인이 마의태자라는 설과 의상대사라는 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곳 양평주민들은 용문산 은행나무가 양평을 대신하는 상징으로 자존심,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며 매년 용문사 측과 함께 은행나무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신라 진덕여왕 시절 원효대사가 창건 했다는 설이 있기도 하고, 신라 신덕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제7대왕인 세조는 세종의 부인이자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왕후를 위해 용문사를 중수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록은 용문사와 왕궁과의 밀접했던 관계가 유지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용문사의 많은 건축물은 40~5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문화재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말 항일로 인한 화재와 6.25 한국전쟁 으로 인한 화재로 전소되어 새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집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고, 아이젠과 스틱을 접어 정리를 하고, 사과 하나를 먹으로 내려서는데 얼음을 씹는 듯 너무도 춥다.
차도를 따라 1km를 내려서능 길, 도로 옆 계곡의 봄이 오는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럽지만 봄이오는 소리에 동장군이 빨리 물러날 것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용문사 일주문을 지난다.
용문관광단지 야영장 여기저기에 가로들이 마중 불을 밝혀주고, 이 여세를 몰아 관광단지를 벗어나니 식당가로 내려서고, 이내 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어둠이 사방을 덮었다.
▷세수골 자연휴양림들머리에서 용문관광단지 날머리까지 산행거리12.66km, 산행시간8시간05분, 해발192m, 현재시간18시5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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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범솥말님 건강하게 산행하시는 모습뵈니 보기 좋습니다.
공자님 말씀 글귀 구절을 읽으니
제 가슴이 찡한 느낌을 받는건 왜 일까요...
직접뵙지는 못했지만
범솥말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이팔 청춘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평을 지나면서 보게되는 저 뾰족한
산봉오리는 무슨 산일까 궁금해서 날 잡고
저도 몇년전 사나사 원점회귀 산행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도 혼자서 새벽녘에 겁 없이 올랐던 생각이 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멋모르고 덤빌때는 랜턴하나에 깡(?)하나로 올랐다면
이제는 어두워도 하나 둘 눈과 머릿 속에
잡념들이 쏟아져 내려와서
혼자서 어둠을 뚫고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음에
다시 한번 자문해봅니다.
'왜 오르냐고..'
산우님들
이번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십시요.
도토리님~~~~
반갑습니다.
정초 강추위에 대청봉을 다녀오시기도 하고요
설악을 많이도 사랑하시는 거 같아 기분 좋고요,
올린 산행기도 잘 보았네요.
저도 설악이 좋아 한동안 설악만 다녔는데
이제 너무 춥거나, 눈이 내리거나 하면 겁부터 나더라고요.
그래도 철따라 가며 설악 각처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풍경속에 젖기도 하고는 합니다.
봄이되면 설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설악산행 해보면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산행이 성사된다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코스 어디던지 구상해볼 수도 있고요.
제가 다녀온 코스라면 확실하게 안내할 수 있고, 다녀오지 못한 곳이라도 공부좀 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용문산은 참 오랜만에 다녀왔습니다.
20년전 용문산 능선산행한 코스 그대로 걸어봤네요.
그런데 전에 느끼지 못했던 힘들고, 무릎의 아픔도 많이 느끼고요.
그래도 산은 우리 건강을 지켜주니 계속 찾아야하는 거지요.
온라인상이지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담에도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