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1921∼68) 2008년은 김수영의 40주기다.
68년 6월16일 아침, 김수영 시인은 전날 밤의 교통사고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48살의 나이로 역사의 일부가 됐다.
문학평론가 김우창 교수(고려대 영문학과)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어제를 생각하며 오늘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그의 생애가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또 그것을 통하여 우리 시대와 우리 시대에 있어서의 예술가의 의미를 밝혀주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짧은 삶은, 그가 살았고 또한 우리가 살았던 시대에서 자유의 이념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었는가를 보여준다.
김수영 시인의 연보는
그의 성장기의 주된 삶의 공간이 도시라는 점은 그의 시가 전통 서정시의 공간인 농촌이나 전원이 아닌 도시를 배경으로 적극 차용하는 모더니즘적 성격을 지니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그가 두 자식이 사망한 뒤 태어난, 병약한 맏아들이라는 점도 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받음으로써 자아 중심적인 고집 불통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후에 그가 이어령과 벌이는 참여시 논쟁이나 시론 등에서 강하게 표출되는 타협을 모르는 신념의 고수는
유아기의 환경이 주요한 인자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위로 형제들이 일찍 사망한 관계로 부모 형제들의 걱정과 근심 속에서 자랐다.
그가 남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번도 그의 몸집에 살이 오르거나 건강하게 보이는 일이 없다.
다만 그의 크게 뜬 눈 만이 형형할 뿐이다. 그는 겁이 많고 외로운 아이로 자라났다. 어느 식구나 친구와도 다정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동경으로 가서 얼마 아니 되어 그 여자는 서울로 다시 돌아왔고,
내가 오랜 방랑을 끝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는 미국으로 가 버렸다.
지금 그 여자는 미국 태평양 연안의 어느 대도시에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며, 영원히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가 그의 오빠에게로 왔다 한다."고 적고 있다.
김수영 지음 민음사 출판
한국 현대시에서 이상과 김수영만큼 비평적 적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인도 드물다.
|
출처: 그 아픔의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