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은 1천여 미터의 높이다. 산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젊다는 것, 아직 세월의 풍화에 깎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도 세월이 가면 늙어 살과 근육이 허물어지고 허연 뼈대인 바위를 드러낸다. 그래서 산 정상 부근에 바위가 즐비하게 된다. 바위 전망대에 서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바위길은 위험천만의 길이다.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 신불산의 칼등과 금강골의 톳골과 우는골, 간월산 도치메기가 그러하다. 하지만 석남 터널 주변의 입석대 능선은 그렇지 않다. 가볍게 산책하듯 오르고, 눈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남알프스 전망대이다.
울산에서 밀양으로 가는 국도 24번은 가지산 터널과 호박소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석남 터널을 지나 아리랑고갯길을 가듯 그렇게 굽이굽이 갔었다. 터널 입구 가게는 등산객뿐 한산하다. 석남 터널을 막 지나 오른쪽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을 오른다. 물소리가 시원하다. 쇠점골이다. 쇠점골은 밀양의 호박소와 오천평반석을 경유하는 골짜기이다.
그 골짜기 초입에 얼음골이 있다. 쇠점골은 석남재를 넘나들던 말의 말발굽 쇠(편자)를 갈아주고 길손을 상대로 술도 팔던 주막 ‘쇠점’에서 유래했다. 길은 험하여 호랑이 표범 늑대가 나타날지 몰라 서로 끈으로 묶고 등롱을 밝히고 횃불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괭과리를 치며 석남재를 넘었다.
석남재는 바로 석남터널 위로 나있다. 밀양의 산내사람들이 터널을 뚫기 전에 언양장을 보러 가던 길이다. 쇠점골의 물길과 같이 걷는 길이다. 반석 위로 물이 흐르고 작은 소와 폭포가 있다. 숯가마터도 있다. 석남고개 마루에는 돌무덤, 돌탑이 있다. 근심 걱정을 가지고 온 사람은 여기가 무덤이 될 것이고, 소원을 하고 온 사람은 탑이 될 것이다. 일찍 길을 나서 새벽길을 밝히고 고개를 넘던 밀양 산내댁이 호롱불을 숨겨놓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 등산객들이 입석대 주변에서 잠시 쉬어가고 있다.
석남고개를 넘으면 석남사가 나온다. 석남사는 824년 신라 헌덕왕 16년에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인 도의국사가 세운 유서 깊은 선찰(禪刹)로 그의 멋진 부도가 있다. 가지산 호랑이라 불린 인홍스님(1908~1997)은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엄격한 수행자로, 사찰수호와 도제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은 비구니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계셨다.
석남고개를 너머 밀양 산내댁은 둥근정 장터에서 울산 장꾼의 소금, 생선류, 건어물과 가져온 물건과 맞바꾸거나 사고 팔았다. 아니면 언양 장터로 갔다. 고개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바위 덩어리로 뭉쳐진 가지산 쌀바위와 상운산의 귀바위가 보인다. 길은 고즈넉하다. 등산객들은 운문령에서 출발하여 상운산, 가지산, 중봉을 거쳐 석남고개에서 내려가던가 아니면 능동산을 거쳐 배내재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낙동정맥 탐방객은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까지 걷는다. 얼음골과 천황산으로 가기도 한다. 고개에서 능동산은 3.6Km, 가지산은 2.7Km이다.
석남재는 쇠점골을 통해 올라가는 길이다. 반석 위로 물이 흐르고 소와 폭포를 만든다.
능동산으로 가는 길은 산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다. 봄이면 철쭉길이지만, 초가을 간간이 구절초만 보인다. 아직 나뭇잎들이 해탈하지 않았다. 멀리 천황산이 보이고 햇빛에 반짝이며 산으로 오르는 것이 얼음골 케이블카다. 그곳에서 바위들이 모여 마치 흰 호랑이가 포효하는 백운산의 백호가 보인다. 영남알프스 일대의 고산 준봉에는 호랑이 표범 늑대 멧돼지 등의 야수가 많이 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랑이 표범 그림이 반구대 암각화에 14마리가 그려져 있다. 호랑이는 줄무늬가, 표범은 매화무늬가 선명하다.
최남선은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할 만큼 호랑이 이야기가 많다고 하였다. 19세기말, 비숍은 1년의 반은 호랑이를 쫒고, 반은 호랑이에 물려죽은 사람 문상 가는 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에는 시묘살이 하던 열녀 정씨를 지켜주고 결국은 따라 죽은 호랑이 무덤이 있다. 또 울산 동구 마골산 불당골에는 착호비(捉虎碑)가 있다.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에 있는 호랑이 무덤
말을 키우는 하급관리 전후장이 영조 때 호랑이 5마리를 잡아 무관 최고직인 ‘절충장군(折衝將軍)’직을 받았다가 그 후 또 호랑이를 잡아 차관보급인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벼락 승진한 기록이 있다. 김극기가 대화사(大和寺) “이끼 낀 길에 호랑이가 내려와 어슬렁대고”라고 읊은 울산은 방어진 목장과 동대산 남목 목장이 있어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피해를 주어 김종직과 홍세태는 호랑이 사냥 시를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두려움의 존재인 동시에 숭배와 출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절에 가면 산신각에 호랑이가 산신의 경호원으로 있다. 호랑이는 공식적으로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혀 사살된 이후 남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들녘은 가을 황금빛으로 물들고, 산은 남모르게 서서히 물들고 있다.
영남알프스를 20여 년간 발지도를 만들고 다닌 배성동 작가에 따르면 간월산 저승골과 폭포골, 능동산 입석바위, 재약산 칡밭, 문복산 마당바위, 억산 소매골, 범봉 딱밭재(딱발재), 운문산 호거바위 등은 예로부터 호랑이 출몰이 잦은 곳이라 한다. 영남알프스에서 잡힌 맹수는 호랑이보다 표범이었다.
배성동 작가는 1944년 주암계곡과 1962년 운문산 표범 사냥 사진을 찾아 공개했다. 일제강점기 동안인 1919~1942년 사이 표범 624마리, 호랑이 97마리가 포획된 것으로 보아 호랑이보다 표범이 더 많았고, 또 더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 1970년 경남 함안에서 마지막으로 표범이 잡혔다. 이 땅에 호랑이와 표범 등의 맹수가 사라진 것은 일제의 해로운 짐승 구제 정책이 결정적이었다.
입석대 능선으로 가는 길목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정표가 없기에 대부분 능동산으로 간다. 갈림길이 있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지나치는 길이다. 능선 정상에 돌탑이 있다. 누군가 매직으로 ‘813m 입석봉’이라 적어 놓았다. 이 탑에서 동쪽 길로 가야 한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구절양장 배내고갯길이 보인다. 맞은 편 양등재는 배내봉에서 낮은 능선을 따라 오두산으로 이어진다. 배내의 노약자들은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낮은 양등재를 통해 둥근정 장이나 언양 장으로 갔다.
입석대는 당간지주처럼 부처님 합장하듯 그렇게 우뚝 서 있다.
나무 사이의 길은 점점 하늘을 보여준다. 푸른빛 술잔이 놓여있는 풀조차 없는 무덤을 지나자, 멀리 언양과 울산 바다까지 보여줄 듯 시야가 확 트인다. 여기가 바로 입석대 능선이다. 평소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이지만 울주도서관에서 주최한 ‘길 위의 인문학’ 수강생과 같이 한 탓인지 시끌벅적 감탄사가 연이어 나온다. 울산에 살았지만 이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능선을 따라 거대한 바위들이 연이어 서 있다. 우뚝 솟아 키 자랑을 한다. 조심조심하지만 사진찍기에는 모두 용감하다. 바위 일부는 마치 칼로 두부를 짜른 듯 반듯하게 잘려나갔거나, 작은 바위가 삼각뿔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마치 누가 바위를 상대로 다양한 도형놀이를 한 듯하다. 산 아래 살티마을 주민은 호랑이 밥이 된 천주교인 머리통을 이곳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바위 주변 어딘가는 호거 호식바위가 있을 듯하고 표범이 지켜볼 듯하다. 그래서 모두 살금살금 기어가듯 능선 바위길을 걷는다. 입석바위는 마치 부처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또는 절의 당간지주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바로 아래에는 남근 형상을 한 바위가 서 있다. 바위의 형상을 보면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입석대 능선에서 바라본 배내로 가는 아리랑고개길인 69번 도로가 구불굴불이어져있다.
입석대 능선의 전망대 바위는 여러 곳이다. 배내로 가는 69번 국도의 아리랑고갯길과 상북면 들녘을 내려다보다 눈 들어 보면 가지산과 운문령, 그리고 산갈치가 산다는 고헌산, 멀리 날 좋은 날이면 울산바다가 보인다. 입석 바위 아래는 이제는 폐쇄된 가지산 휴게소가 있다. 10여 분 정도 거리다. 눈맛때문에 하산을 하기 싫은 곳이 입석대 능선이다. 하지만 호랑이 표범이 있을까 주의해야 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산행 2시간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길이 석남재 입석대 능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