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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등산메아리 원문보기 글쓴이: 은별(이경숙)
인디언말로 친구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 인생을 동고동락할 친구는 일생 동안 셋이면 족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그토록 귀하고 얻기 어렵다. 속초<빵마을 사람들>의 이재삼 대표는 자신의 가장 값진 재산인 우정과 신용 하나로 제2의 고향 ‘속초’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개척해 지금은 속초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이제 사랑을 담은 빵으로 이웃에게 보다 맛있는 먹거리와 봉사활동으로 보답하며, 거듭 도약하고 있는 이재삼 대표의 삶을 만나본다. (글) 김은경 기자 (사진) 전문식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쯤 되면 우여곡절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일생으로 소설책 3권쯤은 쓸 수 있다는 말들을 한다. 인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연속으로 이뤄지고,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건들도 긴 세월이 흘러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필연적인 사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재삼 대표(49세)에게 속초의 땅은 운명과 같은 곳이다. 그가 20여 년 전 속초에 발을 처음 디딜 때 속초는 단지 낯설고 서러운 장소였다. 지금도 속초 땅에 처음 온 날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1989년 6월 29일입니다. 연고도 없고 난생처음 오게 된 강원도의 작은 도시 속초에서 처음 느꼈던 감정은 서러움이었습니다.” 서울 생활에 실패한 후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 빈털터리로 돌아갈 수 없어 낯선 땅 속초에 오게 된 것이다. 며칠을 속초 바닷가에서 쓴 술을 위안 삼아 실의에 젖고 와신상담했다. 낯선 땅 속초가 그 에게 기회의 땅, 운명의 땅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그러나 속초에 온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그에게 TV에서나 나옴직한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신만의 제과점을 열고 정착과 안정으로 점차 그의 꿈들은 하나 둘씩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뿌리를 깊이 내리고, 우람한 가지를 뻗치고, 무성한 잎사귀를 가진 거목이 되어 속초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2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인생 구석구석 숨겨진 이재삼 대표의 사랑, 철학 그리고 빵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어진다. Story 하나. 맨주먹의 신용맨 이재삼 대표는 꿈 많은 젊은 복싱선수였다. 그러나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했고,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 때 찾게 된 것이 바로 제과제빵이었다. 1979년 종로3가의 피카디리제과점에서 제과기술을 배우면서 일을 시작하였는데, 3년만인 21세의 어린 나이에 공장장을 할 정도로 이 대표는 제과에 대한 손재주가 좋았다. 공장장을 7년 정도 했을 즈음에 그는 평소 관심이 컸던 선거운동에 매진하게 되었고, 그 당시에 절친한 친구들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원해서 했던 일이었지만 선거운동에 전력을 다한 탓에 그는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금의환향이 아니면 절대로 고향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이 대표의 의중을 알고 있는 선배제과인은 그를 속초의 낙산비치호텔 제과기술자로 추천하게 되었다. 인생을 새옹지마 라고 했던가. 이렇듯 인생이란 몇 차례 음지와 양지를 반복하며 만들어져 가는 것일 게다. 낙산비치호텔의 제과기술자로 일을 시작한지 한 달도 지나기 전에 하늘이 점지해준 천생연분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미모를 자랑하는 아내는 호텔관광경영을 전공하는 재원으로 낙산비치호텔에 현장실습을 나왔다가 쉐프복을 입고 베이킹을 하고 있는 이재삼 대표를 보고 그만 한눈에 큐피드의 화살이 가슴 깊이 박혀버렸다.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대표의 비전을 한눈에 간파한 배포 큰 아내. 4만 원짜리 사글세부터 시작한 신혼생활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사랑과 신뢰 또한 깊은 그들에게는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리라. 아내는 그에게 속초에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게 만들어준 결정적인 존재로 결혼은 그에게 정착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결혼 후 5년만인 1996년 8월 15일 드디어 이대표는 <빵마을사람들>을 열게 되었다. 창업 당시 그의 수중에는 700만원이 전부였지만 신용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철저했던 그를 믿고 차용증 하나도 쓰지 않고 1억이 넘는 거금의 창업비용 대부분을 선뜻 빌려준 그의 친구들 도움 덕 택이다. 그간 이대표의 정직하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간의 관계는 다이내믹하기 때문에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인생에서 친구가 존재함으로써 고독과 고난에서 힘을 얻어 다시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이대표는 죽기를 각오하고 제과점에 매달렸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은 잠을 자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주위사람들은 제가 술을 전혀 못하는 줄 알았대요. 창업초기에는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를 부릴만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아내는 출산 하루 전날까지 남산같이 부른 배로 힘겨운 내색도 없이 저를 도왔으니까요.” 인간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가장 순수한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가장 대범하고 진취적이고 용기 백배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는 진리처럼 창업 후 2년 만에 빌렸던 창업비용을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창업초기 제과점을 찾아주는 손님 한 명 한 명은 하늘같은 존재였다. 심지어는 1시간이 넘는 곳에서 주문이 들어와도 자신의 빵을 먹어준다는 고마움에 감사한 마음으로 배달을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마운 고객들에게 신선한 제품만을 팔고 싶다는 욕심에 하루에 조금씩 수 차례 구워내고, 하루 지난 빵은 절대 파는 일이 없다. 고객이 인정한 맛은 멀리 강릉에서도 1시간을 달려와 빵을 사가는 단골고객까지 얻게 되었다. 현재 <빵마을사람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유일한 빵집이다. 보통의 경우 이 정도 규모의 상권 이라면 제과점이 서넛은 들어서고도 남는 것이 일반적인 대세이고,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쉽다. 사실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4~5차례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그의 둥지 앞에 자리를 잡았다가 번번이 둥지를 틀지 못하고 스스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는 정당하지 않은 술책 따위는 부릴 줄도 모르는 정도(正道)만 걷는 사람이다. 프랜차이즈와의 격돌에서 그는 오히려 프랜차이즈제과점이라서 부족한 기술적인 부분이나 외부인이라서 모르는 이 지역 특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도움을 주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로는 결코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며, 당당하게 맞서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번 프랜차이즈제과점이 들고나간 후 지난 2년 동안 <빵마을사람들> 앞에는 다른 제과점이 범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근거라 해석할 수 있다. 이재삼 대표는 맨주먹의 신용하나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불패신화를 만들어 냈다. 축복 받은 곳 속초. 설악산을 비롯한 수많은 관광지와 동해바닷가를 끼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상업지구로도 최고지역이다. 제과업계는 여름철이 비수기인데 반해 속초지역은 관광지라는 특수성으로 사시 사철 고객의 발길이 잦고, 오히려 여름철이 최고의 성수기라고 한다. 속초바닷가를 찾은 피서객들과 콘도의 활성화로 고객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 관광지에서 출출할 때 맛있는 빵은 선호간식 일순위이고, 여행지에서 생일을 맞은 관광객들에게 케이크는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천혜의 조건을 이재삼 대표는 십분 발휘해서 <빵마을사람들>을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프랜차이즈제과점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덤’문화이다. 더욱이 소도시에서는 후한 인심이 더욱 가치가 발휘되는 곳이기에 이재삼 대표는 친절한 서비스와 고품격의 맛을 기본으로 거기에 ‘인정’을 덧붙였다. 지금도 한낮이면 제과점 앞 벤치는 할머니ㆍ할아버지들의 쉼터로 애용된다. 이 대표는 정을 담아 따뜻한 커피한잔과 갓 구운 빵 한 조각을 그분들께 선뜻 내어놓는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그의 성심은 개업 후 13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단골고객을 얻게 되었다. 발급된 회원카드로 어림잡아보면 속초시민의 1/4이상이 이곳 회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대표는 5~6년 전, 지역학교 영양사를 초빙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하여 보다 고영양의 제품을 영양사들에게 직접 선보였고 그 결과 대량납품이 가능한 학교급식을 6~7개 지역학교에 납품하게 되었다. 이 대표의 <빵마을사람들>에는 유달리 장기근속직원이 많다. 한번 이곳에 들어온 직원은 최소 7~8년 이상은 한가족처럼 이곳에서 머문다. 이 대표는 경영철학으로 ‘고객감동 이전에 직원감동을 주자’를 모토로 한다. 직원만족은 곧바로 고객만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15명의 직원 가운데 기혼 여성이 8명인 점도 눈 여겨 볼만한 일이다. ‘아줌마’파워를 잘 알기 때문이다. 미혼보다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달고 쓴맛을 겪어본 사람일수록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더 많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는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직원들을 배려하여 출근시간은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까지로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절대 지장을 주지 않고 있어 장기근속이 가능하며, 이러한 이대표의 배려에 감사하여 직원들은 충실하게 또 한가족처럼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직원복지에도 크게 관심을 가져 한 달에 5일의 휴일과 자체 식당 운영, 그리고 위생복은 고정세탁소에서 단체로 세탁해준다. 또한 공장 제과기술자의 경우 기술연마를 위해 수도권의 유명 베이커리 견학과 제과명장을 초빙한 자체세미나를 실시하고, 3년 이상의 장기근속인 경우 5박 6일의 일본연수도 보내주고 있다. 제과업계가 인력난으로 어려운 실정이지만 이곳 <빵마을사람들>은 인력난의 안전지대이다. “돈이란 쫓으면 달아나기 때문에, 돈이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일에 충실한 삶이 돈을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삼 대표는 성실함으로 쉬지 않고 전진하고 있는데 앞으로 ‘3년의 장기플랜’을 세워두고 있다. 3년쯤 후에는 새로운 <빵마을사람들>로 거듭 난다고 하는데 세부적인 부분은 일급비밀이라서 아직은 비공개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그를 보아서 큰 기대를 가져도 될 성싶다. 그가 태어난 고향은 거리로 볼 때 가장 먼 곳인 전라도이지만 이미 그는 속초사람이다. 속초를 날아든 철새였던 그는 이제 속초의 텃새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역과 함께 더불어 발전하는 업소가 되고자 지역에서 번만큼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지난 7~8년 동안 사회복지관에 고정적으로 1주일에 300개씩 새로 구운 빵을 보내 거택보호자에게 사랑을 나눈다. 학교 급식을 납품하면서 알게 된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10여명의 학생들에게 급식비 지원과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10여 곳에 봉사활동으로 베풂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꾸준한 지역봉사로 지난 2월 상공회의소에서 감사패와 공로패를 받았다. 그의 삶은 행복하다.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편안한 표정, 초조하게 쫓기지 않는 느긋한 행동에서 그의 인생관이 느껴진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그가 안빈낙도의 인생관을 재정립하게 된 것은 7~8년 전 ‘ 불행 중 다행’인 한 사건 때문이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에 종양이 있다는 결과를 듣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엄청난 충격 속에서 가족에 대한 걱정, 조금 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지 못했던 점, 해보고 싶었던 일 등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할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15일쯤 후 오진임이 밝혀졌고, 전화위복으로 그는 다시 태어난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일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영화 <버킷리스트>처럼 해보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씩 실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던가. 가정의 안정감은 성공을 부른다. 그에게 있어 가족이란 헤라클레스의 머리칼과 같은 힘의 원천이다. 지갑 속에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는 가족사진을 보여 주는 이재삼 대표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인다. 다복해 보여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흐뭇해진다. 따뜻한 봄날처럼...
첫댓글 정말로 훌륭하고 멋진형님입니다. 저의 멘토이신 형님 너무 자랑 스럽습니다. 박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