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무한도전을 ‘한심한 것들의 축제’로, 도전골든벨은 ‘똑똑이들의 잔치’로 생각해오다가 며칠 전 한 블로거가 올린 동영상을 보고는 충격을 먹고 이 글을 쓰게 됬습니다.>
얼마 전 심형래가 나오는 프로에서 옛날 괴수 코미디 영화 ‘우주괴물 불괴리’에 유재석이 어설픈 분장으로 나와 졸졸 쫓아가는 걸 보며 “유재석도 경력이 꽤 되네...”하고 풋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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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당시 연예계 최고 납세자였던 심형래와 현재 연예인으로서는 최상위권의 어머 어마한 자산가인 유재석이 엇갈렸다.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심형래는 당시 걸어다니는 개그 사전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그의 ‘웃기는 기술과 공식’을 배우려는 ‘따라쟁이’들도 많았다. 유재석도 그 중 하나였다.
심형래는 최정점에 있을 때 다들 말리는 영화를 시작했다. 지금 유재석은 그 대선배의 개그를 따라하지 않고 또 스스로 영구나 땡칠이가 되지 않고도 모두를 웃겨서 정점에 섰다.
시청자들은 MC인지 개그맨인지 헷갈리는데 매번 웃겨주는 일은 공통이다.
유재석의 ‘웃기는 방법’은 상황마다 달라 딱히 배워서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유재석이 여러 프로에서 보여주는 코드를 다 읽어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젠 남을 웃기는 일조차도 ‘웃기는 기술과 공식’을 외우고 배워서 되는 때가 아님을 느낀다. 계속 그 때 그 때 순간마다 ‘웃기는 방법’을 스스로 창안해 내야하는 시대인 것이다.
주변에 한 친척 중에는 명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 들어갔는데 40대 초반에 명퇴한 분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는 데 배운 게 바닥났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할만한 일을 찾으며 3년을 백수로 지내는 동안 퇴직금도 서서히 바닥나는 상태에 이르렀다.
불괴리에 출연한 유재석 [출처:mbc무한도전]
더구나 두 아이들이 곧 고등학생이 되는데 그 엄청난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 3년 사교육비로 바닥이 날 걸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다행히 미국에서 우리나라 돌침대를 판매하는 친척 교포가 초청 이민을 해줘서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현지 친구도 생겼다고 가끔 이메일도 보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 보내온 이메일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쩌다 현지 친구들과 대화 중 베토벤 얘기를 꺼냈더니 “베토벤이 뭐야?”
하며 되물었단다.
그랬더니 옆에서 잘 난 척 끼어들면서 “개 이름 아냐...”했더니 “ 개... < Dog...>"
개 이름이 ‘베토벤’인 영화가 떠올라 피식 웃으면서 “아냐, 오스트리아의 음악가야. 니들은 그것도 모르니?” 했더니 “아하, 호주 사람....!”하며 전자공학과 출신이 별걸 다 안다는 듯이 신기하게 처다 보더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구도 미국 명문대 전자공학과 출신이라는 거다.
회사에서도 그만두지 못하게 회사에서도 고액 연봉을 받는 다고 한다.
갑자기 오싹 했단다. 같은 전공으로 자기는 대학에서 배운 게 바닥이 나면서 명퇴를 당해 남의 나라에 와서 돌침대를 파는 데 비슷한 연배의 베토벤을 개로 알고 있어도 자기 분야에선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 무식한건 대통령으로 부시를 뽑은 거만 봐도 알고 있던 터라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다음블로거가 올린 UCC 한 꼭지를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제목은 Americans are not stupid, '미국인들은 바보가 아니다'라는 동영상이었다.
미국에서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을 실제로 취재하면서 찍은 이 동영상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질문:U자로 시작하는 나라는 어디입니까?
답1:Yugoslavia
답2:Utah
답3:Utopia
답은 USA !!!
질문:월남전에서는 어느 나라가 이겼습니까?
답:우리나라. 우리가 월남전에 참전했었나요?
질문:삼각형은 변이 몇 개 입니까?
답1:4개?
답2:삼각형에는 변이 없고 아니면 한개?
질문:영국(United Kingdom)의 화폐단위는 무엇입니까?
답1:United Kingdom이 뭡니까?
답2:아마 달러(?)
답3: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는 돈(?)
질문:인간에게 몇개의 신장(콩팥)이 있습니까?
답1:1개요.
질문:지금까지 몇 차례 세계대전이 있었습니까?
답:세번
질문:스타워즈는 실화에 근거해 만든 영화입니다.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답1:사실입니다.
질문:에펠 탑이 파리에는 몇개가 있습니까?
답1:10개?
질문:알카에다가 무엇입니까?
답1:이스라엘, 중동의 자살단체입니다.
그리고 그 단체의 지도자는 야세르 아라파트. 모두들 그걸 압니다.
답2:메이슨 기사단입니다.
질문:베를린 장벽이 어디에 있습니까?
답1:.....이스라엘?
(발췌 동영상은 유튜브 - Americans are not stupid 중에서)
‘그렇지 뭐, 이건 스타 골든벨도 아니고...’ 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나 고민에 빠진 건 다른 이유였다.
제목이 '미국인은 바보가 아니다'다. ??? 다시 봤다.
아니 ‘미국인들은 죄다 바보다.’가 맞는 제목이 아니고?
질문들이 이 정도로 도전골든벨에 나온다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전원 골든벨을 울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미국인들 기준으로는 이것을 다 맞추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다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골든벨을 울리면 ‘한국 최고의 바보’에 등극한 셈이 된다.
그런데 2006년 1인당 소득은 미국은 4만불이 넘고 우리는 2만불도 안 되고? ???
“좋다, 이 무식한 것들아, 무식해서 행복하니?
우리나라 애들은? 성적 땜에 자살도 한다. 머? ”
모 후보가 중학생 때부터 엄청난 비용으로 열심히 외우는 사교육을 받아 명문고를 거쳐 자동으로 명문대 들어가는 그런 고등학교를 300개나 만들겠단다.
당연 거기에 못 낀 나머지 2000여개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상대적인 <낙오자>가 된다.
그러나 좋다. 그렇게들 다들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를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들어갔는데도 절반 이상이 졸업 후 백수다.
거기다 백수들은 취업이 안 되는 이유조차도 모른다.
엄청난 돈을 들여 하라는 대로 해서 들어갔고 성적도 최상위권이니 사기 당한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몇백 몇천 대 일인데도 ‘사람’이 없다고 푸념이다.
언젠가 친척 중 하나가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는데 면접을 어떻게 봐야하는 지를 물어왔다.
답변은 간단했다.
“뭘 물어 볼지 모르므로 예행 연습으론 안되니까 이렇게 해.
가령 왜 우리 회사를 지원했나, 가족관계...등의 평범한 걸 물어 보더라도 1, 2초 안에 대다수의 떨어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해서 떨어질까를 생각해 보고 그런 답만 피하면 되. 그 쪽에서 알고 싶은 건 정답이나 모범 답안이 아니고 남다른 문제 해결 능력을 알아보려는 거라구. ”
“ ??? 그런 건 안배워서 못해여. 걍 족집게 모범답안이나 족보를 줘 봐여. 외우게...”
아니 대학 졸업하고도 또 외울게 있다니...
평소 도전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리면 명문대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었고 “와, 어찌 저런 것까지...”하며 감탄하곤 했다.
그런데 어떤 게시판에 한 고딩은 “난 10번까지도 못 가 드럽게 쪽팔린다.”
또 다른 고딩은 “부모님과 도전골든벨을 같이 보다가 내가 못 맞히면 그것도 모른다고 나가 죽으라고 그러신다.“ 란 글을 올렸다.
고딩을 자식으로 둔 대다수의 부모들이 말은 안 해도 같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많이 아는 것뿐으로는 정보량이 많은 것이지 지식을 쌓은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요즘 시대에 백과사전이 머리 속에 있으나 노트북에 있으나 그게 그거지 ‘진정한 삶’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잘 외우는 것이 똑똑한 것도 아니고 또 암기력과 창조력은 반비례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어떤 명문대 노교수는 “요즘 들어오는 애들은 영~ 기초가 안되있어 가르칠 수가 없어요. 거기다 배우려고도 안해요.“하며 좌파정부가 교육을 다 망쳐놨다면서 수능 반영도가 낮아 학력이 떨어져 그렇다며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
아니, 몇 십년 동안 자기들 하란대로 사교육 받고 엄청 외운 상위 0.1% 내의 학생들을 독식해서 망쳐왔으면서도 그것도 부족해서 외우라는 것이다.
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발표하게 이끄는 데 우리나라 교수들은 대학에서 조차도 아득한 옛날에 챙긴 ‘시대에 뒤진 정보’를 주입시켜왔으면서도 교육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역사는 연도와 인물, 수학과 과학은 공식, 영어는 영문법, 예체능은 기술...를 외우고 대학에 들어오면 이젠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딸딸 외울 거리를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은 정년까지 만년 철밥통을 꿰 찬 자기들 수준이다.
말하자면 자기들은 장인이고 학생들은 도제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대학 교육은 둔재를 수재로 만드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제까지 수재들을 뽑아 4년 만에 둔재로 만들어 온 사실을 장본인들은 까맣게 모르고 학생들만 타박해오고 있다.
그러니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 조금만 있으면 썩어 먹지도 못 할 고기만 잔뜩 안겨 주고는 평생 간직할 것을 요구해왔던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육자 교수들도 있다.)
이건 가령 심형래가 대학 연예과 교수가 되어 ‘웃기는 기술과 공식’을 평생 가르쳐 왔는 데 이제 시대가 지났는데도 계속 똑 같은 걸 따라 하라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제자들도 제자 나름, 유재석은 장인과 도제라는 관계의 고리를 끊고 ‘웃기는 기술과 공식’을 외우지 않고도 ‘웃기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물론 언뜻 언뜻 나타나는 심형래 코드도 보이긴 하지만 그런 것이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 중인 것도 보인다.
하지만 대체로 유재석은 시대를 잘 읽은 게 된다.
PD들마다 공통적인 칭찬은 기획회의 때마다 내 놓는 순발력있는 크리에이티비티(창의성)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단다.
이래서 유재석이 바쁜 거다. 이 건 외워서 될 게 아니다.
본인은 앞에 서면 소심해지는 탓에 연예인이나 개그맨에 적합한 성격이 아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기만의 코드를 찾아냈다.
괜히 유재석이 아닌 것이다.
부시는 멍청하지만 미 국민들이 다 멍청한 것은 아니다.
한 때 일본한테도 밀렸던 미국은 바람둥이 대통령 클린턴 때부터 일본을 다시 추격해서 4만불 이상의 시대가 됬지만 우연히 된 게 아니다.
1950년대의 실용주의 철학이 교육에까지 적용되면서 50년 이상 변해온 결과가 지금이다.
교사 teacher, 교수 professor(앞에서 말하는 사람)와는 달리 교육자 educator란 단어는 누구든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밖으로 꺼내 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스승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말의 교육자(敎育者)는 가르쳐서 키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게을러서 못 외우면 교사가 때려서라도 외우게 만드는 게 교육자의 책임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도 당연히 그렇게 믿고 있다.
대다수의 극성스런 부모들과 기가 막힌(?) 정치, 교육체계가 맞물려 베토벤이 음악가인건 우리나라는 초딩도 다 안다. 고딩이면 운명 교향곡이 베토벤 작품이라는 것도 안다.
단 그 곡을 들려주면 모른다. 그래서 고거라도 알고 있으면 행복한가?
앞의 예에서 처럼 ‘베토벤을 개’로 알고 있어도 한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이 되게 이끄는 것이 오히려 4만불 이상의 시대로 가는 교육이었던 것이다.
이 시대엔 책을 읽는 목적이 암기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남달리 느끼고 생각을 해야 할까 때문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의 교육은 ‘어떻게 남다르게 할 수 있는 가’가 초점인데 이 나라는 아직도 학벌주의의 만연으로 정보홍수 시대에도 계속 ‘아는 것이 힘’이라며 사회 나가 몇 년이면 ‘약발’이 떨어질 자기들이 아는 알량한 걸 꾹꾹 주입해 왔다.
<1980년 영국 롹 그룹 핑크플로이드의 뮤비 “ 더 월 The Wall " 중에서>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II
We don't need no education.
우린 당신들이 요구하는 당신들만의 교육은 필요 없어요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우리가 당신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싫어요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교실에서 그딴 것도 모르냐면서 음흉하게 비아냥대지도 마세요.
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
쌤, 걔들 좀 그냥 내버려둬요
Hey, Teacher, leave those kids alone!
이보세요 쌤, 걔들을 그냥 좀 놔두란 말이에요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모든 게 벽속의 또 하나의 벽돌이랍니다.
(나도 별 볼일 없는 벽돌 중 하나지만
우리 하나 하나가 없으면 벽도 없어요)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쌤도 우리와 같은 처지자나요
우리나라 교육은 영국, 미국의 30년 전, 50년 전과 같다.
방송은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 한다고 하는데 일단 도전골든벨은 최저 시청률과 진행 내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교육계를 닮았다.
( 아니, 잘 보고 있다가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 ) 옛날에도 있다가 사라졌다 2000년에 부활한 구시대적인 프로일 뿐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도 맞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를 테스트해서 우리 꿈나무들을 단순 비교하여 줄 세우기 하는 프로그램이 학벌만능주의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확신도 든다.
교육계 문제는 저번 대선에서도 거론됬는데 사학법으로 꼬이면서 5년째 답보 상태다. 아니 더 거꾸로 갈 조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유재석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암기 일변도의 교육에 철퇴를 휘두르는 것을 공상 해본다.
하지만 기왕에 방송계에 있으니 최소한 암기를 요구하는 프로그램들만이라도 손봐줬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래서 평범한 문제를 던져주고 그것을 얼마나 엉뚱하고 기발하게 재미있게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기로 해결해 나가는가를 겨뤄 무한도전 같이 재미있는 교양 프로를 만들어 낸다면 공영방송답게 교육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암기 위주의 교육계도 탈바꿈하게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이하는 안 읽어도 되는 보너스
고등학생용 무한도전 예제
(단, 먼저 백과사전적 지식은 오히려 살짝 가르쳐 준다.
물론 모든 문제에 정답은 없다.)
<역사문제>임꺽정이 광화문에 나타났을 때 임꺽정의 행동을 표현해봐라.
<과학문제>이제 광속으로 나르는 로켓을 탔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술문제>당신이 피카소인데 서태지나 비로 다시 태어났다면 어떻게 노래할까?
<사회문제>당신은 90살이다. 근데 자식들이 돈 벌어오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될까? 등등
<전국의 고등학생들. 이제는 지금의 도전골든벨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앵무새처럼 잘들 외울까...” 감탄만 하면 됩니다. ...아무 상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