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남알프스는 정부나 각 지자체가 명명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과 달리 누가, 언제, 어떤 연유로 불렀는지 확실하지 않은 자연발생적이고도 비공식적인 이름이다.
국토의 7할이 산으로 뒤덮인 우리나라에서 이 영남알프스만큼이나 존재의 독특함을 간직한 산군은 없을 듯하다.
인적 드문 문복산 계살피계곡에선 누구나 나이를 잊고 물장구를 치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 |
산꾼들은 이 영남알프스를 두고 2박3일 정도로 '태극종주'라는 이름으로 종주산행을 하고 최근에는 인근 봉우리를 더 끌어들여 '대태극종주'라고 확장해서 사시사철 내달리고 있다.
이 9개의 산군 중 지명도가 가장 낮은 봉우리를 꼽으라면 아마도 최북단의 문복산(1014m)일 게다. 단석 고헌 가지 간월 신불 영축산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낙동정맥에서도 한참 비켜난 그야말로 독립봉이어서 문복산만을 찾는 산꾼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간월 신불 영축 천황 재약산처럼 주변 언저리봉과 이어져 있으면 스쳐 지나가기라도 할텐데 문복산은 이런 여건 또한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나, 여름철은 예외다. 계살피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산 인근의 내원사계곡이나 밀양 호박소처럼 피서인파로 넘쳐나는 그런 계곡은 결코 아니다.
계살피계곡은 지리나 설악의 그것처럼 웅장한 폭포나 소는 없지만 영남알프스 계곡 중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상류 쪽엔 최근 수년간의 태풍 탓인지 등산로 일부와 계곡이 흐트러져 있지만 소와 작은 폭포들의 풍광을 즐기면서 계곡산행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산길 전망대에선 가지 운문 억산 등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보인다. | |
산행은 청도군 운문면 삼계리~잇단 헬기장~하늘문(전망대)~마당바위~문복산 정상~돌탑삼거리~전망대~계살피계곡~가슬갑사 유적비~잇딴 너덜길~삼계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정도지만 계살피계곡의 적당한 지점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들머리는 운문산자연휴양림과 운문사 입구의 중간 지점인 삼계리. 칠성가든(슈퍼) 앞에서 하차한 뒤 청도(운문사) 방향으로 향한다. 길가 전봇대에 '문복산 등산로'라고 걸린 조그만 팻말은 무시하고 운문령식당 앞의 다리(삼계2교)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우측 계류를 따라 골목길로 들어간다. 곧 갈림길. '고향집민박'이라 적힌 이정석이 보이는 우측으로 가서 차량진입금지를 알리는 쇠줄을 통과해 잡풀이 무성한 나대지를 건너면 비로소 '문복산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다. 그 뒤로 들머리가 열려 있다.
산길은 급경사 오름길이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진 숲길이다. 4분 뒤 첫 갈림길. 계살피계곡을 거쳐 정상 가는 우측길은 하산길로 남겨두고 산행팀은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오른다.
등줄기에 땀이 촉촉히 젖을 정도의 외길 된비알을 45분 정도 걸으면 첫 헬기장. 도중 뒤돌아보면 지룡산과 배너미재가, 산길 우측으로 쌍두봉이 보인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선 우측으로 간다.
너른 반석과 편안한 낙엽길을 여유있게 지나면 우측에 집채만한 바위를 만난다. 바위 아래에는 한 사람이 기어 지나갈 수 있는 거친 터널이 있다. 오래 전 국제신문 산행팀은 이를 '하늘문'이라 명명했다 한다. 바위 위는 멋진 전망대. 잠시 올라서면 진행 방향으로 둥그스럼한 문복산을 기준으로 우측으로 상운산 가지산 쌍두봉 아랫재 운문산 딱밭재 범봉 억산이, 10시 방향 서담골봉, 9시 방향에 옹강산이 위치해 있다.
정상에서 하산길은 두 갈래. 왼쪽은 경주 서담골봉 옹강산 또는 산내면 중리 방향, 산행팀은 오른쪽 894봉 고헌산 방향으로 간다. 3분 뒤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돌탑 삼거리. 여기선 왼쪽 894봉을 거쳐 고헌산 가는 길 대신 오른쪽 계살피계곡으로 간다. 내려서기 전 좌측으로 웅장한 바위절벽이 클라이머들에게 유명한 드린바위이다.
가지산에서 운문산을 거쳐 억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주능선을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바위를 지나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급내리막길이 기다린다. 40분이면 계살피계곡에 닿는다. 계곡 상류라 유량이 아주 적다. 곧바로 계류를 건너 산길로 올라선다. 이내 지계곡을 건너 산허리를 약간 돌면 다시 계곡에 내려선다. 이번엔 대각선 방향으로 계곡을 건너면 산길이 열려 있다. 아직도 유량은 기대치에 못 미친다.
계곡 합수점을 지나 계곡과 나란히 걷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으로 내려서면 물은 오간 데 없고 자갈밭을 만난다. 실망을 머금고 50m쯤 자갈밭을 가다 다시 우측 산길로 향한다. 10분 뒤 지금까지 품었던 우려를 싹 가시게 해주는 너른 소를 만난다. 포항서 왔다는 50대 산꾼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물장구를 치고 있다.
이후부터 계곡은 소와 담 그리고 앙증맞은 폭포들이 잇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간혹 소의 깊이가 어른 키를 넘는 경우도 있다.
계곡화를 준비했으면 여유있게 물길을 따라가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계곡 우측길을 따라 내려가야 된다. 이 길은 계곡과 약간 떨어져 있어 숲 사이로 걷다 괜찮은 너른 소가 보이면 잠시 내려가 쉬었다 가면 된다. 계살피계곡은 비교적 한적해 대개 소 하나에 한 팀씩 쉬고 있는 모습이 목격된다.
하류로 내려올수록 계류와 나란히 달리는 산길은 멀어진다. 앞선 길과 달리 잠깐의 대숲을 통과하면 길섶에 조그만 비석이 서 있다. 가슬갑사 유적비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잇단 너덜길을 지나 산행 시작 후 만났던 첫 갈림길을 지나면 이내 들머리에 닿는다. 가슬갑사 유적비에서 40분쯤 걸린다.
첫댓글 신경써 올려주신 자료 잘 보았습니다. 나도 요 몇일전 다녀 왔는데, 우기에 물이 충분하여 계곡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었고, 숲이 많아서 여름산행지로는 '딱'이다는 생각을 들게 하더군요. 이 보다 더 좋은 피서지를 구하기도 힘들겁니다.
자료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