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번째 당했다. 병원에 누워 있으니, 병문안도 오고, 우리고흥 분이라는 우리보다, 대선배인, 신을유 씨라는 분이 인천 간석동 개인 병원을 호남 사람이 원장 인데, 저렴하게 해 준다하여, 우리는 병원 앰불런스 에 실려 갔는데, 조그마한, 개인 병원이며, 화상 전문 병원도 아니었다. 후일 알았지만, 환자들을 병원에 소개하면, 병원측으로 부터, 소개료를 받는다, 고 들었다. 그때 세 사람 하루 치료비가, 십만원이며, 엄청난 돈이였다. 화상치료도, 그사람들이 잘 하지못하며, 치료할때면, 눈 뜨고 볼수없을 정도로 아이는 울어되고, 죽고 싶은 심정 말할수 없이 가슴 아팟다. 그때는 의료 보험이 일반인은 없고, 큰 회사에나 있는데. 지.엠 코리아. 허순열 총무과장이, 나를 회사 직원으로해서 의료보험증을 만들고, 미수금과 함께, 간석동, 개인 병원으로 찾아와, 고등학교 동창이, 부평 성모병원 정형외과 과장 인데 당신 사정이 하도딱해, 의논하여, 우리딸을, 성모병원으로 입원 시키라하고 의료보험증까지,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대리고 갈수가 없었다. 그때 병원비가, 약 칠십만원 밀려있어, 혹시 야간 도주라도 할까봐~일체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며, 지키는데, 아내와 의논하여, 나는 애기를 앉고 몰래 택시를 타고, 성모병원에 입원 시키고, 애기와 나는 함께 지내고 있는데, 애기는 엄마를 찾으며, 울어대고, 한방을 쓰는 사람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화상을 입은 아이를놓고 엄마는 오지 않으니 수근~수근 거리고. 집사람은, 우리가 없으니까, 병원에서 볼모로 잡고 있고, 하루~하루~가, 눈물의 날이였으며, 내가가장 아끼는 "미놀타 카메라"를 형수님께서, 약 삼십만원 에팔고, 빛을얻어 병원의료비를 갚고, 십만원 정도 남았는데, 벌어서 갚겠다고, 각서를 써주고, 우리식구는 다시재회하여, 성모 병원에 함께 있으면서, 나는 한달만에 일어서니, 재되로 걸을수없어, 계속 움직이며, 돈을 벌어야 생계를 이을수있어, 자전거를 타고 다시 뛰었다. 계속
첫댓글 가시밭길을 걸으신 선배님의 일화. 감동과함께 가슴 뭉쿨하고 때론 눈시울이 붉어 집니다 저도 화상을 치료 받아 보았기에 그 부분에서는 더더욱 가슴 아팠답니다 선배님의 글을 읽고 고진 감내 나에게도 큰 도전과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화상으로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저 그러려니 할거구요. 그 아픈 세월을 보내셨군요. 눈물이 납니다.
고난과 시련의 연속을 극복하시고, 휼륭히 성공하신 소암이기에, 더욱 값진 인생의 교훈이 됩니다.
첩첩산중 설상가상이련가
허순열 씨 지,엠 총무과장, 평생을 잊을수 있겠는가 지금도 옛 얘기하며, 안부를 전하지요. 좋은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