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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에 우리가 절에 다니는 불자도 아니지만 집사람과 둘이서 길상사에를
가 보기로 하였다. 집사람이 한번도 가 보지 않았다고 하여 그러면 조계사를 들렀다가
가자고 하여 점심 먹고 집을 나섰다.
조계사 쪽 길은 여러번 통행을 하였어도 한번도 안으로 들어가 보지를 않았다.
시내에 있는 법당이라 그래서 맘에 와 다가오지 않았던건 아닌지. 그 입구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 자리가 있었던 기념비가 있고 기념관이 작은 건물 하나로
그 당시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최초 우편국 시작과 세계우편연합에 참가한 가록이며 우표들 사용하던
도장들과 서류양식들, 그리고 당시 우체국을 이끌던 선조들의 이야기가 전시 되 있다.
우리가 20대 때에사용하던 복사라는게 필경이라하여 가리방이란 것에 얇은 비닐같은
종이 위에 글을 쓰고 등사기로 밀어 프린트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여기서는 양식을 대장경 같은
것에 양식모양을 조각하여 종이위에 찍어대던 모습이 전시되있었다.
참으로 세상이 너무 좋아져 편리하기가 그지없다. 설계도면 같은 것도 청사진기라는 것으로
복사하느라 좋은 감광지를 사용하던 그런 시대였는데.
조계사 입구로 가니 사람들, 불자들이겠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는 듯 하다.
대웅전 앞에서는 자선음악회가 진행되고 있고 대웅전 에는 불공드리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는가 하면 대웅전 단하에서는 작은 부처님상 위로 물을 떠 부어
내리는 예식에 참석하느라 또 다른 긴 행렬이 서 있다. 종교라는게 참으로 대단한 위력을
갖고있다. 만사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다는게 종교라는 무대에서는 그 강도가
최대치가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 마음 먹기를 종교라는 이름을 빌어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전에 직접 예불을 들이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길게 서서 순서대로 들어간다.
나이드신 여자분들이 아마도 거의 다라고 해도 될게다. 어찌하여 이렇게 여인들이
더 불심들이 깊을까. 그 예식을 집도하는 이들은 남자스님들이 모두이신데.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 이런 종교 집단에서의 남녀평등은 어데까지인가.
그리고 이곳 대웅전에서 보는 부처님상의 얼굴은 여느 다른 사찰의 부처님상과 상당히
다른 걸 느낀다. 왜그럴까, 이곳이 우리나라 불교의 총 본산인데 이런 곳의
부처님상이 틀리다니. 무슨 연유가 있을까?
연주회장의 분위기는 연주 오케스트라의 열정적인 연주로 인해 모두들 열심히
듣고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지휘자가 한 곡 끝나면 설명도 해주고, 야외에서 하는
것 이라고 앵콜을 그냥 박수 많으면 요청하는 것으로 알고 바로 연주하겠다고 까지
안내를 해준다. 그렇게 해야겠지. 여니 무대같이 커튼콜을 하며 왔다갔다 할 분이기도
아니니까.
입구에 설치되있는 동자부처상이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웃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있어
지나는 이들의 얼굴을 맑게 해 주는 듯하다. 저 뒤의 줄들이 대웅전 안에서 불공 들이러
가는 줄이다. 무언가 나름대로의 소원들을 말하겠지. 무언가 이루어 지도록 기원하는
마음들 이겠지. 오늘같은 날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기원하는 소원하는게 다 이루어지는 그런 날이기를 나 또한 기원해 본다.
이곳을 지나 인사동 길로 들어섰더니 이곳 또한 휴일이라 그런가 웬 사람들로 초 만원들이다.
걸어가기 조차 힘들 정도로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무얼 사려고하나 아니면 무얼 감상하려고
그런가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사람 구경하러 왔는지도 모른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꽉 차 있지
않은 걸로 보면. 이 곳은 각종 자그마한 갤러리도 많아 소규모 전시회가 많이 있어 볼 거리도
많이 있기는 하다. 서양화, 동양화, 도예,전통차 소개도 하고 설명도 하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 녹차 같은 것도.
길상사로 방향을 잡았다. 옛날 왕컴퓨터코리아 다닐때인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이 곳이 한국식 요정으로 있을 때인데 그때 본사 사람들이 오면 이곳을 많이 이용하러
다니던 곳이기에 경복궁 쪽으로 해서 차로 다닌 기억을 갖고 가까운 곳인줄 알았다.
헌데 뻐스로 한성대역까지 가서 그 곳에서 길상사를 오가는 무료 셔틀 뻐스를 갈아타고
가야만 한 먼 길이였다. 자가용으로만 다녔던 탓에 거리감을 상실한 상태였다.
왕컴퓨터 공장책임자로 있을 때 공장으로 다니던 여사원이 이곳에서 외국사람과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사의 고위직들이 한국에 오면 이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그 때에는 가야금을 옆에서 은은하게 연주 해 주는 그런 자리를 갖기도 하였던 추억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체적인 조경은 변한게 없어 보인다. 너무 오랜 만이라.
범종각이 세워져 있는게 그 때는 없었던 것이리라. 석가탄신일이라 연등들이 많이도 걸려있다.
특히 이곳은 얼마전에 열반하신 법정스님이 기거하던 곳이라 스님을 추모하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
윗 길로 올라 돌아 내려오면서 산책을 하기로 하고 위로 올라가 보았다. 당시 있던 집들이
많이 있는 거 같다. 세월이 20여년이 지난 뒤라 변햇어도 잘 알 수가 없겠지만 그 때를 회상
하면서 돌아본다. 참으로 신선하고 상쾌한 분위기다.
계곡 위에 방갈로 같이 세워져 있는 게 많이도 보인다. 스님들이 각각 기거하며 공부하는
곳인가 보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 있는게. 어느 건물들은 조그마하게 되있고 그곳에세
묵언의 수행을 하는 방이라 써 있기도 하다. 또 어 떤 방은 명상의 방이라고도 써져 있다.
누구든지 들어가서 명상을 하고 나올 수가 있는 방이다. 언제 한번 혼자 와서 명상에 빠져
본다고 생각했다. 과연 잡념이 없이 명상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
계곡가의 길가에는 법정스님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 많이 전시 되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사진작가가 그동안 스님을 옆에서 담았던 사진들로서 작가의 심경이 같이 있는 사진도 잇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란 것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알수 있다고 보는데
법정스님의 성격은 좀 날카롭고 예리한 상이지 인자한 부처님 같은 상은 아니라고 보인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 정진에 힘쓰신걸로 알고있다. 인간이란 것에서 더 벗어나시지는 않았
으리.
중간 중간에 이런 공간들을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쉬며 이야기 하며 사색할수있게 해 놓았다.
국화무늬같이 연꽃무늬같이 기와로 만들어 놓은게 너무 정감어려 이곳에서 한참을 쉬였다.
나무기둥을 짤라 세워놓은 곳이 많이 있다.의자로서, 그리고 평상도 작게 만들어 놓아 쉬게
하기도 했고. 계곡 주위를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담소들을 나누는걸 보면 한가롭기가
그지 없어 보인다. 참으로 좋은 장소이고 편안한 장소이다. 이렇게 까지 만들어 놓은게 이 곳을
소유하던 사람의 공덕이라.
계곡 끝에 있는 건물이 옛것이라 나무 숲속에 싸여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한국의 정원이
이런 것이면 하고 생각해 본다. 소세원의 풍광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건물 뒤 오른 쪽에는
이 길상사를 기증한 법명이 길상화라는 분의 공덕비가 수덕사에있는 만공탑 같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는 대웅전이라는 게 없다. 대신 극락전이 있어 그 앞 뜰에 이렇게 소원판을 준비하여
원형 그림을 사서 자기 나름대로 소원이나 기원을 적고 이곳에 붙이는 행사를 한다. 다보탑 앞에
정좌하신 법정스님이 보인다.
그리고 맨 가에 법정스님의 글이 써져 있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오두막집에서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라 적혀잇다. 나는 나 답게 살고싶다. 누구든 나 답게 살고 싶을 뿐 그렇게 못 살기에.
이 또한 희망 사항이고 소원의 하나이겠다. 자유스럽게 그 누구의 속박도 없이. 먹고 입고 자고
하는게 해결이 된다면 이란 가정이 먼저이겟다. 그게 안되면 하고 싶어도 못할테니.
이 곳의 극락전각 아래 단에도 자그마한 부처상에 물을 부어 씻어 내리는 예식에 동참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어떤 의미일까. 조계사에서도 그러한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가던데.
그 단 아래 마당에는 오늘 길상사의 산사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오늘의 주제는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그런 음악회라고 한다. 이왕 여기까지 왓으니 음악회를 보고 가기로 했다. 저녁 7시반에
시작 한다니 한침을 기다려야 했다. 연주자들이 와서는 연습도 하고 그러는 시간이다.
아까 앉았던 곳에를 다시 와서는 한참을 또 이곳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앉아 있어도 시원한 마음이 되어 편안하다. 숲을 바라보는 시각과 산 바람, 그리고 이곳에
감돌고 잇는 불가의 분위기. 이 것 또한 종교의 맛이리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겪는 풍랑의 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업에서도 실패 해 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듯이 개인들에도 그러한 풍랑이 왔다 가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 지는 것이라.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잘 이끌어 가며 합의점을 도출하여 서로
만족하는 결과를 갖는가가 더욱 중요하기에 인간이 더욱 성숙해 가는 것이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 모두의 얼굴들이 환하게 보인다. 가족단위의 행차가 많고 연인들도
많이들 찿는거 같다. 모두가 불심들이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그들의 마음 씀씀이 넉넉하다.
오늘 법정스님을 뵙고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이 세상 어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하는가요?
무슨 대답일까.
형형색색들의 등불들이 작은 연못에 반사되어 비추는게 내 삷이 고스란히 연경이 비추어
저 하는 위에서 바라보고 있을진데. 이렇게 투명하게 살라하고 선인들은 말하는데 그런 의미가
이 연못이 뜻하는 걸까?
이 커다란 건물은 새로 지은 건물이다. 지장전.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곳인가 등불에 모두
이런 글들이다. 그리고 등들도 한결같이 죽음을 의미하는가 흑백이다. 좀 섬뜩한 기분이다.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그냥 아래에서만 보고 돌아섰다.
저녁 공양을 오늘 떡과 야쿠르트 하나가 주어진다. 모두들 하나씩 타서 먹고 산사 음악회까지
보려고 기다리려나. 밤에 또한 연등제도 하는 걸 나중에 가면서 보게됬는데 그때까지 있나 보다.
음악회장의 플랜카드에 적힌 글이 의미가 심오하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라는 글귀가.
내 안에 있는 소리부터 잘 다스리라는 말이겠지. 내 마음 속에서 이야기하는게 무엇인지.
희노애락이 모두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인데 어찌하란 말인가. 법정스님 말씀대로 나 답게 산다.
우리도 저녁공양을 받아 한 사람분만 먹었다. 백설기의 맛이 너무 푸석해서 더 먹지를 못하였다.
그냥 요기를 채울량으로 먹고 결국 밤 늦게 나오다 길상사 아래 차길까지 내려와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오긴 했다.
이 탑이 이 곳 요정을 조건없이 법정스님에게 기증한 김영한 님의 공덕비이다. 위대한 사람.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밝게 빛나며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든다. 저 광명의 세계로 가 계시려나.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
등불에 달린 소원성취 카드가 빈곳이 없이 다 차있다. 나중에 보니 밖에 있는 등불에나
매 달아야 할 정도로 많은 소원들이 있다. 우리는 한번도 이런 걸 해 보지를 않아
항상 서툴다.
나뭇닢 한 줄기 나무기둥에서 수직으로 나와 바람에 나부끼는게 있다. 8개의 닢이
하늘을 향해 있어 우주의 힘을 다 받는 듯. 힘차게 뻗어 나가는게 역동적이다.
이 세상 이러하게 역동적으로 살며 마음은 나뭇닢 같이 부드럽게 바람에도 날리 듯
하는 삶이어라.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좌측 문 턱의 댓돌 위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아래 의자를 차지하고
있다가 스님들이 많이 오신다고 자리를 비워 달래 위로 올라오게 됬다. 위에오니 저녁 예불하는
모습들을 모두 볼수가 있었다.
7시가 되니 예불이 시작된다. 예불하는 걸 첨으로 보는 거 같다.먼저 범종이 울려퍼지니 스님들이
입장을 하고 자리를 잡는다. 작은 종 소리에 따라 일어나고 절하고를 반복하면서 무언가 게송을 한다.
마지막에는 반야바라밀디심경을 게송들을 하고 끝이난다. 먼저 게송하는게 무언지.
연주회 순서지를 보면 오늘의 음악회가 맑고 향기로운 길상음악회로 되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듣지 못하고 오는 바람에 황병기씨의 가야금을 못 들은게 아쉬웠다. 9시쯤 떠났는데도 집에 오니
11시가 넘었다.
안내서에도 있듯이 이 음악회는 부처님 나신닐의 의미도 있지만 법정스님의 추모음악회라
추모성 음악으로 준비하였다는 안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음악들은 모두 조용하고
무거운듯한 음악들이였다. 맨 마지막의 가야금과 노영심의 피아노곡은 못들었지만.
저 아래 스님이 치고있는 황동 항아리는 종이다. 한번 타종을 하니 그 종 소리가 은은하고 맑게
멀리 오래 퍼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청동 종 소리이다. 가슴을 울리는 듯한 종소리의 울림.
창을 하고
피아노 뚜껑위로 비추는 등불들의 모양이 가을철 맛을 듬뿍 머금고 익어 있는 감들과 같이 보인다.
라이어라는 악기가 은은 한 소리로 연주하는데 너무 조용하고 느린 곡이다.
밤이 되어가면서 등불이 나무 속에서만 비추고 나중에 점등식을 한다. 아직 하늘의 빛이 있어
환하게 사진이 나온다. 온 세상이 이렇게 환한 세상이되기를.
가야금 연주와 함께 창으로 거문과 앙상블 연주도 듣고,
하늘엔 반달이 휘영청 밝게 비추는 산사에서의 음악회라. 운치가 있기는 한데 주제가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노래들로서 그리 밝지못한 곡들로 인해 침울한 붕위기가 연출된다.
숲 속 나무들 속에서 등불들이 먼저 켜져서 한껏 분위기가 멋지다. 색상 또한 여러가지가
빛나다 보니 더욱 야경이 볼만하다. 온 누리에 이같은 빛이, 광명이 비추이기를 기원하는
맘들이겠지.
아직 아래 등에는 점등이 않된 시각이다. 주지스님이 시 낭송을 한 후에 점등식을 하였다.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을 외치면 점등된다고 하였다. 참석한 대중들로 하여금 태양과 달 그리고
별 하고 외치자 마자 점등이 됬다. 함성 소리와 오색찬연한 등불로 인해 멋진 밤을 보는 대중들의
와~하는 감탄사들이 순간 이 산사를 뒤덮는다.
저 둥근 등불같이 밝게 이세상 구원하고 인도하는 세계가 되소서 하는 기원이 나온다.
모든 대중들이 저 등불을 달고 그 아래 소원띠를 달면서 이런 바램들을 기원하였겠지.
그런 기원들이 계속 이어져 평온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 될지어다.
중간에 다 못보고 내려오면서 등불 옆에 서 보았다. 영화 등심불이 자꾸 생각나는 건 왜일까.
환한 보름달 같은 등불이 비추는 세상은 서로 위로하고 손잡아주는 세상이어라.
그 한 편에 여기 길상사를 찿는 대중들이 앞장 서겠지.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보다도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또한 어려운 실천사항들이다. 나 자신도 그렇게 다 하지 못하니
그래서 법정스님도 나 답게 살고싶다라는 말씀을 하셨겠지.
오늘 하루 오후를 여기 길상사에 들러 옛날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때 지내던 옛 사우들도
생각해 보고, 이렇게 산사로 바뀐 정경속에 뭍혀 나를 되돌아보는 순간이 되였다.
산다는기준이 무엇인지.어찌 살아야 후회없이 사는 건지 자문도 해본 시간이다.
즐겁게 인생 산다는게 나만 즐거워서는 아니되는게 이 세상 인연들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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