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8월 29일 성령강림 후 열네 번째
성경 ; 렘18:1-11, 몬1:1-21, 눅14:25-33
제목 ; 인생길을 바꿔서 내게로 돌아오면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변화된 생활을 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①(원인)자기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자기 소유와 악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자기 잘못과 그릇된 생활을 고쳐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②(과정)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자신의 악한 생각을 따르고 있습니다.
ㄴ.모든 일을 억지로 행하거나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③(결과)쓸모가 없게 되어 파멸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ㄱ.이 세상에 악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ㄴ.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①(본성)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ㄱ.비록 멸망시키기로 작정했더라도, 그 백성이 고쳐 살면 그 재앙을 취
소하십니다.
ㄴ.우리가 지은 죄의 빚을 갚아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②(섭리)은혜의 말씀과 사랑의 능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ㄱ.사람의 운명과 민족의 앞날을 좌우하십니다.
ㄴ.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의 진흙으로 행복을 만
들어주십니다.
③(결과)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 번영과 행복을 약속하셨습니다.
ㄱ.그러나 끝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재앙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ㄴ.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할 것입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타인에게도 삶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쓸모 있
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①(준비)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ㄱ.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ㄴ.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②(실천)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마음에 드는 쓸모 있는 인간
이 되어야 합니다.
ㄱ.억지가 아닌,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ㄴ.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믿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ㄷ.풍성한 주님의 은혜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삶의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③(결과)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ㄱ.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ㄴ.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4.파견사
목사 :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인간의 행복이
사람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따라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고, 세상에도 유
익을 주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께 진심으로 회개한
후에 잘못된 길을 고쳐 가도록 하십시오.
회개 : 아멘.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고 있건만, 자꾸만 어리석게도 세상을 더 의지하는 우리 인생입니다. 우
리 운명이 심히 위태로운 상황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
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내 생
각과 그릇된 생활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주님의 말씀에 적극 순종함으로
써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오, 하나님! 주님의 생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것들이 얼
마나 크고 많은지요!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셀 수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
자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깰 때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과 함
께 있습니다.
영원히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하나님, 오늘도 우
리에게 하늘의 복을 베푸시려고 우리를 불러주신 줄 믿고 진심으로 감사드
립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앞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에게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덧입혀 주시리라 믿고 감사드립니
다.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오, 주여! 우리가 드리는 감사와 찬양을 받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이
시간,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고 싶어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아무
쪼록 복이 되고 은혜가 되는 길로만 인도해주십시오. 우리는 주님께서 일러
주시는 대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혹시
라도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
장하여 주십시오. 만일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고쳐서 바른 길을 가
게 하심으로써, 참으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게 해주십시오.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평안을 주시고, 인류의 참 소망과 기쁨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
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시139:1-6, 13-18)
목사 : 여호와여, 주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살피셨으니, 주는 우리를 알고 계
십니다.
회중 : 주는 우리가 언제 앉고 언제 일어서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주는 멀리
서도 우리의 생각들을 아십니다.
목사 : 주는 우리가 나가고 눕는 것을 아십니다. 주는 우리의 모든 길에 대
해 잘 알고 계십니다.
회중 : 우리가 무슨 말 하려는지, 여호와여 주는 그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목사 : 주는 앞뒤로 우리를 둘러싸고 계십니다. 주는 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회중 : 이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 지식은
우리가 알기에는 너무도 깊고 오묘합니다.
목사 : 오, 하나님! 주님의 생각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것들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요.
회중 :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셀 수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자보다 더 많
을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깰 때도, 우리는 여전히 주와 함께 있습니다.
8.예화
1)주님, 항복합니다.
처음엔 소설가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 다음엔 유명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운이 좋아
나는 유명해졌다. 그 다음엔 당연히 돈 걱정이 없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
했다. 생활비를 다 쓰고 나서도 통장에 늘 100만 원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94년 여름 내가 낸 세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니,
돈도 생겼다. 이제 1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를 자고 나면 통장으로
수천만 원의 인세가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토록 사람이 그리웠던 나
와 연결하고자 전화벨은 끝없이 울려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돈과 명예가, 그리고 몰려드는 인터뷰가, 행복해지는 데
이토록 쓸모없는 것인 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그 시기를 감사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
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 놀랍게도 행복에도 자격이란 게 있어
서, 내가 그 자격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돌이키기 힘든 아픈 우두자국을 내 삶에 스스로 찍어버린 뒤였다. 그 쉬운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해 청춘과 상처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
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18년이었다. 그리고 돌아
가 나는 신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항복합니다, 주님 하고.
써놓고 보니, 우리말이 이상하기도 하다. 항복과 행복, 획 하나 차이의
낱말….
2)간디의 신발 한 짝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
겨져 플랫홈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
어 그 옆에 떨어뜨렸다. 함께 동행 하던 사람들은 간디의 그런 행동에 놀라
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를 묻는 한 승객의 질문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
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에게
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
게 되지 않았습니까?
3)피루스의 승리
주전 3세기에 헬라에 피루스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2만5000명의 군
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했습니다.
격렬한 전쟁이 끝난 후, 피루스 왕은 승리를 얻었지만, 그만 자신의 코
끼리도 다 죽고, 군인들도 4분의 3이나 죽어, 남은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았습
니다. 이것을 ‘피루스의 승리’라고 합니다. 패배나 진배없는 승리를 말합니
다. 마치 헤비급 권투선수가 챔피언에게 도전해 판정승을 거뒀지만, 너무 맞
아서 다음날 골병이 들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승리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피루스의 승리와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수
고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패배뿐입니다. 매우 소중한 것으로 생각했던 승
리의 전유물이 사실은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없는 인생은 헛
되고 헛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4)건강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돈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어야
곰쓸개는 쓸개 빠진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엉뚱한 사람이 먹는답니다.
몇 년 전, ‘신바람 건강학’이란 강의로 세인의 주목을 받은 황수관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을 하곤 그도 같이 웃더군요.
그분의 강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황 교수가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성경
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중 하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돈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진리입
니다. 의롭지 못한 재물은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의롭지 못한 재물
로 자녀를 교육시키면 자녀가 사기꾼이 되고, 의롭지 못한 재물로 음식을 사
먹으면 몸에 해가 됩니다. 의롭지 못한 재물로 아내에게 옷 사주고 차 사주
면, 그 옷 입고 그 차를 타고고 다른 남자 만나러 다닙니다. 그 돈으로 자녀
를 결혼을 시켜요? 그럴 순 없지요.
의로운 재물은 유익합니다. 땀 흘려 얻은 재물은 유익합니다. 정직한 재
물은 유익합니다. 누가 밥 사준다고 해서 생각 없이 얻어먹지 마세요. 어떤
돈으로 사는 밥인지 알아보고 먹어야지요. 노름해서 딴 돈으로 한턱내는 음
식 먹으면 몸에 해롭습니다. 도적질한 돈으로 차린 진수성찬은 독입니다. 김
치 한 보시기에 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그 음식을 마련한 돈이 정직하고 의
로운 돈이라면 가장 좋은 약이 됩니다.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가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음식을 마련한 돈이 어떤 돈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5)믿음이 낳은 놀라운 변화
한창때 교도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던 사람의 이야기다. 2년 형을 받고
나오던 날 가족들을 보는 순간, 너무나 양심이 찔리고 괴로워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고 이런 곳에 오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면서 자기의 눈이 범죄의
원인이라 생각해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 버렸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됐다. 길을 걷고 있는 한 여자의
핸드백을 훔치고 말았다. 그는 또 구속됐으며 전과 6범이라는 불명예를 기
록했다.
그러던 이 죄인이 마침내 새 사람이 됐다. 어느 날 우연히 예배에 참석
했다가 뜨거운 성령을 체험했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지금은 전
도사가 돼 교도소를 찾아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있다.
이 전도사의 고백이 “인간의 몸에 붙은 악습관을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는 없어요.”
변화란 무엇인가? 사울이 변해서 바울이 되고 야곱이 변해서 이스라엘
이 되었다. 근심이 변해서 기쁨이 되고, 어둠이 변하여 빛으로 나오는 것,
이게 바로 신앙의 변화이다.
6)앵무새의 교훈
어느 목사님 댁에 앵무새가 있었다. 그 앵무새는 날마다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할렐루야!”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더니, 거기 사는 앵무새는 “죽어라, 이놈아! 죽어라,
이놈아!”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목사님은 그 가정에 불화가 있는가 싶어서 6
개월 동안 앵무새를 바꿔 길러 보자고 했다.
6개월 후, 목사님 집으로 돌아온 목사님 댁 앵무새가 “죽어라, 이놈아!
죽어라, 이놈아!”라고 했다.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앵무새를 보면서
“너, 6개월 전에 우리 집에서 했던 말 다 잊어 버렸냐? 자, 따라서 해 봐. 안
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할렐루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앵무새는 도무지 모
르겠다는 듯 목사님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너 죽을래?”라고 했다.
9.설교예문
♣성령강림절 후 열네 번째 주일
성경 ; 렘18:1-11, 몬1:1-21, 눅14:25-33
제목 ; 사람의 운명은 주님의 손 안에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저는 우연찮게도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양팔과 양다리, 그러니까
사지(四肢)가 절단되고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
니다.
올해 55세인 김동수 씨는, 올해 초에 전립선암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주사 몇 대 맞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습니
다. 하지만, 그 이튿날 그는 극심한 구토와 복통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었고, 급기야는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몇 차례의 대수술 끝에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김동
수 씨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니 정장 좀 갖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만, 그런 가족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는, 몸을 추스르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제야 김동수 씨는 자신에게는 와이셔츠를 입을 양 팔도, 그리고 정장바지를
입을 무릎 아래 두 다리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전립선 검사를 하던 도중에 패혈증에 걸
리게 된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혈관에 세균이 들어가서 감
염이 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병원 측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지를 절단하
게 된 것입니다.
그의 현재나이는 55세, 모 건설사 현장사무소 소장으로 아주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아내와 아들이 24시간 곁에서 돌보지 않으면, 다리가
가려워도 스스로 긁을 수조차 없습니다. 밥도 다른 사람이 먹여주어야 하고,
그 밖의 모든 일들을 그 혼자서는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직 가장으로서 할 일이 많은 나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언젠가는 꼭 다시
입고서 출근할 날이 오리라는 생각으로 양복과 와이셔츠를 깨끗하게 잘 손
질해서 방 한 구석에다가 고이 간직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예레미야서 18장 1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운명은 내 손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운명은 주
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김동수 씨가 그처럼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것이 하
나님의 어떤 섭리에 의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그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습니
다. 어쨌든,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니,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무슨 일이든지 하시지 않겠는가하는 기대를 가져봅
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인간의 운명은 내 손 안에 있다.’고 말
씀하시기 전에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토기장이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토기장이는 물레를 돌리면서
진흙으로 질그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기장이는 그릇을 만들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그 그릇을 부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
시금 그 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이 진흙덩이와 똑같이 다를 수 없겠느냐? 진흙덩이가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맘대로 그릇을 만들거나 부수듯이, 하나님께서도 나라와
민족을 당신 마음대로 세우거나 멸망시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그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셨기 때
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 사는 것이 아
니라, 그 반대로 우상을 섬기면서 여러 가지 악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나라를 쉽사리 멸망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
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려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세
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백성들에게 보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
느 나라나 민족을 멸망시키거나 없애버리겠다고 선언했어도, 만일 그 민족이
자신의 행실을 고쳐서 바르게 살면, 내가 그들에게 내리기로 작정한 재앙을
취소하겠다.”고하시면서 회개하기를 촉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쳐서 벌하기로
하고, 너희에게 내릴 재앙을 준비해놓았지만, 그러나 너희가 하루속히 그 인
생길을 바꾸어 내게로 돌아온다면, 나는 그 재앙의 진흙덩이를 가지고 번영
과 행복을 만들어주겠다(11)”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르게 살지 못했다면, 그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
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생길을 바꾸어서 올바른 길로 가
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시
고, 그 대신에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고자 원한다면 좀 더 새
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
리들을 강제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
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 인간을 바꾸시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제적으로 바꾸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스스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망가지거나 변질되는 쪽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기에 합당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
다.
사실상, 그것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드셨던
그 본래의 인간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회개요, 회복인 것입니다. 우
리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망가져서 못쓰게 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처음
본래의 모습으로 재생시키는 것이 바로, ‘회개와 구원의 과정’이라 할 수 있
습니다.
어느 목사님 댁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는
목사님 댁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할렐루
야!”라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목사님이 하루는 어느 집사님 댁으로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 댁에도 앵무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앵무새는 “죽어
라, 이놈아! 죽어라, 이놈아!”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목사님은 직감적으
로 그 가정의 부부에게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6개월 동안만 앵무새를 바꿔서 길러 보자고 했
습니다. 6개월이 지난 다음에, 앵무새들은 본래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
사님 댁에 가 있던 목사님 댁의 앵무새가 다시 목사님 댁으로 앵무새가 “안
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할렐루야!”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대신에 “죽어라,
이놈아! 죽어라, 이놈아!”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앵무새를 바라보면서 “너, 6개월 전에 우리
집에서 했던 말 다 잊어 버렸냐? 자, 따라서 해 봐라. 안녕하세요. 사랑합니
다. 할렐루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앵무새는 도무지 잘 모르겠다
는 듯이 목사님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너, 죽을래?”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
다.
한낱 우스갯소리에 불과한 이야기이겠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큽니
다. 그것은, 앵무새까지도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을 더 쉽게 잘 배운다는 사
실입니다. 비단, 말뿐이겠습니까? 음식이나 습관까지도,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을 더 쉽게 잘 배우거나 습득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실상입
니다.
더군다나, 그런 악한 것들은 한 번 습득하고 나면, 쉽사리 버리지 못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꼭 익혀두어야 할 좋은 것들은 아주 쉽
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쩔 수 없으니, 불
행하게 되더라도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있는 그대로 살아야만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악한 성품과 올바르지 못한 인격,
그리고 나쁜 태도나 그릇된 생활습관이 우리 당대에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후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그 악한 모습이 이어져 내려간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하고 추한 모습 때문에, 우리 후손들
이 축복이 아닌 재앙을 받게 될 가능성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전에 사는 김동수 씨가 팔다리를 다 잘라내야만 했던 것은 패혈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립선암에 걸렸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조직
검사를 하던 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세균이 그의 혈관 속으로 침투해
서 그런 불행을 겪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균이 김 씨의 팔다리를 자르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 격언은,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
동이 행운이나 불행을 가져다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원치 않는 불행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말이나 행동을
바르게 고쳐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 됨됨이
도 하나님이 쓰시기에 알맞도록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나 쓰고 있는 말에 따라
그대로 우리의 미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지금, 복을 받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
까?
1.우리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삶을 뉘우치고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말과 잘못된 생
각, 그리고 잘못된 생활습관까지도 바르게 고쳐야 합니다. 물론, 한 순간에
다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선 방향만 바로 정하면 되는 것입
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복을 받을 수 있
는 길로 방향전환을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삶의 방향을 한순간에 바꿔서 바르게 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네시모’라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빌레몬서’라는 편지 속에 나오
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원래 그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
로 했습니다.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나는 그대가 다른 사람들
을 믿고, 예수께서 주신 그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여서, 그들의 생활까지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도한다(몬1:6)’고 했습
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 삶의 방향
을 바꿔놓았으니, 이제는 빌레몬이 그를 맡아서 더욱 새로운 사람이 되게끔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빌레몬에게 손해를 끼쳤던 나쁜 사람이
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새사람이 되었으니, 믿음이
좋은 빌레몬이 그를 옆에 두고 더욱 건강하게 양육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참으로 쓸모 있는 사람으
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네시모처럼 ‘삶의 방향’을 전환해
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그 가족만을 위해서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이웃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지
금 받는 복을 두고두고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하
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고쳐서 살 경우,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번영과 행복
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2.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과 유익을 줄 수 있는 인
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쁜 세균이 우리 몸에 퍼지면, 팔다리를 자르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그 작은 세균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쁜 생각과 나쁜 말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
가 우리로 하여금 헛된 인생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내 맘대로 고집하며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서,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
다. 마치 쓸모가 없던 오네시모가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처럼, 우
리도 어디를 가든지 크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부모형제나 처자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해야 한
다(눅14:26)”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누구든지 자
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욕심 때문에 자기 것을 아끼는 사람은 결코 쓸모가 있는 인
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개,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잘사는 것처
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주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쓸모가 없게 된 폐품이나 쓰레기를 귀하다고 여길 사람
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별 쓸모가 없는 사람, 얼
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입니까? 더군다나, 교회에서조차 별 볼 일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
까?
성도 여러분, 곰쓸개는 어떤 사람이 먹어야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황수
관 박사가 말하기를 ‘쓸개가 없는 사람이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
면, ‘양심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하나
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은 모두, 양심을 갖고 있습니
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성품과 인
격이 더욱 온전하게 됨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쓸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쓸모가 없다고 여기실 경우, 우리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불을 보듯 너무나 분
명한 일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더욱 온전하게
됨으로써, 교회와 국가, 그리고 모든 이웃들 사이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
다. 아멘.
♣성령강림 후 열네 번째
성경 ; 렘18:1-11, 몬1:1-21, 눅14:25-33
제목 ; 인생길을 바꿔서 내게로 돌아오면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오기로 한
그 날 아침, 저는 그 목사님께 ‘이곳까지 잘 올 수 있겠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대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염려하
지 마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목사님은 이곳 지리를 전혀 모르는 분이 아
니었기 때문에, 그 목사님의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따져볼 때에 올 때쯤 되었는데도, 그 목사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은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목사님은 양촌 지역이 아닌 대곶면
지역에서 학운교회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 목사
님은 제가 일러준 주소를 새롭게 다시 입력하고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목사님이 제가 일러준 주소를 거부하고,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주소대로 오겠다고 계속 고집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요? 말할 것도 없이, 헛된 고생만 죽도록 하고, 목적지인 이곳까지 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 목사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가 일러준
주소를 입력한 다음에 경로를 수정해서 왔기에, 더 이상 헛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했더라도, 그 백성이 자신의 행실을 고치고 더 이상 악한 짓
을 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들에게 내리기로 작정했던 재앙을 취소하겠다(8)”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내가 어떤 나라를 튼튼히 하겠다고 했을
지라도, 그 백성이 내 마음에 아픈 짓만을 행하면서 계속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면, 나는 그 약속을 취소하겠다(9-10)”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길을 감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길로 고쳐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도록 헛고생만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원치 않는 불행을
겪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던 길을 고쳐서 간다는 게 쉽지 않
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을 경우, 다음 나들목이 나타날 때까
지 계속 가야 하는 것처럼, 한 번 몸에 밴 습관이나 행동을 고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더라도,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계속 간다면, 그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누가 봐도 위험한 길이고, 자기 자신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위험한 길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속히 인생
길을 바꿔서 내게로 돌아오면, 나는 재앙의 진흙덩이를 가지고 행복을 만들
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만용이나 헛된 고집을 부리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사랑의 음성에
정성껏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19세기 미국 변호사 중에 ‘필립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으로 아무 부족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건만, 그는 노예해방을 위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때문에, 그
는 기득권층으로부터 각종 협박과 살해위협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노예해방을 위해서 전력투구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동을 받고 존경을 표했
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처럼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필립스의 아내는, 남편이 하는 일이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또한 그 일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
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의 신념을 굳건히 하려
고,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여보, 변화는 오늘부터 시
작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마세요.”라고 격려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할
때에는, 그야말로 많은 용기가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자신
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이 필요
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랜 세월에 걸쳐서 행하던 일인데, 그걸 하
루아침에 바꾼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냥 계속 그렇게
살 경우, 그 사람 자신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가족들까지도 힘
들게 만든다면, 정말 힘들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고쳐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4장을 보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니신 분이면 다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그러나 이 말씀
은 분명히 진리입니다. 진정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난’
을 기꺼이 잘 감당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영원히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잠시 받는 고난이
나 고통을 기꺼이 이겨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
고, 그 문도 작아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마7:14)”고 하신 주
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그만큼,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올바르게 살기가 힘들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로 가야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우리는 부득불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신약에는 단 한
장뿐인 성경이 4 권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빌레몬서입니다. 단 한 장뿐이
지만, 그러나 참으로 위대한 내용이 담긴 아주 귀중한 서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크리스천이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아주 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
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주님이 주신 풍성한 것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여서 그들의 생활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6)’고 했
습니다. ‘주님이 주신 풍성한 것’이란, 말할 것도 없이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활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빌레몬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도망갔던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다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러니까, 지금의 ‘오네시모’는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새로운 사람이니, 사랑
이 풍성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기꺼이 받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
다.
빌레몬서에는 대칭을 이루고 있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명령
한다’와 ‘간청한다’, ‘쓸모없는 사람’과 ‘쓸모 있는 사람’, ‘노예’와 ‘형제’ 등이
있습니다. 아무튼,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할 수도 있
었지만,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감옥에 있는 늙은 몸이 그대에게 간청한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과 오네시모는, 옥중에서 만나기 이전까지는, 아무 관계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옥중에서 만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
했고, 오네시모는 그 복음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
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의 분신(分身)과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
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형기를 마치고 옥에서 풀려나게 되자,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쓴 것입
니다. 물론, 오네시모가 옛날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바울이 이처럼
편지까지 써서 부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네시모가 예수를 믿고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
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만일 그대가 나를 진실한 친구라고 생
각한다면, 나를 맞듯이 오네시모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시오(17)’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바울이 이처럼 부탁하게 된 이유는,
오네시모가 전에는 주인 빌레몬에게 손해만 끼치는 무익하고 쓸모없는 존재
였으나, 이제는 빌레몬과 바울, 두 사람 모두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이전처럼 다시 ‘빌레몬의 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
니라, 이제는 ‘믿음의 형제’가 되어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네시모
의 신분과 자격이, 그가 회심하기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특히,
그가 ‘종의 신분’이 아니라 ‘믿음의 형제’가 된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
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오네시모가 종래 가고 있던 ‘인
생의 길’을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와 고통
을 주던 그가, 이제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된 것입
니다. 요컨대, 전에는 그가 ‘쓸모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누구에게나 ‘쓸
모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이처럼 놀랍게 변화하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사도 바울에
게서 ‘복음의 말씀’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도 바울
이 실제적으로 전해준 ‘주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빌레몬
에게 ‘오네시모를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이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만일 오네
시모가 빌레몬에게 손해 입힌 것이 있다면, 자신이 대신 그 빚을 갚아주겠다
고 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바울이 전한 복음을 오네시모가 받아들임으
로써 ‘믿음의 형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
까지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오네시모가
아닌 다른 사람일지라도, 사도 바울의 이 놀라운 사랑 앞에서는 무릎 꿇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우선,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경로 수정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말씀을 자
주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설교를 듣고서도, 반드시 경로 수정을 해야 할 사
람이 전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만일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지 못했다면, 그리고
복음을 전해 듣고서도 고쳐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도 ‘생명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서 빨리 ‘죽음의 길’을 버리고 ‘생명의 길’로 경로를 수정해서 살
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길로 계속
갈 경우에 얼마나 큰 불행을 당하게 될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만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세상에도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앞을 못 보는 장
님이 험하고 높은 산을 매일같이 등산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등산하면서 여러 번 아주 위험한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거의 실수
없이 등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머릿속에다가 내비게이션을 설치해놓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눈
이 성한 사람들보다 더 자신 있게 등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깜깜한 밤중에는 등산할 수 없지만, 앞을 못 보는 그분은 밝은 낮이나 어두
운 밤이 아무 상관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생길’이라고 할 때,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어떤 길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정해놓고 가는, 인생의 목
표나 목적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자신은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닐지 몰라도, 어떤 사람은 ‘생명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을 가고 있
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면, 그 길이 바로 영생의 길인
줄로 믿고, 지금도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와야 한다.”고 하셨
습니다. 달리 말해서,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믿는다면, 고난의 십자가
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믿음대로 살아야 하는 과정 속에서
겪어야 하는 고난과 시련을 결코 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갈 때에 겪어야 하는 시련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릇된 옛 생활과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
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속히 인생길을 바꿔서 내게로 돌아오
면, 재앙의 흙덩이를 가지고 행복으로 만들어주겠다(렘18:11)”고 하셨습니
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활을 고쳐서
살도록 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말씀으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됨으로써,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
익을 주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내는 외손녀인 ‘유니게’와 ‘루디아’만 생각하면 기쁘다고 말합니다. 이
제 겨우 소대변을 가릴 줄 아는 어린아이지만, 이 두 아이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무슨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운동장 가에는 꽃 화분들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었다
지곤 합니다. 대부분 처음 보는 꽃들이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합
니다. 아무튼, 어느 꽃이든지 그 꽃이 필 때마다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있습
니다. 그야말로, 꽃들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작품인 우리 인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정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는 영
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온전히 주님의 길을 가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주님이 가신 ‘생명의 길’이 아
닌 ‘죽음의 길’을 가고 있다면, 어서 빨리 그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
리고 생명이 되고 복이 되는 길로 확실하게 바꿔서 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
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주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쓸모 있는 되어 살아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