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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그래피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이희재 옮김
푸른숲/2003년 6월/422쪽/13,000원
▣ 저 자 케네스 C. 데이비스
「뉴욕타임스」등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온 저술가로, 지은 책으로 『Don't Know Much about History』『Two-Bit Culture: The Paperbacking of America』등이 있다.
▣ 역 자 이희재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고,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 『마음의 진화』『그린 마일』『문명의 충돌』『몰입의 즐거움』『지적 사기』『번역사 산책』『서양문화의 역사』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된 지리에 대한 교양 상식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최초의 지도는 누가 만들었는가?’와 같은 순수한 지리적 의문부터 ‘적도는 왜 그리 더운가?’, ‘열대우림과 정글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지구과학, 천문학 내용까지 아우른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지리학자와 탐험가들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지리적 발언’이나 인류의 세계관과 세계자체를 변화시킨 발견 발명을 기록한 '지리학의 이정표'도 눈길을 끈다. 2001년에 『Don't Know Much about Geography』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으로, 국내에선 1994년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세계지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추가된 내용을 보완한 충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지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 차 례
1장 최초의 지도는 누가 만들었나? - 미지의 세계를 찾아 '지리'를 발명한 사람들
2장 아프리카는 왜 '검은 대륙'으로 불리나? - 지명과 지리 용어에 얽힌 사소하고도 중요한 이야기
3장 썰물 때는 물이 다 어디로 가나? -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강과 바다, 호수 이야기
4장 나폴레옹은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를 알고 있었나? - 역사를 바꾼 지리적 요인들
5장 무더운 적도에 왜 사막이 없을까? - 인류 생존에 중요한 지구의 기후와 환경, 식량 문제
6장 빅뱅은 실재했나? - 우주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것들
지오그래피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이희재 옮김
푸른숲/2003년 6월/422쪽/13,000원
머리말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사회를 가르치던 맥널리라는 여선생님이 계셨다. 어느 날 지리 시간에 그 선생님은 한바탕 곤욕을 치르셨다. 선생님의 시련은 교실에 설치되어 있던 그 멋진 차양식 지도를 스르륵 끌어내리면서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은 아프리카 지도가 내걸렸다. 이집트와 나일 강에 대해 배우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자 조무래기 하나가 손을 들더니 물었다. “어째서 나일 강은 위로 흘러요?”
초등학교 5학년생의 머리로는 강이 ‘지도 위쪽으로’ 흐른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은 아래쪽으로 흐른다는 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별 짓을 다했지만 선생님은 열 살짜리 아이들에게 ‘위쪽’과 지도에 적힌 방위상의 ‘북쪽’은 같지 않다는 것과 따라서 사실은 나일 강이 동아프리카의 산악지대에서 지중해로 흘러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아듣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 일화는 도대체 교사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나를 적이 의심스럽게 만든다. 미국인의 ‘지리지수’를 묻는 좀더 방대한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지리적 교양은 형편없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답적이고 난해한 추상적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란의 공격 위협에 맞서 원유 수송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함대가 파견되어 있던 페르시아 만의 위치를 묻는다든지 하는, 당시 미국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던 문제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이 조사에서는 또 지도를 보면서 답하는 간단한 문제에도 답변하지 못해 쩔쩔매는 사람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기막힌 사실도 밝혀졌다.
이것은 아마도 대개는 지리에 대한 무관심과 지금까지의 교육 과정 그 어딘가에서 맥널리 선생님 같은 교사를 만났기 때문에 초래된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몇몇 지리 교과서의 내용을 참고로 살펴본 결과, 나는 우리가 배우는 교재의 부실함도 그 원인의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리는 세계 모든 나라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로 시작해서 지도로 끝나는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지리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라는 자못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한편,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리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역사도 국제 정치도 세계 경제도 종교도 철학도 ‘문화의 유형’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각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탐구해온 지리를 역사적으로 조감하는 데서 출발한다. 세계 역사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태도와 행위에 영향을 미쳤고, 때로는 역사의 진행 방향마저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허다한 지리적 오해와 낭설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지리의 이해는 위기에 처한 지구의 모습에서 독자들이 경각심을 품게 되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인간이 정말로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40년 전부터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해 왔다. 핵전쟁의 위협은 원자력시대가 열린 이후로 지금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낮다. 그러나 우리는 핵전쟁처럼 당장 파국을 초래하지는 않더라도 미래의 지구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갖가지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나는 인류가 앞으로 맞닥뜨릴 환경 재난의 규모와 범위는 엄청나다는 확신을 점차 갖게 되었다. 이것들이 브라질의 열대림, 중국의 탄광지대, 댈러스, 시애틀에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지리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전화회사의 선전 문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1장 최초의 지도는 누가 만들었나?
중국인, 아프리카인, 아랍인은 왜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나?
중국판 콜럼버스인 정화의 원정과 중국인의 나침반 발명이 보여주듯이 유럽만이 항해술을 발전시키고 해양 진출에 나선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동양과 아랍 여러 나라의 뱃사람들은 유럽이 아직 암흑시대에 잠들어 있는 동안, 동반구의 광대한 대양을 누비고 다녔다. 중세 교회가 서양의 고전을 불태우거나 땅에 파묻고, 학자들이 낙원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여념이 없는 동안 아랍 세계는 그리스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찬란한 금자탑을 쌓기 시작했다. 유럽 세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깔아뭉갰지만 아랍인은 천문학과 수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에 생겨난 공백지역으로 빠르게 진출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앞선 학문과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었던 이들 사회가 15세기 말, 역사의 방향을 뒤바꿀 수 있는 대대적인 항해와 식민지 개척에 나서는 데 실패한 이유는 지리와 문명이라는 관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먼저 중국 문명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탐험과 원정이 요구하는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쓸모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중국 문명을 ‘아쉬울 게 없는 제국’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여기에는 이민족과의 접촉을 막거나 불가피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문화적․역사적 전통도 한몫 했다.
중세의 아랍인은 많은 점에서 유럽인보다 앞서 있었지만 좀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후대의 콜럼버스 같은 유럽인이 항해에 뛰어들면서 가졌던 절실한 이유가 없었다. 아랍은 동쪽으로 가는 뱃길을 이미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었다. 또 십자군 전쟁 때 이미 본색을 드러낸 바 있는 유럽인과 교류를 증대시키는 데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또한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연 강한 추진력이었던 그리스도교도들의 강렬한 포교 의지 같은 것이 중국과 아랍인들에게는 없었다.
유럽과 중국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접촉이 있었지만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유럽 상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동양 무역을 확대하고 독점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포르투갈 인이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항로를 개척하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쪽 항해를 찾아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은 마르코 폴로의 책에 묘사된 동양의 엄청난 부(富)에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다.
2장 아프리카는 왜 '검은 대륙'으로 불리나?
열대우림과 정글의 차이는 무엇인가?
‘열대우림’과 ‘정글’이라는 두 개의 지리 용어는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일까? 어감이 다르다. 적어도 언어의 귀재인 윌리엄 사파이어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환경에 대한 각성이 높아지고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정치의식이 결벽에 가까우리 만큼 고양되고 있는 지금 열대우림이란 단어가 정글이란 단어를 점점 몰아내고 있다. 어감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사파이어의 최근 발언을 한 대목 인용하면 “정글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열대우림은 울림이 좋다. 여론 조사에서 ‘정글을 베어내도 좋겠는가?’라고 물으면 답은 보나마나 ‘되고말고. 무용지물이잖아.’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여론조사에서 ‘열대우림의 파괴를 용인할 수 있겠는가?’하고 물으면 답은 ‘큰일날 소리, 지구온난화 아니면 새로운 빙하시대가 유발된다고.’로 나온다.”
하지만 안 됐소이다. 사파이어 선생. 두 단어는 약간 차이가 있거든. 열대우림은 보통 숲 지붕이 높고 지면 가까이에 자라는 식물이 별로 없는 반면, 정글은 지면에서 빽빽한 덤불이 우거져 있다.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 두 가지가 엄청난 차이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정글은 황무지 또는 사막을 뜻하는 힌두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환경 운동의 세찬 물결이 일면서 정글이란 단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 대신 열대우림이 제 세상을 만났다. 열대우림과는 거리가 먼 버몬트 주의 아이스크림 회사인 벤 앤드 제리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자란 열매를 재료로 하여 만든 ‘열대우림 크런치’를 판매하면서 수익금의 일부는 열대우림 보존을 위해 쓰겠다고 선전했다. 할리우드 역시 환경 붐에 편승하여 1992년, 영화 <에덴의 마지막 날(Medicine Man)>을 비롯해 <정글북>, <펀걸리 마지막 열대우림(Fern-Gully : The Last Rain Forest)>을 개봉했다.
인도, 미얀마, 동남아시아 일대에는 몬순 밀림이라는 또 다른 유형의 정글이 있다. 연중 비가 쏟아지는 열대 지방과는 달리 몬순 지역은 우기와 건기가 명쾌하게 나누어진다. 정글이라고 부르든 열대우림이라고 부르든 숲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북미 최대의 열대우림인 라칸도나는 멕시코 남동부의 치아파스 주에 있다. 라칸도나 열대우림은 불과 50년 전만 해도 미국 코네티컷 주 정도의 면적인 8천 제곱킬로미터를 뒤덮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이 숲의 60% 이상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훼손되었다.
남미의 아마존은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 지역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종은 지구상의 어느 곳보다도 많다. 그러나 매년 최대 약 4%에 이르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목장, 경작지, 벌목으로 잠식당하고 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지구 삼림의 1/3을 차지하며 지구 산소의 절반을 공급한다. 그런 지구의 ‘허파’를 제거할 경우 그 파급효과는 브라질 국경을 넘어서 지구 전역에 미친다. 그리고 브라질 열대우림을 태우면 거대한 화재에서 생기는 연기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가시키며, 여기서 나타나는 온실효과로 해수면이 높아지고 종국에 가서는 지금의 경작지가 사막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것은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막아야 한다. 열대우림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생물, 특히 의약 분야에서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생물이 얼마든지 많이 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열대우림의 파괴는 미지의 생물 종들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생물 다양성 보존 문제는 최근에 들어와서야 열대우림 파괴 문제와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열대우림을 보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3장 썰물 때는 물이 다 어디로 가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양의 한쪽 켠 - 대서양 서안이라고 해두자 - 이 민물이 되면 대서양 동안은 썰물이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다는 통 안에서 찰랑거리는 물처럼 이리 쏠렸다 저리 쏠렸다,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밀물과 썰물은 달의 중력과 정도는 훨씬 작지만 태양의 중력에 의해서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현상이다. 지구에서 약 40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은 지구의 조수 간만 현상에 주된 영향력을 행사한다. 태양은 달보다 훨씬 덩치가 크지만 지구와의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지구의 간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쉽게 설명하면 달과 마주 보고 있는 지구 한쪽의 대양이 달 쪽으로 ꡐ당겨져서ꡑ 바닷물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만조다. 동시에 달을 등지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대양도 원심력에 의해 불룩 솟아오른다. 이렇게 물이 외곽으로 당겨지면서 지구의 서로 반대되는 두 곳에서 만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불룩한 두 지점의 중간에서는 그만큼 해수면이 낮아져 간조가 된다. 달이 지구의 궤도를 돌 때(지구의 자전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이 ‘부풀어오르는 지점’도 지구 둘레를 따라 문자 그대로 ꡐ여행ꡑ을 한다. 둥근 고무줄을 생각하면 된다. 고무줄의 양 끝을 당기면 양쪽 끝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데 이것이 만조다. 그러나 그 사이는 폭이 가늘어지게 된다. 이것이 간조다.
달이 지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는 하루가 조금 더 걸리기 때문에 약 25시간을 주기로 간만이 2회 되풀이된다. 간조와 만조의 차이를 조수차라고 하는데 지역마다 그 값이 다르다. 드넓은 대양에서는 조수차가 미미하기 짝이 없어서 고작해야 1미터를 못 넘는다. 그러나 얕은 해안에서는 조수차가 커진다. 그리고 만이나 해협처럼 대양의 물이 좁은 틈새로 빨려 들어오는 곳에서는 조수차가 엄청나게 커진다. 세계에서 조수차가 가장 큰 곳은 뉴브런즈윅과 노바스코샤 사이에 위치한 캐나다의 펀디 만이다. 이곳에서는 간조와 만조의 차이가 무려 15미터나 된다. 이 놀라운 조수의 이동을 잘만 이용하면 무진장한 청정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조력 발전소는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조수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낸다. 이미 30년 전에 프랑스의 생말로 만에 있는 랑스 강 하구에는 조력 발전소가 세워졌다.
4장 나폴레옹은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를 알고 있었나?
“전쟁의 승패는 언덕 저편에 도달하느냐, 도달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영국의 장군 웰링턴 공은 말했다. 한마디로 전쟁의 관건은 지리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헤이스팅스 같은 도시는 이 나라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외길의 관문 격이다. 게티스버그나 이프르(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인 벨기에 북서부 도시)처럼 일견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은 도시들이 그곳을 관통하는 도로들로 말미암아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대부대를 이끄는 장군들은 수많은 병졸을 먹여살려야 한다. 자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든든한 물자공급원을 갖고 있지 못한 침략군이 중간 보급기지나 풍요한 곡창지대에 의존할 때 식량 및 물자 공급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리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때도 있다.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였던 디엔비엔푸 같은 전초기지의 격파도 지도상으로 보면 별 볼일 없지만 전세를 결정적으로 뒤집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지리적 문제는 전쟁의 승패, 아니면 적어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투의 결과를 판가름하는 역할을 왕왕 한다.
역사를 바꾼 세계의 전투
․ 보로디노, 워털루
유럽 대륙을 1804년부터 1815년까지 뒤흔든 나폴레옹 전쟁의 와중에서 나폴레옹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점령하기 위한 반도 전쟁에서 지상전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기세가 꺾였다. 1808년 시작된 이 전쟁은 6년을 끌었다. 그리고 1812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전선에서 승산이 희박해 보이자 그는 러시아를 침공하겠다는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나폴레옹은 50만 대군을 이끌고 프랑스를 떠나 모스크바로 진격했다. 그 과정에서 점령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군을 곳곳에 떨어뜨려야만 했으므로 러시아에 도착했을 무렵, 나폴레옹의 군대는 규모가 줄어들어 있었고, 보급기지로부터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보로디노라는 마을에서 나폴레옹은 크투조프 양전사령관이 지휘하는 러시아군과 조우하여 방어선을 돌파하고 모스크바까지 진출했다. 러시아의 수도는 점령했지만 그 대신 나폴레옹의 군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러시아의 혹한은 수많은 프랑스 병사의 목숨을 앗아갔다. 본국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나폴레옹은 쿠투조프의 끈질긴 추격을 받으면서 프랑스로 퇴각했다. 나폴레옹의 50만 대군은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 러시아의 추위와 처절한 전투로 인해 3만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1814년 프랑스는 새롭게 결성된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영국 연합군으로부터 협공을 당한다. 침공을 막아내지 못한 나폴레옹은 강제로 폐위당하고 이탈리아 연안의 엘바 섬으로 귀양갔다.
연합군이 프랑스의 왕정을 복구시키는 동안 나폴레옹은 엘바 섬을 탈출하여 12만 5천 명의 군사를 규합, 워털루 근처에서 영국군과 일전을 벌였지만 그의 마지막 군대는 결국 풍비박산났다. 그후 그는 다시 폐위되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고, 전 유럽을 호령했던 정복자는 그곳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 게티스버그
1863년 6월, 사흘 동안 계속된 게티스버그(펜실베이니아 주) 전투는 질질 끌어온 피비린내 나는 남북전쟁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수적으로 열세인 자기 군대가 더 풍요하고 인구가 많으며 공업화된 북부 주들을 상대로 장기전을 펼쳐서는 승산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남군의 로버트 E. 리 장군은 전쟁을 북으로 확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수 아래인 북군 지휘관들에게 잇따라 승리를 거두자 리는 잘 훈련된 7만 5천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버지니아의 비옥한 셰너도어 계곡을 지나 펜실베이니아로 진주했다. 리는 북군의 옆구리를 우회하여 남쪽으로 내달려 워싱턴을 점령함으로써 적군의 사기를 꺾고 유럽으로부터 남부 연방을 승인받아 재빨리 전쟁을 끝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계획이라기보다는 우연에 의해, 신발을 찾고 있었다는 남군의 척후병 일행이 북군 순찰대와 마주쳤다. 그들이 만난 곳은 철도가 관통하고 십여 개의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뻗은 교통의 요충지였던 게티스버그라는 작은 읍이었다. 우연한 교전이 빚어진 뒤 양군 지휘관들은 이곳으로 병력을 집중 투입했다. 병력 면에서 우세한 북군은 먼저 도착하여 고지를 선점했다. 고향인 버지니아 주가 합중국 연방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합중국군에서 물러난 유능한 지휘관 리는 이곳에서 승리를 거두면 북군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흘에 걸쳐 백병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양측의 전사자는 1만 명에 이르렀고, 치명타를 입은 리의 군대는 간신히 버지니아로 돌아왔다. 북군 지휘관이 남군 패잔병을 추적하여 궤멸시키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참혹한 전쟁을 몇 년 더 끌어 남부를 잿더미로 만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 디엔비엔푸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는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옛 식민지를 탈환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지도자 호치민과 유능한 장군 보 응우옌 지압이 이끄는 베트남군은 독립을 주장하며 이에 맞섰다.
결국 1946년 전쟁이 터졌다. 미국은 베트남을 되찾겠다는 프랑스의 입장을 공공연하게 지지했다. 7년 동안 대대적인 게릴라전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거점은 도시였지만 농촌 지역은 베트민 게릴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적과 싸우느라 버둥거리던 프랑스군은 베트민에게 유인작전을 구사하기로 하고 하노이에서 약 32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촌락에도 올가미를 쳤다. 그러나 역습을 시도한 베트민은 디엔비엔푸 프랑스 요새의 장기 포위 공격에 들어갔다. 포위가 6개월 이상 계속되자 프랑스 요새의 보급품은 바닥이 났고, 결국 1954년 6월, 프랑스는 무릎을 꿇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베트남은 북부의 공산 정권과 남부의 반공 정권으로 양분되었다. 프랑스의 참담한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베트남이 공산화되었을 경우 이 지역에 나타날지 모를 도미노 현상만을 우려한 미국은 프랑스가 철수하자마자 곧바로 베트남을 지원하고 병력을 파견함으로써 결국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끝없는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화를 자초한다.
5장 무더운 적도에 왜 사막이 없을까?
빙하시대가 도래할까, 아니면 빙하가 녹을까?
이제 우리는 기나긴 빙하시대의 사이사이에 규칙적으로 따뜻한 시기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빙하시대에는 빙하와 눈더미가 지구 표면을 대부분 뒤덮었다. 그 결과 바다의 깊이가 달라졌고 해류와 기류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열대 휴가'에 돌입한 상태다. 포근한 간빙기에 있다는 소리다. 역사적으로 보면 따뜻한 시간은 약 1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 현재처럼 지구가 따뜻해진 지도 약 1만 년이 된다. 따라서 일부 과학자들은 지금 상황이 갑자가 한파가 몰아닥쳤던 9만 년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적지 않으며, 그 차이는 인간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지구의 장기적 기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이래 대기 중에 쌓이고 있는 분진과 유독 가스가 태양열의 유입을 차단하여 지구의 온도를 떨어뜨림으로써 다음 빙하시대를 앞당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욱 많은 수의 과학자들은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활동이 대기로 쏟아내는 유독 가스의 양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온실 효과가 나타나서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대기의 0.03%밖에 안 되지만 가장 중요한 기체의 하나다. 지구 대기에 닿은 태양에너지는 대부분 우주 밖으로 퉁겨나간다. 그러나 일부는 이산화탄소에 흡수되어 이른바 온실 효과를 통해 지구 표면을 따뜻하게 덥힌다.
현재 온실 효과가 인류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이고 급격한 기후 변화를 낳고 있다는 인식에 공감하는 과학자들의 수는 많다. 온실 효과는 지구의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구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4/5는 화석 연료의 연소에서 생긴다. 나머지 1/5은 숲의 파괴에서 생긴다. 이것이 열대우림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온실효과로 지구가 서서히 더워지면 빙산이 녹고, 대륙은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해수면이 1미터만 올라가도 2억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가장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은 농업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지만 반대로 폭삭 망하는 나라도 생겨난다. 가령 캐나다에 새로운 경작 가능지가 생겨나겠지만 토질에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툰드라 밑에 있는 얼음 덩어리가 녹는다고 가정할 때 작물 재배는 생각도 못할 일이라는 암울한 진단을 내놓는 이도 있다. 게다가 온실 효과를 낳는 또 하나의 주범인 메탄이 얼어붙은 툰드라 밑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배출되면 훨씬 심각한 피해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조한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아시아 일부 지역 등은 더욱 말라붙게 될 것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온실 효과가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석유 회사라든지 장기 정책보다는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더 연연해하는 백악관 당국자들이 주로 그런 소신을 피력한다. 그러나 가장 낙관적인 전망에 따른다고 할지라도 이제 지구 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처럼 보인다. 대기 중에 나날이 축적되는 오염 물질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차를 그늘진 곳에 세우고 차창을 열어두는 것이다. 연료 사용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숲을 제 아무리 잘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단지 과정을 늦출 수 있을 뿐 지구 온난화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6장 빅뱅은 실재했나?
소행성이 공룡을 죽였나?
많은 과학자들은 이것이 너무 가능성의 희박한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우선 과거의 예를 보자. 작은 운석의 형태로 지구 대기로 돌입하는 소행성은 대개 타버리거나 아니면 바다나 사람이 살지 않는 육지로 떨어진다. 운석이 큰 경우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운석공은 지름이 약 160킬로미터에 달한다. 수백만, 수천만 년 전에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금세기에 들어서도 지구는 두 번 가량 외계로부터 낯선 손님을 맞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 거대한 폭발로 광대한 지역이 초토화되고 1,920제곱킬로미터의 숲을 채웠던 수백만 그루의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쓰러졌다. 겨우 괜찮은 나무들은 한쪽 방향으로 모두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낙하한 운석의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는 퉁구스카 사건을 소행성 아니면 혜성의 얼음 조각이 지구 표면 약 8킬로미터 상공을 스친 후 다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을 때 생긴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1991년 애리조나의 한 천체망원경으로 천문학자들이 한 소행성이 조용히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소행성은 지구에 가장 근접했을 때 16만 9천 6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이것은 아주 멀어 보이지만 우주적인 척도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름이 8미터 남짓 되는 그 작은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혔더라면 히로시마 원폭의 세 배에 달하는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런 충돌이 과연 공룡의 멸종과 관계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과학자들은 6천 5백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한 것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 일대의 카리브 해역에 거대한 소행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살인 소행성은 어마어마한 먼지 구름을 대기로 뿜어올려 지구는 몇 달 동안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불덩어리는 치명적인 화학 성분의 비를 내렸고, 이에 따라 대기의 성분도 바뀌었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서 공룡은 멸종했을 것이다. 대량 멸종은 장구한 세월을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 이것이 백악기-제3기 이론이다. 이 사건이 백악기와 제3기 사이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 이론은 다른 시기에 발생하여 유사한 대량 멸종을 야기한 외계 충돌물에 대한 지질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물론 소행성에 의한 공룡 멸종성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한가지 이유는 공룡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여타 생물 종들이 수없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머지않아 풀릴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 수수께끼다. 그러나 그런 일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NASA는 극히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무시해도 좋을 정도는 아닌 추정치를 내놓았다. 지구에 심각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운석이 지구를 때릴 확률은 50만 년에 1회다. 그리고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운석으로 야기되는 지구의 재난을 목격할 확률은 7천 분의 1이다. 사람이 일평생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은 1백 분의 1,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2만 분의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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