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민주주의 공부>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연구하는 저자 얀-베르너 될러가
민주주의가 발흥하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 모두 민주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양극화와 포풀리즘이 득세하는 21세기 정치판과 인터넷을 오가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논하고 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인지,희망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독자들에게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올해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지방 선거도 치러진다.
이 책이 투표를 하는 국민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둣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1. 처음 읽으면서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가짜라고?
하여튼 역사 속의 민주주의를 알아가면서 흥미로웠다.
2. 우익포플리즘!! 그 정체가 무엇인지 배웠다.
포플리스트가 권력을 잡으면 더이상 시민은 법앞에서 온전한 평등을 누리지 못한다.
그럼 지금 한국에서의 포플리스트는 누구일까?
3. "민주주의에 대한 부유층의 지지는 언제나 조건부였다"라는 말에 놀랐다.
부유층은 진정 민주주의를 흥정하는 조건이 대상인가? 절망스러웠다.
4. 패자를 위한 민주주의는 있는가? 승자가 권력을 잡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패자가 적어도 부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승자에게 중대한 양보를 얻어 내는 것이다.
즉 부분적으로 승자로 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권력을 견제하고 패자가 원하는 것의 일부라도 얻어내는 것이 패자를 위한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5. 모든 것이 실패한다면? 답은 민주적 불복종이다. 206쪽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이 그리 낯설지 않다. 명박산성이 있었고, 박근혜정권에서 대통령탄핵이 있었다.
검찰청 앞에서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모두 민주적 불복종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6. 다소 역사적인 예들이 많이 소개되어 이해를 하려고 했으나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7. 민주주의를 놓고 독서토론을 해봄직한 책이라 생각된다.
이책의 주요내용 중 일부를 적어보았다.
우익포플리즘!!
포플리스트가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시민은 더 이상 법 앞에서 온전한 평등을, 심지어는 법의 보호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꼭 법정에서 판결을 받을 때뿐 아니라,
상부의 뜻을 잘 이해한 관료들 을 일상 속에서 마주할 때마다 명백한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
반드시 길거리와 광장에서 혐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게 아니다.
일례로 트럼프의 선거 유세가 지역 내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폭력 사건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부유층의 지지는 언제나 조건부였다.
오늘날 일부 시민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듯한 것,
또는 자기 자식의 미래에 도움을 줄 듯한 것과 민주주의 훼손을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다른 어떤 것과 교환하고자 하는 충동은
경제적 • 인종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다수나 공포심에 사로 잡힌 중산층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특권층은 민 주주의의 열렬한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그건 자신이 내는 세금이 오르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민주주의의 원래 의미는 모두가 '함께 나아간다’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적들에 게 민주주의란 가난한 이가 물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 부유한 이를 위협하는 체제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부유층의 지지는 언제나 조건부였다.
패자를 위한 민주주의
선거는 한 정치 체제에 집단적인 구속력을 가진 결정을 내리기 위한 과정이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독재자만 이 결정권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권력을 가질지를 결정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내전으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좀 다르다.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평화로우며,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아 마땅한 정치적 판단력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로
모두가 동등한 참여 기회를 가질 것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선거에서 모두가 이길 수는 없다.
선거의 정의 자체가 누군가의 패배를 내포한다.
승자도 결과에 마냥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트위터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모든 패자는 당신이 가진 것을 원하고 있으니 절대 내주지 마라. 세게 나가면 잘되고,약하게 굴면 죽는다!”
승자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트럼프주의자들의 소음이 없더라도,
패자는 정치적으로 자아분열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승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승자의 생각 이 모두를 구속하는 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패자가 적어도 부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승자에게 중대한 양보를 얻어 내는 것이 다.
선거 운동 기간 에 할 수도 있고,
이기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표를 얻어낸 후에도 가능하다.
조금은 덜 두드러지는 방법도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승자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거나 승자를 당황시키고, 이를 기록으 로 남기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실패한다면? 답은 민주적 불복종이다
시민은 물론이고 트위터 같은 민간 기업도 언제든지 전업 정치인 이 해야 할 일을 일부 나서서 할 수 있다.
권위주의 포풀리스트가 국민 개념에 대한 토론에서 정해진 경계를 지키도록 하는 일,
적어도 지켜 보는 이들에게 민주주의에서 반다원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는 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단단히 고립되어 있는 우익 미디어 생태계의 벽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이른바 ‘보통 사람’들은 길 위에서, 광장에서, 심지어는 집안에서 다른 시민과 직접 소통할 방법을 찾을 수 있 을지 모른다.
물론 소통에 대해 지나친 환상은 곤란하다.
편견의 대상을 직접 만나보면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접촉 가설에 대해 사회학자들이 회의적인 시각을 고수해왔음을 기억하자.
더 극적인 행동이라면 어떨까?
권위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각지 ,
특히 미국에서는 ‘저항’에 대한 이 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물론 ‘저항키치’라고밖에는 부를 수 없는 유행이 함께 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항’은 광범위한 용어다.
야당 후보자가 정치력을 모으는 일상적 활동부터,
나치점령지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펼쳤던 지하 저항운동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저항이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능한한 많은 시민에 게 어필하고 싶을 때 모호함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호함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 또 궁극적 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다소 흐리게 보이게도 한다.
‘저항’을 대체할 더욱 명확한 개념은 시민 불복종일 것이다.
이 론상 시민 불복종은 권위주의 포풀리스트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강력한 장애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널리 퍼져 있는 시민 불복종에 대한 오해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변화와 관 련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왜곡된 공론장이 정치적 저항의 가능성 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