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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8 분당벧엘교회 구요셉 목사님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발발 종말의 시작인가? 세계의 화약고 뇌관이 터지다' 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좋은 정보망도 감지하지 못한 사이, 가자지구에서 약 5천발의 미사일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날아왔습니다. 아침 통계로는 두 지역에 사망자가 532명, 부상자가 3200명 그리고 인질은 수십에서 수백 명이 될 것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군인들을 소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50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용키푸르 전쟁입니다. 용키푸르 전쟁은 속죄일에 발발했는데, 50년이 흐른 지금, 2023년 초막절의 끝인 대성회의 날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용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거의 멸망할 뻔 했는데 미국에서 무수한 비행기가 날아와 무기를 전해주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전쟁사에 기록되 있습니다. 이는 속죄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마지막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속죄하게 될 때 하늘로부터 예수님과 하늘의 군대가 비와 같이 내려올 것이고, 그들을 구할 것을 예견케합니다. 올해 2023년은 희년입니다. 희년은 종되었던 것에서 해방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고, 온 세상에 평화를 주시게 됨을 기다리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전쟁과 질병이 사라지고, 서로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바로 전쟁은 우리에게 속죄를 촉구하고, 희년이 도래함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주시해 봐야합니다.
최근 모로코에 지진이 일어나 수천명이 사망했는데 연이어 아프가니스탄에도 지진이 일어나 수백명이 사망했습니다. 세계 도처에 홍수 재앙이 일어나고, 이상 기온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세상은 곧 대재앙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근과 전염병, 전쟁입니다. 점점 마지막 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평화조약을 체결하려했는데 전쟁이 발발하다보니, 이란은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보류하고, 미국이 자국의 안전을 보장해야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주변의 정세가 계속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이스라엘에 성전이 세워지면 이 성전이 빌미가 되어 나라간에 전쟁이 더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때 전쟁을 멈춘다는 7년 평화조약이 체결될 것입니다. 붉은 송아지가 준비되었고, 제3성전을 지을 모든 재료 또한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고, 우리는 왜 이스라엘을 주시해야할까요? 그리고 그 결말은 어떨까요?
마태복음 5장 43절부터 48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변개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를 미워하고 로마를 없애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미움은 말씀을 변개시킵니다. 하나님은 악, 곧 죄을 미워하라고 했지 사람을 미워하라고 한 것이 아님에도 말씀을 변개해 로마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 39절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범죄자들에게 범죄한 이상의 응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률적으로 해결해야지 너희의 분노로 그들을 처단하고 가족을 처단하고 심한 형벌을 내리지 말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변개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즉 로마가 우리 민족을 압제하고 자유를 빼앗았으니 우리도 로마인을 죽이자는 것입니다. 말씀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자기 생각대로 변개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기복 신앙이 한국 교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말씀의 앞 뒤를 다 잘라먹고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 복 주신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랬더니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기주의자, 물질 만능주의자가 되었고, 자신이 의로운양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권리를 받은자 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말씀을 변개해 버린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변개해 믿고, 로마를 원수로 미워하다 어떤 결과를 맞이했나요? 그들은 멸망당하고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수를 점령군 로마로 보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누가 원수일까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하나님을 괴롭히는 자,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입니다. 바로 우리 모든 인류입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원수입니다. 배신자니까요. 지금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원수인 너희를 사랑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라고 하시지 않고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를 배신하고 미워하고 파멸시키려 할지라도 나는 원수인 너희를 사랑할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예수님은 실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병사들에게 뺨을 맞으시고 주먹질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씀은 내가 맞을 때 저항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저항하지 않으시고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누구든지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말씀처럼 예수님은 속옷과 겉옷을 다 로마 병사에게 뺏깁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말씀처럼 예수님은 계속 끌려다시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법정에 끌려갔고, 또 다시 로마의 법정에 끌려갑니다. 멸시를 당하시고 헤롯에게, 빌라도에게 넘겨집니다. 그리고 골고다로 끌려가십니다. 왜요? 너희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그리고 원수인 사람을 사랑하여 내 생명을 죽기까지 내어놓기 위해서 끝까지 내가 이 길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 나는 너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을 굳게 붙잡았더니 그 원수이던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됐습니다. 그들이 변하여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래서 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내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바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예수께 돌아와 구원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는 살아남고 유대교는 사라진 비밀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면 하나님의 복음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게 된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5절부터 18절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찌며
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놀랍게도 예수님이 신약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개개인의 삶이 그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대적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배신자요 원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원수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이웃이라 하십니다. 모든 인류는 이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주십니다. 나는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완전케 하러 오십니다. 예수님은 언약과 예언을 온전케 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 싶지 않다. 너희를 이웃으로 생각한다. 너희를 사랑한다 말씀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셔서 모든 인류를 구원할 만큼,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미워해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 자식을 죽이고, 내 남편을 죽이고 나의 모든 것을 파괴한 그들. 하지만 예수님은 용서하라, 사랑하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것을 실천하였을 때 로마는 복음화됩니다. 기독교 국가로 바뀌고, 전 유럽이 기독교 국가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의 힘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난주 말씀의 제목은 '이대로는 다 죽습니다'였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싸우고, 원수로 여기며 다투면 하나님의 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 후 2천년 동안 방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0절부터 15절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소돔과 고모라라 부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과 멀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 물질과 쾌락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형식은 예배를 드리나 하나님의 말씀과 먼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 모두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분노하십니다. 재물을 많이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설교가 얼마나 많이 난무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의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고 하십니다. 헌금 많이 한다고 하나님 기뻐합니까? 아닙니다. 무수한 재물과 예배를 드렸던 이스라엘도 다 멸망당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안그럴까요?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해 자신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바꾸면 나라를 멸망시키는 행위입니다.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찐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무수한 헌금, 성가대의 찬양, 거룩하게 옷입고 예배의 자리에 갑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경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과연 기뻐하실까요? 아닙니다. 말씀은 분노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모여서 나에게 예배하는 것이 내 마당만 밟는 것이라 하십니다.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도 싫어한다 하십니다. 무거운 짐이라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듣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100일 기도, 금식기도, 천일 기도 하나님을 기도로 굴복시키려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라 합니다. 아버지니까 들어주실 꺼라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는 하나님이 안 들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요?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한 것 때문이라 하십니다. 이 피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웃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하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것, 이웃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어찌 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6절부터 20절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말씀은 너희는 스스로 씻고 깨끗게 하고 내 목전에서 너희 악을 버리고 악행을 그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향해 악업과 악행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국가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어려운 자, 힘든 자, 낙담한 자, 쓰러진 자, 그들을 일으켜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들에게 먼저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눈 먼 자를 보게 해야 합니다. 예수가 보이지 않는 자를 보이게 해 주어야합니다. 귀가 어두운 자, 귀가 막힌 자들에게 복음이 들리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앉은뱅이를 앉은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 주저앉은 자를 일으켜 세워 걷게 하고 뛰게 하고 예수를 만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든 자를 낫게 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어 있습니다. 복음으로 그들을 살립시다.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들을 도와야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물질로 도와 그들을 예수께 돌아오게 하는 것, 그들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목적입니다. 십계명은 사랑을 실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 우리가 맺은 언약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뭐라고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때서야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예수님께 기도만 하면, 죄를 자백만 하면 사랑받고 용서받는다고요? 말씀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습니다. 내가 용서해야 용서받습니다.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나옵니다. 여러분 반드시 용서해야합니다.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 것을 자복하고 회개합시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오.' 이렇게 순종할 때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습니다. 바로 초막절, 예수님의 다스림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진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저버렸기에 칼에 삼켜진 것입니다.
이사야 6장 9절부터 13절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12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이웃을 미워하고, 형제를 억압하고, 이웃에 무관심하다가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언약을 어겨 심판을 받아 전세계에 흩어져 그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거한 땅도 아름다운 소산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어떻습니까? 서로 미워하고 있습니다. 지역끼리 미워하라 부추깁니다. 이런 말을 듣다가는 이 나라가 멸망당합니다. 정신 차립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한 우리나라는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미워하고 반목케하는 정치적 선동에 귀기울이지 맙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버러 복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잠언에는 거만한 자에게 충고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히려 짓밟히게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또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돼지는 바로 거만하고 욕심 많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만하고 욕심 많은 자에게 잘 되게 하려고, 살리려고 말하면 오히려 짓밟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닫혀있는자들 거만한 자들 때문에 비유로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복음을 열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말씀을 안하신 것이 아니라 못하신 것입니다. 왜요? 그들은 예수를 짓밟고 죽이기까지 말씀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하고, 성읍이 황폐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실까요? 아닙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10분의 1이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이 삼킨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씨는 예수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를 통해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 11장 1절부터 10절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 땅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읍시다. 공의와 정직, 겸손한자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도래하면, 온 세상은 평화로 가득합니다. 그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립시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50년 전 속죄일에 전쟁이 일어난 것 처럼 대초막절에 이스라엘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바로 속죄의 때, 구원의 때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백성은 정신을 차리고 예수 오심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11장 11절부터 16절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13 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는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투기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4 그들이 서으로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15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홍해)를 말리우시고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서 그 하수를 쳐서 일곱 갈래로 나눠 신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마지막 때는 쫓겨났던 이스라엘이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오는 때입니다. 이때 모두 아버지께 돌아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모두 살아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환난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속죄하기 위해서 두증인이 나타날 것이며 3년 반 동안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할 것입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오고, 예수님이 그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제 시작점에 있습니다. 이 전쟁은 바로 예수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우리에게 쾅 하고 들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주님 오실 날을 예비하며 준비합시다. 우리의 삶 속에 혹시 죄를 사랑한 것이 없는가, 세상을 사랑한 것이 없는가, 물질 만능주의가 돼 있지 않은가, 나만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관심이 없지 않은가 하나하나 돌아봅시다. 우리가 그렇게 돌아보고 여호와께 돌아가 우리 마음이 여호와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의 삶도 회복되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말씀은 그러한 자에게 보리 여섯대를 주겠다고 합니다. 바로 그런 자의 인생과 삶을 회복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들을 먹일 것이며, 그들이 기쁨 안에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스라엘을 기억해 다오 그들을 살려내 다오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탁을 들어드립시다.
이웃이, 형제가 날 괴롭힙니다. 악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나 진정 겸손해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 의지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냥 순종합니다. 우리들의 생각을 내려놓아야합니다. 그런 훈련을 시작하십시오.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 함께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또 오늘 나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 긍휼과 온전히 우리를 이웃이라 하시며 살리려 하신 그 예수를 바라보며 나왔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늘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나아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낮은 자, 겸손한 자, 섬기는 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지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혹 모르고 죄를 짓든, 또 습관으로 죄를 짓든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내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내가 양털과 같이 희게 하리라 말씀하셨사오니 주님 우리의 마음에 겸손함과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마음을 더 갖겠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우리 마음에 주님과의 소금 언약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다. 우리를 지켜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홍 권사님.
오늘 아침 이 글을 보면서 참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잠시 쉬면서 권사님을 돌아 보시다가
다시 주님을 향하여 가심을 보는 것 같습니다.
힘 다하고 애 쓰셔서 올려 주신
소중한 말씀.
마음 판에 새겨 삶의 푯대로 삼고
주님을 향하여 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권사님을 응원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일 설교 말씀을 다시 되새기는데 글이 도움이 되신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시작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