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애들이 너무 수기를 잘 써서 긴장부터 되는데요
저는 소설을 한번도 쓰지 않아서 애들처럼 매끄러운 말로 수기를 풀어나갈 자신도 없으니 ^^;
그리고 수기에 이미 애들이 충분히 어떤식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다 말했을테니
합격 수기라기 보다는 09년 제가 문장과 함께 했던 1년을 쭉 나열하는 일기 식으로 솔직하게 글을 써 나가겠습니다
음 .. 이런말 해도 되려나 저는 놀기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도 잘 나가지 않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기에 막연하게 놀고 또 놀기만을 반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 말 우연히 문장에서 나눠주는 공책을 보게 되었고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바로 무작정 학원을 찾아갔습니다
책상 앞에 삼십분도 채 못앉아 있던 제가 그날 5시간동안 시와 소설 테스트를 받았는데요 그땐 정말 1시간이 1분 같았습니다
문지원 선생님께서 넌 시를 쓰는게 좋겠다라며
제 성적을 보고 제 맞춤법을 보고도 열심히만 노력한다면 서울로 가는건 문제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던게 아직도 제 귀에 생생합니다.
무튼 그렇게 테스트를 받고 남쌤 차를 타고 집에 오던 그 때부터 저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사실 어렷을 때부터 글이 너무 쓰고 싶었습니다.
문장이라는 책자가 저에게 손에 들어온게 아니라 미술 학원 책자가 저에 손에 들어왔다면 전 거들떠도 안봤을 것입니다.
첫날 둘쨋날 셋쨋날 ..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자신감이 붙었고 ( 물론 처음이라 집에 일찍 갔겠지만요 )
제 시집에 최금진 선생님이 써주셨던 말 ( 열정 없는 위대함은 없다 ) 이 저에 좌우명이 되고 난 후
소설보다 시집 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학교 쉬는 시간마저 시집을 붙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월달 동국 대학교 백일장을 처음 나가게 되었는데요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이 약 2천명 가량 모인 곳에서 손에 쥔 펜, 그리고 시제가 발표나기 전의 설렘, 상이 발표 나기전의 떨림
아직도 첫 백일장의 여운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튼 그렇게 백일장을 하나 둘 나가게 되고 점점 상이 터지기 시작하고
학교에서 나쁜일로만 이름이 불려봤지 좋은 일로는 한번도 이름이 불려보지 못한 제가
일주일마다 한번씩 방송실에서 상을 타게 되고
개과 천선한 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들께 칭찬받고
문장 식구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점점 늘어날게 될 쯤 어느새 수시가 코앞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전 문예창작과를 가려고 이곳에 들어왔지 대학의 타이틀을 따려고 이곳에 들어온 게 아니라서 국문학과를 쓰지 않고
문예창작과가 있는 서울 산업대와 명지대학교 서울예대 단국대를 썼습니다.
결과는 뭐 .. 다 떨어졌죠 제가 성적도 8등급일 뿐더러 상들이 한등급씩 다 내려가는 바람에요
그래도 서울예대가 50:1이었는데 2차 면접에선 떨어졌지만 3배수를 뽑는 1차에서는 붙었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슬럼프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곧바로 정시를 준비했습니다.
진짜 수시 때 몇명의 친구들이 빠져 나가서 인지 정시 준비는 더 애뜻했습니다.
2시부터 나와서 10시 30분까지 학원에 있었지만 오히려 수시 때보다 더 행복한 학원 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수시 때보다 훨신 실력도 늘게 되었습니다.
음 문장이 재수 학원이었다면 전 수능이 끝난 후의 짧지만 정말 긴 2개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정시 반 애들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감 !!!!!
6시 땡 치면 오는 식사시간에 애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던 ...
살찔 걱정 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먹는 밥이 레스토랑 밥보다 더 맛있었고
필사를 끝낸 후 글을 쓰는 시간은 연애한지 겨우 일주일 지났을 때의 설렘이었고
시제를 받고 글을 제출할 때의 그 떨림은 대학 합격 발표 날 때의 기분이었고
학원 오자 마자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시간도
미소 노트북을 빌려 노래를 들으며 시를 쓰던 시간도
미영이 언니와 현희만 공감하는 7시 40분부터의 20분간의 시간도
돌이켜보면 저에겐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하루 하루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제일 큰 행복이었긴 했지만요
뭐 간간히 힘든 시간도 찾아오곤 했지만
제게는 항상 절 응원해주고 서로 다독여주는 문장 식구들과 함께였고
말도 안되는 제 애교에 웃어주시는 남쌤 늘 정시반을 늘 다독여주셨던 여쌤
그리고 저와 같이 바보 취급을 받던 영원한 콤비 박성훈이 함께 있었기에 2개월을 너무 행복하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음 그러다가 정시 실기를 보게 되었는데요
전 단국대와 서울예대 그리고 실적으로 썻던 한양여대를 넣었습니다.
결과는 한양여대만 붙게 되었는데요
비록 한개만 붙었지만 전 무척 만족합니다. 제가 가고싶었던 문예창작과에 좋은 교수진에 그리고 이번 년도에 가장 하기 힘들다던
인 서울이니까요
부끄럽지만 제 성적이 수능 평균 6등급이라서 이 성적가지곤 동신대도 힘들었는데 한양여대 합격 소식을 듣고 나니
1년동안 문장과 함께 했던 희노애락이 파라노마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여쌤이 간략하게 설명해주라고 해서 저희 학교에 대해 자랑을 하자면 ..
비록 전문대지만 평균 2등급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고 서울에선 단국대 죽전캠과 성적이 동등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양대와 도서관을 같이 쓰고 동아리 활동도 같이 하고 편입이 쉽고 취업률 1위라는거 ..?
ㅋㅋㅋㅋ뭐 근데 이런거 다 떠나서 일단 정말 시작이니까 전 지금 몹시 기쁘고 설랩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하기 싫은 공부만 했었는데 대학 과목을 보니
영어만 2시간 들었지 나머지는 소설론 시론 광고창작 아동문학 뭐 등등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음 읽다보니 제가 너무 학원을 쉽게 다닌 것처럼 글을 쓴 것 같은데요
전 누구보다 09년을 열심히 보냈다고 자부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행복하잖습니까 저는 워낙 낙천적인 성격에다가 글을 쓰는게 너무 좋아서
힘든 것도 기쁘게 소화하며 1년을 보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문장 5기 여러분도 정말 저처러 후회 없는 고3생활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열정 없는 위대함은 없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을 그 날이 올 것입니다 .
그리고 전 공부를 너무 안해서 그것만큼은 후회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대학 선택의 폭이 훨신 넓어지니 여러분은 공부와 실기를 꼭 병행하시기 바랍니다 ㅠㅠ
아 여기까지 너무 두서 없이 글을 쓴 것 같습니다 ㅠㅠ 가슴 속에 맴도는 말들은 너무 많은데
그걸 다 끄집어 내려면 토지처럼 긴 장편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이만 줄입니다
정말 열정 없는 위대함은 없습니다 !!!!!
2010년의 해피엔딩을 여러분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써내려가기 바랍니다
( 그럼 ㅅㅓ울에서 보자 ^^ ... )
첫댓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zzzzzz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터져 ㅋㅋㅋㅋㅋㅋ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파트너가 달라졌어요
,
ㄸ ㅏ릉하는 당신이 있었기에 ㅋㅋㅋㅋㅋ요래
....진짜 수시 때 몇명의 친구들이 빠져 나가서 인지 정시 준비는 더 애뜻했습니다.........애뜻했습니니다. 애뜻했습니다. 애뜻했습니다. 애뜻했습니다. ...........막판에 아름이 한방 더 터뜨렸어요 남쌤.
ㅋㅋㅋ 내가 고치라고 말했는데.... 바부, 아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