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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째 날(9월 2일)
(27)
청마도 편치 않겠다
(디카에 문제가 있나 미숙한 조작술 탓인가 거제도의 사진이 거의
통째로 사라져서 기억 재생 작업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착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침 6시 반쯤 워터피아를 나설 때 한 듬직한 분의 자상한 안내를 받았다.
14번국도를 따라야 하는데 많이 돌기 때문에 원문마을에서 중부고속국도 옆으로 가는
차로로 들어서면 통영IC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으며 거기에서 14번국도를 따르라고.
하지만 처음 가는 마을길이 그리 단순한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알려준 차로를 만났고, 이후에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통영타워와 신거제대교로 가는 14번국도를 벗어나 거제대교길, 견내량로를 택했다.
결국 재회하게 되지만 거제의 우측(동쪽) 해변을 따르기 위해서다.
이색적인 충렬여자고등학교 교훈 '자강불식(自强不息)'이 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않는다.
여학교의 교훈으로는 다소 강성(强性)을 띄고 있는데 여장부의 육성이 건학이념이라니
통영에서 문예를 뛰어넘는 여걸들이 탄생하겠다.
아직 아침인데, 거제대교를 건넌 후 바닷가 신촌에서는 동심인 듯 쪽빛 바닷물을 발로
눌러보고 손가락으로 튕겨보며 걷는 한가로운 시간이 잠시 있었다.
바다를 메운 시멘트 바닥에 돈이 널려있다.
널려있는 저 해초들이 마르면 돈으로 변할 것이니까.
아마 이런 용도로 쓰기 위해 바다를 메운 것이 아닌지.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 巨濟 沙等 德湖) 신촌의 바닷가 모습이다.
통영과 거제시내버스의 정류장이 설치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옴으로서 새마을이 형성
되어 신촌이 되었다는 마을이다.
물장난치지 말라는 듯 해변은 막혀 1018번 도로로 올라섰다.
둔덕면 학산리(屯德 鶴山)다.
내평, 술역, 호곡, 녹산으로 이어지는 둔덕면의 해안길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들락날락하면서도 통영의 남망산과 미륵산, 산지기님이 짚어준 거제의 화도 등을 가늠
하며 거제바다의 됨됨이를 원근에서 살필 수 있는 것 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바다의 풍경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 해서 다를 것 없다.
온종일, 그리고 매일 보고 걷고 있어서 그런지 어촌 또한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한다.
외출, 외도가 필요한 참에 산지기님 덕분에 어제 하루 외출을 했지만 바다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괄목할 만한 효과가 없는 것 같다.
해안길이 완전히 막힌 지점에서는 1018번도로를 따를 수 밖에 없는데 둔덕면사무소를
지나면 '청마고향시비동산'이 있다.
1989년에 둔덕조기회가 만들었다는 아담하고 간소한 동산이다.
내가 기억하는 청마(靑馬柳致環1908~1967)의 시구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뿐이지만 그가 한국 문단의 거목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생가와 묘지가 있는 산방산 아래 방하리에는 기념관이 있고 청마시비공원도 있고
청마로까지 있다는데 들르거나 걸어볼 정도의 열의가 내게는 없다.
통영도 청마 문학관, 청마거리 등 열렬하다.
그의 출신지에 대한 거제와 통영의 아전인수적 시비도, 친일작가 논란도 아직 완결되지
않아 영면중인 청마도 편치는 않겠다.
식당 유감 : 시골이 서울보다 나은가
소록도 둔덕만으로 빠지는 둔덕천에 청마교(하둔교?)가 놓여있다.
하둔 방답마을 간석지를 연결하는 교량인데 왜 울긋불긋 요란스러운지 모르겠다.
청마의 시심과도 무관하다고 생각된다면 내가 너무 건조한 까닭일까.
간석지 펜스를 따라가면 어구리 법동리 반도를 도는 법동어구로다.
이 해안로에서 서남쪽으로는 통영의 비산도와 한산섬이고 동남으로는 거제의 산달도라
는 것을 지도로 확인하며 걷고 있었다.
한산도를 왕래하는 카페리 어구항(於九港)을 지나 둔덕면(西)과 거제면(東)으로 나뉘는
아지랑(阿支浪) 마을 앞에서 한 승용차 운전자가 길을 물어왔다.
이 길에 들어서 만난 최초의 차량이라 그런지 오히려 반가웠다.
장님에게 길을 물은 격이지만 지도대로 말했을 뿐인데 고맙다며 굳이 나를 태웠다.
카페리가 산달도(산달도)를 왕래하는 다음 마을 법동항에서 내렸으나 두 여인을 포함한
세명의 호의가 지극했다.
드라이브를 나왔을 뿐이라는 그들도 감동먹었다며 늙은이를 위해서 두 마을(소랑리와
내간리)을 더 가서 내려주며 마실 것들을 주고 되돌아 갔다.
내린 곳은 거제만 깊숙이 위치하며 거제면소재지 인근인 외간리(外看).
각종 경기장으로 구성된 거제 스포츠파크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간척지에 들어섰을 것이다.
섬에서 이같은 광대한 공간은 간척지가 아니면 조성되기 어려울 것이니까.
지자체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239억원을 투자했다면 분명 무리수다.
재정자립도가 타 시군에 비해 높다 해도 40%를 밑도는 거제시가 스포츠시설에 이처럼
거액을 투입할 여력이 있는가.
내륙 스포츠 단체들의 전지훈련 유치를 통한 수익을 전제로 했다면 일대 모험이며 후속
관리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남쪽 전지훈련 후보지들의 경쟁도 치열해 갈 것이니까.
제주도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동남아로 방향을 트는 이유는 제주도의 바가지
상혼 때문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거제면사무소 소재지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었다.
중소도시 이하 시골 식당에서 가끔 생각해 본다.
시골 경기가 서울 보다 낫다고.
별스런 특미가 없는데도 서울보다 값이 월등히 비싸고 사람이 많으니까.
내가 점심먹은 여기 K숯불갈비집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TV방송 소개(출연?), 유명인사의 추천 등을 내세우는 음식점을 나는 기피한다.
명성에 비해 실속이 없고 값만 비싸기 때문이다.
기사식당을 선호했는데 이즈음에는 실패율이 높다.
이동성이 편리해 맛집으로 집중하는 기사들이 단골이라면 믿을만 했는데 그 점을 노린
사이비기사식당들 때문이다.
대도시에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객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데 시골에서는
경쟁관계가 없기 때문인지 배짱으로 임하는 것 같다.
복불복(福不福)으로 돌리는데 일꾼들이 몰리는 식당이 무난하고 인심도 후하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식당은 공사현장의 구내식당(소위 はんば/飯場)이다.
거제의 해금강과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거제면 동상사거리에서 동부면소재지로 가는 1018번 도로로 들어섰다.
동부면사무소까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방도로지만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데도 노폭이 좁아 긴장하고 걸어야 하는 길이다.
동부면 산촌마을에 들어서서 맨먼저 유혹을 받게 된 것은 선자산 등산이다.
등산안내판 앞에서 절로 작동하는 조건반사적 반응, 아마도 죽기 전에는 버려지지 않을
습성인가 보다.
섬의 500m대라면 결코 낮지 않은 산이며 산세(山勢)를 논하는 것이 금기인 내게는 모든
산이 하나같이 아름답다.
보호수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며 한가지 결단을 위해 골돌했다.
3개의 길중 1만 택해야 하는 지점에 곧 당도하기 때문이었다.
늘 현장에서 결정하는 버릇 때문이면서도 고칠 의사가 전혀 없는 버릇이다.
연달아 선택에 고심해야 하는 서남부를 버리고 동부로를 택하고 일어섰다.
이 결정에는 어제 연화도에서 들은 산지기님의 안내가 큰 역할을 했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쓸쓸한 동부면 소재지를 지나 동부로와 산양천을 번갈아 걷다가
동부저수지, 연당삼거리에 이르러 버스편으로 학동고개(거제중앙로?)를 넘었다.
9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는데도 '학동 흑진주몽돌해변'은 아직 여름이다.
사람이 모이기 때문인가 거제 제3경(景)의 이미지는 '지저분'이다.
이것이 "흑진주 같은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 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이라면
여타 해변은 발 들여놓기조차 싫겠다.
지저분하게 자국 남기지 않고 돌아가면 불행해 지기라도 한다던가.
"남해안의 맑고 깨끗한 물이 파도쳐 몽돌을 굴리면 자글자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내가 이 소리에 잠 못이룬 곳은 난잡스런 몽돌해변이 아니고 비진도(통영)였는데.
즉석 결정을 또 하나 했다.
북상을 잠시 미루고 2경과 6경이 있는 해금강,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로의 남하.
물에서 나오면 따끈한 군밤이 당기나.
여름의 군밤장수가 군밤 한움큼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바람의 언덕' 설명에 신이 났다.
순진무구한 나이든 어린애.
천국은 저들의 것이니라.
그의 밤 2천원어치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해금강을 향해 고고.
학동동백숲 팔색조도래지와 안보체험현장(부부간첩침투경로) 입구를 지나 오르막길을
돌고돌아 오르면 남부면이다.
결국, 포기했던 남부면의 일부를 밟게 되었다.
함목삼거리, 함목해수욕장과 해금강테마박물관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칡이 많았다는 갈도(葛島).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특정도서로 지정된 갈곶도(葛串島).
모습이 각각 다르고 아름다워 마치 금강산의 해금강을 연상케 한다 해서 명승 제2호로
'제2의 해금강' 또는 ‘거제의 해금강’이며 거제의 제2경.
"깎아 놓은 듯 절벽으로 아름다운 경치가 그만인 동남부, 옛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십자
동굴과 석문, 사통굴, 일월봉, 미륵바위, 사자바위" 등등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하나
내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늦은 17시 35분.
되돌아 나와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로 만족해야 했다.
도장포 어촌이 관광쓰레기가 널린 것 말고는 이색적이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몹시 바쁘고 목덜미를 휘돌아 가는 관광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즐거운 비명일까 외화내빈, 빛좋은 개살구일까.
우거진 동백숲길, 티풀로 덮인 언덕이라 해서 '띠밭늘' 이었다는 바람의 언덕과 풍차의
풍경은 옹색하다는 느낌 외에는 그림으로 옮겨놓을 만한 경관들이다.
신선이 놀았을 법한 신선대도 제 몫을 충분히 하고 있고.
장승포에서 일박하게 된 연유
나그네의 하루가 마감돼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아무 결정을 하지 못했다.
시내버스편을 이용해 학동까지 돌아가서 궁리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인 내게 소형
승용차 1대가 다가와 길을 물었다.
젊은 두 여인이 전부인 그들은 창원이 목적지란다.
길치의 어머니 내비(navigation)가 없나 보다.
학동에서 내륙을 통해 거가대교에 이르는 길이 있으나 갈림길이 복잡한데다 야간이다.
해안을 따라서 거가대교를 건너가는 길이 선인 듯 하여 권했는데 따르겠단다.
가는 길목인 학동까지 편승을 바라는 내 청을 선선히 받아준 그들.
출발지가 서울이고 창원에 들른 후 귀경할 것이라는 그들은 학동까지 가는 동안에 나눈
이야기 만으로도 나를 신뢰할 만한 늙은이로 판단했는가.
정해진 목적지가 없음을 이미 알게 된 그들은 좀 더 함께 가기를 원했다.
밤중에 바닷가를 달리는 초행길이라 다소 불안했을 것이다.
내가 꼭 들르리라 점찍어 둔 곳은 장승포와 옥포다.
도중에 알맞은 정자들이 있음에도 헷갈리기 쉬운 지역을 지나고 장승포도 비켜가 길이
단순해진 지점(아양동)에서 하차해 장승로로 돌아왔다.
이것이 내가 장승포에서 읿박하게 된 연유다.
나 또한 초행인 장승포에서 정자 찾는데 애를 먹었다.
장승포항을 샅샅이 뒤졌으나 허사였다.
아예 없는 정자를 찾고 있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가파른 고갯마루의 궁도도장(벽파정궁)까지 올라갔으나 역시 허탕.
천막집을 지을 만한 터들이 있으나 하늘에 비가 고여있는 것 같아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가면 물어볼 사람도 없기 때문에 초조해 갔다.
장미공원을 소개받아 올라가는데 가파른 등산에 다름 아니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위치인데 장승포,능포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공원이다.
북동쪽의 양지암등대(아침에 확인)가 반짝이고 있다.
부산쪽 남해의 길잡이일 것이다.
정자에서는 어느 대학 남녀학생들의 간이 MT가 진행중인 듯.
캔맥주를 마시며 설왕설래중인 그들에게 방해될까 저어되어 멀찍이서 쉬었다.
어떤 결정을 도출했는지 화기애애하게 끝낸 후 뒷정리를 말끔히 하고 돌아가는 그들.
당연한데도 왜 귀엽고 대견스러워 보였을까.
기준의 전도(顚倒)다.
자정이 임박하여 집을 지으려는데 이럴 수가.
거센 바람에 먹구름이 요동치고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2개의 정자가 모두 천정(지붕)이
없는 간이정자다.
거목 정자나무 곁에 평상이 있으나 나무가지가 비를 막아줄 수 있는가.
밤 늦도록 애쓴 보람 없이 짐을 꾸려야 했다.
찜질방 센텀으로 하산하는 중에 나의 경제논리가 고개를 들었다.
낙동정맥 종주중 부득이 진보(청송)에 내려와 읿박하게 되었을 때 나는 깨끗한 여관을
곁에 두고 수준 이하라는 여인숙을 택했던.
아무런들 산속의 통비닐 안보다는 낫다는 것과 산에서 처럼 옷도 벗지 않은채 누워있는
5시간에 불과하므로 시간당 2천원씩 벌며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두 숙소간의 값차는 1만원이니까)
나의 이 경제논리는 산에서 뿐 아니라 길에서도 변함 없이 위력적인 금과옥조다.
센텀 찜질방에서도 물론.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