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구역상 보성군 벌교읍에 속하는 낙성리를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낙서 (洛西) 즉 낙흥부원군 자점공의 고향인 낙안(옛지명 洛安) 근처입니다.
직선 거리상 약 3-4 킬로 정도 떨어져 있으나 생활 문화 권역으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낙성리의 지명이 남아 있는 마을 회관입니다.
동네 어르신에게 여쭤보니 낙자가 즐거울 락(樂)이 아니라 물낙(洛)을 쓰고 있었습니다.
동네 뒷 편 조산인 백이산 (백아산) 입니다. 한자로는 伯夷 山이라 쓴다고 합니다. 백이산 맞은편으로는 제석산과 금전산이 낙안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낙성파출소입니다
조양임씨의 시조가 모셔진 묘역의 비문에도 낙성이라는 지명이 보입니다
낙성 초등학교
낙성리를 살펴본 후 낙안읍성 안내소에서 낙안의 향토 사학자이자 "낙안향토지"의 저자 송갑득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옥산리에 소재한 낙흥부원군 선대조의 묘자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곳입니다. 옥산의 백이산을 조산으로 모시고 아늑하니 안산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얕으막한 야산이 시릿대로 덥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그 대나무를 이용하여 화살을 만들어 왕실에 진상을 하였다고 합니다. 선대조 묘로 전해지는 곳은 원등리에서 옥산리로 가는 도로의 우측 즉 벽옥사 진입로 전 우측 하천변에 면해 있습니다. 이전에는 상당히 넓었다고 합니다. 도로 편입등으로 줄어들었고 파묘 후 못으로 만들었는데 어린 아이 등이 익사하는 사건이 많아 다시 흙으로 메우고 지금은 농경지로 경작하고 있다고 송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세월이 무상한건지 야속한건지, 정치적 입장이 무서운건지 세상 인심이 무섭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행한 송갑득 선생님은 낙안읍성에 위치한 임경업 장군의 선정비, 추모제 등과 관련하여 임충민공 후손들이 한편으로는 낙흥부원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낙흥부원군 덕으로 낙안군수, 의주부윤, 청북방어사 등으로 요직에 기용되었고, 생전에 많은 도움과 보살핌을 받으신 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후손된 도리로 낙흥부원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곳에 유허지 임을 알리는 표석이라도 세워서 후손들에게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장이 마련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 지대한 역할을 하셨음에도 이리도 흔적이 없게 지울 수 있을까 하는 몰인정을 탓하면서 송광사를 들렀습니다.
이 연못에 회한과 아쉬움을 눈물로 쏟으면서 다시 먼길을 헤쳐 답립니다
송갑득 선생이 저술한 "낙안읍성" 책입니다. 이곳에도 낙흥부원군 관련 자료들을 정성껏 수록해 놓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