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토끼"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레위기 11장 4-6절에 또 한 번은 신명기 14장 7절에, 이렇게 각각 한 번씩 나온다. 문제는 이 토끼가 우리말이나 영어 번역 성서에서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류(反芻類) 동물로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로 토끼는 반추류 동물이 아니다. <표준새번역>과 일부 영어 번역은 "오소리(badger)"까지 반추 동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이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여기에 언급된 토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축이다. 그러나 "사반"의 경우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동물이다. 이것은 히브리어 "샤판"의 우리말 음역(音譯)이다. 무슨 동물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발음을 그대로 음역한 것이므로 우리말 번역으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가 이 동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전서 표준새번역>은 이것을 "오소리"라고 번역하였다.
4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두 쪽으로 갈라졌더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너희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5 오소리(샤판)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6 토끼(아르베넷)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는 부정한 것이다. (<표준새번역> 레위기 11:4-6) |
반추(反芻)라고 하는 것은 한 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 일을 일컫는다. 소나 염소 등과 같이 소화가 곤란한 식물성(植物性) 식물(食物)을 상식(常食)으로 하는 포유동물(哺乳動物)에서 볼 수 있다. 반추류(反芻類) 동물이라 함은 우제류(偶蹄類) 중에서 소화 형태상으로 구분한 아목(亞目)이다. 여기에 속하는 동물은 반추위(反芻胃)로 되새김질하는 특성을 가졌다. 초식성(草食性)인데 소.양.낙타.사슴.기린.순록(馴鹿) 등이 이에 속한다. 반추위(反芻胃)라고 하는 것은 반추 동물의 위를 가리키는 말로, 3-4개의 실(室), 또는 위(胃)로 나누는데, 소에 있어서는 식물(食物)은 제1위인 류위(瘤胃)에서 제2위인 봉소위(蜂巢胃)로 옮겨갔다가 다시 입으로 되돌아 와서 거듭 잘 씹어서 삼키면 다시 제2위를 거쳐 차례로 제3위인 중판위(重辦胃), 제4위인 추위(皺胃)에 들어간다. 제1위는 많은 식물과 물을 혼합 저장하고, 제2위는 벌집처럼 되어 있어 식물을 뭉쳐서 입으로 내보낸다. 제3위는 "처녑"이라고도 하는데, 많은 엽상(葉狀)의 판(瓣)이 있어 잘게 소화시키며, 제4위는 완전한 소화를 수행한다. "토끼 류(rabbit/hare/coney)"나 "오소리(badger)"는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들이다. 그런데, <개역> 레위기 11장 6절과 신명기 14장 7절에는 "토끼"가 새김질을 하는 동물로 분류되어 있다. 심지어는 <표준새번역>에는 "오소리"도 새김질하는 동물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영어 번역 전통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KJV는 "아르베넷"은 "멧토끼(hare)"로, "샤판"은 "집토끼(coney)"로 번역하였다. RSV는 "아르베넷"은 "산토끼"로, "샤판"은 "바위 오소리"로 번역을 하였다. NIV는 "아르베넷"을 "집토끼(rabbit)"로 "샤판"은 "토끼(coney)"로 각각 번역하였다.
따라서, 영어 번역에도 명확하지 못한 점이 있다. "아르베넷"을 "토끼"(hare)라고 번역하고, "샤판"을 "바위 오소리"(rock badger)라고 번역한 것도 그러하다. 또 영어 hare는 일종의 "산토끼"로서 "집토끼(rabbit)"보다는 크고, 뒷다리와 귀가 길며, 굴에 사는 습성, 곧 혈거성(穴居性)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소개되어 있다. rabbit이든 hare이든, 이 둘은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이다. "샤판"의 영어 번역 coney도 문제이다. 이것은 rabbit의 옛 말일 뿐이다. 그렇다면, 둘 다가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이 새김질하는 동물 명단에 들어 있는 셈이다.
토끼(hare/rabbit)는 포유류 토끼목 토끼과 동물의 총칭이다.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 및 유럽에 분포하며 종류가 많다. 일반적으로 토끼라면 유럽굴토끼의 축용종(畜用種)인 집토끼를 가리킬 때가 많다. 귀가 길고 꼬리는 짧으며 쥐목과 달라서 위턱의 앞니가 2쌍이고 아래턱을 좌우로 움직여서 먹이를 먹는다. 토끼류를 통속적으로 나누면 멧토끼류[野兎類]와 굴토끼류[穴兎類]로 대별된다. 이들 멧토끼를 영어로 hare라고 한다. 굴토끼류는 땅에 굴을 파고 살며 굴 속이나 바위 밑에 마른 잎이나 털을 펴놓은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 속에 새끼를 낳는다. 이 굴토끼류를 rabbit이라고 한다. 토끼류는 반추류 동물이 아니다.
"샤판"을 "오소리(rock-badger)"라고도 번역하였으나 오소리는 족제비과에 속하는 짐승으로서, 너구리와 비슷한데, 몸길이 40-50 센티미터, 꼬라가 13센티미터 가량이고, 몸의 배면(背面)은 갈색이며 털끝에 희백색의 털이 섞여 있어 서리를 맞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꼬리는 회갈색, 몸의 하면(下面)사지(四肢).주둥이.머리 앞은 흑갈색이지만, 여름과 겨울에 따라 몸빛이 달라진다. 밤에 나무 뿌리.과실.종자.곤충.뱀.쥐.토끼 등을 잡아먹는 잡식성(雜食性)이며, 2-4월에 서너 마리의 새끼를 굴속에서 낳는다. 새김질을 하지 않는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구약성서가 "토끼"나 "오소리"를 반추류 동물로 분류한 것은 민간 동물 분류에서 잘못 분류된 것이 그대로 성서에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성서가 지니는 시대적 지식의 한계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히브리어 "에르베넷"과 "샤판"을 각각 "토끼" 와 "오소리"라고 번역은 하되 난외(欄外)에 이러한 분류가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을 밝혀서 성서 독자가 잘못된 지식을 전달받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가 토끼라고 번역하고 있는 히브리어 "아르네벳"이나, 오소리라고 번역하고 있는 "샤판"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토끼나 오소리가 아니라, 실재로 우리가 모르는 어떤 반추류 동물이 이었었는데, 다만 그것들이 이미 멸종한 동물(extinct animal)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역>이 히브리어 "샤판"의 뜻을 몰라서 우리말로 그냥 "사반"이라고 음역(音譯)했듯이, 토끼라고 번역된 "아르베넷"도 그냥 "아르네벳"이라고 음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