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 넝쿨째 굴러 갔다
정동순
팔월의 텃밭은 생산력이 무르익은 삼십대의 여인네다. 품안의 자식들을 잘 건사하여 풍성한 기쁨으로 하루을 맞는다. 열무가 싱그럽고 미나리와 상추가 푸짐하다. 싱싱한 잎새에 앙증맞은 꽃들도 여름이라 즐겁게 피어난다. 고추는 하얀꽃을 빼곡히 달고 있다. 작은 벌들도 부지런히 드나든다. 부추꽃도 쑥갓꽃도 예쁘기만 하다. 보라색 도라지꽃도 한창이다. 잘 익은 방울토마토는 빨간색, 노란색으로 색깔도 곱다. 어느 과일 못지 않게 달디 달다. 덜 익은 것을 따서 유통하면서 익힌 토마토와는 비교할 수 없다. 토마토가 채소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잘 익은 토마토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제 아무리 좋은 씨앗도 잘 자라려면 흙이 좋아야 한다. 우리 텃밭이 풍성한 것은 퇴비 때문이다. 뒷마당에 손바닥만한 텃밭 짓는 일도 농사는 농사라 나는 흙욕심이 있다. 산책을 하다가도 두더지가 파 놓은 까만흙을 만나면 그쪽으로 한참 고개가 돌아간다. 욕심이 동하는 것이다. 나무 둥치가 검붉게 곰삭아 부슬부슬한 가루로 내려 앉아 있을 때도 그렇다. 저 흙에 미나리를 심으면 참 좋겠다, 저 흙에 더덕 심으면 좋겠다,
나들이 간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자식들 생각하는 것 같아 피식 웃는다.
텃밭 농사를 짓지 않는 옆집에는 커다란 초록색 퇴비통이 있다. 과일껍질이나 야채를 넣어 퇴비를 만든다. 가슴팍 높이의 철망 울타리 때문에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가 다 들여다 보고 있다. 마당이 좁은 이웃은 우리 마당까지 즐기고, 울타리 아래 우리 텃밭은 방해받지 않고 오후의 해를 실컷 누린다.
지난 봄, 텃밭 흙을 고르고 있는데 옆집 리오 아저씨가 자기집 퇴비더미를 자랑했다. 흙을 좀 보여 주는데 새까맣다. 지렁이가 꿈틀댄다. 농사도 안 짓는 사람이 퇴비 자랑으로 한참 침을 튀겼다. 그날 후로 맛난 음식을 앞에 둔 것처럼 옆집 퇴비통에 눈이 갔다. 참다 못해 그 퇴비를 좀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가끔 우리 텃밭의 수확물을 얻어 먹으니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바뀔새라 즉시 삽과 가장 큰 고무통을 들고 옆집으로 갔다.
리오 아저씨가 득의양양하게 퇴비통의 뚜껑을 열었다. 잘 익은 퇴비 냄새가 훅 끼쳤다. 가슴이 뛰었다. 퇴비를 만든 이유가 있을 듯 해서 얼마나 가져가도 좋은지 물었다. “삼분의 일쯤.” 약간 실망이었다. 농사도 안 지면서 퇴비로 뭐 하냐고 물었더니, 집안에 놓는
화분의 밑거름으로 쓴다고 했다. 퇴비통에 삽을 넣었다. 지렁이가 바글거리는 보슬보슬 새까만 거름이다. “이거 그냥 쓰면 안 돼. 다른 흙과 절반씩 섞어 써야 해.” “알았다, 오바!” 가져간 고무통에 거름을 퍼 담았다. 끌고 올 것도 없이 울타리 너머로 쏟아 넘겼다.
이웃집 퇴비와 우리집 흙은 합궁을 하듯 고루 섞이어 봄을 맞았다. 그런데 요상하다. 심지도 않은 새 생명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이웃집 퇴비가 품었던 씨들이 자궁에 착상하듯 우리집 텃밭에 턱하고 자리를 잡았나 보다. 토마토 싹들이 쑥쑥 올라왔다. 어떤 종자인지 모르는 호박싹도 힘차게 올라왔다. 그 녀석들의 싹트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반인걸 무엇을 심은들 어떠랴.
씨들의 생태를 보면 경이롭다. 칠 백년이 지난 고려시대의 연꽃 씨가 발아해서 아라홍련이란 이름 다시 태어났다지 않나. 고대의 밀씨에서 싹이 났다고 하질 않나. 옆집 거름통에 있던 씨들도 과육은 다 썩어 거름이 되어도 저는 썩지 않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다. 거름더미에 몇 년을 묻혀 있던 것들이 썩지 않고 기어코 발아해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 준다. 눈에 띄지도 않는 잡초의 씨들은 또 어디에 숨었다가 철마다 줄기차게 나오는 걸까. ‘씨앗은 하나의 우주다’라고 한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자식 크는 기쁨을 나누고 싶은 어미 같이 여름의 텃밭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러낸다.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텃밭에는 건강하게 옹기종기 잘 자라는 자식들이 영양분을 받아 먹느라 시끌벅적하다. 해를 한 줌이라도 더 받으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각기 제가 받은 성정을 맘껏 뽐내며 팔월의 하늘을 향해 발돋움한다. 토마토는 열매가 열리면서 어떤 종자인지 제 모습을 보여준다. 길쭉한 토마토와 분홍 토마토였다. 호박은 쑥쑥 뻗어 나갔다. 우람한 줄기를 울타리 밑으로 기어가라고 길을 내줬다. 몇 번 암꽃이 혼자 피었다 속절없이 사그라들었다. 수꽃이 한 송이 피자 드디어 교배를 하였나 보다. 암꽃이 핀 자리마다 동그란 열매가 맺혔다.
작은 씨들도 이렇듯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데 나는 어디에 떨어진 씨일까? 척박한 땅, 기름진 땅, 가시덤불 속, 씨가 떨어질 곳을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식물과 달리 사람은 상황이 어찌 되었든 자신의 노력으로 열매를 많이 맺기도 하고 게으름으로 좋은 땅을 버리기도 한다. 내게 주어진 씨의 본분을 다하고 있나 생각해 본다. 그 씨로 인해 몇 십 배의 수확이 있을까?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불속에 던져질 쭉정이는 아니어야할 텐데.
식물의 재롱을 받으며 텃밭에 물을 준다. 기운찬 생명들과 눈맞춤하는 시간이다. 싱그러운 생명의 기를 깊게 들이 마신다. 헌데 호박 줄기 하나가 철망 사이로 기어나갔다. 고개를 빳빳히 들고 옆집으로 쭉쭉 뻗어 가고 있다.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처럼 엄마 눈을 피해 모험에 나섰나 보다. 줄기를 우리쪽으로 빼내 올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라, 울타리 너머에 벌써 동그란 호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줄기를 잡아당기면 그 열매와 줄기가 상할 것이 분명했다.
울타리 너머 호박은 하루가 다르게 탐스럽게 커간다. 거름통에 묻혀 있다가 싹이 터서 자란 것도 신기한데, 우리집 호박은 제가 온 곳이 거기라고 본가를 찾아간 것이 분명하다. 입맛을 다시며 싱싱한 호박잎을 딴다. 호박잎 쌈이나 먹어야겠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가 버렸다.
첫댓글 갑갑하고 힘든 시간입니다.
거름통에서도 썩지 않고 견디었던 씨앗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기운찬 생명들과 눈맞추는 시간 . 그것이 텃밭 일구는 재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