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로주의의 표상, 탈레이사가르 북벽 드디어 한국인의 등반을 허락하다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의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은 등로주의의 표상으로 꼽히는 상징적인 곳이다.
등로주의는 셰르파를 앞세워 가장 쉬운 루트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된다는 등정주의의 반대 개념이다.
결과보다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등반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등로주의다.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어려운 루트의 대명사로 불리는 곳이다.
이 북벽의 자존심을 꺾기 위해 1979년부터 영국, 미국, 일본, 폴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이탈리아, 헝가리,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불가리아, 프랑스, 스위스, 한국 등 수많은 산악강국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산은 등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20세기 마지막 난벽으로 남아 있던 이곳을 1997년 호주-뉴질랜드 합동대가 결국 초등에 성공했다.
한국 산악계는 1993년 대구합동대의 첫 도전 이후 2006년까지 13년 동안 12개 원정대가 도전해
단 1개 팀만 북벽을 통한 등정에 성공했다.
1994년 우정원정대, 연세대 산악회, 1995년 목포전문대, 1996년 경상대 산악회, 1997년 충주 건국대 산악회,
1998년 경기연맹 북부지부 구조대, 1999년 한국 봔트클럽, 2000년 울산대 산악회, 2003년 마운틴 하드웨어 등의 원정대가
도전하여 치열한 등반을 했으나 북벽을 뚫고 정상에 서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울산대 팀은 북벽이 아닌 북서릉을 통해 한국 초등을 이뤘다.
이들 중 1998년 경기연맹 북부지부 구조대팀은 한국 산악계에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
젊고 장래가 유망한 거벽등반가 6명으로 꾸려진 이 원정대는 가장 힘든 구간인 블랙타워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으나
정상을 얼마 안 남겨 놓은 설벽에서 추락, 3명의 대원이 사망했다.
이후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한국 산악계의 맺힌 한이었으며 실로 악마 같은 거대한 벽이었다.
그러나 구은수(具銀洙ㆍ39)가 그 벽을 넘어 한국 산악계의 숙제를 풀었다.
산에 다닌 건 야영하고 술 먹는 재미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