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조형 작품만이 우위에 있다는 편견도 있을 수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 도예계에서, 그릇은 어디까지나 가장 오랜 도예계의 전형이며 가치기준이라 하겠다. 특히, 다량생산품목이 아닌 일품 생활도예품은 창작조형도예 못지 않은 조형미와 그 조형미를 갖춘 실용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마음의 여유를 갖고 그 속을 들여다 볼때에 생활속의 미와 즐거움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모두 새삼스레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현대도예가들도 자신의 작품(조형성이 강한 작품)을 판매하여 생활비와 작업비를 충당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다. 특정한 직업이 따로 없는 대다수의 작가들은 창작도에작업을 하고, 한편으로는 생활도예품을 만들어 판매하여 생활비와 작업비를 충당하고 있다. 판로는 자신의 집이나 작업장 등에 전시장을 만들어 작가가 직접 판매하거나 상점이나 갤러리, 상설전시장등에 위탁하거나 전시회를 자주 가져서 갤러리를 통한 판매를 주로한다. 그러한 작가들은 일부 교직에 있으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보다는 작가로서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전업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전시판매를 하는 갤러리들 중 참신한 기획으로 신진작가 발굴과 판매로 유명한 후쿠오카에 TEN 갤러리가 있다.
1월에 후쿠오카에서 동경까지 일이 있었던 필자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후쿠오카에서 서울의 왕복 비행기 티켓과 7일간의 JR Pass를 구입하였고, 후쿠오카에 도착한 첫날인 1월 18일 인사차 TEN 갤러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갤러리 사장인 히사코씨는 그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자는 나의 말에 평상시의 그녀의 성격과는 달리 강력하게 꼭 보여줄 것이 있다며 당장 저녁 6시까지 갤러리로 오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설명으로는 매년 한번씩 4일 동안 치루어지는 자그마한 행사로 현대도예 작가들의 생활도예품과 일본풍 음식을 함게하는 전시가 있다는 것이었다.(히사코씨는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을 갖고 있으며 시인 윤동주와 관련된 일 등으로 자주 한국을 찾는다.) 그릇과 음식이 병행된 전시라는 말에 귀가 번쩍뜨인 나는 호기심으로 다른 일들을 제쳐 놓고 그날 저녁 갤러리를 찾았다. 그녀의 남편이 안내하는 대로 갤러리 2층 현관을 따라가며 나는 가슴에 저뉼 비슷함을 느끼면서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하였다. 현관에서 보이는 방안에는 너무나도 일본적인 조그마한 방에서 먼저 온 사람들이 각자 개인소반을 앞에 놓고 벽을 향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일본 전통가옥에서 흔히 보는 흙벽에는 벽걸이 꽃병이 있었고 그 옆에 걸려 있는 벽화 밑에는 큰 화기에 동백꽃 등이 멋드러지게 꽂혀 있었다. 그 꽃병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는 오브제적인 백자 접시 3점과 목기가 있었다. 일렬로 앉아 그것을 감상하는 그들을 보면서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뉴욕시에 있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내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관이 생각났다. 일본적인 정적미와 그것을 음미하던 외국 관람객들. 그때 느꼇던 경이로움과도 같은 그 느낌은 꼭 조용한 분위기 탓만은 분명 아니었다.
히사코씨까지 6명의 자리가 춘비된 방안에서 히사코씨는 그릇을 만든 작가들과 그 그릇에 맞는 음식을 만든 요리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요리가는 일본 전통 요리가로 자신의 이름을 시가겐키 시마군이라 소개하였는데 일본에서 꽤 알려진 유명인 이었따. 하얀삼베로 만든 일본 전통옷을 입은 그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한사람식에게 말차를 시작으로 요리를 서비흐하기 시작하였다. 손님들은 오차가 담긴 다완을 손으로 만지며 그릇과 차 함께 음미하면서 벽면의 모든 것을 감상하였다. 음식은 오차를 시작으로 두번재는 생선오리 3가지와 술이 나왔고, 그 다음에는 참깨가 섞인 샐러드, 네번째는 복어국, 다섯번째는 정월때 먹는 모찌국, 여섯번째는 연어알 무침, 일곱번째는 전복회와 밤요리, 여덟번째는 디저트로 각종 과일이 나왔다. 그릇은 고에로지, 가와구치순, 사토루 호시노, 유리코 마츠다, 오쿠무라 히로미, 마사미치 시가코등 일본에서 내노라하는 유명한 도예가들이 만든 것이었다. 작가의 개성있는그릇과 음식의 어울림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되어졌다. 마지막으로 다완이 담긴 말차가 나왔다. 그릇과 음식이 바뀔 때 마다 느껴지는 황홀감과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은 아마도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에가들이 만든 그릇의 형태와 색상을 배려한 요리가의 음식의 색상과 형태에 대한 배려는 예술의 경지로서 정말이지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하였다.
일상에서 그릇이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만큼인지 우리가 매일 논하는 명료한 실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지는 시간이었다.
쿄토대학 명예교수 이누이 요시아키는 잔이나 과자접시를 보고 그것이 일상적인 생활용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찻잔과 과자그릇이 가진 형태와 색채, 질감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것들은 이미 하나의 순수 조형물이 되는 것이다 라고 도자기를 보는 인식의 폭을넓히는 실마리를 제시하였다. 나는 가끔 이말을 인용하기도 되새김하기도 한다. 실용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고유의 역할이 있기 마련이며,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느껴온 통념적인 그릇은 단지 음식을위한 그릇이었고, 그릇을 위한 음식의 선택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고야 개인전때의 작품들 중에서 화기형태의 작품을 본 갤러리 사장인 할머니께서(20여년 된 도예전문 갤러리임)화기의 형태나 색상에 맞추어 꽃을 사서 꽂는 것을 본 경험이 있다. 일본말에 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정원과 더불어 멀리 보이는 경치(수목림)등이 너무 좋기에 돈을 주고 빌려서라도 보고싶다는 심정을 표현한 말로 이는 짧은 한 단어에 일본인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그릇에 맞추어 음식을 담는다든가 화기에 맞추어 꽃을 꽂는 다든가 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 따른 정신적 요유라 보며 그런 정신 문화가 있었기에 일본의 도예 문화가 꽃 피었을 것이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훌륭한 전통 음식이 있고 훌륭한 그릇문화가 있다. 더불어 그 누구 못지않은 감각도 갖고 있따. 그러나 그 훌륭한 것들을 갖춘 만큼 제대로 만들어진 그릇들이 그 쓰임새대로 특정 음식점과 소수 특정인들 외에는 일반적으로는 쓰여지고 있지않다. 이렇게 생각해볼때 제작자인 도예인들은 생활 도예품 보급에만 급급해 하기전에 감각을 먼저 인지한 사람들이기에 마음의 여유,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우리의 정서 속에서 완전히 자리잡을수 있는 생활도에품의 역할과 그 정신문화를 갖추고 또 보급 시켜야 될 중요한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대중 음식점에서는 백자 그릇의 모조품인플라스틱 그릇이 없어질 것이며 일반 주부들도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개성대로 자신있게 생활 도예품을 선택하여 자신만이 간직한 고유의 음식을 그릇에 멋드러지게 담아낼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도예문화도 일본 못지않게 꽃피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글 : 황예숙(도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