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1월 13일 경주시 양북면에 건설 중인 방폐장 준공시기를 18개월 연장하기로 발표했다. 그 이유는, 일부 사일로의 암반이 당초 설계보다 약해서 보강공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연약한 암반위에 방폐장 공사를 하는 건 위험하다며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했던 환경단체의 우려가 결국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당초 2009년 6월 준공될 예정이었으나 2012년 말로 연기되었다가 또 다시 2014년으로 연기되었다. 연약한 지반뿐만 아니라 하루 수천 톤의 지하수가 새어나오는 바람에 공사가 지연되는 것은 당연할 터였다. 문제는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흐르는 그곳에다 천년 이상 외부와 차단되어야 할 방사능 폐기물이 온전하게 보관될 수 있느냐는 것이고,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그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방사능 유출로 이어져 지하수와 바다를 오염시켜 치명적인 재앙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은 반드시 핵폐기물을 쏟아낸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모든 방사능 쓰레기를 중저준위 폐기물이라 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고준위 폐기물이라고 한다. 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그래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덩어리다. 그것은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계속 엄청난 열을 내뿜으며 핵반응을 하고 있는 뜨거운 숯불덩어리다. 거의 영구적으로 무시무시한 방사능 독성을 토해내는 애물단지다. 전기 생산이 끝나도 50년 동안 냉각수를 계속 퍼부어 주어야 하는 골칫덩이다. 만약 그동안 정전이라도 일어나 몇 시간동안 냉각수가 공급되지 못한다면 치명적인 핵사고로 이어진다.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핵발전소만 위험한 게 아니라 이처럼 핵폐기물도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에 포함되어 있는 물질 중에는 독성이 대단히 강한 핵종이 많이 들어 있는데, 가령 반감기가 2만 4천년이나 되는 플루토늄은 1그램으로도 수십만 명에게 폐암에 일으키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은 최소한 1만년 동안 생태계와 완전히 격리될 수 있도록 건설되어야 한단다.
하지만 그러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인간에게 없고 그것을 영구히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도 지구상에 없다. 그래서 핵발전을 시작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을 성공적으로 처분한 나라가 없다. 수십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시설물이란 세상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핵발전을 하고 있고 핵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다. 그게 작금의 현실이다.
“인간이 만든 불이면 인간이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점짜리 기술입니다”라고 말한 일본의 반핵운동가이자 시민과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는 이러한 핵발전소의 위험천만한 허실함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고 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가 없고 버려야 하는데 버릴 곳이 없다면, 그야말로 편리한 맨션아파트를 지으면서 화장실을 내지 않은 것에 비유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할 때마다 정부는 해당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하긴 그 무시무시한 ‘화장실’을 누가 제 앞마당에 가져다 놓고 싶겠는가. 1990년 안면도에서 수만 명이 보름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1995년 굴업도 핵폐기장 발표 때는 덕적도와 인천 주민들이 수개월 동안 반대했다. 2003년 부안에서는 거의 민란 수준의 격렬한 투쟁이 있었다. 지역이기주의니 님비니 하면서 일부 언론과 여론은 그들을 몰아세웠으나 정부는 결국 생존을 위한 지역민의 격렬한 저항 앞에서 그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천년고도 경주의 앞마당 양북면에 ‘핵화장실’을 짓게 되었다. 지질조사부터 하고 그것을 토대로 후보지를 선정하고 나중에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하는 게 올바른 순서인데, 경주는 참 묘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방폐장을 짓긴 지어야 하는데 지역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할 게 뻔하니까 정부에서 교묘한 ‘꼼수’를 부렸다고 할 수도 있다. 즉, 그럴듯한 미끼(수천억 원의 지원금과 한수원본사 이전)를 던져놓고 지역민들끼리 경쟁을 시킨 것이다.
경쟁이라면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 국민들 아닌가. 경주, 포항, 군산, 영덕이 그 미끼를 물기 위해 달려들었다. 90% 가량의 찬성률을 보인 경주가 낙착되었다. 그야말로 ‘낚였다.’ 하지만 자연조건과 상관없이 무조건 찬성률이 높은 곳으로 방폐장을 짓기로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정부는 주민투표 6개월쯤 전에 이미 후보지 네 곳에 대해 지질조사를 했는데, 경주는 아주 나쁜 축에 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투표 당시 주민들에게 그것을 전혀 알리지도 않았고, 암반이 좋고 안전하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한다.
어쨌든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지금 양북면의 방폐장공사가 말해주고 있다. 주민의 동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입지 조건의 적합성’을 무시한 대가가 지금 엄청난 공기의 연장과 수백억 원의 추가경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천 톤의 무게로 짓누르는 수압에 허약한 암반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아무리 단단하고 두터운 콘크리트를 바른다 해도 과연 그것이 몇 년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말이지 이건 절대 얼렁뚱땅 무마할 일이 아니다. 설사 지금까지 공사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고, 그것이 결국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해도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전, 터전의 안전, 또 안전이다. 독일에서도 그 무렵 중저준위 방폐장에 물이 들어가는 사건이 터졌는데, 독일정부는 그 안에 있는 핵폐기물을 전부 꺼내기로 결정했단다. 6조원이 든다고 했다.
하긴 이런 사실을 안다면, 누가 과연 원자력을 싸게 먹히는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핵폐기장 짓는 비용을 보태면 핵발전 원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정부는 고리 1호기의 설계수명이 끝났는데 무모하게도 10년 더 연장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와 고리 2호기도 그럴 공산이 크다. 어쩌면 엄청난 발전소 폐쇄비용 부담 때문인지 모른다. 그 대신 노후한 기계라도 전기를 계속 생산하면 매달 엄청난 전기세를 거둬들일 수 있다. 정부와 원자력업계가 그 유혹에서 빠져나와 국민의 안전을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는 결정을 할 수 있기를, 국민들은 눈 부릅뜨고 지켜 볼 것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은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30여 년 동안 약 32만 다발의 사용후 핵연료를 모아놓고 있다. 2016년이면 그것도 포화상태라 한다. 만일 이 사용후 핵연료 다발을 전국6천개 읍·면·동에 나눠 보관한다 해도 한 동네에 53개씩 돌아간단다. 공정성의 원칙 혹은 유발자 부담의 논리로 말하자면, 가장 에너지 소비가 많고 전력의 99%이상을 다른 곳에서 가져다 쓰는 서울에다 방폐장을 짓는 게 공정하고 마땅하다. 만약 지역민들이 한 목소리로 서울에 방폐장을 짓자고 주장한다면 서울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핵발전소 문제가 얼마나 위급하고 중요한 사안인지 그때서야 무지한 정치인도 무심한 시민들도 겨우 인식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는 거부해야 한다.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21기의 원전이 당장 멈춘다고 해도, 지금까지 쌓인 핵폐기물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엄청난 경비와 무시무시한 위협으로 우리는 물론 후손들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그래도 편리하다는 이유로 ‘맨션아파트’를 계속 짓겠다면 이제는 서울에다 ‘화장실’을 지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과 관료와 핵산업계는 권력과 금력으로 더 이상 지역민들을 속이거나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정 지역은 어찌되든 미래세대가 어찌되든 우선 편리하니까 만들어 ‘쓰고 보자’는 심보는 얼마나 사악한가.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제어할 순 없다. 왜냐하면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현재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만이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핵사고가 날 확률이 엄청 높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확률이나 가능성을 결코 무시해서 안된다. 그것은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강력한 요소이기도 하니까. 그 위험성을 알고도 그것을 지금 바꾸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멀잖아 엄청난 현실이 되어 닥칠 수 있다. 반성 없는 실수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명백백한 법法이 아니던가.
출처 :땅과자유 원문보기▶ 글쓴이 : 비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