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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단락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단락이란 몇 개의 문장이 모여 한 무리로 단락을 짓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단락은 문장과 문장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이 단락이 여러 개 모이면 전체의 글이 된다. 이것을 함수관계로 야기해 볼 수 있다. 즉 전체 글은 여러 단락을 포함하고, 또 그 단락들은 여러 문장을 포함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단락의 모양상 특징은 글 전체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단락의 내용상 특징은 문장과 문장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 준다. 또 글 전체를 적절한 부분들로 나누어 준다. 그래서 단락은 주제를 뒷받침해 주는 논점이나 글장을 이야기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단락은 단순히 글의 분량 단위가 아니라 생각의 단위이다. 작품을 이루는 구성에서 입체적 계단처럼 구분을 짓는 것이다.
작품이 이루어지는 데는 몇 가지 요소의 단락적 얘기들이 유기적 배열에 의해 엮어지면서 통일성을 이룬다. 그런데 근래의 수필문장 가운데는 이와 같은 문장의 단락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단락적 기능에 의한 통일된 형식이 아니라, 내용만을 늘어놓아 단락이 지니는 의미의 기능을 잃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구절의 문장 - 얘기가 끝날 때마다 글줄을 새로 잡아 놓아서 문단을 이루지 않아, 얘기만을 모아 놓은 형태이다.
문단의 기능과 성격을 건물 구조로 비교해 보면, 한 건물의 내부 구조는 기능에 따라 형태별로 구분이 된다. 거실(응접실)을 중심으로, 내실·공부방·서재·다목적실·화장실·주방 따위로 독자적 기능의 성격을 띠면서 유기적 배치에 의해, 하나의 건물로 통일을 기한다. 수필문의 단락도 그 구조적 형태가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만일 수필문에서 단락의 구조적 성격이 없다면, 내부 기능의 한계가 없는 겉껍데기뿐인 단순 외형의 건축물과 다를 것이 없다.
문단의 구분은 두 가지 요소로 볼 수가 있다. 좁은 범위의 단순 개념에 의해 구분 짓는 경우와, 복합적 대단위의 넓은 범위로 묶어 짓는 경우이다. 여하간 수필문은 문단이 확실해야 하므로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
한편의 수필도 여러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문단은 몇 개의 문장이 소주제를 중심으로 모여서 이루어지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단락은 그 단락의 중심 화제가 들어 있는 문장과 이를 뒷밭침해 주는 문장으로 이루어지는데, 단락을 전개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첫째, 일반적인 것을 구체화시킨다. '논리적 순서'가 되겠다. 연역법에서 흔히 쓰이는 전개법이다.
사람이란 대체로 묘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묘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려는 것이 묘하고, 백인백색으로 얼굴이나 성미가 다 각각 다른 것이 또한 묘하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인데도 아는 체하는 것이 묘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건마는 다 뛰려고 하는 것이 묘하다.
추상적 진술 즉 요약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에 좀더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덧붙이거나 자세히 설명하여 연결하는 사람의 일반적 특징을 뒷받침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묘하다'는 특징을 왜 그런지 예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단락을 전개하고 있다.
둘째, 구체적인 것을 일반화한다. 귀납형의 과학적인 방법이다. 사고의 과정과 일치하는 흐름이다.
1906년부터 신문에 소설을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신문에 게재한 소설을 '쇼셜'이라고 불러도, 명칭상의 혼란은 없었으며, '신소설'이라는 말이 성립될 때에도 '신'이라는 접두어가 첨가되었을 뿐이고 '소설'이라는 명칭에는 혼란이나 시비가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고대 소설'이라하든 '신소설'이라하든 '소설'이라는 말에는 변함이 없으며. 용어를 새로이 설정하려는 노력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신소설이 등장하기 전에 소설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이미 일반적인 인식이 이루어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소설의 한 장르인 신소설에서 소설이라는 보다 큰 범위로 넓혀가는 글의 구성을 통해 단락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셋째, 변증법적으로 구성한다.
문학은 인간 체험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나 다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구태여 문학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은 다만 인간 체험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인간 체험의 표현이다.
'문학이 인간 체험의 표현이다'라는 명제에 그러나 '누구나 다 체험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앞 문장의 반대 즉, 대립 명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결론으로 위 두 문장을 종합해서 '문학은 인간 체험의 표현일 뿐 아니라 가치 있는 인간 체험의 표현이다'라고 소주제문을 완성한 것이다.
넷째, 양괄식으로 구성한다. 주제, 설명, 주제의 구성이다. 두괄식과 미괄식을 어우른 것으로, 독자들이 빨리 이해하고 깊은 인상을 갖게 하는 구성형이다.
책의 선택과 독서의 방법은 독서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공부나 연구를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교양을 위해서, 혹은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공부나 연구를 위해서 책을 읽을 때에는 책의 선택도 그에 알맞아야 하고, 방법도 속독이나 통독보다는 정독을 해야 할 것이며, 때로는 내용을 요약하며 읽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가 선용을 위한 독서는 정독보다 주로 통독을 하게 된다. 단순히 어떤 통계 자료나 단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훑어 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훌륭한 독자는 독서의 목적에 따라 독서의 방법을 적절히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양괄식 구성의 소주제문을 문단의 첫머리와 끝머리에 두는 것인데, 즉 처음에 작은 주제문을 두고 이 문장을 보충 설명하는 문장을 뒤따르게 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앞의 내용을 잇는 새로운 소주제문을 완성시키면 된다. 첫문장 '책의 선택과 독서의 방법은 ∼달라진다' 라는 소주제문과 이를 뒷받침하는 '우리는 훑어 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장이 보충적으로 설명되며 결과적으로 '훌륭한 독자는 ∼아는 사람이다'라는 새로운 결론적 소주제문을 만들어 낸다.
다음은 단락을 확장 시켜나가는 방법이다.
첫째, 주제에 대해 반대되는 대립 명제와 찬성하는 동의 명제를 이어가면서 확장해 간다.
부자가 되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자가 될 때까지 행복해지지 못한다. 자기보다 더 큰 부자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여전히 불안과 불행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에 자족하면서 정신적 창조와 인격적 성장을 꾀하는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노리는 사람보다는 얼마든지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소유에서 오는 행복은 낮은 차원의 것이지만, 창조적 활동에서 얻는 행복은 비교할 수 없이 고상한 것이다.
'부자가 ∼ 사로잡힌다'라는 주제문에 접속부사 '그러나를 사용하여, ∼누릴 수 있다.' 라는 대립 명제와 주제문에 동의하는 '소유에서 오는 ∼고상한 것이다'라는 명제로 확장해 가는 것이다.
둘째, 세부적 사실과 그것의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확장해 간다.
의병이란 국난을 당했을 때, 특히 구한말(1985-1910) 일제의 침투에 대항해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대를 뜻한다. 이미 임진왜란 때도 의병은 있었으나, 구한말의 그것은 일본 세력을 배척하려는 강렬한 민족정기와 그 저항 의식의 행동적인 표시였다.
'의병이란 ∼ 민병대를 뜻한다'라는 세부적인 사실에서 구한말의 의병의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문장을 확장해 간다.
셋째, 구체적인 예시에 의한 확장 방법이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서 생겨나는 지식은, 학자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며 구해서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 성질의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집 안에 매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가장이 혼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가족 모두가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아 보면 더 바람직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러한 대화는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대화를 하는 동안에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을 더욱 깊게 할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문장을 확장해 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 얻어낼 수 있다' 고 하는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문장이 확장되어진다.
넷째, 비교나 대조에 의해 확장한다.
인간은 직립 보행을 한다. 직립 보행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손의 자유를 얻고 이로 인하여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유인원은 흩어진 궤짝을 쌓고 올라가 높은 곳에 있는 먹이를 딴다든지, 조류의 경우도 많은 새들이 풀이나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짓기도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것들은 이미 만들어졌거나 자연물 그대로의 것이므로 인간의 그것과는 구별된다.
'일부 유인원은 ∼ 구별된다'고 하는 비교되는 문장을 넣게 되면 확장이 가능하다.
다섯째, 유추에 의해 확장한다.
지구와 화성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은 태양의 혹성으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비슷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자전하고 있는 점이 같다. 그런데 지구에는 물과 공기가 있다. 그러므로 화성에도 물과 공기가 있고 생물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에는 물과 공기가 있다.' 그러므로 화성에도 생물이 존재한다'고 하는 지구와 화성이 유사함으로 지구의 특성이 화성의 특성일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해서 문장을 확장해 갔다.
여섯째, 이유를 제시하여 확장한다.
민족적인 삶이 헐벗고 굶주리고 억압을 받고 있을 때 민족적 양심에 살려는 사람들의 눈물과 노력은 모두 이런 민족적인 가난을 극복하려는 데 바쳐진다. 하물며 민족이 민족으로서의 존재조차 없어지려 할 어두운 시절에는, 민족이 외세의 침략에 눌리어 그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려는 암울한 시절에는, 민족주의자는 자기의 생명조차 민족적인 삶을 되찾는 속에서 불태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민족의 생명, 민족의 존재가 이미 없어져 버릴 때는 민족의 한 사람인 그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생명과 존재조차 없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 때문이다'고 하는 이유를 제시해 문장을 확장해갔다. 문장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전개시키려면 소주제문을 뒷받침하는 다음 문장을 이유를 제시하는 문장으로 보충함으로써 가능하다. 특히 의견을 제시할 때는 반드시 먼저 '왜'를 생각하고, '왜'에 해당하는 문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좋다. 주장만 해 놓고 주장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설득력과 호소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곱째, 논리적 형식 혹은 중요도의 순서에 따라 확장한다.
시의 언어는 사실주의 태도에 도전한다. 시적 언어의 특성에 대한 휠라이트의 견해에 따라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시의 언어는 객관적 대상을 지시한다기보다 대상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시의 언어는 단일 기호로 사용되지 않고 복합 기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시의 언어는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넷째로 시의 언어는 초논리적인 차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시의 언어는 단정적인 말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의 언어는 역설을 특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첫째∼'로부터 '다섯째∼'까지 제시된 내용의 중요도에 다라 나열함으로써 문장을 확장한다.
여덟째, 인과 관계에 따라 확장한다.
어린이의 눈은 선천적으로 기존의 어떤 관념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확보하고 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어린이의 눈은 미리 주입된 선입관에 의해 오염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심과 동심을 동질적인 것이라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린이의∼확보하고 있다.'하고 하는 문장의 원인은 그 다음 문장 '어린이 눈은∼때문이다.'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다.
단락을 구성할 때는 몇 가지 원리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 단락의 전개 원리는 통일성, 연결성, 강조성의 세 가지다. 이것들은 수사학의 3대 원리로도 알려진 것인데, 실제로 단락을 펼쳐 나갈 때에 꼭 지켜야 할 요건들이다.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족한 수필은 짜임새 있는 수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짜임새 있는 글을 쓰기 원한다면 글의 유형이 어떠하든지 일반 단락을 전개할 때에 이 원리들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첫째, 통일성이다.
"통일성의 원리"란 뒷받침 문장들이 소주제와 관련된 것이어야 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뒷받침 문장들은 소주제를 내용적으로 떠받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한 단락의 모든 이야깃거리는 하나의 주제로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사·견해가 주제를 향해 통일되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글의 주제가 "환경오염을 방비하자"라면 그 단락에 씌어질 모든 재료는 그것과 관련되고 그것을 떠받드는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의 주제가 집중적으로 뒷받침되어 글이 제대로 펼쳐지게 되기 때문이다.
통일성을 잘 지킨 글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보여 줄 수 있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
쉽게 바뀌지 않는 입맛은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콩을 이용하여 햄버거용 대용 쇠고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지는 이미 오래이다. 영양가가 높고, 진짜 쇠고기에 들어 있는 몸에 해롭다는 기름기가 없기 때문에 대용 쇠고기가 진짜 쇠고기보다 우수한 식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용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는 진짜 쇠고기의 맛을 익혀 온 사람들이 즐기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분석된 맛은 비슷하지만 대용 쇠고기에서는 진짜 쇠고기에서 익혔던 미세하지만 특이한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용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한 현대과학의 노력이 벽에 부딪치고 있다.
위 글에서는 밑줄 친 소주제문을 나머지 뒷받침 문장들이 일관되게 부각시키고 있어 주제를 명료하게 전달해 준다. 콩을 이용한 햄버거용 대용 쇠고기가 보급에 실패한 예를 들어 사람들의 입맛이 대용식품을 통한 식량부족 문제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잘 인식시키고 있다. 통일성을 어기게 되면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없다.
1) 통일성 원리에 따른 단락 전개 요령
통일성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① 소주제를 단일 개념으로 설정한다.
소주제는 단일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복합개념을 다루면 뒷받침 문장들이 두 가지 이상의 내용으로 나뉘므로 소주제를 일관되게 뒷받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합개념은 생각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킨다. 여러 가지 사항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면 글이 산만해질 위험이 높다. 여러 갈래로 나뉜 생각은 단일한 생각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진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 검은 종이로 돋보기 놀이를 해 본 경험이 있다. 이때 돋보기의 그림자가 넓게 종이를 비추면 그 자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절대로 볼 수 없다. 돋보기 놀이에서 성공적으로 연기를 피어 올리기 위해서는 초점을 마치 바늘구멍처럼 만들어야 한다. 단락 전개에 있어 소주제 설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주제가 단락의 초점이라고 한다면, 초점이 한 곳에 집중되면 될 수록 그 효과가 강렬할 것이다. 따라서 소주제가 단일한 개념인 것이 전달 효과를 크게 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참치 맛이 유별난 것은 그 물고기의 특이한 생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치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맹렬하게 헤엄을 친다. 헤엄을 쳐야 물을 빨아들여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잘 때도 뇌만이 쉴 뿐 헤엄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온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지 않으면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는 바쁜 회유어가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참치의 살은 충분한 산소의 공급으로 붉다. 참치의 살은 충분한 산소의 공급으로 독특한 맛을 내게 된 것이다.
위 글의 소주제문은 밑줄 친 부분이다. 참치의 맛이 유별난 이유로 물고기의 생태라는 하나의 사항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야기가 한 곳으로 모아짐을 느낄 수 있다. 단일개념의 소주제는 읽는 이에게 통일된 인상을 준다. 통일된 인상은 글의 핵심내용을 쉽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소주제문을 "참치는 보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라든가, "참치 맛이 유별난 것은 오래 헤엄을 칠 뿐만 아니라 깨끗한 물에만 살기 때문이다."와 같이 복합 개념으로 하였다면 위와 같이 통일성 있는 서술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두 가지의 사항을 각기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에 일관된 인상을 주기도 힘들 것이다. 이런 경우 읽는 이가 글쓴이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다음 보기처럼 소주제가 두 가지 이상의 사항을 담고 있는 경우, 한 단락 내에서 통일성을 꾀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장단점을 알아보려고 한다. 우선 장점으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말이 있듯이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반대로 단점은 성급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 폐단을 들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교통사고를 들 수 있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운전을 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고 또 천천히 횡단보도를 지나가면 될 것을 너무 서두르다 보니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위 글은 소주제가 두 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 현대인의 '빨리빨리 습성'에 대해 '장점'이나 '단점' 중 하나만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서술해야 할 터인데,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이런 소주제로 통일성을 기하기 어려운 까닭은 두 가지의 소주제를 하나의 단락에서 한꺼번에 뒷받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위의 글을 통일성 있는 단락으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현대인의 조급증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직장에서 근무하는데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고 또 잠자는 데에 시간을 빼앗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을 서둘러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마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이 짧은 시간에 경제적으로 많이 발달한 데에는 우리 민족의 조급증이 일부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단점이 오히려 더 많이 발견된다. 일을 조급하게 처리하다 보면, 부실한 면이 생길 우려가 많다. 삼풍백화점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사고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 주는 예이다. 우리의 조급증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인명은 둘째 치고 실제로 이를 복구하는 데에만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고 경제적 손실이 있었다. 결국, 짧게는 조급증이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준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갉아 먹은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교통사고 1위라는 불명예를 안은 데에도 우리의 조급증이 한 원인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운전을 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데에도 너무 서두르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다.
위의 보기는 앞의 것을 두 개의 단락으로 꾸며본 것이다. 장단점을 한 곳에 몰아 한두 줄 뒷받침하고 마는 것보다 훨씬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됨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복합개념보다는 단일개념을 소주제로 다룰 때 소주제가 더욱 명확하게 전달된다.
소주제를 단일개념으로 설정해야 하는 또 한 이유는 일반으로 한 단락의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소주제는 한 단락의 중심내용인데, 길지 않은 글에서 복합개념을 다루면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서술이 되기 쉽다. 구체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추상적, 피상적 서술은 읽는이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뒷받침문장의 내용이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되면 각각의 내용을 충분히 드러낼 만큼 뒷받침하기 어렵다. 복합개념의 소주제는 글의 전달 효과를 반감시킨다.
② 소주제를 한정된 개념으로 설정한다.
소주제를 한정된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통일성을 기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준다. 앞서 설정에서 주제의 범위가 원고의 분량에 맞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같은 이유에서 소주제 역시 단락의 길이에 맞게 그 범위가 결정되어야 한다. 소주제의 경우 범위가 좁아서 문제가 되기보다는 범위가 넓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개념 자체가 막연하고 너무 범주가 넓은 것은 거기에 알맞은 뒷받침문장을 제시하기 힘들다. 설사 억지로 뒷받침 서술을 한다고 하더라도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말 우려가 있다. 특히 소주제는 한 단락의 주제이므로 충실한 뒷받침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음 보기는 소주제를 상당히 한정된 개념으로 잡아서 집중적으로 뒷받침을 함으로써 통일성을 잘 이루고 있다.
이 낯빛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 표정 훈련보다는 남들의 낯빛을 잘 읽는 섬세한 감수성이나 눈치 훈련을 쌓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 그러면 무뚝뚝해 보이는 한국인의 불친절 속에서도 오히려 판박이 일본인의 미소보다도 더욱 따스한 친절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웃는 얼굴에서도 무서운 태풍의 예고를 들을 수가 있다. 한국 사회 전체에도 그리고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것도 그런 낯빛이다.
위 글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가운데 오직 '낯빛'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뒷받침문장들도 모두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낯빛을 제대로 읽어야 함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내용적으로 빗나감이 없도록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소주제가 되도록 한정적인 개념이어야 한다.
소주제를 너무 포괄적인 것으로 잡으면 일관된 뒷받침을 하기가 어렵다. 이를테면 위 글에서 "한국 사람을 제대로 모르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와 같은 포괄적인 소주제를 정하였다면 일관성 있는 뒷받침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어떤 면에서 한국 사람을 아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인지를 밝혀야 하고, 사회, 경제, 관습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사람을 모르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제시해 주는 뒷받침 문장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단락에서 몇 가지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글을 통하여 이 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흡연은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이다. 흡연은 본인에게 직접, 간접으로 여러 가지 병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공기를 오염시킴으로써 간접흡연을 통한 여러 병을 유발시킨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상 위험은 흡연 기간 및 흡연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흡연기간이 길고 흡연량이 많을수록 건강에 더 큰 손상을 주게 된다.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10-20년 후에야 폐암, 호흡기 질환 등의 발병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그 폐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단락은 '흡연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포괄적인 범주이므로 구체적이고 집중적인 뒷받침을 하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소주제를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한정하여 집중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흡연이 직접, 간접으로 유발시키는 질병은 여러 가지이다. 암, 만성기관지염, 폐렴, 폐기종 등의 호흡기계 질환, 동맥경화증, 심근경색증, 식욕감퇴, 위산과다증, 위궤양 등 소화기계 질환, 임산모에게 미치는 영향, 치아질환 등 다양하다. 흡연은 본인에게 직접, 간접으로 여러 가지 병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공기를 오염시킴으로써 간접흡연을 통한 여러 병을 유발시킨다.
위의 글은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에서 "발생 가능한 질병"이라는 한정된 개념으로 소주제를 설정하여 단락을 펼친 것이다. 일관된 뒷받침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통일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③ 소주제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뒷받침문장을 선택한다.
통일성을 위해서는 소주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뒷받침문장만 선택하여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주제와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나 무관한 내용, 나아가서 반대되는 내용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 뒷받침문장의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소주제를 부각시키는 내용이 아닐 경우에는 오히려 통일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의 단락은 소주제를 직접적으로 부각시켜 주는 뒷받침문장들로만 구성되어서 주제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는 일을 할 때 모든 것을 잊고 그 일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잡념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물질적 보상과 정신적 만족, 보람 등도 얻는다. 또 주위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믿음과 존경을 보낸다. 정신적인 성취감과 주변 사람들의 눈길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주요 요소이다.
위 글에서 뒷받침 문장은 모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밑줄 친 소주제가 분명하게 떠오른다.
소주제와 무관한 뒷받침 문장은 글의 통일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다음 글의 소주제는 "노인들의 경험 존중"이다.
노인들의 경험은 존중되어야 한다. 인생에서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어느 독자 투고의 예는 노인들의 경험이 왜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감기라고 진단하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보시고 "홍역"이라고 하셨단다. 할머니 덕분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홍역을 치렀다는 내용이었다. 홍역은 증세가 감기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경험 많은 할머니는 의사보다도 더 정확한 진단을 했다. 이렇듯 노인들은 우리보다 먼저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 왔고, 그 결과 대처 방안과 좋고 나쁜 것 등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생 선배의 경험을 존중하라는 것이지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다. 노인들의 말대로 한다고 해서 그 책임을 노인이 지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의 경험은 존중하되 자신에게 적절히 맞춰 수용해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실제 예를 들어 흥미 있게 서술하고 있지만 이글의 뒷받침 문장이 통일성을 어기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위 글에서 통일성을 어기는 뒷받침 문장은 밑줄 친 부분들이다. 이 부분은 "경험의 선별 수용"에 관련된 내용으로 "경험 존중"과는 다른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과감하게 삭제를 하는 것이 통일성을 기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아니면 밑줄 부분의 내용을 "경험의 선별 수용"으로 바꾸어 다른 단락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둘째, 연결성이다.
연결성의 원리란 소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도록 뒷받침문장들을 늘어놓는 순서를 말한다. 소주제와 관련된 재료만을 선택하는 것이 통일성이라면, 그 선택된 재료를 알맞게 배열하는 것이 연결성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아무리 주제에 맞는 좋은 재료들이라도 적재적소에 배열하여 글을 전개하지 않으면 주제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집을 지을 때 주어진 재료들을 올바른 곳에 적절하게 사용하여야 튼튼하고 좋은 집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2) 연결성 원리에 따른 단락 전개 요령
연결성의 원리에 쓰이는 순서는 대개 세 가지이다.
① 시간적인 순서
시간적인 순서에 따른 연결은 말 그대로 시간 순서에 따라 글을 구성하는 것이다.
토요일 2시에 아빠와 동생을 동행해서 용산 전자랜드에 갔다. 먼저 토요일 마다 열리는 토요 장터에 가서 어떤 물건들이 있나 살펴본 후 게임 CD-ROM 세 장을 샀다. 그러고 나서 전자수첩을 파는 매장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수첩을 구입하고, 카메라를 취급하는 매장에 갔다. 그냥 구경만 하려 했는데 내 카메라가 너무 오래 됐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빠가 선뜻 카메라를 사 주셨다. 카메라는 기뻤지만 엄마의 눈초리가 약간은 두려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거의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위 글은 토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적은 글이다. 이처럼 시간적인 순서에 따른 연결은 시간의 흐름이 개입된 사건을 내용으로 할 때 주로 사용하게 된다.
사건을 기술할 때 유의할 첫째 사항은 사건을 선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주변의 잡다한 사건을 모두 기술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라고 하면 있었던 일들을 잡다하게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변의 잡다한 일들을 그저 늘어놓기만 해서는 좋은 글을 구성할 수 없다. 위 글은 토요일 오후의 전자상가 나들이에 초점을 두고 쓴 것이다. 전자상가에 가는 동안의 일, 토요 상가를 둘러 볼 때 있었던 일 등을 모두 생략하고 자신이 구입한 물건이 있는 경우만을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서술에서는 적절한 사건 선택이 중요하다.
사건 선택에 덧붙여 주의할 것은 사건 가운데 어떤 점을 부각시켜 글을 구성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을 몇 개로 한정했다 하더라도 그 사건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놓기만 해서는 알맹이 있는 글이 되지 않는다. 그 사건을 선택하여 글을 쓰는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글을 쓰는 것이 보다 알맹이 있는 글을 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위 예문은 알맹이가 빠져 있는 글이다. 예문을 카메라를 얻어서 기쁜 마음에 초점을 두어 구성했다면 보다 나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카메라가 생겨서 기쁜 날이다. 2시에 아빠와 동생을 동행해서 용산 전자랜드에 갔다. 먼저 토요일마다 열리는 토요 장터에 가서 어떤 물건들이 있나 살펴본 후 게임 CD-ROM 세 장을 샀다. 그러고 나서 전자수첩을 파는 매장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수첩을 구입하고, 카메라를 취급하는 매장에 갔다. 그냥 구경만 하려 했는데 내 카메라가 너무 오래 됐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빠가 선뜻 카메라를 사 주셨다. 카메라는 기뻤지만 엄마의 눈초리가 약간은 두려웠다.
위 글은 첫 예문에 밑줄 친 부분만을 첨가한 것이다. 한 문장을 덧붙였을 뿐인데도 글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처럼 사건을 선택했더라도 그 사건에서 무엇을 부각시켜 글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을 차례대로 서술할 때 유의할 사항은 사건에 대한 글쓴이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랑 사건만 적는 것은 글을 딱딱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예문은 밑줄 친 부분의 있고 없음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매우 달라진다. 한두 문장의 감정 표현이 글 전체의 분위기를 크게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무런 감정 없이 사건의 순서에 따라 서술된 글은 사건 보고서와 같은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읽는 이에게 공감을 형성하고, 나아가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면 사건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② 공간적인 순서
공간적인 순서에 따른 연결은 고정된 사물을 대상으로 할 때 주로 사용된다. 사건처럼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면 공간적인 순서보다 사건의 진행에 따른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하므로 공간적인 순서에 따른 연결이 별다른 전달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
다음 글은 학교 입구에서 중문까지의 모습을 마치 눈앞에 보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처음 학교의 대문을 들어서면 먼저 길게 늘어선 왕복 6차선쯤 되는 도로가 시선을 끈다. 대문을 지나면 먼 곳에 학교의 윤곽과 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간혹 안개가 낀 날이면 왕방산 아래 학교의 모습은 마치 별천지의 모습처럼 보인다. 대문을 지나면 길 양쪽 가장자리에 가로등과 함께 봄에는 개나리,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중문까지 서 있다. 중문에 이르기 전에 두 개의 차량 방지 턱이 있는데 한 개의 턱을 넘으면 학교의 윤곽을 거의 정확하게 볼 수 있고, 마지막 한 개의 턱을 넘으면 중문에서 수위 아저씨와 중문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공간적인 순서에 따른 단락 연결은 마치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듯이 대상을 보여 주게 된다.
공간적인 순서에 따라 글을 쓸 때 유의할 점은 시점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서술하든가 혹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전체를 서술하는 식으로 서술의 시점을 고정하여야 한다. 시점을 고정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 공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글처럼 입구에서부터 중문까지의 모습이든가, 중문에서 입구까지의 순서로 글을 쓰는 것이 이해를 돕는 한 방법이다.
공간적인 순서에 따라 글을 쓸 때 공간의 모습을 상상할 만한 적절한 비유가 있는 것이 좋다. 흔히 외부적인 모습을 서술할 때 지나치게 딱딱하게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의 모습 서술도 중요하지만, 그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유는 글을 윤택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위 글에서 밑줄 친 부분과 같은 표현들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풍경 서술을 부드럽게 해 준다.
③ 논리적인 순서
논리적인 순서란 시간적, 공간적 순서에 따르지 않은 모든 경우를 말한다. 시간적, 공간적 순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물론이고, 그런 순서가 존재하는 경우라도 실제 글에서 시간적, 공간적 순서만으로 글을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의 경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시간이나 공간적인 순서와 관계없이 글의 연결 순서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적 순서에 따른 연결은 "연결성 원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거미는 실을 이용하여 삼차원의 세계인 하늘까지 정복하고 있다. 아지랑이 끼는 봄날이나 가을철에 알에서 깨 나온 거미 새끼들은 며칠 동안 서로 오순도순 한데 뭉쳐 있다가 얼마 자라면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저마다 가까운 풀줄기나 나무 가지를 타고 높이 기어 올라가서, 여덟 개의 다리를 발돋움하여 쭉 뻗고, 물구나무 서는 것처럼 배를 하늘로 치켜들고 실 젖에서 수십 가닥의 실을 허공으로 뿜어낸다. 이 실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웬만큼 올라가면 실의 부력이 거미의 무게를 이겨내게 되고 바로 이때 거미는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게 된다. 바람을 잘 받은 거미는 단번에 높게 멀리 날아가지만 바람을 타지 못한 거미는 바로 땅 위에 떨어진다. 이렇게 떨어진 것은 다시 높이 기어 올라가서 물구나무를 서고 실을 뽑아내는 시지프스의 고역을 몇 차례씩이나 되풀이한다. 운 좋게 상승 기류를 잘 탄 거미는 하늘 높이 떠올라서 조금 두렵기도 하겠지만 희망에 찬 삶의 새 출발을 위하여 정처 없이 머나먼 길을 떠난다. 날아가다 바람이 약해지면 땅에 떨어져서 새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미가 거미줄을 타고 공중을 나는 것을 유사 비행이라 하며 거미는 이 방법으로 차츰 그들의 생활권을 넓혀 간다.
위의 글은 거미가 비행을 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연결성을 잘 지키고 있으므로 거미가 날아가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연결성의 원리에 충실하지 못한 글은 독자들에게 혼란을 심어 줄 수 있다.
다음은 "오염된 물로 인한 생명 파괴 현상"이라는 주제로 서술된 글이다.
1)인간의 생명은 여러 가지의 원인으로 침해받을 수 있는데 그중 물의 오염이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2)일본에서 수십 년 전에 발견한 이따이이따이 병은 물에 수은이 녹아 흘러 기형의 인간을 만들어 낸다. 3)논의 흙을 뒤엎어 보면 무한정 잡을 수 있었던 미꾸라지도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고, 개구리의 무리들도 이제는 보기가 힘든 지경이다. 4)이러한 수질오염은 생태계마저 파괴하는 정도이니 수질오염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인간 생명인들 온전할 수 있겠는가.
위 글에서는 문장 1)-4)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인간 생명이 위협 받는 요소를 "물의 오염"이라고 할 때 문장 3),4)의 내용을 들고 나서 문장 2)의 서술을 연결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문장 2)는 문장3)과 4)의 내용들이 진행되고 난 뒤 결과적으로 제안함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곧, 기형의 인간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수질 오염이 가져다주는 최악의 상황인데, 이를 곤충의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내용보다 앞서서 제시하였기 때문에 논리적인 순서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이 문장 2)와 3), 4)의 순서를 바꾸어서 다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1) 인간 생명은 수질 오염으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물의 오염이 그 중의 하나이다. 3)(지금 우리 사회의 수질 오염의 정도는 심각하다. 몇 년 전 만 해도,) 논에서 무한정 잡을 수 있었던 미꾸라지도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고, 개구리의 무리들도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4)(이런 생태계의 파괴는 물이 오염되면서 생겨난 현상들이다.) 이처럼 기초 생태계마저 파괴되는 정도이니 수질 오염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인간 생명인들 온전할 수 있겠는가. 2)(한 예를 들면,) 일본에서 수십 년 전에 발견된 이따이이따이 병은 물에 수은이 녹아 흘러 기형의 인간을 만들어 낸 경우이다.
위 의 글은 앞의 글에서 잘못된 뒷받침문장들의 연결 순서를 바로 잡고 괄호 안의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위의 예문을 볼 때 뒷받침 문장의 순서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글의 논리성과 전달 효과가 크게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곤충들의 생태계와 관련된 문장 3)을 앞으로 옮기고, 인간의 종말과 관련된 문장 2)를 뒤로 옮긴 것뿐인데도 두 번째 문장이 첫 번째보다 논리적이다.
셋째, 강조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조성의 원리"란 읽는 이가 소주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단락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글의 소주제를 강도 높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글을 강조하는 방법에는 분량에 의한 것, 위치에 의한 것, 수사법에 의한 것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소주제를 돋보이게 하는데 유용한 것은 분량에 의한 강조이다. 분량에 의한 강조는 소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다른 강조법들은 글의 일부분만을 돋보이게 할 뿐이지만, 분량에 의한 강조는 소주제 자체를 강조하는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생활문 쓰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강조성의 원리란 분량에 의한 강조이다.
강조성의 원리를 충실히 지킨 글은 독자를 쉽게 납득시킬 수 있다. 다양한 뒷받침문장들이 독자에게 의혹이 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소주제를 부연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 보기를 보자.
1) 나이를 먹을수록 부모는 기꺼이 자녀들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줄인다. 2)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 전공과목을 고를 때나, 배우자를 고를 때에 부모는 조언을 하는 구실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3) 자식 위에 군림하여 명령하지 않는다. 4) 군림할 수 있었던 처음 육칠 년을 두고 쓸데없는 회상을 하지도 않는다. 5) 극단적인 예로, 일류 대학을 다니는 귀한 딸이 흑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더라도 기껏 "얘야,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행복하지 않다."라고 부모는 말할 수 있을 뿐이다. 6) 이러한 보기는 실제로 얼마든지 있다. 지금부터 칠팔 년 전, 한 때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냈던 거스크 씨와 그의 부인은 딸이 흑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혼례식에 참석하여 그들의 혼인을 축복해 주었다.
위 글에서는 서양 부모들이 아이들을 주체적으로 기르기 위해 그들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줄인다는 소주제를 다섯 문장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 영향력을 줄이는가, 불만은 없는가를 설명하고 배우자 선택에 대한 실례를 들어 소주제를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듯 충분한 뒷받침은 독자에게 주제를 납득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강조성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은 글은 독자를 납득시키지 못하므로 효과적인 소주제 전달이 어렵다.
형제간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1)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2) 형제 사이는 항상 얼굴을 보고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칫 자신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을 생각 없이 할 수 있다. 3) 특히 말의 경우가 그렇다. 4) 편하기 때문에 하기 쉬운 말의 실수로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위 글은 "형제간에도 예의를 지키자"라는 주제로 쓰인 글인데, 서술이 불충분하여 글쓴이의 의도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고 있다.
위의 글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면 글쓴이의 의도가 좀더 분명해진다.
형제간이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수 있어야 한다. 1) 우리의 속담 중에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가까운 이들끼리 너무 편하게 대하다 보면 자칫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2) 그런데, 우리의 주변에서는 형제나 자매들끼리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언니나 형을 "야!"나 "너"로 바꾸어 불러 서로 감정 대립을 일으키는가 하면, 심지어는 치고 박고 싸우기까지 하여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입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3) 이것은 아마도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어쩜 가장 편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생기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또 오래가게 된다면 가깝고 편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과연 자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와 가깝게 지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항상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때때로 서로를 의지하는 그런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예문은 첫 번째 예문을 강조성의 원리에 맞도록 고쳐 써 본 것이다. 소주제문을 뺀 문장 1)-3)에 각각 괄호 안과 같은 뒷받침 문장들을 보충하였다. 첫 번째 예문보다 충분한 예시와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형제간에 예의를 지키자"는 글쓴이의 의도가 한결 명확하게 전달된다.
3) 강조성 원리에 따른 단락 전개 요령
강조성의 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락을 구성할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① 소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강조성의 원리에 충실한 글을 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소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하려는 마음이다. 글쓴이 자신은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그 글을 처음 읽 는이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읽는 이가 궁금해 하지 않을 정도로 소주제에 대해 뒷받침을 해야 한다. 각 단락마다 소주제를 자세히 부연 설명한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면 자연히 강조성의 원리에 맞는 글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추상적인 이야기만 불쑥 한두 문장 쓰고 부연 설명하지 않은 채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보기의 글은 우리의 잘못된 소비 의식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풀이해 주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의 소비는 과연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되도록 하는 소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현대인은 사람으로서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기 자신의 삶의 생산적인 충실화를 위해서 물품을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물품을 실제로 소비하며 쓰려고 사들이기보다는 다만 그것을 소유하려고 사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사회적인 위신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들인 그 소유물에 대하여 각별한 애착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새로운 꼴이 나옴으로써 이제는 헌 것이 되어 버린 것을 아낌없이 내버리고 이 "최신형"을 사서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품 자체가 아니라 그 물품의 "새로움"이다. 이리하여 최신형은 만인의 꿈이 된다. 그 꿈에 견주면 사용 가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대인은 자기가 참으로 바라지 않는 것도 소유하려고 한다. 그 까닭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갖고 있음에 있으며 자기도 그것을 가짐이 그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줌에 있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으로 하여금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케 하는 까닭일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새로운 신분은 생산 수단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에 따라서가 아니라, 소비 수단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규정하는 것 같다.
위 글에서는 현대인의 소비 행태가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님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신분 과시용으로 단지 "소유"하기 위해서, 새로움을 위해 "애착도 없으면서", 또 남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참으로 바라지 않는 것까지" 소유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충실한 설명은 읽는 이들에게 "아! 정말로 우리의 소비 의식이 잘못되었구나."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② 가장 두드러진 곳에 소주제문을 명시한다.
소주제를 강조하는 방법 가운데 또 한 가지는 소주제문을 명시하는 것이다. 소주제문이 명시되지 않으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무리 명확한 소주제를 설정했다 하더라도 읽는 이가 그것을 파악해 내지 못한다면 그 소주제는 가치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설정한 소주제를 읽는 이 역시 쉽게 추출해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주제를 문장으로 드러내야 한다.
소주제문은 단락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드러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단락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는 위치는 글의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이다. 따라서 이 곳에 소주제문을 제시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효과적으로 강조된다. 중괄식 단락은 소주제를 강조하는 힘이 약하다. 소주제가 단락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앞뒤에 있는 뒷받침 문장에 소주제가 파묻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괄식과 미괄식, 그리고 양괄식 단락을 활용하는 것이 강조성을 기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다음 글은 소주제문이 단락의 앞 뒤 부분에 놓여 있는 양괄식 단락이다. 이 글의 소주제를 잘못 파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물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 많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재산이 족쇄가 되어 불행을 부르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형제간, 또는 부모 자식간에 재산 때문에 소송한다든가 재산 때문에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는 경우는 오히려 물질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이다. 얼마 전 아버지를 살해한 대학 교수와 부모를 모두 살해한 해외 유학생이 그 극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물질이 풍요한 만큼 정신이 풍요로워진다면 좋겠지만,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풍요는 비례 관계에 있지 못하다.
이처럼 단락의 첫 머리나 끝에 소주제문이 놓이면 읽는 이가 소주제를 찾기 위해 애 쓸 필요가 없어진다.
두괄식 구성과 미괄식 구성은 내용 전달의 측면에 차이가 있다. 두괄식 단락은 정보 전달력이 높은 반면에 미괄식 단락은 정보 전달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두괄식 구성은 단도직입적이므로 읽는 이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지만, 미괄식 구성은 이러한 부담을 완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상대방의 이성에 호소해야 하는 글이면 두괄식 구성이 바람직하고, 상대방의 감성에 호소해야 하는 내용일 경우에는 미괄식 구성이 좋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글과 함께 평가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미괄식 구성이나 양괄식 구성이 적합하다.
소주제문을 명시하는 방법 중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명확한 표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눈에 뜨이는 위치에 소주제문을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보다 나은 주제란 글쓴이의 가치관, 생각 등이 포함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주제문이 불확실한 어투나 의문으로 표시된다면 글쓴이의 생각이 확고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어렵다. "....인지도 모르겠다"라든가 "....일지도 모른다", "...인 것 같다", "...일 듯하다" 등의 불확실한 표현은 글쓴이가 자신의 판단, 가치관 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주제가 글쓴이의 주장을 내용으로 한 것이라면 더더욱 명확한 표현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확신하지 못하는 사항을 소주제로 설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음은 형식으로 볼 때 양괄식 단락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한글이 우수한 글자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자인 듯하다. 얼마 전 본 "세계로 한글로"라는 비디오에서는 외국의 여러 학자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글이 우수한 글자가 아니라면 외국의 학자들이 그런 말을 하겠는가. 또 한글은 기본 글자를 바탕으로 하여 획을 더하거나 변형시켜 글자를 만든다. 음성학적으로 관련 있는 글자들은 모양에서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역시 한글은 우수한 글자가 틀림없는가 보다.
이 글을 읽고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자라는 확신을 가지기는 곤란하다. 우선 글쓴이조차도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자"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글쓴이조차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항에 대해 읽는 이가 동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글쓴이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소주제문은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자이다"나 "한글은 우수한 글자가 틀림없다"로 표현되었어야 한다. 글쓴이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 보기처럼 불확실한 표현을 했다면 표현상 오류를 범한 것이 된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고, 그로 말미암아 정확한 소주제 전달 효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단락의 소주제문을 뒷받침하는 여러 문장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문장과 문장의 흐름이 잘 통하게 된다. 따라서 글을 쓸 때에는 통일된 주제를 일관성 있게 진술하는 데 필요한 문장만을 골라 단락을 짜야한다. 뿐만 아니라 한 단락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주제문과 뒷받침문장이 모여서 완전해진다. 단락의 이러한 성질을 완결성이라 한다. 문장이 모여 단락이 되고, 단락이 모여서 한 편의 완성된 수필이 된다. 그러므로 이 원리는 단락쓰기뿐 아니라 단락과 단락 사이 한 편의 글 전체에 모두 적용되는 글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