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자르르~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돼지수육. 청초한 빛깔의 맑은 상추쌈 위에 턱, 하니 올린다. 이 틈을 파고드는 우렁이쌈장은 새로 만났지만 마음 잘 맞는 친구다. 이렇게 완성된 한 쌈의 쌈. 그 맛이 던져준 감동은, 이 한 마디면 족하다. 아, 좋다.
오늘은 이 범상치 않은 쌈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땅의 모쏠 노총각 자취남들의 영원한 판타지인, ‘우렁이’가 그 주인공이다. 이름하여 ‘우렁이쌈밥정식’. 미안하지만 식당에 아름다운 각시는 없다.
‘산수쌈밥’은 산수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른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문 앞으로 사람들이 북적북적이다. 알고 보니 여기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쉽게 들어설 수 없는, 산수동의 핫플이었다! 호기롭게 그냥 들이닥친 우리는 20분을 대기해야 했다.
인테리어가 고급진 건 아니다. 요즘 젊은이 취향도 아니다. 그냥 보통의 기사식당이나 백반집 같다. 결정적으로, 우렁각시 같은 미녀 종업원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인기가 있지?
예약 손님들 틈으로 겨우 자리가 났다. 습관처럼 메뉴판을 찾는다. 식당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처럼, 우리도 두 메뉴를 주문했다. 우렁이쌈밥정식(1인 9,000원)과 전복들깨탕(1인 15,000원)이었다.
우렁쌈밥정식은 2인이상 주문가능하고, 전복들깨탕은 1인도 주문가능하다.
쌈밥정식이 나오기 전에 전복들깨탕이 먼저 도착했다. 크림스프 같은 점도의 뽀얀 국물에 우선 홍채의 긴장이 풀린다. 그 다음은 동공이 커질 차례다. 큼지막한 전복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이 가게 앞엔 작은 아쿠아리움이 있다. 누군가가 전복들깨탕을 주문하면, 아주머니가 거기서 전복 한 마리를 즉석에서 잡아 올린다.
지금 우리 눈앞의 전복 2마리(1인분)는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통실통실한 이 녀석, 평소 아쿠아리움서 영양보충 제대로 한 놈인 것 같다.
이제 먹음직스런 이 음식을 내 안으로 초대할 차례다. 들깨 특유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너무 걸쭉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은 따뜻한 국물을 한 숟갈 들이켜니, 진하고 깊은 맛이 몸 안 곳곳 스며들기 시작한다. 아, 참 구수하다.
오늘의 메인, 우렁이쌈밥정식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야들야들한 돼지수육, 싱싱한 쌈채소들, 먹지 않아도 맛있는 줄 본능이 아는 나물들. 그리고 쌈장위로 수북한 우렁이와 우렁이된장찌개, 마지막으로 빛깔부터 새콤달콤한 우렁이회무침이다.
1인 9천원의 가격이 싸다고 느껴질 정도로 반찬 수가 엄청나다. 허나 작은 밑반찬 하나라도 소홀히 내지 않았다. 특히, 들깨와 참기름 등으로 다양하게 버무린 나물의 맛이 기막히다.
미각을 넘어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맛이다. 함께 나오는 된장찌개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다.
자, 이쯤에서 오늘의 주인공격인 우렁이를 소개해보자. 사실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는 아니다. 서두에 썼듯이, 새로 사귀었지만 마음 잘 맞는 친구 같은 느낌? 쫄깃하면서 톡 터지는 육즙이 골뱅이스럽기도 하다. 영상과 같이 쌈장과 쓱쓱 버무린다.
이 정식메뉴의 ‘발견’이라 칭할 만한 게 바로 수육이다. 윤기 좋고, 야들야들 식감 좋고, 적당한 육즙 머금어 더 좋다. 쌈채소에 수육 하나 올리고, 우렁이 품은 쌈장 콕 찍어 넣어 먹자.
아삭한 채소와 함께 풍부한 수육이 쫄깃한 우렁이와 섞여 불꽃축제 폭죽처럼 입안에서 터진다. 잔치로구나!
우렁이회무침은 무와 우렁이가 새콤달콤한 양념에 잔뜩 버무려져 있다. 비주얼처럼 그 맛 또한 강렬하다. 전반적으로 간이 심심한 다른 메뉴들보다 조금 ‘튀어서’ 아쉬울 정도. 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우렁이에 중독된 내 혀는 자꾸만 회무침을 갈구했다.
우렁각시 설화의 결말은 여러 가지다. 총각이 우렁각시를 원님에게 스틸 당한 비극적 결말도 있고, 둘이서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았다는 해피엔딩도 있다. 비극적 설화와는 달리 실제 우렁이의 맛은 해피엔딩에 가깝다.
특히 쌈채소와 수육, 나물 등과 같은 든든한 조연들이 받쳐주는 산수쌈밥은, 흥행성공이다. 식당 앞 문전성시의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