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인간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외침과 속삭임> 감상문
영어교육과 2021190262 임찬호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까지 논의된다. 아그네스는 죽음을 앞두고 자매 둘과 하녀 안나의 태도를,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할 기회를 얻는다.
인간관계와 소통의 한계는 이 영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아그네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자매들과 나누는 대화는 감정의 교류가 부족해 보인다. 마리아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 아그네스를 돌보려 하지만, 그 뒤에는 깊은 공감이나 진정성은 없어보인다. 카린 역시 아그네스의 고통을 외면하며,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아그네스를 ‘치료’하려 한다. 사실 많지도 않은 영화의 대사에서 죽어가는 아그네스를 걱정하는 말들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말없이 아그네스를 안아주는 안나가 진정으로 소통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안나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사랑은 조건 없이 아그네스를 돌보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매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얽혀 아그네스를 외면하며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안나의 사랑은 결국 아그네스를 구하는 유일한 힘이 된다. 아그네스의 부활 장면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한 관객에게 방점을 찍는 장면이었다. 부활한 아그네스는 자매들에게 차례로 연민을 구하지만, 그들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직 안나만이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아그네스를 마지막까지 돌보며 사랑을 실천한다. 안나가 축 처진 아그네스를 안고 있는 장면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은 기독교적 상징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임을 암시한다. 아그네스의 죽음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을 통한 구원의 여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편, 이처럼 생과 사를 끊임없이 오가는 아그네스의 고통과 고독은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를 살펴보게 한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며, 자매들은 그 죽음에 대해 회피하고 도망친다. 그러나 죽음은 그들을 구속하지 않으며, 각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독하게 죽음에 다가간다. 자매 두 명과 안나, 아그네스. 이 두 집단의 죽음에 대한 대조적 방식은 색채 사용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빨간색은 아그네스의 고통과 죽음을 상징하며, 그녀의 방은 끝없이 고통받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빨간색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러한 빨간 방에 들어가 빨간 이불을 말없이 덮어주는 이는 안나다. 반면, 자매들이 입고 있는 흰색 의상은 그들의 냉담함과 내면의 공허함을 대조적으로 나타낸다. 빨간색을 덮기 위해 하얀 천을 덧씌우는 등 아그네스의 고통을 가리려 하지만,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화면 전환은 눈이 아플 정도의 빨간색 화면을 삽입함으로써 나타난다.
죽음까지도 계속된 인간 관계에 대한 물음은 현재 인간들이 어떻게 죽음과 죽어가는 이를 대하는지와, 죽음 이후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답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