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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작품
성 백원
오래 되었어도
어제 만난 것처럼
힘이 들어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동창들이 웃음으로 걸어 가는 길
애기똥풀 여기 저기서
환하게 손을 흔들고
하늘에서 내리는 햇살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정의 탑으로 선다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친구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던
철없는 시절의 친구들을 보내는 밤길엔
별들이 떨어져 꽃술로 피어난다
오월의햇살----성백원
간밤 비에 젖은
쓰레기 더미에
햇살이 곱게 내린다
찢어진 깃발은
무지개 다리에서 불어오는
힘찬 바람으로 나부낀다
구겨진 생각으로
남루한 일상들이
초록 빛으로 맑아진다
등나무 아래 짐을 부리고
도란도란 엮어가는 아이들의 내일은
차별없는 향기로 말갛게 다가온다
오월은 오월의 삶은
하늘과 땅이 요동치는 계절
햇살과 바람과 초록 빛이
지친 한 세대의 풀꽃들에게
다시 살아 보자고 나붓하게 속삭인다
비오는 오월 칠일
성백원
누구라도 자유하고 싶은 오월의 첫 주말
빛바랜 감성의 꾸겨진 뭉치들이 젖어간다
이 비가 지고 나면 봄 햇살에 몸을 말린 나뭇가지마다
푸르기는 같아도 꼴과 몸이 다른 이파리들이
오월의 기억 속으로 환생하리
저마다 앙금으로 남아 있는 고통이거나
남다른 화창한 추억일지라도
오월의 언저리를 스쳐 지나치지는 못하리
고층 빌딩을 맴도는 넥타이들도
질척거리는 산동네 딱딱한 가게방 판자벽에도
오월의 비 끝의 탐스런 바람은 차별을 두지 않으리
변두리 삯바느질 아이들이라도
꿈의 빛깔은 계곡물과 다르지 않으리
오월을 맞이하는 나무들의 색다른 아픔처럼
철모르는 아이들 향기도 저와 같으리
초롱초롱 이슬처럼 매달린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오월의 첫 주말
속삭이는 숲길을 도란도란 걸어가리
이태곤
장미와 백합
이태곤
장미군 과 백합양이 만났습니다.
서로 같은 꽃이기에 스스럼없이 포옹하고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온 몸에 가시가 돋쳤고
그녀의 진한 향기는 코를 찔러,
그 가시에 아파하고
그 향에 힘들어 해서.
그제야 알았습니다.
둘은 꽃은 같은 꽃이되
그는 나무숲에서 왔으며
그녀는 풀숲에서 왔다는 사실을,
그는 하늘과 더불어
그녀는 땅과 더불어
겨울을 난다는 사실을,
가시는 못된 자를 향한 칼과 방패요
향은 멀리멀리
참사랑의 트럼펫 연주라는 사실 -.
그렇다면 둘은 어떻게 하나 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속받아
창조이상을 완성한
꽃님이 되면 자연스레 하나되죠.
햇살을 그리워하고
단비를 목말라하며
대지의 꿈을 펼쳐,
먼 훗날
궁에서 피어난
재창조의 비밀을 얘기하겠죠.
윤 민희
장미, 나는
윤민희
쏠리는 격동으로 아찔한 혼미다
젊은 피를 억류하는 빨간 신호등이다
펄펄 끓어오르는 압력 밥솥의 속앓이다
쓸쓸한 눈물을 외면하는 길 잃은 독재자다
원색의 향기로 유혹하는 화류계의 대모다
고정된 동공 속의 주름진 벌레들을 탐하는 출렁이는 호색가다
도려낸 살점으로 시선을 구걸하는 허영의 너털이다
격랑의 바람 앞에 화색이 만연한 위선의 일인자다
초라하게 붕괴하는 깔린 바닥이다
끝없는 이중의 라이벌이며
슬픈 영혼의 숙명적 운명이다
세상의 온갖 뿌리를 흔드는 자멸스런 그리움의 징조다
아픈 빛깔의 참회에 잠긴 찢어진 자화상이다
운동장
윤민희
여우비가 지나간 운동장은 아이들로 가득하다
어느 팀인지 어느 편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방으로 튕기는 축구공 몇 개
그러나 아이들은 온 힘으로 달리고 온 몸으로 외친다
축구공을 따라 은하수가 흐르고
꽁무니를 따라 무지개로 띠를 만드는
웅성웅성 엮어 놓은 다채로운 정경이다
줄넘기, 배드민턴, 쫓고 쫓기는
군데군데 박힌 영역 없이 반짝이는 샛별들
수천의 소리와 수만의 몸짓이
조화로운 한통속 운동장은
충만함이 넘실거리는 만선의 푸른 광장이다
시험감독
윤민희
까맣게 채워간다
꿈을 채우고
내일을 채우고
그리움을 채우고
빈 공간의 삶을 하나씩 채워간다
고독한 갈등이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간다
인생도 이렇듯 하나씩 여백을 채워가는 것이리라
가볍게 넘어가는 문제가 있는 반면
힌트없는 백지를 칠흑의 밤 같이 갈 때도 있으리라
쉽지 않은 전진
아득한 해법
앞으로 갈수록 연필이 더디게 움직이고
친한 친구도 바라볼 수 없고
엄마의 손도 잡을 수 없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고 시간이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정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책상 위의 시험지가 온 몸을 뒤척인다
오산천
김재용
그 옛 날
물방개 좇아 휘 돌아 다닌 오산천
아낙네 빨래 소리 아침을 열면
한달음 내 달려
와글와글 만발하는 얘기꽃 천지
덩달아 고운 햇 살 입 질 하는 치리 떼
아카시아꽃 졸졸대는 개울 잠 재우며
버들치 물장구 그리운 여름을 지나
개 흙 빚어 긴 세월 징검다리 놓으면
언 냇 가 울려 퍼지는 씽 씽 썰매 소리
눈에 고인 아련한 추억 끄집어 본다
개나리 흐드러지게 달려 온 오산천
여울목 흥겨운 노래
온 종일 퍼 담아도 남아 도는 이야기
해질 녘 무심코 흘려 보낸 하얀 종이배
놀에 흠뻑 젖어 머무는 실개천
풀 향기 갉아 먹는 초화원 풀벌레 합창
미소년을 위한 노래
이순옥
강물이 소리없이 흐르듯
소리없이 자라나는
것이 모여
인연을 빚어 내었다
끈끈한 인연은
무수한 우연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었다
우연도 필연인 것
엇갈리면서도
다시 되살아나는
미소년을 향한
타오를 듯 애절한 연민.
광교산의 밤
윤민희
산등성이에 걸린 반달
서서히 넘어가는 여린 반쪽을 나 홀로 보냈다
작은 별 하나가 내려 보고 있었고
멀리 마을입구에서 졸고 있는 가로등이 있었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었고
가슴을 저미며 울고 있는 개울물이 있었고
텅 빈 시내버스가 지나가고 있었고
둥둥 떠다니며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고
길가에는 쓸쓸한 간격으로 서 있는 옥수수가 있었고
광교산 품 안에서 굳어버린 내가 있었고
어떻게 생각해도
님은 꿈에도 못 올 먼 곳으로 갔다
배추와 누룽지
이 상희
팔남매 중에 막내로 자란 나는 누구와 나눈다는 것에 참으로 인색한 사람이었다. 늘 나만 대접을 받아야 하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아홉 살 쯤 이었을 것이다. 시골에서의 간식은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세 끼 밥을 못 먹어서 소나무 껍질을 쪄서 먹고, 알긴 맛이 독특했던 무릇을 쪄서 콩가루에 묻혀 먹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우린 엄마의 노력으로 밥을 굶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가마솥의 밥을 다 퍼낸 후에는 당원(설탕이 귀하던 시절이라)을 솔솔 뿌려서 밑불을 살짝 넣은 다음에 누룽지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을 개듯 착착 개서 쟁반에 담아 놓으시곤 했다. 그것은 늘 막내인 내 차지였다.
그래서일까. 네 살 위인 언니는 내가 누룽지 쟁반을 들고 부엌에서 나올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곁으로 바싹 다가와서 온갖 감언이설로 나를 꼬득였다. 귀가 얇았던 나는 그 때마다 언니한테 누룽지를 몽땅 안겨 줬고, 속았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언니가 누룽지를 몽땅 먹어 치운 다음이었다. 그러면 다음에는 절대로 속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언니가 나를 꾀일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내가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있어서였는지 언니는 내 누룽지를 빼앗지 못했다. 그래서 느긋하게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갑자기 휙 하니 바람이 일면서 누룽지 한 조각이 사라졌다. 언니가 채 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쟁반을 내동댕이치고 주저앉아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 부지깽이를 들고 부엌에서 달려 나오시더니 언니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무진장 미안한 노릇인데 그때는 왜 그리도 고소하던지... 누룽지 맛은 저리 가라였다.
그렇게 나눌 줄 모르던 내가 맏며느리로 시집을 온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
시부모님과 시누이 다섯에 시동생 하나.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야 했고 시누이들의 김치며 여름휴가를 책임져야 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시부모님은 시누이들부터 부르셨고, 그래서 나는 남편이 좋은 생선이 있어 사 온다고 해도 반갑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손질을 해서 다섯 집에 배달을 해야 했으니까.
마음 오롯이 기쁘게 나누지 못했던 13년. 왜 나만 나누고 살아야 하는지 억울해서 속이 상했다. 그렇다고 싫은 표를 낼 수도 없고,.. 그런데 시부모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13년을 모시면서 병수발을 한 우리를 제쳐 놓고 둘째 아들한테 집을 이전하라 유언을 하셨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너희는 큰 아들이니 부모님을 모시고 보살피는 건 당연하단다. 그리고 당신들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당신 마음대로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단다.
살아생전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고 당신들의 뜻을 거스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아도 병수발을 하는 걸 원망해 본 적이 없는데,...
아마 부모님은 큰 아들은 성실해서 잘 살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갓 결혼을 해서 시험공부를 하는 막내아들이 걱정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분들의 마음이 서운하고 서러워 심장이 쓰라렸다.
한 달 쯤 고민을 하다가 모든 걸 내려놓고 이사를 했다. 더 이상 시동생 집에 얹혀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시누이나 시동생한테 많은 걸 주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저면 진심이 빠진 허울은 아니었을까. 남들한테 욕먹기 싫어서였고, 부모님한테 혼나고 싶지 않아서였고, 남편한테 당당해지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못 한다는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은 자존심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몰래몰래 울어 가며 그 날 그 날을 보낸 것일 뿐, 그들을 사랑해서 그리 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씨앗을 뿌리기도 전에 두려움과 의무라는 잡초가 무성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우리를 조금만 따뜻하게 안아줬어도 이런 맘까지는 들지 않았을텐데,...하지만 이젠 모두 내려놓아야겠다. 미움도 애련함도 원망도...
김장거리를 살피러 밭에 나갔다. 그 동안에는 내 손으로 무, 배추는 물론 갓이며 쑥갓, 파, 고추 등속을 가꿔서 시누이들 김치까지 150포기 이상을 해서 나눴지만 올 해부터는 우리 집 김치만 챙겨야겠다. 그러면 스무 포기면 충분할 테니 남는 것은 어찌하나 고민이 된다. 장사를 해보지 않은 터라 시장에 갖고 나가서 팔 수도 없고,...
고민을 하다가 성당에 연락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연락을 한 것이다.
김장거리를 뽑아서 깨끗하게 다듬은 것을 봉투에 넣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우스에 옮겨 놓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처음으로 맛보는 이 뿌듯함. 뭐랄까. 가슴이 훈훈해지고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람들이 이 김치를 먹고 기운을 내서 내년에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 하나를 가슴에 품어보았다.
나눔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 줄 정말 몰랐다. 내가 노력을 해서 얻은 것은 나 혼자만 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 마음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시부모님이나 시누이들한테 기쁘게 베풀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혼자만 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억울하던지,...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고맙고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거들어 줬더라면 이렇게 빨리 지쳐서 포기하진 않았을 텐데,.. 아쉬워 마음이 무겁다.
이젠 아무 대가없이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얼마를 산다고 품어 안고 있을 것인가. 썩기 전에 풀어 놓는 것도 현명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내년에는 배추를 조금 더 심어야겠다.
수필 <잡초 >중에서
이상희
비가 오고 난 후의 텃밭은 풀 천지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야 땅이 산다는 생각에
나는 오늘도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간다.
내 마음 밭에도 풀이 무성하다.
원망이라는 엉겅퀴, 미움이라는 억새풀, 분노라는 개망초 등
온갖 이름 모를 잡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선 잡초부터 뽑아야겠다.
뿌리가 단단해졌겠지만 늦기 전에 뽑아야 한다.
믿음이라는 호미로 뽑는다면 훨씬 수월 할 것이다.
마음은 행동으로 옮겼을 때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사랑과 믿음이라는 호미를 들고
오늘도 나는 밭으로 간다
길
이 상희
희망을 목마 태우고
징검다리 믿음을 밟으며 자박자박
사랑하는 이를 향해 하루를 걷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내게 맡겨진 것이라고
내 마음이 채근을 합니다.
어서 일어나
어떤 마음도 갖지 말고
어여 어여 시작하라고
어르고 달래서 일으켜 세웁니다.
어제는 그저 어제일 뿐이라고.
태양과 인생
유윤수
빨간 단풍 나뭇잎 사이로
태양은 하루 하루를 마무리 지어며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금도 망서리지 않고 사라져 간다,
인생의 흐름을 느끼는 이순간이;;;;;;;;;;;;
아,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순조롭게 사라져간다면
얼마나 좋을꼬,
내일이면 새맑은 얼굴로 태양을 보겠지
그리고 어제와 같이 빨알간 단풍잎 사이로
티끌없이 반짝 이면서 사라질수 있을까
석양을 바라보는 마음이.;;;;;;;;;
콩깍지 사랑
유윤수
사랑은 누군가 한번쯤은
콩깍지 시나리오를 겪어본다
깍지는 여물어 벌어질 그때까지
무진장 잠금장치를 가진다
사랑을 결속한 마음은 그냥보고 있지않고
그 속을 보고파 온갖 희.노.애.락을 겪어며
두들기고 또 두들겨본다;;;;;
얼마나 두들겨 보았을까?
참다못한 콩깍지는 허벌레 하얀속 까보이며
나몰라라 몽땅 휙 뒤집힌다
기필코 제 멋데로 비틀어진 깍지는
본진을 감추면 몸매를 뽐내면서
순수한 사랑은 콩깍지를
꼬옥 씌어야만 된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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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말을 하자
정 희순
어느 날 지난날이 그리워
잠못 드는 때 있거든
그립다 말을 하자
서운했던 날
마음다친 날
하루를 설레게 했던 기억들도
하얀 종이위에
그립다 말을 하자
어제와 오늘 그 옛날의 이야기보따리
사랑 고마움. 용서의 말로
그립다 말을 하자.
끝내 다 알 수 없는 세상의 안부가 그리워질 때
한잔 하자
부딪히는 잔에 그리움 가득 붓고
그것도 부족 할때
아름다운글로 마음을 전해보자
봄
정희순
따사로운 햇살로 다가와 속삭이네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와 유혹하네
길고 긴 여정 지구를 돌아와
내 앞에 서 있는 무지개빛 사랑아
그대 내 안에 오래 머물러
긴 그림자로 남으시게나
명품 소금
정 희순
봄에 사돈이 소금한포를 선물로 보내왔다.
어느 섬에 놀러갔다가 소금을 사왔노라고 아들 편에 보내왔는데 소금 포장에 “명품소금” 이라고 쓰여 있었다. 57년을 살았어도 명품소금이란 말을 들어 본적이 없었는데 이 소금은 명품이라니 선뜻 먹기가 어려웠다.
선물을 받아놓고 여름이 갔다.
전에 먹던 소금이 있었기에 선물소금은 아끼고 있었다. 이유라면 명품소금은 펑펑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소금에도 명품이 있다고 어느 스님이 그랬다. 외국의 소금을 먹어보면 우리나라의 소금이 특 명품이라고 극찬을 했다.
외국의 소금은 짜다 못해 쓴 맛이 나며 영양분도 적어서 많이 먹으면 성인병의 주범이 된다고 그랬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소금은 짜도 맛있게 짜며 각종 영양분이 많아서 그야말로 우리소금은 명품이라 했다.
그때는 그 말에 대하여 이해를 못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소금은 언제라고 구입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 소금이 그렇게 좋은 소금이란 말인가?
김장철이다.
올해는 배추가 너무 비싸서 김장을 많이 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김치는 먹어야 할 것이라서 시장엘 갔다.
농사를 지어 먹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쌀부터 채소의 모든 것을 사서먹으려니 부담이 여간이 아니다.
예정에는 대농이었다. 논이30마지기. 밭 5.000평을 농사지었는데 지금은 힘에 부쳐 농사를 줄였다. 그래도 조금의 농토에다 이것저것 심었으나 농업이 본업이 안 되니 농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사다 먹는 것이 많다.
가을이 되어 배추를 심었는데 일기가 나빠 속도 안차고 냉해로 자라지 않아 김장을 할 수 가없어 배추를 사려고 시장엘 갔는데 남편의 지청구가 따라 다닌다.
농부의 눈에는 할 말이 많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날씨를 탓해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순응하고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배추 한포기에 10,000원을 하니 김장을 망설이고 있다.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 김치다. 한 끼에 배추4-1쪽을 먹으니 김치가 없으면 먹을 것이 없다. 그래서 비싸도 김치를 담그려는데 배추를 절이는 것도 일이다.
어느 날 광고를 보았는데 배추를 절여서 판다는 광고를 본적이 있어서 나도 절임배추를 시키렸더니 남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골남정네의 인식에 바닷물에 절인배추는 내 사람이 절여 담근 김치만 못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절임배추는 말만 꺼내고 대신 소금을 좋은 소금 쓰기로 했다.
김장할 때마다 느끼지만 김장의 맛은 소금이 좌우한다.
좋은 소금을 쓰면 배추가 오래가도 무르지 않는데 어느 때는 배추가 진 물러서 김장을 버린 적도 있다. 배추를 탓해본 적도 있었지만 소금이 수입소금이면 그렇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배추를 절이면서 선물 받은 소금이 생각 났다. 그래서 그 소금으로 간을 하려고 포대를 뜯었다. 드디어 명품을 먹어보는 순간이다.
소금을 바가지로 푸는데 느낌이 특별했다. 바가지에 소금 안기는 소리가 “싸르르락” 했다. 매우 경쾌하게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여지껏 이런 소금의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었다.
솥두껑 운전을 시작하면서 오랜 세월 소금을 만져보았고. 먹어보았고. 김치 담아 보았는데 이런 소금은 처음이다. 맛도. 색깔도. 소리도 처음이다. 신기했다. 이런 소금이 있었나 싶었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상큼하게 바다 냄새가 났다.
소금이 나에게로 온지 일 년이 되어 굳어 버린 줄 알았는데 알알이 그대로 있어서 바가지에 담길 때 부드럽게. 상쾌하게 안기는 거였다.
소금을 한 움큼 손으로 집어서 펴보니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이 보석 같았으며 사각형으로 각이 뚜렷했다. 아! 이래서 우리나라 천일염을 명품이라 했나보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소금은 바로사서 먹는 것이 아니라 1년 혹은2년씩 간기를 빼내고 먹는 것이 보통인데 어느 해부터는 소금을 풀 때마다 덩어리가 지고 간이 너무 짜서 짜증이 났었다. 그런 소금으로 김치를 해보면 맛이 없었다. 그래도 그런 소금이 천일염이려니 하고 먹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의 소금 맛을 보니 비싸도 천일염을 먹어야겠다.
내가 사는 지역은 경기도이지만 서해바다가 가까워서 시장의 소금은 서해소금이려니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보다. 오늘의 소금 맛을 보니 앞으로는 시장소금 못 먹겠다.
어쨌든 명품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고 김장을 했더니 김장이 맛이 있다. 남편의 입에서 김치 맛있다는 소리 연실 들으니 소금이 중요함을 다시 느끼겠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어져 사람의 발에 밟히느니라” 성서의 말이 깊이느껴지는 하루였다.
무슨음식이든 간이 맞아야 맛이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소금이 제일 맛 잇다는 지론을 펼쳐도 되겠다.
맛있는 소금. 명품소금 먹을 수 있는 나라에 사는 것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이듬해.
모임에서 가을에 서해를 갔다. 그래서 천일염을 사려고 그랬더니 소금이 동이 났단다. 일본의 원전이 터지는 바람에 소금이 동이 나서 올해는 소금을 살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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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미산 윤의섭
술은 우리 인류에게 행복과 고통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늘 고민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는 순간부터 술은 늘 인류와 함께했음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며 아직도 우리의 곁에서 벗이 돼주고 때로는 악마의 미소로 우리를 힘들게 하곤 한다. 우리의 막걸리는 민속주로서 그 뿌리가 대단히 길고 흥미롭다.
우리 민족은 한 지역에서 강토를 지키며 오랜 기간을 끊임없이 외세와 겨루면서 때로는 피침의 수모를 받아 끈질긴 저항과 인내로 멸망하지 않고 그때마다 고유한 탁월성을 발휘하며 민족의 뿌리를 지켜냈는데, 그중에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면 고대에는 산성의 축조를 통한 외침의 방지, 천 년 전부터 뿌리 내린 풍수지리 사상과 선영 보존, 토착화한 발효음식과 막걸리 문화 등 이러한 것은 아무리 외압이 거세어도 변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은밀하게 끊어지지 않게 보전되는 특성이 있는 것을 온 민족이 터득하고 있었다 하겠다.
왜정시 공용어로 일본말을 쓰게 하고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었을망정 가정에서는 한국말을 계속하면서 선영을 지키는 일, 전통 한국 음식을 통하여 우리끼리 소통을 지속하였고, 밖에서는 일본인과 동화한 체 하였을 뿐 오히려 일인보다 능력을 더 발휘하여 그들을 알고 살았고, 친일파라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살아오며 집에서는 내밀한 민족 뿌리가 끊어지지 않게 이어낸 사례가 수없이 많다.
암울한 왜정 시기 웃음이 지하로 숨었을 때 막걸리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아 한 잔 들이키는 순간 그 절묘한 맛과 공감대의 표현으로 "카~ 술맛 좋다." 했다는데, 우리끼리의 정감을 한 것 느껴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우리끼리 통하는 암호와 같은 민족의 냄새가 느껴지는 공감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 매개체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 막걸리이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애환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막걸리는 주식인 쌀로 빚어낸 술로서 쌀 가공 발효식품의 대표라 할 수 있었다. 일직이 농업 노동용으로 애용하였다. 열량 섭취와 미흥 味興을 돋우는 데 필수였고 조상에게 제주로 올리는 등 발효음식의 느림과 기다림의 특성이 있는 민족의 음식인데 왜정시 주세법을 만들어 세금으로 수탈하면서 일반 가정에서 제조를 금지했다.
어느 마을 동구의 느티나무 아래에 왜경이 나타나면 마을 아낙들은 제일 먼저 안방의 술 항아리를 들고 집뒤 숲으로 옮겨 숨기는 소동이 벌어진다. 밀가루로 누룩을 만들고 쌀로 술밥을 지어 안방에 술 빚는 항아리를 놓고 이불을 덮어 두는데 일주일은 걸려야 발효되기 때문에 주부는 단속의 눈을 피하느라 가슴을 죄면서 살았다.
왜경은 불온사상자 색출, 밀주 단속을 한다는 구실로 집안을 수색하여 잡아가는 등 간악한 짓을 너무나 많이 자행 하였는데 독립운동가를 숨기는 일과 밀주를 숨기는 일은 전 민족이 불문율로 통하면서 지켜낸 민족혼의 하나이다.
광복 후 정부에서도 그 악명 높은 주세법을 답습한 시절이 50년은 더 된 것 같다. 주곡을 자급한다는 급한 일에 치중한관계로 문화적 균형을 갖출 틈이 없었던 것일까? 박정희 대통령은 "나도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국민들에게 쌀로 막걸리를 만들지 못하게 해놓고, 나만 먹을 수 없잖아. 이건 옥수수로 만든 막걸리야. 솔직하게 말하면 이 막걸리는 맛이 없어. 그러니 막걸리에 맥주를 조금 타서 먹어야 해. 많이 타면 안 되고 조금만 타. 이걸 '맥탁'이라고 부르지." 라고 이웃에게 낮은 목소리로 자책하였다고 한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야 우리 민족성의 탁월성을 이해하고 고유문화를 되찾는 움직임이 일어나, 민속주로 전해지는 막걸리가 다시 세상에 빛을 내고 있음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세계화 추세에 힘입어 일본에서도 막걸리가 유행한다는데 그들이 탄압한 역사가 멀지 않은데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감개무량함을 느낀다.
그동안 주세법으로 막걸리의 알코올도수를 제한하여 진하게 발효되는 고급품을 물타기 하여 공급하던 잘못된 인식을 벗어던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해 내려와 각기 다른 맛과 향기를 내는 전통 술을 빚어 세계에 나서는 한국 술로 거듭나기 바라며, 그 인기가 와인, 맥주, 브랜디 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기대한다
바람의 춤/미산 윤의섭
구름이 내려온 듯
가벼운 알몸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는 듯이 솟아오르고
예악의 소리가
오색의 빛깔로
안개를 피듯이
황홀하게 울려라
풀과 꽃의 바람 춤
분노 인내를 뛰어넘어라
그리고
정의와 평등 진실의 춤
물결을 부르고
창조를 부르는 바람의 춤을 추어라.
지하철에서/
미산 윤의섭
길 안내 조명이
나를 맞아 미소 짓고
풀랫트홈 기적소리
가슴에 느낍니다
부끄럽다 사양하는 미인에
먼저 타라 권하는
어릭석은 현자
스크린도어 미끄러지듯 닫힙니다
차창을 등지고 잠간 앉을 적에
무심으로 비운 마음
살짝 열고
사색 한 모금 훔쳐 마십니다.
봄은 오고 눈 덮히고
김임자
아프다
생손가락 아린듯이 밤새
울었을거다
누구도 없이 울었을거다
새순마저 감히 덮어야했던
그런 이유로
간밤에 무슨일이 있었나보다
간밤에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일 있었나보다
산골짝 나뭇가지 사유에 휘어져
하늘아래 제대로 섧고
긴 밤 내내
외발만 보고 있어야 했나보다
있었나보다
간밤에 무슨일 있었었겠지마는
날은 밝고
우리의 가슴은 잔인하게 설레고
생살을 뚫고 나온 눈물같은 또 하나의 봄이 오고
봄을 느끼며
김임자
연한 풀 가까이
다가가노라면
살랑 불어오는 달콤한 젖냄새
곱디고운 내사랑
고사리 같은 손
연신 흔들며
다가왔다가며 헤죽 웃는품
쇠도 녹일 사랑아
일어서면 주저앉고
주저앉는구나 하면 일어선다
어서오너라 아가
네 다가 오면
덥석 안아주련다
코 끝에 감도는 너의 알싸하고 보드라운 향기에
이 허약한 몸에도 생명이 찬다
까마득한 의지가
굳은 땅을 헤치고 다시 꿈틀댄다
도배하는 날
서미숙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벽 껍질의 두 눈에 어리는 것은
이별의 소야곡인가
세월의 주름을
온 몸으로 감싸며
오롯이 하나의 길로 왔다
바람의 뒷모습이 되어
가녀린 속삭임으로 흐느끼며
먼 세상으로 걸어간다
못내 아쉬워
걸음걸음 사이로
절연의 사랑 꽃이
눈처럼 내려와 앉았다
말없이 바라만 보는
시계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게으른 영감과 달팽이
박효찬
둘은 길을 떠났다
먼 산을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람보다 먼저 도착할 것이라며
큰 소리 고래고래 노래도 부른다
발걸음은 바람에 맡겨놓고
흥겨운 장단에 어깨춤을 추며
중천이던 해 슬슬 언덕 너머로 게 눈 감추 듯
숨어버릴 시간이 되어가는 것도 모른 체
흔들어 주는 바람결에
맡겨놓은 걸음은 갈지자를 헤매고
무작정 옮겨놓은 발자국이 무거워 보인다.
빈털털이 영감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에게
부러운 눈길을 띄워보지만
게으른 영감
밤 이슬마저 피할 거죽 하나 없으니
돌아서 온 바람은 마냥 흥겹다
온 세상을 백색으로 쓸어버리니
흔적도 없이.
하늘에서 별을 따다
신 혜숙
바다로 편하게 느껴지던 이
어느새 하늘에 반짝반짝
별이 되었네
어렵사리
그 별을 냉큼 따가지 곤
누가 볼새라
얼른 뒷춤에 감추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알짝
심어 두었네
가슴 깊숙히에
온통 세상을 다 가진 듯 하여
숨을 쉴 수가 없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그 별은 가슴 깊숙히에서
어느덧 영혼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짐짓 나를 쳐다 보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별이 되리라고
세상에서 제일 반짝거리는
사랑이 되리라고
내가 아닌 나
자혜/박효찬
깊은 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정적을 감추고 싶은 욕망이 살아나
잠에서 깨어났다.
이 밤의 영혼들은
빗소리에 씻기였는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는지
온 세상이 조용하기만 하다
내가 아닌 내가 되고
남이 아닌 나였기에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어야 할 영혼들
삶의 생명줄을 붙들고 갈구한다.
어디에도 스며들지 않은 불씨로
타다 남은 재가 되어
허드레 말로 어수선을 피운다.
어스름한 불빛에 어둠은
창문 넘어 빗소리에 젖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먼동이 틀려나 보다.
바다는
박효찬
바다는
사파이어빛 물결을 안겨주는 안식으로
파도의 물거품은 살갑게 흐트려지며
다가선다
풍성한 나락의 잔재들을
바다의 이름으로 늘 펴주면서
어머니의 손끝으로 입맛을 돋구워주면
어느 무명 화가의 누드화가 되버린 바다는
낯익은 모습으로
바닷바람 물내음을 물신 풍기며
굶주린 아구의 식탐을 충족시켜준다
수평선 넓이 만큼이나 깊은 심장을 펌프질 하 듯
고기배는 늘 만선이여야하고
해녀의 뒤웅박은 늘 해산물로 가득 채워
들려보내준다
산채만 한 쓰러기 더미를 등에 업고
기름통을 뒤집어 써도
수억만년을 견디며
세월속에 살아남았다는 걸 과시하듯
밀물이 밀려든 시간 만큼
썰물이 흘려간 시간 만큼.
오산천변(烏山川邊)
이 태곤
이 천변은
펠리포니소스의 올림피아가 흐르고
로마의 아벤티노 언덕도 숨어있다.
이 천변은
60년대의 은하수가 내천에 흐르고
18홀의 골프 그린도 숨어 있다.
이 천변은
은하철도 999가 오가며
할멈이 엉거주춤 롤러스케이팅도 즐긴다.
은사시나무
신 혜숙
우리동네 부산동엔 마등산이 있지요
마등산엔 은사시나무가 많이 살지요
은사시나무 하양과 연초록이 절묘하게 어우러지지요
뽀사시한 모습이 과히 고혹적이지요
더욱이 나무둥치엔 검은다이아몬드가
빼곡이 박혀 있지요
현란함의 극치를 이루지요
은백양나무 와 사시나무의 교잡목 이라지요
자연산은 은사시요 인공산은 현사시 라지요
고혹적이고 현란함에 난 그만 매료되고 말았지요
급기야 난 그를 나의 나무라 명명 하였지요
나의 나무가 되었음을 그는 알른지요
오늘도 난 나의 아무인 그를 보러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산에 오르지요
그의 자태에 맘껏 취하여 힘받고 오지요
나의 나무여 나의 은사시여
하고 크게 외쳐 부르지요
숨겨 놓은 나의 보물
검은 다이아몬드 지요
난 갑자기 배가 부르지요
아주 큰 부자가 된 듯 하지요
필봉산
김임자
필봉산에 오르면
시원한 산바람
새롭게 살아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맹꽁이 군락지인
천 길 낭떠러지 아래
우뚝 선 녹음은 사뭇 짙어 그리움되고
산신의 노각인듯
눈 큰 팔각정엔
민초들의 지친 발걸음 머물러 잠시 벅찬 숨을 고른다
아! 어딘들 새롭지 않은 능선있으리
들이 킨 산수 한 잔에 오염된 마음의 때 가라앉혀놓고
오늘은
오늘만은
저 잎 무성한 떡갈나무 처럼
푸근한 마음으로 쉬어가리라
필봉의 붓 다듬어
수 천년의 거친 세월 올곳게 견딘 금당의 산자락에 펼치면
푸드득 달려오는 선조의숨결
오산의 맥박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필봉산
곳간지기
김재용
귀한 무 싹둑 잘라 낸다
통배추 한바탕 나가 떨어지고
성 난 촌로의 담배 연기에
움푹 패이는 하늘
비 내리면 잠길까
바람 불면 어쩌나
땡볕에 타지는 않을까
자나 깨나 허공을 향한 가슴앓이
불 타 오르는 농자재 가격
농산물 값 곤두박질 하는 세상
하나 둘 떠나 가도
나는 늘 농심으로 살아 가리
버림 받는 생명 곳간 농촌을 위해
가뭄이 인생 길 가르고
벼멸구 한 마리 서걱거려도
모진 비바람 맞으며
애끓는 모정으로 곳간을 지키리
거미바위솔
서미숙
오늘은
사랑이라는 말은 말자
세상의 유혹 정도는
그냥
귀를 막았다
온몸을 조여오는
그 달콤한 사랑쯤은
찢어지는 아픔이래도
가벼이 웃어 주었다
쓰러지면
또 다시 일어나는
빛과 그림자이니
세상 모든 것에
나, 청맹과니래도
나는 나의 숙명을
이렇게 사랑했노라
버스안에서
이상희
왜덜 그렇게 빨리 갈라고 그러는지 모르겄다.
꼬랑지 물고 빵빵 거리매 매연가득 콧김을 뿜어대며
고상한 목사님 욕쟁이로 맹글고
스님의 육두문자 염불외듯 거리를 울린다.
그래봐야 5분 차인데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정해진 그 길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고거 1분 빨리 안 가믄 세상 주저앉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야단들이다.
그래봐야 다음 신호에서 또 만날 것을
왜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겄다.
1분 빨랑 갈라다 10년 세월 건너 뛴다는 말도 모르는지
운전대 잡은 사람들은 오늘도 그렇게
자금자금 세월을 훔치려고 한다.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성백원
오래 되었어도
어제 만난 것처럼
힘이 들어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동창들이 웃음으로 걸어 가는 길
애기똥풀 여기 저기서
환하게 손을 흔들고
하늘에서 내리는 햇살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정의 탑으로 선다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친구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던
철없는 시절의 친구들을 보내는 밤길엔
별들이 떨어져 꽃술로 피어난다
손
정 희순
예식이 시작되기 전
남편은 눈시울을 적셨다.
장갑 낀 손으로 두 눈을 꾹꾹 누르고는
딸의 손을 잡았다.
딸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예식장을 들어섰다.
음악에 맞추어 걸음을 걷는다
딸의 나이가 31살이건만
애틋하게 손을 잡아 본적이 있었던가?
마음먹고 손을 잡아 본적이 없다
대 가족제도에 살면서 어른들의 눈치보느라
딸을 안아본 적도
업어준 적도 없었다
이제 새 길을 나서는 딸의 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아보고는
사위에게 인도하는 아버지의 손이 눈물을 흘린다
사위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교대 받고
아버지는 글썽글썽 손을 인계 한다
천룬으로 잡은 손은 눈물이지만
인연으로 잡은 손은 행복이리니
딸아 너의 사람과는 따스한 손 많이 잡고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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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ㅡ 숱한 글, 글마다 주옥같이 빛납니다. 너무너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