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가 소공동체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났다. 1992년 서울 대교구가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를 추진해온 이래 한국의 거의 모든 교구가 소공동체를 ■■신자 양성은 물론 복음화의 도구이자, 사랑의 문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교회의 선교 사명 51항)으로 여기고 소공동체 사목을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별히 1차 소공동체 전국모임(2001.6.25-27,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다오."), 2차 소공동체 전국모임(2002.7.1-13, 정하상 교육관, "자 일어나 가자.")를 통해 소공동체의 확산과 내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확산과 내실은 주교회의 산하 소공동체 소위원회 결성, 소공동체 전국 사목 협의회 결성(전국 사목국장 모임), 소공동체 연구 위원회 결성을 가져오고 아시파 3차 총회(2003.9.2-9.9 한마음 청소년 수련원)를 작년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번 아시파 3차 총회(AsIPA :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아시아의 통합적 사목 방법을 연구하여 보급하며 아시아 소공동체 담당자들이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아시아 지역의 소공동 활성화에 기여하는 FABC OL 산하 기구)는 가정, 영성, 지도력, 사도직 네 가지 주제로 진행되었고 소공동체의 영성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시파 총회에서 강우일 주교님은 ■■소공동체는 어떤 기술이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가 하느님의 영으로 활성화 되는 것이므로 그런 근원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소공동체의 활성화의 원동력은 바로 영적인 양식에서 나옵니다. 소공동체 지도자들에게 영성적인 깊이와 역량을 키워 주는 것이 현 단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공동체 성공의 관건은 프로그램이나 방법론보다 소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소공동체 영성의 성화에 있습니다.■■라고 소공동체의 영성을 강조하였다.
2. 두개의 실마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 위원회가 주최하는 2004년 소공동체 전국모임 및 심포지엄에서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영성■■이라는 주제의 내용은 ① 소공동체 영성, ② 소공동체 영성 심화 도구인 복음 나누기 및 기도에 대한 평가, ③ 한국 교회와 한국인 심성에 맞는 영성 심화 도구 제시였다. 발표를 부탁 받았을 때 두 가지 걱정을 하였다. 하나는 영성에 대해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공동체 초창기부터 함께 하지 못했고 아시파 흐름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골 교구 사제 개인적인 체험과 의견 중심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 교회 오늘의 시대와 공간 상황에 걸맞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1977년 사제 서품을 받고 지금까지 2개 본당의 보좌와 3개 본당의 주임 신부로 기존 구역반의 조직으로나 구역 반을 소공체로의 현장 속에 있었다. 특히 첫 본당인 청평(1980년-1985년)에서는 모든 본당에 거의 다 구성되어 있는 레지오 마리애가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레지오 마리애(단체)없이 5년간 사목을 하였다. 그때 한 달에 한 번하는 구역장 회의는 한번도 빠짐없이 함께 하였고, 한 달의 한번 구역 모임(7개)에 2년 동안 빠짐없이 참석하며 매달 구역 모임을 중심으로 전 신자들과 함께 재미있고 활기차게 사목했던 경험이 있다.
서울 대교구에서 처음으로 소공동체가 시작되고 다른 교구에 그 소식이 전해지며 확산되어 가던 무렵인 1996년부터 교구청 교육국과 1999년부터 사목국에서 일하면서 교구 차원에서 구역 협의회가 실질적으로 본당의 중심이 되는 ■■본당 공동체 기본 구성(구조)■■과 좋은 이웃(소공동체) 모임의 길잡이■■좋은 이웃■■을 발간하면서 소공동체의 나무(본당)와 숲(교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두 경험은 이번 걱정을 풀어나가는데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Ⅱ. 소공동체 영성
1. 소공동체란
소공동체란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 성경 독서, 교회 공부, 그리고 인간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공동 책임을 도출하는 소수 신자들의 집회를 말하는 것이다(서울 대교구 구역반장 학교 1단계 p.13).
소공동체 운동은 같은 동네, 직장에서 소수의 신자들이 모여서 작은 ■■신앙 생활 공동체■■를 이루어 자기의 지역 사회 복음화를 이루고자 하는 운동이다. 소공동체 운동의 목적은 복음화이며 그 전개 방법이 소공동체 운동이다(강윤철, 소공동체 운동 교본).
한국 교회는 괄목할 만한 교세 성장을 이루면서도 성당 자체가 본당의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여 복음 정신에 입각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모습에서는 오히려 멀어져 가고 있다. 신자가 1,000명이 넘는 교회에서는 사목자들과 신자들과의 인격적 만남이 매우 어렵고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상실하여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친교를 가지기도 어렵다. 또 어떤 본당들은 교우들이 개인적인 문제와 관심사,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개개인으로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서울 대교구, 구반장 학교 1단계 p.16).
소공동체는 교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열매로 교회 구조를 개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추진력이라 할 수 있다. 소공동제의 기본 목표는 예수님께서 처음 시작하신 하느님 나라를 우리 안에 실현하는 데 있다. 소공동체의 핵심은 복음 정신과 성체 성사의 친교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데 있다. 소공동체는 바로 아시아의 미래상이다(최창무 대주교, 아시파 3차 총회 환영사).
소공동체/기초 교회 공동체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믿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들로 살아가도록 신자들을 도와 준다. 그들은 형제적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복음에 따라 살도록 그 구성원들을 도와 주는데 목적을 두며, 결과적으로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인 것이다(아시아 교회 25항, 아시파 3차 총회 최종 선언문 인용).
소공동체의 4가지 요소(특징)는 ① 삶의 현장(집, 직장)에서 함께 모인다. ② 복음 나누기를 한다. ③ 활동을 한다. ④ 보편 교회(본당)와 일치를 이룬다는 것이다.
2. 영성이란
요즘처럼 영성이란 말이 폭넓게 도처에서 쓰이는 때가 없는 것 같다. 자주, 흔하게 쓰지만 올바르게 쓰이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영성을 제대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한마디로 알아듣기는 더더욱 어렵다.
영성이란 신앙인에게 있어서 그 존재의 본질을 이루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은 영성(靈性, Spritualitas)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느님과 자기 자신, 이웃들,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자기 초월적인 사랑으로 개방되는 한 사람 또는 어느 단체의 믿음이 지닌 살아 있는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사실 그리스도교 영성의 원천은 성서에 있다. 성서에서 ■■영■■(靈)의 의미를 살펴보면 구약성서 히브리어 ■■루앗(ruach)■■은 입김, 숨결, 바람을 뜻하고, 신약성서 희랍어 ■■프네우마(πνευμα)■■는 육(肉, caro)과 반대되는 개념이며, 라틴어 스피리투알리따스(spritualitas)는 육적인 것과 반대되는 영적인 것으로의 개념이다.
영성이란 용어는 5세기경 위(僞)예로니모 서간에 처음 등장하며(■■그대는 영성에 진보하도록 행위하시오■■) 이는 하느님의 영과 연관된 삶의 방식과 일치하며 육체나 물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였다. 17세기에 영성(스피리투알리따스)은 신심 깊은 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 1950년 이래 영성은 교회 안에서 큰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여 신심, 내적 생활, 영성 생활, 영성 신학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영성이란 단어를 일반적으로 정의하면 ■■인간의 정신적 삶의 개화(開化)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교의(敎義) 실천적인 것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가톨릭적 정의로는 ■■완덕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삶, 또는 하느님과의 일치의 삶을 신학적(체험적)인 면에서 다루는 말■■,■■인간을 신앙 안에서 충만하게 살게 하는 하느님의 계시와 구원 신비의 전체■■인 것이다.
우리는 소공동체와 관련하여 ■■소공동체 영성을■■, ■■소공동체를 살아있게 하는 내적 원리■■ 또는 ■■소공동체를 소공동체답게 살리면서 소공동체가 지닌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하는 내적 원리■■, ■■소공동체의 내적 원리■■,■■소공동체의 원동력■■을 표현하는 것쯤으로 알아들으면 좋겠다.
3. 반둥 선언과 소공동체 영성
1990년 인도 반둥에서 열렸던 제5차 아시아 주교회의(FABC) 총회는 아시아 안에서의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 in Asia)을 ■■공동체들의 공동체(Communion of communities)■■라고 규정하였다. 아시아 주교님들이 발표한 반둥 선언 요약문에는 소공동체 영성의 근본 요소들이 다 들어있다.
1) 하느님 백성의 형제애
아시아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 말씀 중심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그들의 이웃 안에서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기 위해 토의하고 기도하며 친교를 나누는 것과 같이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한데 모여 하나가 된다. 또한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서로서로 도와 준다.
3) 참여하는 교회
성령께서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주신 선물과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깨닫고 활성화 되는 곳이 ■■참여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지금 여기에서■■이루어가는 이웃 사랑 안에서 교회의 선교 사명을 수행한다.
4) 증거하고 복음화 하는 공동체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다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충실히 증거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 간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모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고 일한다.
5) 이웃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예언적인 표지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그들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변혁하고자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세상을 넘어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예언자적 표징이 된다.
6) 섬기고 함께 하는 지도력
교회 안에서의 지도력은 모든 차원에서 전적으로 비 지배적이고, 종처럼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의 모습이며, 결코 봉사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어 주는 것이다.
7) 새로운 영성의 길
① 공동체 안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직의 영성
새로운 방식의 영성은 자신의 삶을 위해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과 공간의 모든 차원에서 공동체를 진정한 영성에로 이끌어 주시도록 주님께 완전히 의탁하는 공동체에 존재한다. 이것은 아시아적 상황 안에서 진정한 사도직인 예수님의 공생활을 는 그대로 따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②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는 영성
이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 특별히 힘없고 무시당하는 이들을 포기, 단순함, 동정, 연대 그리고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는 ■■아나빔(anawim)■■의 정신으로 포용한다. 그들은 능동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위해 일합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종교와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③ 삶과 신앙이 통합된 영성
이 영성은 전례, 기도, 공동체 삶,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복음화, 교리 교육 대화, 사회 현실 참여 등 그리스도교 생활의 모든 면들을 통합하는 영성이다.
④ 겸손의 영성
이 공동체는 외적 조직이나 힘 그리고 온전히 세속적인 효과로부터 단순함, 하느님께 대한 겸허한 복종 그리고 사랑의 봉사에 중점을 두게 된다.
8) 종교와 인간의 조화를 위해 일하는 공동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분열과 붕괴의 내적 경향을 벗어나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친교와 이웃 사랑 안에서의 통합적인 조화를 이루는 활동에 깊이 참여하여 일하도록 요청 받는다.
이 여덟 가지는 아시아 주교회의(반둥)에서 그린 아시아의 새로운 교회상이라 말할 수 있고, 소공동체 사목이 가고자 하는 목표(비전) 즉 교회의 모습, 소공동체의 영성이라 말할 수도 있다. 반둥 선언은 아시아 교회가 가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 이를테면 ■■교회의 지금까지의 모습■■과 ■■교회의 앞으로의 모습■■을 제시하며 소공동체로 사목을 통하여 그 상반된 모습의 불균형을 줄여 나가려 한다. 아래는 그 목록이다.
지금까지의 모습
앞으로의 모습
1
교회 중심적
그리스도 중심적
2
피라미드 형태
공동 사회 형태
3
서방 교회-서방문화
토착화-토착문화
4
교회건설-성당중심
신자 중심
5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계율
하느님에 대한 사랑-사목
6
개인주의
나눔과 보살핌
7
단체 중심
소공동체 중심
8
기도 중심-신심
성서-하느님의 말씀
9
성직자 전권 행사
공동 책임제
10
개인 구원
공동체 구원
11
의례적인 전례
생활화된 전례
12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음
모든 사람이 구원 가능
13
교권에 따라 유지돼는 교회
공동체 신자들의 신앙감각 (sensusfidlium)으로 유지되는 교회
14
성직자 고유 사제직
일반 사제직
15
개선하는 교회
섬기는 교회
(종처럼 봉사하는 교회)
16
성직자의 교회
참여하는 교회
17
회개하는 교회
자기 쇄신하는 교회
18
결정을 부과
합의
19
성령께서 머리 부분에 임하심
성령께서 뜻하신 곳에 임하심
4. 아시파 3차 총회 기조 연설과 소공동체 영성
아시파 3차 총회는 아시아 각 지역의 소공동체가 공동의 비전과 관심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인 뜻 깊은 행사였다. 또한 아시아 교회의 아시파 비전(반둥 선언) 수행에 대한 평가의 장이기도 하였으며, 가정, 영성, 사도직, 지도력, 네 가지 나눔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올란도 퀘베도 대주교님(필립핀 코타바토 교구 교구장)은 아시파 3차 총회 기조 강연에서 ■■소공동체/기초 교회 공동체: 하느님 백성이 힘차게 봉사할 수 있도록■■ 이라는 총회의 주제를 4가지의 소주제로 ① 오늘날 아시아의 소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사목적 과제 ② 소공동체 안에서의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양성 ③ 소공동체 안에서의 사도직과 봉사 - 사목적 과제에 대한 응답 ④ 소공동체 영성-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응답으로 나누어 말씀하시며 심오한 영성 안에서의 소공동체 활동을 강조하셨다.
올란도 퀘베도 대주교님은 소공동체가 지녀야 할 영성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 소공동체 영성은 하느님 말씀에 근거한 영성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가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까닭에, 성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근거를 둔 영성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 그리고 성사에 의해 성장함으로 교회적이여야 하고 공적이여야 한다(그리스도 안에 깊게 뿌리 내린 소공동체 영성은 성사적일뿐만 아니라 교회적이고 공적이다).
- 소공동체 영성은 세상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영성은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곧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실현하는데 관심이 있다(소공동체 영성은 세상에 아직은 아니지만 곧 다가올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려는 하느님 나라의 영성이다).
- 소공동체 영성은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의 영성으로, 소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연민으로 충만케 하는 그런 영성이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일치되는 마음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영성은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기초를 이루게 한다(소공동체 영성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연민으로 충만케 하여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의 영성이다).
- 이와 같이 소공동체 영성에는 기도와 행동이 늘 함께 하며 이들은 분리될 수 없다. 기도는 힘을 주고 행동은 기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소공동체 안에서 영적이고 거룩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여야 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올란도 퀘베도 대주교님은 궁극적으로 소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봉사할 수 있고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영성이며, 소공동체 영성은 이 시대의 가장 긴급한 사목 현안에 대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소공동체의 응답이며, 그러한 소공동체 영성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몰입, 세상의 고통에 대한 고뇌, 묵상 기도, 개인의 쇄신과 사회 변혁을 이루기 위한 공동체적이고 참여적인 행동을 통해서 종교 신앙이 성숙되는 것과 같은 동일한 방법으로 성숙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5. 아시파 3차 총회 최종 선언문과 소공동체 영성
아시파 3차 총회 최종 선언문은 지난 1990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최종 선언문에서 제3천년기를 향하여 함께 걸어가고 있는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 안에서의 소공동체/기초 공동체의 영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최종 선언문 2,4).
- 하느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말씀의 중심성).
-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안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데 있어 소공동체의 예언자적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사회 안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예언자적인 역할).
-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복음을 단순함과 겸손함으로 하느님을 깊이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
-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는 다른 종교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소공동체는 종교간 화합을 이루어 가는데 더욱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이웃 종교들과의 조화).
Ⅲ. 소공동체 영성 심화 도구인 복음나누기 및 기도 평가
아시파 3차 총회는 복음 나누기가 소공동체 영성과 본당 쇄신의 기초이고, 아시아 안에서의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이루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전해 준다.
1.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의 기초
아프리카 소공동체 모델이라고 할 수 있고 룸코를 창시하고 아시파 창설 초기부터 함께 해 오고, 서울 대교구가 소공동체를 시작할 때 사제 연수도 맡아 주신 바 있는 남아프리카 움타타 교구의 오스왈드 히르머 주교님은 복음 나누기가 소공동체의 기초이며 교회의 새로운 존재방 식이라고 아시파 3차 총회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오스왈드 히르머 주교님은 복음 나누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서는 하느님 말씀의 선포로써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공동체에 의존합니다. 교회의 전통은 성서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는 표지라고 말합니다. 성서는 정보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말씀이 선포됨으로써, 그 말씀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현존의 성사적 표지가 됩니다. 말씀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실재는 빵과 포도주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실재와 동일합니다. 성서라는 눈에 보이는 이 표지는 그리스도의 실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공경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항상 존중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그들 안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나타내는 표지가 됩니다.■■또한 복음 나누기의 지침은 ■■우리 자신을 철저히 그리스도 현존 안에 두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 나누기는 복음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이고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머물도록 우리를 도와 줍니다. 그러하기에 복음나누기는 소공동체의 기초입니다■■라고 알려 주신다.
2. 복음 나누기 평가 ①
- 아시파 3차 총회의 왜 우리는 복음 나누기를 소공동체 영성의 기초라고 하는가의 질문 안에서 -
․복음 나누기는 결심과 실천으로 이끌어준다.
․복음 나누기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게 된다.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의 친교라는 면을 계속 유지시켜 준다.
․복음 나누기는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발전을 가져온다.
․복음 나누기는 구성원 각자의 묵상을 거쳐 표현되기에 말씀이 우리 안에 깊이 안착되며 나아가 우리의 삶과 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고 그런 과정 안에서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토착화 할 수 있게 해 준다.
․복음 나누기는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동등함을 드러내 주며,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 하느님 나라의 방식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3. 복음 나누기 평가 ②
- 소공동체를 이끄는 반장과 구역장들에게 구성원들이 소공동체의 어떤 부분을 제일 어려워하는지 물어 보면 많은 사람들의 응답이 복음나누기, 즉 성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 시골의 형편은 더욱 그러하다. 그저 함께 모여 묵주 기도 많이 하면 되지 않겠느냐. 묵주 기도 하는 것이 더 거룩한 기도 모임이 아니냐? 괜히 모르는 것 가지고 얘기하고 주눅 들고, 재미없고, 분위기 딱딱하게 만들지 말자고 한다.
- 복음 나누기(7단계)가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 문제도 있는 것 같다. 관찰․평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의견도 있다.
4. 복음 나누기 평가 ③
- 복음을 나누며 사는 것,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 생활을 하느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내 인생을 나의 것,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이루어나가는 것이 당연하고, 내 인생의 책임도 내가 진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강우일 주교).
- 복음 나누기(7단계)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복음 앞에선 인간의 어려움이다■■회개하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정월기 신부).
- 복음 나누기가 어려운 것은 1-2번에 다 익혀서 잘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복음 나누기(묵상 기도)도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다. 실제로 비슷한 조건의 2개의 소공동체가 있는데 매주 모임하는 공동체의 할머니와 한달에 한번 모임 하는 공동체의 할머니의 복음 나누기 정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미사 때의 독서도 연습 없이, 한두 번 해봄으로 잘 할 수 없듯이 말이다.
- 초대 교회 시대의 기도는 성서 봉독, 주의 기도, 감사제(성찬례, 미사)였다고 한다. 성서 봉독이 곧 기도 생활이었다. 오늘 우리가 하는 묵주 신공, 성모 신공, 성체 조배 등의 기도는 훗날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서 봉독은 기도나 삶이 아니라 공부라고만 생각한다. 성서를 읽고, 쓰고, 외우고, 묵상을 나누는 것이 모두 공부라는 이름으로 공부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좋아하기보다 필요해서 또는 억지로 하는 편이 아닐까? 기도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부보다 기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빌고, 빈만큼의 대가를 받는 기복 신앙이 우리의 심성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9일 기도, 54일 기도, 묵주 기도 500만 단 하기 등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사실 성서 한 줄을 읽는 것도, 외우는 것도, 쓰는 것도 기도이고 이것이 삶이 되어야 한다. 공부는 사는 것 보다 깨닫는 것이 우선이고 사는 것은 나중이다. 성서 공부라는 말보다 성서 기도, 성서적 삶이라는 말이 더 넓게 우리 안에 사용될 때 복음 나누기는 더 깊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 따라서 복음 나누기 안에서 성서 읽기(듣기)가 묵상 나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기도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사에서도 독서(읽기)는 말씀의 선포이며 바로 듣기이다. 이런 면에서 복음 나누기 7단계는 단계적으로 되어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