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스트를 비롯한, 국제적으로도 유명 클래식 아티스트가 많은 한국에서 이렇다 할 모차르트의 레퀴엠 음반이 나오지 않은 것은 다른 의미에서 조금 놀랄 일이다. 그리고 너무 늦었지만 반갑게 나온 김선아 지휘의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합창단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연주단의 이 음반은, 말하자면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음반이다.
오디오가이가 기획하고 인천의 갈산동 성당에서 연주,녹음한 이 음반은 여러모로 뜻있고 값지다는 말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명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녹음은 이 음반의 가치를 상당부분 높여주었다.
이 음반은 크게 두가지 미덕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여성미로 상징되는 조화미(Harmony)이고 또 하나는 레퀴엠 자체의 본질적 속성이기도 한 영성미(Spiritual Beauty)이다. 이 두가지 만으로도 이 음반은 타 음반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별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감정의 여과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번스타인이나 장중한 우아미를 보여주는 칼 뵘이나 진지한 개성을 전통성과 조화시킨 아르농쿠르같은 명연이 존재해서 실제 공연이 아니라면 더 찰아볼 음반이 있을까 할 정도로 명반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레퀴엠(Requiem, 안식을 주소서)’로 시작되는 첫 구절을 듣자마자 바로 이 음반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투바 미룸(Tuba mirum)의 구절에서 나타나는 소프라노 전수미, 메조 백재은, 테너 김세일, 바리톤 정록기의 소리와 연주단의 소리는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흔히 라크리모사(Lacrimosa)까지가 1부에 해당하고 그 이후 미완성된 이 곡을 쥐스마이어가 주로 작업한 도미네 예수(Domine Jesu) 구절부터 2부로 치는데 2부는 1부에 비해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경우가 많았는데 이 음반은 흥미롭게도 곡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미가 아름다워 한번에 쭉 감상했다. 특히 2부의 베네딕투스(Benedictus) 구절은 투바 미룸 구절 이상으로 조화가 훌륭해서 이 음반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 음반들이 개성과 격렬함을 자랑하는 곡도 많지만 이렇게 수려한 조화를 이루는 레퀴엠은 곡 자체의 미덕인 부분이다. 여러번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이런 조화미는 독일 가곡과도 같은 매력을 준다. 이 조화미는 솔리스트와 합창단과 연주단이 지휘자의 조율에 의해 하나의 악기처럼 자연스러움마저 보여준다. 그러나 레퀴엠은 죽은 자의 안식을 기원하고 산 자를 위로하지만 이 모든 것의 평안을 신에게 기원하는 곡이므로 피조물로서의 자세에 대한 마음가짐이 어느 것보다 중요한 곡임에 틀림없다. 곡의 멜로디나 솔리스트나 합창단의 매력만을 듣는 것도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이 곡을 듣는다면 코끼리의 일면만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외국 음반들에게서 다양한 시도라는 점에서 이 곡의 탈 영성화, 일종의 세속적, 일반적 해석을 하곤 하지만 이 곡의 본질은 피조물로서의 영성적 해석이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새삼 증명한 음반이라고 본다.
클래식은 물론이고 팝과 가요 시장에서 음반의 시장화가 의미가 있냐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남기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성장,진화한다는 것이 가치가 크다는 점에서 김선아 지휘의 모차르트 레퀴엠 음반은 그런 점에서 소중한 기록이다. 공공기관 산하나 대규모를 제외한 단체중에서 박치용 선생의 서울모테트 합창단과 더불어 한국의 소중한 단체인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진가를 제대로 알리는 음반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레코다레(Recordare) 구절을 비롯한 몇몇 구절에서는 기악의 아슬아슬한 연주부분이 나타나지만 어쩌면 한국 합창단의 최대 과제일지도 모를,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합창단에 걸맞는 연주단체의 질적 성숙은 이들 단체의 숙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그러므로 애호가들이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의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세계일등음반에 어울리는 음반을 따라잡지 못하냐는 근시안적이고 나무나 풀잎만 쳐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지원이 없었던 척박한 한국의 클래식 음악 환경에서 이 정도의 감동적인 음반을 낸 이들이 나오는 게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 이들을 제대로 지원한다면 후일 또 어떤 역사적 기록들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지닌 숲의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음악의 신이 이 음반을 듣는다면 외국 음반의 세련됬지만 노련한 조교같은(?), 그러나 탈 영성화된 기록보다는 온전하게 조화롭고 온전하게 영성적인 마음을 중심에 잡고 있으면서 곡의 본질적 의도를, 피조물로서의 겸손함을 지닌 채 들려주는 이 곡에 큰 격려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낸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모든 것이 풍족해질 어느날 미래의 환경에서 그려낼 그들도 또한 기다려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성적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초심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