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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산성 제 1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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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황 : 테뫼형 석성으로 성의 중앙에서 북쪽으로 절반은 오래전 헬기장이 설치되어 성의 내부와 성벽이 모두 훼손되어 있으며 성의 내부 중앙에서 남쪽으로는 원형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성벽은 동쪽과 서쪽에 일부 원형이 남아 있으며 헬기장 주변의 성벽으로 보이는 석축은 옛 모습이 아니며 헬기장 설치시 쌓은 것이다.
남쪽 능선과 연결되는 곳에 문지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 환산성에서의 전망은 남동쪽으로는 옥천의 모습이 잘 보이며 서쪽으로는 멀리 대전의 계족산성이 바라보인다. 또한 이곳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산봉우리(해발 580M)에는 별도의 보가 존재하는데 환산성의 보루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또한 환산성에서 남쪽으로 이백리산성과 연결되는 능선에도 3곳에도 각각 작은 보루가 있다.
■ 제1보 (환산성 황골 堡)
■ 위치 : 군북면 이백리 황골 북쪽 산봉우리 / 해발 400M 환산의 남쪽 끝인 이백리산성에서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백리산성의 서쪽으로 골짜기 건너편의 능선과 만나는 산봉우리에 있다. 성의 둘레는 100M 미만이며 환산정상에 있는 환산성의 부속 보루로 추정된다. 성벽은 거의 모두 허물어져 있으나 남동쪽 능선에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축성 형태는 환산의 다른 성과 같다.
■ 제2보 (환산성 환평리 堡)
■ 위치 : 군북면 환평리와 증약리 감로골 사이의 산봉우리 / 해발 500M 제1보에서 다시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고려시대 이후 봉수대로 사용하여 성벽의 흔적은 전혀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으로 보이는 석축은 봉수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새로 쌓았으며 그 형태도 환산의 다른 성 및 보와는 전혀 다르다. 성벽의 흔적은 전혀 없으나 봉수대의 내부와 지형적인 조건등으로 미루어 환산성의 부속 보가 틀림없으며 둘레는 100M 미만이다.
■ 제3보 (환산성 감로골 堡)
■ 위치 : 군북면 증약리 감로골과 추소리 서낭당 마을 사이의 산봉우리 / 해발 540M 제2보에서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변의 조망이 대단히 좋다. 성의 내부에는 민묘가 설치되어 훼손되어 있으며 남동쪽 능선에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둘레는 100M 미만이며 축성형태는 환산의 다른 성들과 같다.
■ 제4보 (환산성 서낭당마을 堡)
■위치 : 군북면 추소리 서북쪽 산봉우리 / 해발 578M 환산의 정상에 있는 환산성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간 두 줄기의 능선중 동쪽 산줄기의 환산과 비슷한 높이의 산봉우리에 있으며 환산의 여러 성들 중에서 원형의 모습이 제일 잘 남아 있다. 성의 둘레는 100M 미만이며 환산성의 부속 보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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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산성 제 4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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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립지리원 발행 1/25000 지도에는 환산성지를 환산성 제1보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산봉우리에 별도로 표기하고 있는데 답사 결과 성터로서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하여 오기로 보인다. 환산성은 환산의 북쪽을 돌아가는 금강과 보은 - 안내 - 옥천간의 통로 및 보은 - 회인 - 대전간의 통로를 지키기 위한 백제의 요충지 산성으로 짐작된다.
■ 문제점 : 환산성에도 역시 유적지 안내판은 없었으며 단지 수 일전에 옥천군 의회에서 설치한 환산 표지석이 보이며 오래 전에 설치한 헬기장으로 인하여 매우 훼손 되어있다.
■ 찾아가는길 : 이백리산성에서 환산의 능선을 따라 3Km 정도 북쪽으로 가면 환산 정상에 다다른다. 또는 군북면 추소리 서낭당 마을에서 서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되나 길 찾기가 조금 어렵다.
이백리성(二栢理山城)
■ 위치 : 군북면 이백리 황골과 환평리 사이의 환산 남쪽 끝 부분 / 해발 394M
■ 시대 : 삼국시대(백제계성)
■ 형태 : 삼태기형 석축산성
■ 둘레 : 약 300M
■ 탐방일시 : 2000년 11월 12일, 200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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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거지 또는 창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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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황 : 삼태기형 석성으로 동고서저형의 지형이며 동쪽성벽은 남북으로 형성된 능선을 이용하여 축성되었고 서쪽 성벽은 능선 아래쪽으로 반원의 모양으로 축성되어 이웃 관산성과 형태가 같으며 동쪽 성벽의 급경사면에는 높이 약 5M 정도의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서쪽 성벽은 많이 허물어져 있으나 남아 있는 일부 성벽은 내외협축한 성벽임을 보여주고 있다.
문지는 서쪽으로 나 있으며, 성안에는 직경 8M 깊이 4M 정도의 웅덩이가 있는데 창고지나 건물지로 보인다. 이 곳에서의 전망은 동남쪽으로는 서산성과 관산성이 바라보이며 남쪽으로는 노고성과 할애비성(자모리성)이 보이며 남서쪽으로는 식장산 정상과 탄현으로 추정되는 고개(자모실 - 대전판암동 사이)가 바라보인다. 또한 서쪽으로는 옥천 - 대전간의 국도와 저멀리 계족산성이 바라보이며 환산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는 환산봉수대가 있는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인다.
한편 환산에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능선 위에 이백리산성을 포함하여 5곳의 성, 보가 존재하는데 북쪽으로부터 둘레 50M 정도되는 망루가 환산의 정상 약간 북쪽의 산봉우리에 있으며 환산의 정상에는 둘레 약 300M 정도의 성이 별도로 존재하고 환산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1Km 정도의 산봉우리에는 둘레 100M 정도의 망루형 보가 있으며 이 곳에서 다시 500M 남쪽에 둘레 50M 정도의 망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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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의 돌로 만들어진 개인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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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리산성은 성의 동남쪽(옥천읍 방향)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되었으며 상주 - 옥천 - 대전 - 부여(공주)로 통하는 길을 방어하기 위한 성이며, 좀더 신라쪽에 있는 서산성과 관산성을 지원 또는 견제하기 위한 백제의 주요한 성이라 본다. 출토되는 유물은 백제계 토기가 출토된다.
■ 역사현장 : 삼국사기 권43 열전 김유신조에 의하면 백제의 성왕이 신라의 관산성을 칠 때 고리산(古利山 = 環山)에서 출병하였다가 신주군주 김무력에게 패배하여 좌평 4명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
■ 문제점 : 산성의 명칭에서 혼동이 많은 산성이다. 옥천군지 등 일부자료는 이 곳의 산성을 환산성이라고 명기하고 있으나 일부 자료는 이 곳의 산성을 이백리산성이라 하고 환산의 정상에 존재하는 산성을 환산성이라 명기하여 구별하고 있다.
환산에 있는 5개소의 성과 보를 하나의 성인 환산성으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2개의 성(이백리산성, 환산성)과 3개의 보로 구별할 것인지가 관점인데 하나의 성으로 간주하기에는 거리가 서로 너무 멀고 또한 규모가 엇비슷하여 2개의 성과 3개의 보로 구별함이 타당할 것으로 보이나 그러면 어느 성을 환산성으로 할 것인지가 새로운 관점이 되나 위치적으로 보아 환산의 정상에 존재하는 성을 환산성으로 간주함이 타당할 것이다.
이백리산성에도 역시 유적지 안내판은 없었으며 옥천군 관내 성지중에서 제일 훼손이 심한 성이다. 민간 무속인이 설치하였다고 생각되는 제단이 성내에 두 군데나 있으며 제단 설치에 사용한 돌들은 모두 무너진 성벽에서 사용하여 유적지를 훼손하였고 건물지로 짐작되는 웅덩이에는 잘려진 나뭇가지등이 어지럽게 쌓여 있으며, 또한 옥천군에서 설치한 산불 감시 초소로 보이는 설치물도 있어 산성을 답사하는 본인으로서 심히 안타깝고 애석하다.
■ 찾아가는길 : 이백리 군북면 소재지에서 환평리 방향으로 경부선 철로와 경부고속도로 밑을 빠져 나와 약 50M 정도 가면 환산 등산로 안내판 있는데 이 곳에서 약간 위쪽에 왼편 산으로 등산로가 있다. 30여분 오르면 능선에 다다르는데 능선의 오른편이 이백리산성이다.
고리산성제1보루입니다. 뒤의 성돌이 성면으로 생각하여 기뻐했는데, 군인들의 호를 돌로 만들 것입니다. 이런 호는 쓸모가 없습니다. 호를 팔 때는 호 주변에 돌이 있으면 안됩니다. 이유는 총알이 날라와 돌에 맞으면 돌의 파편이 호 안의 병사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식적이고 쓸모없는 호를 만들기 위해 보루를 다 파헤쳤습니다. 대규모 호를 만든 날짜를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1964년 11월 8일이라고 적혔있고, 성은 강씨 같습니다.
무너진 고리산성 제1보루의 성돌을 파도라마로 찍었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정표 입니다.
산불감시초소 앞의 조형물입니다. 태극기까지 정성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문득 등산로가 사람들이 다니는 것에 비해 넓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일까요
옥녀봉 이정표입니다. 옥녀봉에 고리산제2보루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루같은데 표지석도 없고 해서 지났첬는데 다음에 찾은 보루가 제3보루라 옥녀봉을 다시 올라가 보기로 하고 계속 산행을 하였습니다.
제3보루 가기 전에 소나무가 멋있어서 올립니다.
제3보루 성벽 흔적입니다.
제4보루 모습입니다.
고리산의 정상이며, 제5보루이며, 헬기장으로 터가 넓고 주변의 성벽 흔적으로 알았는데, 헬기장을 만들면서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古尸山를 백제음으로 읽으면 골산, 고리산이라고 합니다.
고리산성 제6보루 입니다. 성벽이 가장 완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고리산성 제2보루 표지석입니다. 옥녀봉의 제2보루 성벽 흔적 모습입니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도 안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첫댓글 사진과 정보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꼭 환산에 가려합니다. 가까운데도 아직 못가봤어요.
고리산과 대청호반 그리고 부소무니 끝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