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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천태괘 강의입니다.
전호근 선생 : 하늘이고 땅이죠. 하늘은 천자. 왕. 땅은 왕비. 이렇게 되죠. 둘이 소통하는 거에요. 천지가 교감하는 거죠. 천지교태라고 하늘과 땅이 교제하는 곳이 태다. 경복궁에 교태전이 있죠. 중전이 머무는 곳이죠. 임금과 왕비가 함께 하는 곳. 천지가 소통하는 곳.
전호근 선생의 지천태 강의에서 고태전을 설명했습니다. 학자의 강의는 얻어 듣는 것이 있습니다. 무당은 천지를 찾으면서도 중요한 천지가 만나는 의미인 교태전을 모릅니다. 그러니 무당이지요.
周易이라는 것이 작은 티끌에서부터 우주의 전체를 개념화 시켜낸 내용이기 때문에 해석은 확대 해석을 하면 되겠습니다
: 지난 시절 주역을 공부한 선유 중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무당 강의의 특징으로 기회가 있을 때는 모른 체 한 다음 지나가면 꼭 이렇게 아는 체를 합니다. 건괘에서 천택리괘까지는 근거가 전혀 없는 말들로 어떻게 하면 손해가 없을까 와 도덕선생을 노릇한 것 외에는 없습니다. 10개의 괘의 설명에서 티끌에 대한 단서도 우주에 대한 단서도 말한 적이 없다 갑자기 한 말입니다. 근거는 당연 없고 신비한 말을 한 까닭은 이렇게 대단한 공부를 한 사람이니 계속 낚여서 강의를 들어 라는 고객관리용 맨트입니다.
전호근 선생 : 전체가 딱 맞는 게 있으면 혹시 있을 지도 모릅니다. 수천년동안 사람들이 딱 맞는 것 해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아무도 딱 못 맞추었어요. 혹시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딱 맞는 것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연구를 해보시라고 권하기도 그렇고요. 왜냐면요? 딱 맞으면 주역이 아닙니다. 주역에서 암시하고 있는 내용을 잘 풀이를 하자면 그렇게 기계적인 설명방식으로 주역이 해석되게 일부러 안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에요. 일부러 안 맞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데 맞도록 연구 하는 게 권고할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곽박이 복술로서 이름을 날린 사람 중에서 곽박 소동파도 해당되고 곽박과 복서설화라고 민간에서 떠돈 이야기에요. 점술과 관련된 설화에요. 곽박이란 사람의 삶이 굉장히 기구합니다. 곽박은 삼국시대 촉 오 위 삼국시대의 위나라가 통일되고 위나라가 사마씨의 진니라가 되죠. 서진이고 그 다음 이민족에 쫓겨서 동진으로 가는데 동진에서 곽박이 벼슬을 합니다. 동진의 군사권을 가진 사람이 왕돈입니다. 곽박이 왕돈의 밑에 있었습니다. 곽박이 점복에 뛰어나니까요. 사실은 그게 아닌데 그걸로 벼슬을 한 게 된 거에요. 왕돈이 곽박에게 이번에 내가 거사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점쳐봐라. 길한지. 흉한지. 병사를 일으키면 죽는다. 그리고 철군을 하면 길하다. 이렇게 점을 칩니다. 점이 그렇게 말을 해줬을까요? 자기 바라는 대로 점을 친 겁니다. 그러니 왕돈이 알죠. 너는 얼마나 살지 점을 쳐 봐라. 그러니 곽박이 저는 오늘로 죽습니다. 죽어도 할 수 없습니다. 이거에요. 그런데 왕돈이 살려줬다가 나중에 죽죠. 죽이는데도 별별 설화가 다붙어있어요. 죽기 전에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자기가 입은 좋은 옷을 벗어주더라는 거에요. 왜 이러느냐니까 내가 당신에게 은혜를 입을 일이 있다 그러면서 옷을 벗어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망나니에요. 죽일 때 시간 안 끌고 편안하게 죽여줬다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점을 쳐가지고 산동에게 죽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망나니 성씨가 숭씨에요. 파자점이에요. 설화죠. 워낙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다 보니까 이런 저런 얘기들이 결합되어가지고 형성 된 것 같습니다.
실제 기록된 내용을 보면 점을 쳐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당시의 상황을 자기에게 맞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가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점쳐가지고 거기에 의존해서 판단한다고 할 수 없거든요. 후세 학자의 평가도 그래요. 우리나라에도 토정 이지함선생 같은 경우는 주역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주역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토정비결은 주역하고는 안 맞거든요. 온갖 설화가 다 붙고요. 집에서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앞날을 맞추시오. 내가 알기는 뭐 알아. 그럼 당신이 거짓말 했단 말이요. 이런 식으로 부부간의 대화도 나오는 것들도 그런 식으로 비유를 쓴 것 같습니다. ]
그러면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뀌어야 된다. 바뀌어야 된다 하는 것이 뭔가 하면? : 易地思之요
: 역지사지가 어디에서 나왔다는 말을 해줘야 되는데 모르니 말이 없습니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맹자 이루하에 실린 글로 돼있습니다. 강의의 수준이 일반인들이 아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무당이지요.
인터넷을 검색 : 이 성어는 중국의 성어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주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정확한 출전은 밝히기 어렵고 아마도 《맹자(孟子)》 권 8 <이루하(離婁下)>에 실린 다음 일화에 나오는 "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 " 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맹자》원문을 인용하겠습니다.
하우와 후직은 태평한 세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이나 지나면서도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자는 이를 훌륭하다고 여겼다. 안회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만 생활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자신이 즐겨하는 일을 고치지 않았다. 공자는 안회의 이러한 점을 칭찬하였다. 맹자는 말한다. "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뜻이 같았다. 하우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물에 빠진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주리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꾼다 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
그래서 회사에서도 보면 사장으로서의 지위를 지키면서도 어느 날은 작업복을 입고 나와서 생산라인에 들어가 가지고 사원들과 일을 하고 배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 회사가 태평한 회사요. 화목한 회사. 결론으로 윗사람은 비워야 된다.
: 사장이 작업복을 입고 생산라인에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가능하겠죠. 삼성과 현대 등 재벌그룹의 회장은 바쁘니 당연 빼고 계열사 사장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체육대회는 어지간한 회사는 다 하고 있는데 노사 간 문제가 있는 회사는 체육대회를 하지 않는 회사일까요? 이십년 전에나 통했을 법한 말입니다.
어느 계열도 아마츄어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마추어의 꼭대기가 아마츄어 이긴 하대 프로의 근성을 약간 가진 사람 거기가 가장 행복하다. 프로로 가면 축구가 좋아서 축구를 배우는 사람이 동네 조기 축구 할 때가 좋지. 나중에 진짜 뭐가 걸려있는 경기로 맨 날 띤다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침을 이렇게 배우로 와서 내면에 꽉 채워서 알고 자신감이 있고 아직은 실행은 안하고 누구라도 오면 내가 해 볼만 하다 라는 그때가 좋지 나중에 여기 졸업하고 나가서 환자들 들이 닥치면 태평이 아니라니까? 그래서 여기서 하나 더 올리면 봐줄만 해요
: 사람의 사주는 다 달라서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다릅니다. 아마추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프로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로 선수가 스트레스가 있다. 그럼 아마추어는 스트레스가 없는가? 사주가 뭔지 모르면서 사주강의 20년을 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말하는 사람은 투관한 사람으로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려고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어떤 업무를 마친 다음 개선장군처럼 떠들면서 내가 이런 엄청난 일을 했고 과정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고 떠듭니다. 함께 그 업무를 한 투관하지 않은 동료는 저 자식은 항상 혼자 다했다고 구라만 치는 웃기는 자식이라고 하면서도 팔자가 다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주를 너무 모릅니다.
스트레스가 왜 생길까요? 하기 싫은 일을 하거나 능력이상의 일을 할 때 생깁니다. 토목건축 현장에서 준공 날짜를 지켜야 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준공날짜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겠죠. 멀리는 경부고속도로 가까이는 영종대교 서해대교의 건설이 그랬습니다.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은 합심해서 지혜롭게 그 임무를 완성합니다. 세상을 모르고 사주도 모르니 당연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雷天大壯. 여기까지 정도는 봐줄만 해요. 너무 올려놓으면 다 올려놓으면 쉬질 못하지. 이렇게 완성된 사람은 쉬질 못해요. 자기라는 인생이 없어. 하루 종일 물으러 오고 찾으러 오고 자기 인생사는 것 아니다. 그 대신 큰 의미에서는 강건하고 봉사적 의미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것을 꽤하고 사는 사람도 있고. 보면 명절 때도 자기 집 한번 못가고 자기 직종에서 일하고 밤새기 하고 이런 사람들이 과연 그게 잘 사는 것인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볼 만한 해요
: 계속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선유 중 퇴계 남명 율곡이 뇌천대장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의 문집에 적어있다고 하고서 다음 말을 해야 됩니다. 무당 강의는 이렇게 사기를 하나 던지고 그 사기로 다음 말을 진행합니다.
論語 첫 문구에 ‘인불지불온일라도 불역군자‘ 인부지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만족된 내면을 갖고 있는 자가 진짜 君子다. 거기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君子다.
: 논어의 첫 구절을 인용했습니다만 일반인들의 상식의 선을 넘지 못합니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풀이를 정확하게 해준 다음 설명을 해야 되는데 논어를 아는 척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어서 대충 비틀어서 설명한 겁니다. 불역군자는 군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군자답지 아니한가로 풀이를 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면서 한문을 아는 체는 합니다.
전호근 선생 논어 강의 :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사람 인자는 절반이상이 타인입니다. 다른 사람이 부지 알아주지 않는다. 알지 못한다가 아니라 알아주지 않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인부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불온 노여움을 품지 아니하면 군자답지 아니 한가? 온자는 노기보다 약한 뜻. 노여워하는 뜻 함 마음속에 품는 것이다. 온은 노여움이 밖으로 들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불지이불온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아니하면 이렇게 번역을 하면 오역입니다. 온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노여움 자체를 품지 않는 것이 불온입니다. 군자라고 하는 것도 아니 불자가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군자가 아니겠는가 해서는 안 됩니다. 군자답지 아니한가. 이렇게 번역을 하셔야 합니다.
태평은 반드시 뭐가 옵니까? 부패가 옵니다. 우리 사회를 걱정하시는 분들은 이 나라가 이렇게 돼서 어떻게 되겠느냐? 썩었다. 썩는 것을 걱정을 또 하시는데 그런데 이미 썩어가는 것을 회복하는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좀 썩었다면 더 썩어라. 왜? 완전히 썩어야 거름이 돼. 그 전에는 거름이 안 돼. 어지간히 썩어버리면 방책이 안 나와요. 진짜 사회적으로 안 된다. 큰일 났다하면 이제 모든 사람이 일어나 가지고 거기에 대응을 하게 되고 반 썩어서는 안 돼. 팍 썩어 버려야 돼. 좀 더 썩기를 기다리고 봅시다. 그래야 뭔가 이것이 거름이 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의미요. 그래서 사회 혼란을 나쁘게 보지 마세요
: 태평 다음에는 반드시 부패가 온다. 그럴듯합니다만 당 송 원 명 청과 조선의 역사에서 태평한 세월은 어느 때이고 부패한 시기는 어느 때라는 말을 해줘야 됩니다. 강의와 친구간의 대화를 구분을 못하는 것이 무당입니다. 태평 다음에 부패가 온다는 말은 후진국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선진국에도 부패는 있지만 부패가 발생하면 제도를 고쳐서 다시는 똑같은 부패가 생기지 못하게 하여 사회가 진보하면서 맑아지게 만들지만 후진국에서는 제도를 바꾸지 않기 때문에 같은 부패가 반복해서 생깁니다. 그 점에서는 한국은 한참 후진국인 거요. 책을 본 적은 없어서 무당의 상식으로 강의를 하다 보니 말이 안 되는 무식한 말만 골라서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서 썩어서 거름이 돼가지고 또 새로운 새것이 나와 가지고 또 성장했다가 또 내려갔다가 이것이 우주 변화의 원리다. 역사 이래도 50년 마다 한 번씩 전쟁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 이렇게 역사학자들이 보면 그야말로 환란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 우주 변화의 원리라는 말이 너무 좋아보여서 함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썩으면 무조건 새로운 것이 나옵니까? 그 말은 나무의 씨앗이 싹을 낸다는 말입니다. 식물을 제외하고 다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개나 소 돼지가 썩어서 거름이 되면 다시 새로운 개나 돼지나 소가 나옵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무당입니다.
50년 마다 전쟁이 있어야 하고 더 나가서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고 누가 한 말이요.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어떤 역사학자가 환란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는 거요. 누구요. 무당 강의답게 필요하면 즉시 사기를 빌려오거나 비틀어서 강의에 이용합니다.
겨울은 춥고 긴장이 돼 있죠. 긴장이 돼있으면 뭉치죠. 추우면 사람이 모입니다. 춥고 배고프면 다 모이고 단합하고 하는데 배부르고 태평하면 다 흩어지는 돼있어. 조심해야 돼
: 추우면 사람이 모인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시대 50년대에 날씨가 춥고 배고프면 다 모여 단합을 했다는데 단합을 하면 누가 밥을 줬고 따뜻하게 해줬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복지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지 70년대 까지는 복지를 말하면 정신이상으로 봤던 겁니다. 그리고 태평하면 다 흩어진다. 흩어진다는 말은 달리 보면 자신의 생업에 열중한다는 말이겠지요. 모여서 단합만 하면 누가 밥을 주고 생활비를 줍니까? 그러니 당연 자신의 생업에 종사해야 하니 흩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조심하라. 무엇을 조심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조심해야 된답니다. 그러면서도 무당은 당연 조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당이지요.
지금 주거 문화에서 잘 못 된 것이 뭔가 하면요? 방이 각각이요. 옛날은 어떤가 하면? 방이 하나요. 완전히 옛날하고 반대입니다. 애는 방은 다 각각이요. 그리고 부부 방은 하나요. 그런데 옛날은 부부 방은 각각이요. 얘들 방은 하나요. 이렇게 한 이불 속에서 자란 애들이 정이 많겠어요? 딴 방에서 자란 애들이 정이 많겠어요? 무섭습니다. 한 이불에서 잤다는 게 엄청나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동기간에 정이 생겨. 지금 처음부터 각방 써.
: 무식한 무당 놈입니다. 무당이 어려서 밑이 째지게 가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당 강의라서 옛날이 어느 옛날이란 말이 없이 그냥 옛날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부자 집은 형제들이 각방을 쓰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한 방에 온 가족이 살았던 겁니다. 지금도 돈이 없으면 한방에서 삽니다.
그리고 부부 방은 하나요. 그런데 옛날은 부부 방은 각각이요.
: 무당이 유학을 아는 체 구라를 치는데 조선시대 때는 유학을 아는 양반만 해당이 되고 일반 양민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됩니다. 일반 사람 모두가 아니라 양반이라는 말을 해야 되는데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일반 양민들도 유학을 알 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문경에서는 자식들은 방 하나에서 키우고 부부는 각각 방이 하나씩 있어서 한 집에는 모두 방이 셋씩 있었다는 말인데 아들만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아들과 딸이어도 한 방에 두어야 됩니까? 그러니 공부가 뭔지 몰라도 되는 무당이지요. 조선시대에 부부는 낮에 남자는 안방에 있지 않고 사랑방이나 다른 방에 거처했습니다. 그것을 비틀어서 밤에도 각방을 쓴다고 소설을 쓸 수 있는 무당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딴 방에서 자란 애들이 정이 많겠어요? 무섭습니다. 한 이불에서 잤다는 게 엄청나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동기간에 정이 생겨. 지금 처음부터 각방 써.
: 사주를 모른 무식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주에서 형제간의 우애는 견겁다봉으로 나인 일주와 일주 옆 시간이나 월간에 나와 같은 견겁이 있으면 우애가 있습니다. 육칠십년 대는 먹고 사는 것이 주였지만 지금은 자동차 핸드폰 인터넷 컴퓨터 케이블 TV는 기본입니다. 그래서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돈이 많이 필요해서 형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고 육칠십년 대는 먹고 입는 것의 해결이 주였지만 지금은 욕구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형제가 함께 농업에 종사하고 한마을 내지 가까운 곳에 살아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형제간에 직업이 다 다르고 일터가 전국 내지 지구촌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생업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애경사 때만 만납니다. 조건이 엄청 다른 것을 같이 비교하는 것은 무식한 무당이니 가능합니다. 사주도 모르면서 주역씩을 강의하느라 고생이 많소.
그리고 부부는 한방에서 맨 날 자. 여기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성을 가진 사람이 한방에 자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떨어질 일밖에 안 생기는 거죠. 옛날에는 애들은 한방에 집어넣지만 부부는 사랑방 안방 따로 놓아요. 이 두 사람은 붙어 있어야 할 사람 아닙니까? 그냥 전기가 통하는 거요. 어떻게 하면 저 같이 붙어 잘까? 그러니 떨어져 있으니 붙을 일밖에 없지. 그러니 헤어질 수가 없다니까? 그리움으로 사는 거요. 한집에서도 그리움으로 사는 거요. 이게 연애하는 거요. 평생 연애하는 거요. 그런데 합치고 나면 떨어질 일 그래서 이혼이 생기는 거요
: 사서오경의 예기를 읽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기를 읽지 않았으면서도 예를 논할 수 있는 것은 무당이니 가능합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무시하는 말만 하면 유학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무당입니다.
무당의 말대로 한방에서 자면 떨어질 만 생길까요? 인생을 모른 놈이 사주와 주역을 돈을 벌기위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비교하는 마음이 출발입니다. 나의 배우자가 나에게 잘한다는 생각만 있으면 이혼할 이유가 없지요. 조선시대에 성인이 이성을 평생 몇 명이나 볼 수 있었을까요? 지금은 TV와 신문 잡지 인터넷에서 이성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나의 배우자와 바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나의 배우자가 나의 기준에 미달하면 마음이 돌아섭니다. 조선시대에는 비교할 대상이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로 한정이 되었고 마음이 돌아서도 나를 받아줄 다른 남자나 여자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때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그 때 오직 하나만 선택을 해야 되면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립니다. 이혼은 비교의 마음이 출발입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떨어질 일밖에 안 생긴다. 사주를 모르면서 사주 강의를 하는 놈입니다. 사주에 배우자와 합인 사람은 이혼을 못합니다. 옛날 양반 자제의 경우 조혼이므로 일 년 정도는 각방을 쓰게 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항상 한방을 씁니다.
여기서도 무당화법으로 남의 얘기를 하면서 자신은 천상위에서 속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현 상황을 먼저 말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무당과 사주 판의 일부 사람들입니다. 무당의 고추는 결혼 전에는 폐수 처리만 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남녀상열지사를 했을까요? 아니면 하사관 시절 술을 마시면 남녀상열지사를 하고 귀대해서 자랑을 했을까요? 또 지금까지 자식 낳기 전에 두세 번 했고 그 이후로는 폐수 처리만 했을까요? 아니면 남녀상열지사는 기회만 있으면 했을까요? 보통사람의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삶을 모르면서 부끄럼없이 소설을 쓰는 놈은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호근 선생 주역 송괘 강의 : 예기에 음식이란 말이 나오는데 음식남녀에 인지대욕존언 음식은 먹고 마시는 거죠. 개체가 생존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죠. 남녀는 그 개체가 새로운 개체로 이어가기 위한 그런 관계를 의미합니다. 음식은 식욕이라면 남녀는 성욕을 의미합니다. 음식은 매체보존의 욕망이라면 남녀는 종족을 보존을 위한 개체 자체가 무한정 할 수는 없으니까요. 종족을 이어나가기 위한 욕망 두 가지로 압축시켜서 얘기를 하는데 이게 인지대욕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은 음식 남녀에 있다는 얘기에요. 크게 나누어 보면 이 두 가지 욕망이죠. 식욕과 성욕 두 가지 욕망인데 결국 이 두 가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죠. 수괘 다음에 송괘입니다. 결국 음식을 두고 다투는 것이 송이에요.
禮運 28章 飮食男女人之大欲存焉死亡貧苦人之大惡存焉故欲惡者心之大端也
우리나라는 제일 문제가 뭔가 하면 빽이요? 모든 사상과 종교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빽이 돼 버려요. 믿어라 그러는 것은 뭐요 빽이지. 빽 종교가 돼버렸어. 진실로 거기에 대해서 감응이 되가지고 교감을 하는 아니라. 믿으면 된다 라는 빽의 문화로 만들어 가고 있어
: 종교가 빽이 되어서 무당이 무슨 손해를 입었습니까? 의리역 강의에서 왜 종교와 빽이 나올까요? 종교전문가이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한국의 현실을 모른 외국인들이거나 한국의 문제를 모른 멍청한 사람들이어서 특별히 무당이 가르쳐 준 겁니까? 다 알고 있는 말을 듣기 위해 돈과 시간을 허비하면서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불교를 믿고 기독교를 믿고 천주교 유교를 믿는가를 물었더니
: 다들 오행으로 풀이를 합니다만 무당은 어려서부터 믿는 종교를 믿는 다고 했습니다. 청전 스님은 대건 신학대학을 다니다 불교로 옮긴 분이고 석용산도 천주교 신자 집안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종교를 바꾼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믿었던 종교가 맞지 않으면 다른 종교를 믿는 겁니다. 그럼 사주와 오행이 아직 수준이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전스님 : 그는 애초 가톨릭 신부가 되려던 예비신부였다. 광주 대건 신학대 3학년에 재학중에 송광사의 방장 구산 스님을 만난 그는 가톨릭 예비신부에서 불교 승려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시도한다. (한겨례 신문 2012년 2월 4일)
만약에 기독교로 가는데 천국 못 갈수도 있어 그러면 갈사람 있어? 몇이 있겠어? 이가 들어있어. 그래서 어느 종교. 어느 사상도 마찬가지요. 지금 너무 이 땅이 리에 빽 문화에 젖어 있지 않느냐? 그래서 이것을 구복이라고 그래. 죽기 살기로 가서 복만 구하는 거요. 구복신앙이요. 기복이라고도 하지. 대한민국에 들어오면 전부 종교가 기복이 돼 버려요. 스스로를 마음 닦는 그런 종교적인 그야말로 가르침이 안 되고 어떻게 하든 잘 되어볼까 하는 왜곡된 상황에 처 있습니다
: 무당이 가장 애호하는 가정법입니다. 가정까지 하면서 강의를 할 만큼 중요한 문제로 의리역의 이해를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항입니까? 아니면 적당히 시간을 보내려고 떠드는 말입니까? 유학에서는 죽음이후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데 의리역과 기독교의 천국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천국을 가건 안 가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신경을 쓸까요? 신학을 모르지만 본회퍼와 안병무는 알고 신학자는 아니지만 유달영 함석헌도 압니다만 무당은 그분들이 있었는지를 모르다 보니 무식한 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 합니다. 모든 교회가 나름대로 이웃돕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배운 불교도 요즘은 하고 있습니다. 배워야 할 좋은 점은 배우지 않고 나쁜 점만 크게 보는 것은 대한 사기인 협회 유학분과와 무속인 협회 동대문 신설동 통합지부장인 사기 인이다 보니 세상의 좋은 일은 보이지 않고 온통 사기치는 행동만 눈에 보이는데 동일 업종의 종사자가 무당 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배가 아파서일까요?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말 안 해도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변했는가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말해야 됩니다. 친구간의 대화에서는 가능하지만 강의에서는 그렇게 된 원인과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까지 말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 강사들은 타 종교를 비판할 때는 극히 조심합니다. 조심하는 이유가 그 종교의 반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종교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아서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 자칫 무식한 놈의 말이 될 수 있으므로 그간 쌓아올린 학자의 명성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놈이 되지 않으려고 모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겁니다. 공부가 무엇인지 모른 무당이다 보니 용감한 거요.
불교를 믿는 사람이 있고 기독교 천주교 무속신앙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믿는 것은 성격이고 팔자입니다. 왜 거기에 시비를 거냐고.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던 처남의 댁이 기독교로 개종해서 천국에 대해서 물어봤지요. 죽어서 천국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랬더니 처남댁의 말은 없으면 말죠. 기독교인 모두 천국을 찾는 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주를 모른 거요.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듯 천국에 목을 매는 사람도 있지만 없으면 그만이다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면서 사주강의를 하고 있으니 사주 강의가 순 개구라가 되는 겁니다.
종교가 기복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요. 그것을 알지만 빌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기독교나 불교의 신자와 대화를 해보면 목사나 스님을 보고 교회나 절을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럼 된 것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특정종교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고 강요에 의해 믿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겁니다. 왜 남의 선택을 잘 했다 잘못했다 라고 평을 할까요? 그 말은 사주를 모르는 행위입니다. 그럼 무당을 선택한 것을 잘한 행위입니까? 그리고 무당은 남을 평해도 된다는 인가를 받았습니까?
무당의 중천건 괘 강의에서 “적선지가는 필유여경하고 옛날부터 스님들이 탁발하러 왔다 갔다 하시면서 적선하십시오. 선을 쌓으십시오. 나 보태주는 것이 아니요. 당신의 선을 쌓게 해주는 것이요. 필유여경이요. 언제 보답을 받습니까? 제가 착한 일을 하면 언제 경사가 옵니까? 금방 올수도 있고 아랫대에 받을 수 도 있고 거기에 대한 하도 궁금한 사람이 있으니까?”
“ 천지는 수화요. 일수 이화요. 이것도 모르고 하면 안 되지. 그래서 촛불은 두 개 켜. 촛불은 양쪽에 켜게 돼 있어. 그 대신 물은 한 사발. 아주 깨끗한 땅의 정한 수 거기에다가 촛불을 켜는데 불을 켜서 들고 가서 꼽고 준비를 완전히 합니다. 그 다음에 저 우물에서 물을 떠 가지고 내 정성이 수는 물질이요. 땅이요 하니까 나의 정성을 가득 담아서 모자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들고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상태로 갖다 놓으면 천지감응합니다. 옛날부터 빌 때는 저렇게 하는 거요. ”
건괘 강의에서 명심보감의 도가 구절을 외우지 못해서 책에 적어 와 가지고 음덕을 찾고 또 일수이화를 찾으면서 천지가 감응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전혀 다른 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주나 침 약강의가 아니라 주역 건괘강의와 다른 말을 태연하게 하냐고. 무당이다 보니 빌 때는 항상 촛불 두 개와 물이 없으면 천지가 감응을 하지 않는 다는 말일까요? 유학에서는 빌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면서 유학을 하고 성리학을 한다고 하니 무당인 겁니다.
해서 조선시대 때 보세요. 선비를 죽여 버립니다. 자식을 죽여요. 대단한 결정이요. 우리가 배울 땐 윤리도덕을 배운 사람들이 매정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선비 자식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왜? 이게 깨질까봐. 大義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 시켜야 돼
: 무당스런 발언으로 어떤 선비가 자식을 죽였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죽였다고 만하고 있습니다. 국사를 배운지가 오래되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고 국사교과서를 살펴봐도 선비가 자식을 죽인 경우가 없습니다. 무당의 강의는 궁하면 언제든지 바로 사기를 빌려와서 강의에 활용합니다.
옛날 선생들은 요즈음도 그러겠지만 내가 너에게 줄 것을 다 줬다. 이제 나에게 떠나라. 해서 더 큰 스승을 찾아가게 하고 하는데. 요즈음 어떻게 든 잡아놔야 되지 않겠는가? 통원서당에 이년 삼년 있는 분은 제가 잡은 거냐? 모르겠어요. 좀 빨리 떠나세요
: 옛날과 지금의 어떤 선생이 그랬을까요? 조선시대의 공부는 유학으로 사서오경만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신문, 방송, 인터넷 등으로 필요한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고 또 돈이 있습니다만 조선시대의 양민은 글을 모르고 당시의 산업은 농업이 주고 그 외는 대장간 옹기 목수 정도입니다. 정보가 없으니 어디에 사는 누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또는 잘 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매일 봐서 아는 것은 농사일뿐인데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어떻게 생길가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굶으면서 선생을 찾아 나설까요? 무협지와 만화를 보고 옛날에 그랬는갑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양반의 자제는 대 여살 때 천자문 사자소학 등을 배우고 사서를 배우는데 사서오경의 어떤 책까지 배우고 다시 사서오경의 어떤 책을 배우기 위해서 선생을 찾아 조선 팔도를 돌아다닐까요? 조선의 과거는 소과와 대과가 있고 소과는 진사와 생원을 뽑습니다. 대과를 보기 위해서는 진사가 된 다음 성균관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증명인 원점 300점 이상 돼야 과거를 볼 수 있습니다. 300일 이상 성균관에서 밥을 먹은 사람만이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모든 것이 공짜인데 그걸 놔두고 더 훌륭한 스승을 찾아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 다녀 찾은 다음 돈을 내고 공부를 했다는데 그 때가 몇 살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그렇게 공부한 다음에 다시 소과에 합격해서 성균관에 가서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 한 사람이 누굽니까?
무식한 무당이 왜 이 말을 했는가?
너희들이 오랬동안 통원서당을 다닌 것은 내가 다니게 한 것이 아니 라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천문을 찾고 상수역을 찾고 활연관통을 찾으면서 언제가 사주가 한눈에 보인다고 구라를 친 것에 속아서 계속 다니고들 있습니다. 계속 다닌 사람들은 인수 세력이 있어서 궁금한 것을 알려고 다니는 것이고 무당의 경우는 인수가 뽐만 잡고 있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전혀 없어서 알려는 마음이 없다 보니 맨 날 소설만 쓰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 강의를 들으면서 작심하고 질문을 했었습니다.
: 유학을 공부하는 분의 제일 큰 스승은 공자이고 공자를 알기 위해서 논어를 배웁니다. 그럼 무당의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하고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에게는 앞으로 무슨 책과 무슨 책을 보십시오. 라고 권해야겠지요. 무당스럽게 책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강의를 들으면서 물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엉망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무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주를 공부하려면 무슨 책? 없음. 천문은 관규집요 단 한권. 상수역은 상수라고 이름이 된 책.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10여권 이상을 보는데 사주 책은 권할 책이 없답니다. 무당이 읽은 책이 없으니 권하지 못한 겁니다. 상수역을 강조했으면서도 책 이름을 모르는 놈입니다. 상수역학으로 이름이 된 책은 없습니다. 천문은 점보는 책 단 한권만 말했습니다. 점보는 책을 권한 이유는 이름이 그럴듯하게 관규집요로 점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중국의 출판계에서 관규집요의 가치를 낮게 보다 보니 출판을 하지 않습니다. 책이 필요없는 사람이니 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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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地天泰
天澤履卦를 배우고 조심조심 세상사를 살아갔으면 뭔가 쌓인 것이 있을 것이다.
地天泰 地가 위에 있고 天이 아래에 있다. 이것은 우리 자연의 이치로 본다면 天이 위에 있고 地가 아래에 있다. 이것이 正이긴 하지만 정기를 지킬 뿐이지 交感은 없다. 交感하면 天이 地 자리에 와 있고 地가 天 자리에 가 있다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 水昇火降이 돼있는 모습. 이게 火 자리고 이게 水 자리인데 수는 올라가야 되고 火는 내려와야 되는 火水未濟. 上下 交感이죠.
泰. 오늘은 泰를 배우는데 泰는 通也요. 큰 것이다. 태평성대. 天下가 태평이다. 편안하다 할러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되느냐? 오늘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밖으로는 강해야 됩니까? 부드러워야 됩니까? 부드럽고 끝없이 순덕을 쌓고. 그 내면은 아주 강건해야 된다. 강건하다. 내면은 완전하다. 완전무결하다. 태평한 사람은 행동이 순덕이면 급한 거요? 부드러운 거요? 부드럽고 여유롭고 우리가 삶속에서 보면 아주 급한 사람들이 긴장상태에 들어갑니다. 급하게 일을 보려고 가는데 옆에서 건드리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실속이 있고 겉으로 부드러운 것 저것이 說이다. 태평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하고 있어. 거꾸로 天地否 하고 있어 속에는 하나도 없으면서 목에는 힘을 주고 말은 아주 도저히 무시당할까 싶어서 과언을 한다든지 이런 문제가 돼 있다. 지금은 이런 시대요. 否한 시대요. 天地否한 시대. 현시대가 이래. 비록 속을 없어도 큰소리 쳐야 되고. 속은 비어도 있는 듯이 어디 가서 행세해야 해야 되고 이렇게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사람 취급 안하고 뭐 이런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속빈 강정이요. 그래서 남 보이기 위해서 살기도 하겠지만 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만족. 속이가득 차 있다면 그 다음에 풍족하다. 내면의 실속과 만족을 갖고 외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이 가장 현시대에 태평한 사람이다. 큰 성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냐?
이쪽은 소리치고 있지만 다 否한 사람이다. 언제 가는 허물어지고 가식적인 의미가 돼 버린다. 그런데 실속이 있고 내실이 있고 완전함을 가지더라도 뭘해야 된다? 중용해야 한다. 왜? 음상 양상. 만약에 이게 하나 더 올라가면 雷天大壯 돼요? 陽이 하나만 더 차면. 이러면 陽의 중화보다도 過함이 일어나요. 좋긴 좋은 卦인데 過함이 생겨버려요. 그래서 中和를 가진 내면의 만족과 내면의 여유가 가장 편안하다. 이렇게 되면 음지를 이기기 때문에 자제력 보다는 뭐가 커집니까? 밖으로 나가는 힘이 커져버립니다. 그래도 이것은 좋게 보는 거요. 그 다음에 또 하나가 차면 뭐가 됩니까? 澤天夬가 되지. 이것도 괜찮아요. 그러면 이것은 여유가 아니라 포장이 돼 버려요. 이것은 완전한 여유로움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비해서 이쪽 이쪽으로 가면 급해집니다. 누가 한소리 해버리면 폭발하는 의미요. 여기는 한 소리 해도 완충지대가 생겨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옆에서 보면 무슨 큰일이 있어도 가만있고 요동치 않고 있는 사람을 뭐라 합니까? 태평하네 이러지. 이게 정심이요. 過도 병이요. 불법도 병이요. 中和가 돼있어야지. 그래서 태평하는 방법은 中道를 지켜라. 과하면 과한 것을 써야 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것을 채워야 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런데 雷卦는 확대 해석을 하면 이것은 자기 마음에서 본 것이요. 사회적으로 해석하면 회사 같으면 지도자급들이고 밑에는 아랫사람 실무자급 생산직 더 확대하면 정치가 여기는 백성.
周易이라는 것이 작은 티끌에서부터 우주의 전체를 개념화 시켜낸 내용이기 때문에 해석은 확대 해석을 하면 되겠습니다.
지도자들이 여유롭고 허심탄회하고 속을 비울 줄 알아야 되고 윗사람들이 속을 비울 줄 알아야 되고. 윗사람이 자리라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 아랫사람들을 채워 줄 수 있는 아랫사람들은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회사의 중역급들이 밑에서 생산자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면 그 회사는 태평하다. 문제 될 게 하나도 없다. 정치가들이 사심을 버리고(속을 다 비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덕을 갖고 백성들이 꽉꽉 채워지는 용기를 가지고 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의욕을 가질 수 있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준다면 태평한 세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밑에는 텅텅 다 비었고 위에는 챙겨가지고 도망가고 외국에다 땅 사고 否괘요. 지금 현시대요. 天地가 막혀있어요. 천지가 불통이요. 못 사는 사람은 못 살고,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그러면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뀌어야 된다. 바뀌어야 된다 하는 것이 뭔가 하면? 易地思之요. 바뀐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라.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라. 아무래도 태평한 상태로 바뀌지 않을 것인가? 저것이 출발이다. 입장을 바꾸기 위해서 선거할 때는 내려오죠. 민생을 살피느니 하고 내려왔다가 그 다음에 올라가버리면 다시 안 내려오지. 그래서 회사에서도 보면 사장으로서의 지위를 지키면서도 어느 날은 작업복을 입고 나와서 생산라인에 들어가 가지고 사원들과 일을 하고 배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 회사가 태평한 회사요. 화목한 회사. 결론으로 윗사람은 비워야 된다. 윗자리는 비워야 된다. 겸손해야 된다. 아랫자리는 비워야 되는 것이 아니죠. 강해야 된다. 그리고 실력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만 갖춰진다면 비록 남들이 행동을 보고 무시하더라도 내 스스로 안에 꽉 차 있는데 겁날게 뭐 있어요. 남을 위해서 살지 마세요. 남 보여주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렇게 가면 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생각이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정도를 가지고 내 내면을 채워라. 혹시 이것은 한 몸이었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이 입장이고 이 입장으로 크게 갈라졌을 때 이 입장이면 이렇게 돼야 되고 이 입장이면 이렇게 되라. 그러면 그 사회적 그 공간 내지는 그 구성을 잘 돌아간다. 그것이 태평한 것이다. 완전히 찬 것이 태평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빠요.
乾卦는 하늘은 가만히 쉬질 못해요. 태평이 아니요. 하늘은 태평이 아니요. 이건 건이요. 그냥 정신없이 활동하는 그런 의미가 된다. 하늘이 쉬는 날이 없지. 맨 날 처다 보고 모든 사람이 다 처다 보고 있는 거요. 오늘 비 올까? 그러다가 케키 장사하는 사람은 비오면 욕하고 우산 장사하는 사람은 고맙다고 하고 잘 되고 거기다가 빌고 못 되도 빌고. 저 하늘이란 양반이 말을 할 줄 안다면 미치지. 욕하는 사람도 있고 빌기도 하고 언제는 빌고 언제는 욕하고.
그래서 태평이란 의미에 대해서 오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럼 태평성대 태평한 시대를 어떻게 만약에 자신에게 왔다면 태평한 시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라. 해놨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그 평화는 어떻게 운용을 할 것인가 하는 가를 여섯 가지를 나누어서 설명을 또 한다. 태평할 수 있는 방법은 여기 제시를 해 놨고. 그래서 뭐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해도 언제가 제일 행복한가 하면 어느 계열도 아마츄어가 가장 행복합니다. 아마츄어의 꼭대기가 아마츄어 이긴 하대 프로의 근성을 약간 가진 사람 거기가 가장 행복하다. 프로로 가면 축구가 좋아서 축구를 배우는 사람이 동네 조기 축구 할 때가 좋지. 나중에 진짜 뭐가 걸려있는 경기로 맨 날 띤다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침을 이렇게 배우로 와서 내면에 꽉 채워서 알고 자신감이 있고 아직은 실행은 안하고 누구라도 오면 내가 해 볼만 하다 라는 그때가 좋지 나중에 여기 졸업하고 나가서 환자들 들이 닥치면 태평이 아니라니까? 그래서 여기서 하나 더 올리면 봐줄만 해요. 雷天大壯. 여기까지 정도는 봐줄만 해요. 너무 올려놓으면 다 올려놓으면 쉬질 못하지. 이렇게 완성된 사람은 쉬질 못해요. 자기라는 인생이 없어. 하루 종일 물으러 오고 찾으러 오고 자기 인생사는 것 아니다. 그 대신 큰 의미에서는 강건하고 봉사적 의미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것을 꽤하고 사는 사람도 있고. 보면 명절 때도 자기 집 한번 못가고 자기 직종에서 일하고 밤새기 하고 이런 사람들이 과연 그게 잘 사는 것인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볼 만한 해요.
地天泰 通也 평화 원만 외유 내강
절대 지키시기 바랍니다. 요즘 시대가 天地否卦가 돼가지고 어디 가서 큰 소리 치다가는 요. 시비를 붙으면 졌다 소리부터 먼저 하세요. 내 실속이 편하면 그만이요. 졌다부터 먼저 해야지. 싸움 들어가고 송사 들어가면 전번에 송괘 나와서도 안 좋다 그랬겠지만 TV나오는 것 보면 별거 아닌 이웃 간의 시비속에서 칼로 찔러서 죽어버려요. 손해 볼 경우가 더 많다. 절대 밖은 부드럽게 솜과 같이 부드럽게 속은 아주 꽉 차게 강하게 外柔內剛.
論語 첫 문구에 ‘인불지불온일라도 불역군자‘ 인부지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만족된 내면을 갖고 있는 자가 진짜 君子다. 거기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君子다. 남 보여주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을 살아라. 내 내면에 있는 내 마음의 만족을 꾀하라. 그 대신 내 뜻대로 해라는 소리냐? 그것은 아니고 中和를 이뤄라. 너무 겉이 부드러우면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 하실 수도 있는데 하나 정도는 올릴 수 있을 정도는 가져라. 혹 뭐라 그러면 한 소리는 한 열개 柔로 가다가 한두 개는 보여주기도 하고 뭐 그럴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아니면 다 채워서 가는 분들도 있기는 있겠지만.
天地相交가 가장 큰 易地思之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보는 의미다. 밖에 나가서 사고치는 사람들은 속 비고 겉이 강한 사람들이 사고치는 거요. 겉을 강하게 하다보니까? 너무 밀고 나가다 보니까? 내면을 없으니까 나중에 무너지는 거요. 저게 한번은 통하겠지만 큰 소리 친들 속이 없이 큰 소리 친들 누가 알아줍니까? 그 자리에서는 대답을 할지 몰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태평은 반드시 뭐가 옵니까? 부패가 옵니다. 우리 사회를 걱정하시는 분들은 이 나라가 이렇게 돼서 어떻게 되겠느냐? 썩었다. 썩는 것을 걱정을 또 하시는데 그런데 이미 썩어가는 것을 회복하는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좀 썩었다면 더 썩어라. 왜? 완전히 썩어야 거름이 돼. 그 전에는 거름이 안 돼. 어지간히 썩어버리면 방책이 안 나와요. 진짜 사회적으로 안 된다. 큰일 났다하면 이제 모든 사람이 일어나 가지고 거기에 대응을 하게 되고 반 썩어서는 안 돼. 팍 썩어 버려야 돼. 좀 더 썩기를 기다리고 봅시다. 그래야 뭔가 이것이 거름이 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의미요. 그래서 사회 혼란을 나쁘게 보지 마세요. 혼란이 나쁘기는 하지만 그 혼란이 있음으로서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게 하고 밑바탕의 거름이 생기게 하고 그런데 더 혼란이 더디면 그만하면 살만하지 않느냐? 하는 사람도 있고 큰일 났다 하는 사람하고 양분돼 가지고 막 싸우는 거요. 그러다가 진짜 혼란이 심해지면 전부다 이러면 안 된다 소리가 나오면 이제 합심이 돼가지고 하나 로 올라가요. 절대 태평이라는 것은 계속 갈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썩어서 거름이 돼가지고 또 새로운 새것이 나와 가지고 또 성장했다가 또 내려갔다가 이것이 우주 변화의 원리다. 역사 이래도 50년 마다 한 번씩 전쟁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 이렇게 역사학자들이 보면 그야말로 환란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썩는 것은 밖에서 썩는 것은 눈으로 잘 띠는데 제일 문제가 이빨 같은 것은 속에서 썩어요. 이게 문제요. 속에서 썩어 있는 것. 이건 속이 다 썩어 있네요. 겉이 남들 보기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속이 단단하면 괜찮은 거요.
泰는 小往코 大ㅣ 來하니 吉하야 亨하니라.
태 소왕 대 래 길 형
泰는 小往코 : 泰는 적게 가도 小人은 가고 적은 행동으로 부드러운 행동으로
大來 큰 것이 온다. 실속이 온다. 좋은 것이 오니까 亨通한다. 小는 上卦요. 大는 下卦를 말합니다. 그럼으로서 형통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디 가서 내면에 있는 실력을 옆에서 막 얘기할 때 한마디 참견하고 내 것이 있는 것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그것을 참고 있는 그것이 평안한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정히 틀린 말을 하면 한마디 정도는 던져주더라도.
彖曰泰小往大來吉亨은 則是天地ㅣ 交而萬物이 通也ㅣ 며
단왈태소왕대래길형 즉시천지 교이만물 통야
上下ㅣ 交而其志ㅣ 同也ㅣ라.
상하 교이기지 동야
內陽而外陰하며 內健而外順하며 內君子而外小人하니
내양이외음 내견이외순 내군자이외소인
君子道ㅣ 長하고 小人道ㅣ 消也ㅣ라.
군자도 장 소인도 소야
泰小往大來吉亨은 則是天地ㅣ 交而萬物이 : 이것은 하늘과 땅이 서로 교차하여 만물이 通也ㅣ 며 통하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며 上下ㅣ 交而 : 上下가 交感하여 志ㅣ 同也ㅣ라 :그 뜻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易地思之 하고 있는 상이다. 內陽而外陰하며 : 이 안에는 陽이며 밖에는 陰이며 內健而外順하며 : 안에는 金이요 健하며 강하며 外는 順하여 內君子而外小人하니 : 안에는 군자의 마음을 갖고 강인한 마음을 갖고 내실을 갖고 밖으로는 소인이 행동하듯이 겸손하고 (소인으로 보지 말고)
君子道 長하고 : 君子의 道는 커지고 이럴수록 겸손할수록 받아들일 수 있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대장도 되고 주체도 되고 나중에는 天과 같은 존재도 될 수 있다. 여기서 내면에 있는 것을 함부로 끄집어 쓰면 지워지기 시작한다. 그럼 줄어드는 거지. 더 큰 소리 쳐서 끄집어 내버리면 또 줄어들지 그럼 地雷復卦가 돼서 다시 해야 된다. 다시 시작해야 되는 폐단이 생긴다.
小人도 消也라 : 그래서 陰卦를 음소를 줄어주는 쪽으로 행동하고 자제하라. 과장하고 내면에 있는 말을 있는 데로 다 하고 살수는 없다.
象曰天地交ㅣ 泰니 后ㅣ 以하야 財成天地之道하며
상왈천지교 태 후 이 재성천지지도
輔相天地之宜하야 以左右民하나니라.
보상천지지의 이좌우민
: 天地가 사귀고 있는 것을 交感하고 있는 것을 泰라고 하니 后ㅣ 以 제후는 임금은 이 卦를 봄으로서 임금뿐만 아니라 요즈음은 사장은 지도자는 정치가는 공부하는 사람들은 財 여기는 재물 재자가 아니고 재봉틀, 옷을 지을 裁자요. 財成天地之道하며 : 天地의 中和된 운영의 道를 지워 이뤄 재는 마름한다. 옷을 만든다. 운용의 道를 새로 짜서 輔相天地之宜하야 : 輔 도울 輔자죠. 天地之宜하야 : 天地의 마땅한 정연한 이치를 中和된 道를 새로 짜서 天地에 마땅함과 정연한 이치를 가지고 도와 누구를 도와하는가 하면 以左右民 : 이 左右는 써 그것으로서 백성을 또는 아랫사람을 마음을 여기 下卦를 말해요. 마음을 돕는다. 左右가 어떻게 돕는다는 소리가 나옵니까? 사람 인 변에 佐자 사람 인 변에 佑자 다 무슨 자요. 도울 佐자 도울 佑자 사람 人은 생략을 했는데 왼쪽에 있는 사람은 왼쪽의 백성은 왼쪽으로 돕고 오른쪽의 백성은 오른쪽으로 돕고 天地가 구분이 돼서 交感을 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과 상황에 구분된 天地道를 비워서 완성하여 마땅히 활용하게끔 도와라. 여기에 뭐가 있는가 하면 그러면 마땅히 모든 사람은 열심히 살 것이고 그 다음에 이 天地의 道를 공부한 윗사람은 그로 인해 편안할 것이고 윗사람은 경영을 잘하고 아랫사람은 이 경영철학에 따라서 잘 실행을 하고 이런 소리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간부들이 잘해가지고 天地道에 맞게끔 中道에 맞게끔 말을 해가지고 엽무지시를 내리면 아랫사람이 열심히 그걸 따라가지고 움직이고 그럼 태평해지겠지.
시작 天地 이치로 본다면 옛날 앞서간 성현들이 아하 이제 조금 있으면 立秋가 오고 處暑가 오고 天地 상황을 알아가지고 그것을 책력이니 이런 것에 짜놓으면 백성들은 그 떼에 맞춰가지고 보리를 심고 벼를 심고해서 합당한 天地의 흐름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게끔 편안하게 살아 갈수 있게끔 실제 내실을 같게끔 만들어 주라. 그게 이 左右民이다. 쉽게 말하면 여기는 행동이다. 陽들이니까? 여기는 陰들이니까? 생각 하되 마음은 역동하지만 행동은 신중하라. 여유로 하라. 이런 소리지. 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사실 행동하는 사람 아니죠. 정치가들이 앉아서 머리 쓰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럼 밑의 陽들을 다 받아드려야지. 밖에 것도 받아 드리고 그래가지고 잘 도리에 맞게 짜서 밑으로 업무지시가 내려 와가지고 시민들이 그야말로 만족 하게끔 활동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태평이다. 어느 집안도 마찬가지고.
初九는 拔茅茹ㅣ 라 以其彙로 征이니 吉하니라.
초구 발모여 이기휘 정 길
겨울에 음식이 썩어요? 여름에 썩어요? 살기는 여름이 편하죠. 편하면 썩어요. 변하게 돼있어요. 겨울은 춥고 긴장이 돼 있죠. 긴장이 돼있으면 뭉치죠. 추우면 사람이 모입니다. 춥고 배고프면 다 모이고 단합하고 하는데 배부르고 태평하면 다 흩어지는 돼있어. 조심해야 돼. 지금 주거 문화에서 잘 못 된 것이 뭔가 하면요? 방이 각각이요. 옛날은 어떤가 하면? 방이 하나요. 완전히 옛날하고 반대입니다. 애는 방은 다 각각이요. 그리고 부부 방은 하나요. 그런데 옛날은 부부 방은 각각이요. 얘들 방은 하나요. 이렇게 한 이불 속에서 자란 애들이 정이 많겠어요? 딴 방에서 자란 애들이 정이 많겠어요? 무섭습니다. 한 이불에서 잤다는 게 엄청나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동기간에 정이 생겨. 지금 처음부터 각방 써. 그리고 부부는 한방에서 맨 날 자. 여기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성을 가진 사람이 한방에 자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떨어질 일밖에 안 생기는 거죠. 옛날에는 애들은 한방에 집어넣지만 부부는 사랑방 안방 따로 놓아요. 이 두 사람은 붙어 있어야 할 사람 아닙니까? 그냥 전기가 통하는 거요. 어떻게 하면 저 같이 붙어 잘까? 그러니 떨어져 있으니 붙을 일밖에 없지. 그러니 헤어질 수가 없다니까? 그리움으로 사는 거요. 한집에서도 그리움으로 사는 거요. 이게 연애하는 거요. 평생 연애하는 거요. 그런데 합치고 나면 떨어질 일 그래서 이혼이 생기는 거요.
방이 크면 아파트 평수가 넓으면 五行은 뭐요? 火지. 火는 분열이요? 방은 더 많지. 그럼 마음은 전부 각각이요. 아파트가 넓다는 소리는 여유가 있다는 소리요. 이 여유를 함께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나중에 크면 내가 더 가져올까? 저 달동네 가면 두 칸 방도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다 모여 자지. 나눌 것도 없지. 있는 것을 나누어 먹어야 되지. 그러니까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고.
거실이 넓어집니다. 거실이라는 것을 잘 활용해가지고 자주 여기에서 모이는 기회를 가져야 돼. 그런데 사실상 저도 애들 학교 따로 가고 저녁에 따로 오고이러니 한목에 모여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그러니 화합이 잘 되겠어요. 어떤 경우는 회사 일찍 출근하고 늦게 들어오면 어린애들은 아빠를 구경도 못하는 애들이 많다. 태평이 되겠느냐? 다 분리돼서 사는 거지. 그러니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지 요즈음은 교감되는 의미가 너무 희박해지는 의미가 돼버렸어요. 채워주고 할 때가 좋지. 넘쳐나면 싸우느라 난리요. 추어야 서로 붙들고 껴안고 하는 거지.
拔茅茹라. 茅는 띠 모자. 茹는 이어질 여자요. 彙는 무리휘자요.
初九가 바뀌면 風卦 地風升. 내려가라는 소리입니까? 올라가라는 소리입니까? 升은 오를 升자요. 이러한 태평성대에 태평스러운 시기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될 것인가? 여기에 행동의 주체는 밖에 있어요? 안에 있어요? 주체는 어디요? 안이지.
태평의 주체는 내부입니다. 밖이 아무리 좋아도 껍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집안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그 집안이 속이 안 좋으면 태평이라고 할 수 없어요. 밖에서는 아무리 욕을 하고 안 좋게 봐도 속이 편안하고 강하고 내실이 차있으면 이 중에 또 주체는 누구요?
이게 이효가 주체요. 이것은 집안이다. 이것은 자칫하면 過할 수 있는 겁니까? 過할 수 있는 . 여기서 過한다면 만용이 돼지. 그래도 여기는 회복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까? 내면이니까? 이게 天卦에 惑躍在淵 이렇게 했죠. 혹시 한번 뛰어봤다가 안되면 재 자리로 들어오라. 그러니까 만용을 부러도 회복가능한 자리. 그다음에 여기는 과다 행동으로 손상 받는 자리. 여기는 현실의 주체.
자 이렇게 태평한 시기에 놀고만 먹어야 되겠느냐? 지금 여기는 내면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 뭐하라? 初爻는 활동 활용하라. 그 대신 風卦로 變했다는 소리는 하나를 써서 하나가 빈 것이죠. 비었다 그러면 과다활용이요? 정상 활용이요? 내면을 채우는 모두 생각하는 계속 채우면서 拔茅根이다. 띠 뿌리를 뽑으니 뿌리는 初爻 때문에 그렇습니다. 初爻가 뿌리지. 잎이 될 수 없다. 그 무리들이 띠 뿌리가 엉켜서 함께 뽑힌다. 함께 라는 소리는 三陽을 말합니다. 乾卦를 말하죠. 내면의 능력을 모두 활용하여 이 소리 요.
征하면 吉하리라. 征이 있고 往이 있어요. 往자 나온 경우가 있어요. 이것도 갈 왕자고 갈 征자요. 이것도 간다는 소리입니다. 추진한다는 소리요. 추진 전진 이런 의민데 이 왕자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그런데 征은 정벌한다는 소리입니다. 正道로서 나아간다. 모두 활용하여 정도로 나아가니. 실행하니 吉하다. 그러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자 태평한 시대에 제일 밑에 있는 사람 기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정도로서 열심히 행동하라. 그래야 내면의 썩음이 없어진다. 내실이 손상되지 않는다. 여기 여기는 이 두 자리가 가장 근본이니까 이 두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적극 활동 권유. 여기는 過할 수 있는 자리니까? 조심해라. 그러면 만약에 침구 반을 들어가지고 이제 내면의 만족할 만큼 공부를 했다. 그러면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뭐냐? 初爻는 지금 활동하라고 그랬어요? 열심히 행동하라. 집안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正道로서 행동하라. 내면의 능력을 모두 활용해서 실행하라. 하면서 기본의 의미이기 때문에 그다음에 風卦로 바뀌었기 때문에 내면을 다지면서 내면을 모두 생각하고 계속 채우면서 기본을 더욱 다지면서 움직여도 될 자리다.
국가로 본다면 백성들은 이런 태평시절에 저 밑에 있는 백성들은 마음껏 움직여도 된다. 그 대신 무슨 사기 친다든지 그런 건 아니고 정도로 움직여서는 이 자체가 흔들림이 없는 爻다. 그러니까 움직여도 된다. 좋다. 정도만 움직인다면 행동하라. 그리고 이것이 陽位죠. 陽位에 陽爻지. 강입니까? 강하다. 거기에다 正位에 들어가 있고 應이 돼 있어요? 육사 응이다. 正應이다. 그래서 실행을 해도 되겠다. 괜찮습니다. 움직여도 된다. 그 대신 過하면 안 되고 여기에서 뿌리가 다 한 번에 뽑힌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이 무리가 함께 뽑힌다는 소리는 내면의 능력을 모두 활용하라. 만약에 이게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라. 또는 함께 움직여라 이런 의미가 의기투합이 돼야 한다. 자기 혼자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런 소리입니다.
象曰拔茅征吉은 志在外也ㅣ 라.
상왈발모정길 지재외야
: 뜻이 밖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활동해도 좋다. 움직여도 좋다. 다만 내면의 마음 전체의 상황을 잘 살펴서 그 다음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뜻을 잘 살펴서 동조를 얻어가지고 또는 같이 행동하라. 자기만의 행동은 안 된다. 이러한 태평시대에는 저 백성들은 마음 놓고 활동하여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될 자리다. 좋다. 그 대신 사적으로 빠지지 마라.
九二는 包荒하며 用馮河하며 不遐遺하며
구이 포황 용빙하 불하유
朋亡하면 得尙于中行하리라.
붕망 득상우중행
二爻 地火明夷. 陰位에 陽爻요. 內의 中正자리요. 陰位 陽爻니 不正으로 正은 아니지만 이 주효로서 태평을 이끌어 가야하는 책임자 실무자다. 자 여기에 처한 사람이 있고 여기 처한 사람도 있고 회사가 아주 잘 돌아가는데 신입사원이면 여기 있는 거고 그런데 자기가 행동을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되겠죠. 여기 여럿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같이 동조성을 가지고 마음대로 움직여도 吉하다. 그런데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사실상 그 회사가 물건을 만들고 수출을 한다 그러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계약을 따오고 (陰이니까 따오고) 뭐 이렇게 하더라도 공장에서 생산이 안 돼버리고 노조들이 다 파업해서는 안 돼지. 여기에서 핵심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六五와 應이 돼있다. 正應으로 돼있다. 그러면 六五가 사실상 주체자인데 주체 통치자인데 경영자인데 경영자가 陰이니까 직접 나서는 거요? 九二에게 맡기는 거요? 경영자가 九二에게 실권을 맡긴다. 곧 九二에게 신임을 준다. 이것을 표현한 것이 뭔가 하면? 得尙 제일 끝에 면 得尙于中行이오 九二도 中이요. 六五도 中이다. 얻었다. 신임을 얻었다. 尙, 떳떳한. 곧 누구의? 통치자, 경영자 六五의 신임을 얻은 바다. 여기도 독불로 하면 안 돼. 여기가 應이 돼 있기 때문에 자기가 실무 공장장이라고 주체로 독불로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이 활동을 하면 속이 빈다. 그야말로 火卦니까? 활동은 해야되겠습니까? 활동은 적극적 그 다음에 속은 뭐하고? 속은 비우고 여기는 활동은 하면서 風卦로 바뀌었으니까? 겸손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뭔가 하면 包荒이요. 첫째 包荒해야 되고 이 주체자가 해야 할 일이 包荒. 거칠 황자 써놨지요. 荒은 거칠 荒자. 적극적으로 활동은 하되 속을 비워야 돼. 거칠 荒 자 모두 포용하고 태평시절에 누구는 잘 먹고 잘살고 누구는 일자리 주고 누구는 안 주고 할 수가 없지. 그래서 포용을 하는데 뭘 포용을 해 줘야 되는가 하면? 포용은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포용할 필요가 있어요? 나와 반대파를 포용한 다는 소리요? 포용은 반대에요. 나를 반역하고 거역하는 사람조차도 포용할 줄 아는. 반대파 그 다음에 나를 해 끼치는 사람조차도 포용하고 또 하나 옛날로 본다면 백성들이 활동할 수 있게끔 황무지를 개간해서 농사지어서 다 쓸 수 있게끔 하고 이런 소리요. 주체자의 일임 받은 九二가 할 일이요.
그 다음에 用馮河하고 이 包荒은 仁이요. 사람이 어질기도 해야 되고 이해도 해야 되고 건널 빙자에 물하 자요. 물은 삶의 활동에 어떤 전진하는데 방해자입니까? 방해요소. 장애요소를 馮, 과감히 극복하고 뒤로 물러선다는 소리요. 실제 실무자는 포용심도 있어야 되지만 용기도 있어야 된다. 결단력도 있어야 된다.
不遐遺하며 : 遐, 멀 遐. 멀리 내지는 소외된 인제. 식구 백성을 遺, 버리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지 지혜가 동원되고
태평이 그리 쉬운 게 아니요. 한 회사를 태평하게 만들고 한 나라를 태평하게 만들려면 지도자가 잘 해야 되겠지만 지도자가 신임한 실제 주체자들이 잘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요. 사람 움직이는 것이 만사를 만들어 내는 거요. 그래서 진짜 국무총리자리에 국무총리 할 사람을 앉혀야 되고 장관자리에 앉혀야 할 사람을 장관자리에 앉히는 그러한 인사를 잘해야 돼. 여기서 직접 나설 일은 크게 없어요. 마음 비우고 백성을 위해서 밑으로 생각만 해주고 거기에다 사람 잘 써가지고 이 사람이 제대로 그것을 밀어 갈 수 있게끔 뒷받침해주는 그런 상하의 교감만 된다면 ..되는데
굽히기 위해서 나서고 너무 저돌적이지 않는가? 자 이것은 됐고.
그다음에 제일 중요한 것이 朋亡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친구를 버려라. 벗을 버려라. 벗을 버려라 는 소리는 회사가 좀 잘되면 사원을 채용할 때 끈이 붙지. 아니까 오고 친척이니까 오고 낙하산이 오고 이런단 말이죠. 그걸 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그것도 또 썩는 지금길이 된다. 자 반대파를 포용하지 못하면 썩지. 분열이 되죠. 그 다음에 앞의 장애요소를 그대로 놔두고 간다면 이것도 태평시대를 계속 이끌어 가지 못하지. 소외된 인재가 있다면 그것도 못 쓰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도 운용의 묘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朋亡. 정에 끌려서는 안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이 私情, 私心. 私心으로 중용해서도 안 되고 그 다음에 私慾으로서 계루해서도 안 된다. 사사로움 때문에 억매는 처신을 해서 처사가 되도 안 된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거요. 실권을 딱 받았는데 같은 값이면 내가 아는 사람 등용시켜주고 올려주고 참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통령이 되게 하는 많은 공헌자들이 있을 것 아니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든 있는 동안에 한자리 시켜가지고 보답을 해줘야 되는 그럼 문제도 있는 반면에 골고루 인제 등용을 안 해버리면 반대파가 생기니까 난리를 피우지. 그래서 어딘가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분은 이 네 가지의 德을 갖춰야 돼. 그래야 완전하다. 이건 의다. 義가 아니고 利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公明正大요. 적어 놓으면 뭐하나? 이게 천지비요. 속은 안 그러고 껍데기만 적어 놓고.
그래서 동양에서 바라보는 큰 신들은 公明正大 한 거요. 그렇지 않고 많이 빈다고 잘해주고 그러면 맨 날 빌고 앉아있어야지 공부할 필요 뭐 있어.
우리나라는 제일 문제가 뭔가 하면 빽이요? 모든 사상과 종교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빽이 돼 버려요. 믿어라 그러는 것은 뭐요 빽이지. 빽 종교가 돼버렸어. 진실로 거기에 대해서 감응이 되가지고 교감을 하는 아니라. 믿으면 된다 라는 빽의 문화로 만들어 가고 있어. 그러니 진실로 종교인으로서 종교인이 하는 ,, 그렇게 하면 뭘 준다. 利가 항상 따라 들어가요. 그러니까 가는 거요. 利로 가는 거지 義로 가는 사람 몇이 있어. 만약에 기독교로 가는데 천국 못 갈수도 있어 그러면 갈사람 있어? 몇이 있겠어? 利가 들어있어. 그래서 어느 종교. 어느 사상도 마찬가지요. 지금 너무 이 땅이 利에 빽 문화에 젖어 있지 않느냐? 그래서 이것을 구복이라고 그래. 죽기 살기로 가서 복만 구하는 거요. 구복신앙이요. 기복이라고도 하지. 대한민국에 들어오면 전부 종교가 기복이 돼 버려요. 스스로를 마음 닦는 그런 종교적인 그야말로 가르침이 안 되고 어떻게 하든 잘 되어볼까 하는 왜곡된 상황에 처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단체에서든지 집안에서든 집안의 가장이면서 실질적 집안의 태평을 이끌어야할 주체자라면 이 네 가지를 실행하셔야 돼. 아들은 공부 잘하고 그래서 빵 두 개 더 주고 딸은 못한다고 때리고 불만이 생깁니다. 절대 공명정대해야 돼. 체벌은 체벌대로 똑 같이 해줘야 되고 그 다음에 상을 줄때는 상을 준대로 그 만큼 해줘야지 편애하고 문제가 돼버리면 자식들도 알아요. 아버지 날 싫어해 이런 소리 막 해버리고. 그리고 어느 나 싫은데 나 나갈꺼야 가출해버리고 말아. 집안에서 뿐 아니라 나가서도 마찬가지요. 여기서 다른 것은 곁가지 해석이고 이게 핵심이요. 태평을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느냐? 가장 중요한 의미는 二爻의 의미를 제대로 실행하면 태평은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체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잘 못하고 있는 것은 私心을 만들어 주는 것은 가장 잘못하고 있다. 그것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만 좀 봐주세요. 전체를 무너지게 만드는 방법이요. 제일 중요한 것이 이거요. 해서 조선시대 때 보세요. 선비를 죽여 버립니다. 자식을 죽여요. 대단한 결정이요. 우리가 배울 땐 윤리도덕을 배운 사람들이 매정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선비 자식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왜? 이게 깨질까봐. 大義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 시켜야 돼. 이게 한 사람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도 私心을 버리고 그 다음에 혹 가다가 보면 저걸 하다가 잘못 되면 어떨까 하는 그런 주춤거림이 있을 때는 용단을 내리기도 해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 저 사람은 보기도 싫고 나는 이것은 먹기도 싫은데 그것도 표용하기도 해야 되고 한사람이 가져야할 마음도 되고 어렵죠. 태평하기가 어렵습니다.
정확하게 陰陽이 應해가지고 中和가 딱 돼 있는 상태 이것이 태평이다. 뭐 밖으로 폼을 내고 살아가는 것이 태평한 것이 아니다. 진짜 자연에서 태평이라는 것은 들어나지 않더라도 내면에서 中庸을 갖춘 이런 모습이 태평한 것이다. 이러면 밖으로 내보이고도 싶고 자랑하고도 싶고 폼 내고도 싶은데 그러지 않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편안한 것이 아닌가? 한번 자랑해보면요. 자내 또 다른 것 없어. 맨 날 그것만 자랑할 거요. 이제 또 하나 다른 것 내 세워야지. 또 만들어 내야 되는 거요. 힘들어요. 그리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야 돼. 옛날선생들은 요즈음도 그러겠지만 내가 너에게 줄 것을 다 줬다. 이제 나에게 떠나라. 해서 더 큰 스승을 찾아가게 하고 하는데. 요즈음 어떻게 든 잡아놔야 되지 않겠는가? 통원서당에 이년 삼년 있는 분은 제가 잡은 거냐? 모르겠어요.
좀 빨리 떠나세요.
象曰包荒得尙于中行은 以光大也ㅣ라.
상왈포망득상우행 이광대야
: 이렇게 할수록 더욱더 빛을 낼 수 있다. 二爻가 너무 멋있는 말입니다.
九三은 无平不陂며 无往不復이니 艱貞이면 无咎하야
구삼 무평불피 무왕불복 간정 무구
勿恤이라도 其孚ㅣ 라 于食애 有福하리라.
물휼 기부 우식 유복
地澤臨. 无平不陂며 : 시로 읽기도 하고 사로 읽기도 하고 언덕이죠. 평지가 (이쪽으로 해석해도 되고 이쪽에서 이쪽으로 해석해도 되고) 깎이지 않는 것이 없고 아니 깎이는 것은 없고. 无往不復이라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고. 아니 가서 아니 회복되는 것은 없다. 고정된다는 소리입니까? 변화된다는 소리입니까? 변화한다. 태평성대도 언젠가는 깎여나간다. 아무리 평지를 다져도 다져도 바람이 불고해서 쌓이던지 깎이든지 한다. 이게 澤으로 바꿨어요. 하나가 비였다 이 말이요. 그리고 陰位에 陽爻요. 그러면 활동한다는 소리입니까? 활동하는데 過한 자리요? 過한 활동. 그래도 이미 있던 기반을 갖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기반 밑에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는데 여기는 陰하고 접하고 있는 자리기 때문에 잘못하면 왕창 무너 앉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艱貞이라고 해 놨어요. 어렵게 艱(간). 간난할 때 이것을 써요. 가난하다 할 때. 어려웠던 (이 卦를 얻었다면 함부로 나서지 말고)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신중히 활동 하면은 무구다.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勿恤 마음의 피네. 한이 없을 것이며 其孚, 그것이 자체를 그것이 삶을 믿 없게 할 것이다. 삶에 유지시킬 것이다. 뭐를 하며는? 艱貞할때 여기서 핵심이요. 여기서는 네 가지 글자가 핵심 이지. 艱貞하라. 어렵게 어려운 시절을 생각하면서 살아라. 그러면 于食이라고 해놨죠. 于食에 有福이라. 于食이라는 것은 삶의 기본이 발이요. 삶의 기본. 생활의 기본. 이런 것에는 기본은 복될 것이다. 해서 여기서는 용맹을 말했지만 여기서는 신중과 겸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태평하더라도 三爻정도의 위치에 있다면 겸손해야 될 것이다. 신중해야 될 것이다. 初爻 정도면 그래도 동의를 구해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무난하다. 오히려 吉하다.
六四은 翩翩히 不富以其鄰하야 不戒以孚로다.
육사 편편 불부이기린 불계이부
四爻. 四爻는 雷가 되네요. 雷天大壯. 상당히 기반을 갖추고 활동하니까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이게 아마추어의 극을 넘어서 프로로 들어가는 단계다.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뭐라도 배워가지고 단계를 넘어가지고 약간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테니스를 많이 배웠다. 기본이 다 갖췄고 실력도 있고 혹 가다가 친분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 그런데 완전히 프로가 되어서 게임가지고 먹고 산다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翩翩이라고 해놨죠. 날아도 좋다. 翩翩히 不富以其鄰하야 不戒以孚로다. 翩翩, 힘차게 날아라. 다시 말해서 실행을 하라. 不富以 : 아니 부하다. 혼자만의 욕구를 채우지 않고 그 이웃과 수평한 조건이 돼있는데 여기는 무슨 자린가 하면 대상의 자리요. 다시 말해서 임금 바로 밑에 있는 권력자리다. 이런 자리에서 자기 혼자만의 욕구를 채운다고 하면 깨지기 시작한단 말이요 혼자만의 욕구를 채우지 않고 그 이웃과 함께하는 전체를 생각하는 (분명이 움직이는 雷卦가 나왔으니까 뢰는 동목이요)그런 행동이라면 不戒以孚다. 아니 경계하더라도 써 믿음이 생긴다. 좀 과한 자린 것 같지만 괜찮다. 해서 이웃과 함께 생각하는 행동을 하라는 자리입니다. 자기 권력을 무조건 쓰지 말라.
六五는 帝乙歸妹니 以祉며 元吉이리라.
六五는 需卦가 나와요. 水天需.
帝乙歸妹니 : 帝乙이란 하 은 주 은나라 말까지는 왕족은 왕족끼리 결혼을 했어요. 그러다가 帝乙이라는 임금 때부터 왕족도 신하와의 결혼도 가능했다. 임금이 임금 그러면 실무자죠. 실권자가 주체자가 이 소리요. 집안에서는 가장이 누이를 누이는 나와 같은 肩劫이다. 나와 같은 의미다. 내가 갈 수는 없고 내 자리니까 나와 같은 의미. 나의 권력을 누이 주는 것은 나와함께 하자는 소리죠? 나의 권력을 권한을 시집보낸다. 누구한테 왕족에게? 저 밑에 사람에게? 밑의 사람에게 누구한테? 九二 한데 九二가 應돼있습니다. 해서 권한을 九二에게 준다. 실권자의 능력자의 부자의 능력을 저 백성에게 나누어 준다면 이것은 태평성대요. 그게 위에서 할 일이요. 자기 것 챙기지 말고 자기들 끼리 먹지 말고. 그래서 以祉, 복으로서 福이 이거요. 실권자의 능력이니 돈이니 이런 것을 주면 元吉, 근본적으로 근본은 水卦에서 나왔습니다. 근본적으로 크게 吉하리라. 태평이 이뤄질 것이다. 태평이 유지 될 것이다. 회사에서는 성과급이라도 주고 밑에 술이라도 한잔 더 사고 그렇게 해야 된다. 돈 남는 것 가지고 혼자 챙기지 마라. 그래서 이게 요즈음 말하면 복지사업이요. (저 지자요) 복지국가가 태평한 국가요. 그것은 누가 해야 하는가 하면 위에 사람이. 그것 하라는 소리지. 베풀어라. 아래로 베풀어라. 믿고 베풀어야지.
형제를 줄 만큼 누이를 줄 만큼 믿고 베풀어라. 上下의 믿음이 없어가지고 되겠습니까?
上六은 城復于隍이라 勿用師ㅣ 오
상육 성복우황 물용사
自邑告命이니 貞이라도 吝하니라.
자읍고명 정 인
山天大畜卦. 남들 보기는 크게 쌓아놨는데 속이 좀 빈 게 있어요? 잘못 뻥티기 하시면 저렇게 되요. 괜히 어디 가서 말 한마디 잘못 해놓으면 아 대단 하십니다. 가슴에 채워야할 구멍이 생기는 거요. 그런 소리 듯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다음에 제가 좀 모르는 게 있으면 자문을 구하겠습니다. 그러면 난리가 나는 거지. 여기를 다 채워놨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전화해가지고 뭘 물으면 모르면 어떻게 할 거요. 차라리 모른다고 하고 왔으면 묻는 소리도 안 들을 것 아니요. 그게 편한 거지.
이것은 만용이요. 過다 이러지 마라. 왜 밖으로 내 세우느냐? 절대 내 세우지 마세요. 안 내세워도 안의 것이 나옵니다. 꽃은 향기가 우러나오게 돼 있습니다. 밖에서 향기를 바른 게 아니요. 속에서 나오는 거요. 그것을 맛는 사람도 있고 못 맛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그 계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고 알아. 언젠가는 알아줘요. 색의 화려함보다도 향기가 좋은 것이 좋은 거지. 색은 形이요. 형태가 좋으면 뭐해. 기운이 살아있어야지. 색의 아름다움은 유지를 할 수는 있기는 있어요. 억지로 요즈음 유리관 속에 넣기도 하고 모조품을 만들기도 하고 다 나오지 그런데 향은 못 심어 넣어. 향기를 거기에 넣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한계가 있겠지. 지금 조화가 얼마나 잘 나옵니까? 天地否卦라니까 속은 없는데
城復于隍이라 勿用師ㅣ 自邑告命이니 貞이라도 吝하니라 : 옛날에 城을 쌓으려면 요. 뭔가 돋아야 할 것 아니요. 돋우기 위해서 밖의 흙을 파네요. 성 밖은 다 파져 있습니다. 이것을 隍이라고 해요. 그 다음에 또 하나 올리죠. 城 밖에 올리는 것을 廓이라고 해. 城郭 사이에 파져 있는 것을 파져 있는 것을 隍이라 그래. 이 隍이 그야말로 제 모습을 가지고 여기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을 뭐라고 하는가하면 굴착했다. 못으로 물을 받아 놓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역할을 못하는 것을 뭐라고 하는가 하면 不隍이라 그래. 그런데 적어 논대로 城復于隍 城復 돌아간다. 회복한다. 어디로 隍 자 성이 잘 쌓여있으면 태평한 거요. 외적에 대한 걱정도 없어지고 방위력이 탄탄하다는 소리의 의미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을 쌓았던 그 흙이 어디로 들어가 버립니까? 隍으로 들어가 버리네. 뭐한다는 소리입니까? 城이 흙이 무너지고 외적이 들어오고 뭐한다? 파손된다. 과한 행동으로 내지는 방심으로 지금까지의 태평이 파손되는 모습. 꼭대기의 사람들이 함부로 행동했다는 그런다. 말은 제일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누구요?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이 말을 가장 아껴야 되고 행동을 가장 조심해야 돼. 대통령이 말 한마디 하면 난리 나지 않습니까? 이게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요. 회사에서 대표자가 나타나 가지고 회사가 어렵습니다. 이러면 밑에 있는 직원들이 다 동요 돼버려. 밑에서 아이 좀 어려운데 이래도 관계없어. 저 밑에 사람들은 회사 참 이래도 되겠어. 그 소리가 그렇게 한 소리하고 저 위의 사람들의 말 한마디하고 얼마나 지금 城이 무너진 다는 소리는 전체가 흔들리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자리다. 이 소리지. 성안에 모든 사람이 태평하게 살고 있는데 城이 무너지고 있다면 저렇게 행동을 마음대로 하고 이런 지경까지 갔는데 이것을 억지로 해결하기 위해서 보통 뭘 하는가 하면? 군사를 동원한다. 이런데 나중에 안 되면 군대가 들어와요. 계엄령이 선포되고 난리 나 버리죠. 여기서는 군사가 아니라 삶속에서는 뭔가 하면? 억지로요. 이렇게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 것이며 혹시 이렇게 됐다면 自邑告命이라고 해놨어요. 큰소리치지 마라. 허풍불지 마라. 나라가 다 떨어지는데 걱정하지 마라. 이 나라는 아직 튼튼하다. 내실은 비어있는데 큰소리만 치는 성과 같은 모습은 되지 마라. 스스로를 파악하고 정확히 파악하라. 해서 自邑 건재한 그래도 존재하는 자기 업. 다른 데까지 칠려고 생각하지 말고 더 확장하려고 하지 말고 그래도 존재하는 근본을 세워라. 뭔 소리입니까? 다시 추수려라.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너지기 시작하면 막 무너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억지로 여기서 돈 끌어오고 저기서 돈 끌어 와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게 하지 말고 여기서 빨리 사안을 파악해자기고 거기서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챙길 것은 챙겨가지고 다져나야 될 자리다. 그것이 오히려 태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저 자리는 貞이라도 吝하리라. 위험한 자리요. 고요히 있더라도 바르게 바르게 하더라도 吝嗇한 자리다. 위험한 자리다. 이 자리는 올라가지 말아야지. 어느 회사로 말하면 고문 자리요. 이런 의미요. 한나라로 말하면 대통령 자문 이런 자리가 될 수 있고.
象曰城復于隍은 其命이 亂也ㅣ라.
상왈성복우황 기명 란야
: 그 명이 혼란스러우니까 함부로 명을 내려서는 안 되고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오히려 정하더라도 인한 자리니까 행동을 신중해야 할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