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 맛있는 설렁탕 이야기(1 편) (Tips :묵은지 이야기)
한국인들에게는 풍류와 멋을 아는 선조들의 깊은 음식 문화가 오랫도록 전승되고 있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뚝딱 순식간에 맛을 급조해 만들어 내는 여느 다른 나라 음식과 우리의 음식을 비교한다는 것
은 실로 “경망스러운 일”이며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어떤 드레씽이나 소스가 어디 감히 우리의 장 맛에 비견될 수 있단 말인가.
슬로우 푸드(slow food)의 아주 전형적인 한국 음식에는 정성과 인내의 미학이 있고,
숙성과 타자(他者)에 대한 배려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 음식은 레서피라는 메뉴얼만 가지고는 만족할 만한 풍미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소위 “손 맛”이라는, 레서피에 담아 낼 수 없는 초월된 요리 용어의 비법이 한국 음식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음식을 얘기하다 보면 “종교적인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오늘 얘기하려는 음식은 그러한 한국적인 음식의 코드와 꼭 닮은 것이다.
바로 “설렁탕”이 주인공이다.
12시간 이상을 푹 고아 삶아 내는 국물은 오랜 기다림속에서만 얻어 낼 수 있는 보상이요, 댓가이다
설렁탕의 유래는 동대문에 있는 전농동에서 비롯된다.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는 슬로우건을 내세운 조선시대에 전농동에 위치한 선농단이라는 제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왕이 직접 경작하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며,
제사가 끝난 뒤에 소뼈를 고은 국물에 밥을 말아 나누었다는 것에서 유래된다.
그러니 선농탕에서 설렁탕으로 음(音)이 전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는 선농제, 중농제, 후농제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 졌으나 후대에서는 선농제 하나만으로 간결화시켰다.)
설렁탕은 쇠머리, 도가니, 사태, 양지머리, 내장, 사골등을 큰 무쇠 가마솥에 오랜 시간 고아 만든다.
곰탕보다도 더 오래 끓여 내어 기름기도 적고 국물이 뽀야며 담백한 맛을 만들어 낸다.
비슷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소머리 국밥은 곤지암이 아주 대표적으로 유명한데,
오래 끓인 가마솥에서 장뚝배기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다.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곤지암의 “최 미자 소머리 국밥”도
영화 내용처럼 아직도 손님이 엄청나게 많은 식당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설렁탕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맛있다는 설렁탕 집들을 순례하며 다녔었다. 당시 조그마한 부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을 대학생이었던 처남이 거들고 있었다.
모처럼 큰 주문을 받느라 식사 때를 놓쳤지만 인근의 유명한 설렁탕 집을 찾았다.
특(特)으로 두 그릇을 주문했는데 처남의 표정이 묘해진다.
“왜 그래? 너무 배고프지?” 너무 시장해서 그런지 묻자,
“매형 저 설렁탕 안먹는데요.”
“허걱…” 이 집은 설렁탕집이라 설렁탕외에는 도가니탕, 수육밖에 없는데..
나 역시 신혼 초(初)라 아직 어색하기만한 처남과 매형의 관계가 애매한 침묵으로 잠시
식탁에 정적을 만들어 놓는다. (정말 요즘 말로 대략난감..)
그런데 다행히도 나보다는 더 성격이 좋았던 처남이 묵묵히 설렁탕을 먹어 주었다.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들이킨 후 처남 曰
“매형, 설렁탕 맛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요.”
당시에는 Lip service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 후로 처남은 거의 한 달 가량을 친구들과 설렁탕만 먹으러 다녔다는 얘기를 아내로 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렁탕은 제대로 그 깊은 맛을 느끼면 중독성을 갖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물론 다른 많은 한국 음식들이 그러하듯이..
오늘은 설렁탕 얘기와 함께 묵은지 얘기도 곁들이려고 한다.
설렁탕이면 깍뚜기지 묵은지가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미 앞 서 말한 슬로우 푸드로서의 한국 음식의 정체성이 흠뻑 담겨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맛있는 설렁탕에는 정성과 기다림이 뽀오얀 국물로 우러나 있다.
맛있는 묵은지에는 발효와 숙성이 시원하고 깔끔한 풍미를 이루어 놓는다.
누군가로 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멋은 고정 관념을 깨는데 있고, 맛은 세월의 숙성 과정에 있다.”
발효된 김치, 묵은지는 맛의 비결이 다소 신비스럽지만 발효과학의 범주안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김치 원료의 어떤 성분은 미생물의 생육을 촉진시키고 또 어떤 성분은 억제하기도 하며,
김치 재료의 혼합 비율과 숙성 조건에 따라 아삭한 식감의 풍미를 만들기도 하고 물러버린 식감을 만들기도 한다.
잘 숙성시켜 잘 보관한 묵은지는 색깔도 예쁘고 군내가 나지 않는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이하로 숙성시킨다.
고기를 먹을때 함께 먹으면 고기를 잘 소화시키고 지방의 배출을 돕는다.
유산균이 정장작용을 하게 하여 생리 대사를 활성화시키고 항암작용을 해준다.
김치를 만드는 재료들을 열거해 보면 이 보다도 더 훌륭한 웰빙 음식이라고 추천할 수 있는 음식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고 자부한다.
이미 WHO도 장수 식품으로 우리의 묵은지를 선정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다” 라는 말이 실감된다.
다음 주에는 진국의 설렁탕과 제대로된 묵은지로 승부하려는(아, 이 단어는 너무 전투적이다.
필자가 만난 “청기와”사장님 내외는 미식가와 아울러 식도락가다운 비전투적인 면모를 충분히 가지고 계셨다.)
마카티에 위치한 “청기와 식당”의 맛 집 기행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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