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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상지 : 설악산 천화대
2. 등반형태 : 리지 등반
3. 목적 : 천화대의 범봉까지의 전 루트를 당일주파를 통해 팀웍의 점검과 등반능력 점검
4. 기간 : 1999. 7. 17 ∼ 1999. 7. 19
5. 대원 명단 :
김태욱, 이재하, 이순명, 김정복, 고창조
1. 산행 동기
천화대는 일반적으로 암릉이라는 특정한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안전상 당일 내에 주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산악회 창립 이후 이루어진 암릉종주는 이러한 원칙을 잘 지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운행 시간의 지연에 따라 중간탈출이나 석주동판 하강을 끝으로 하산하곤 하여 범봉까지의 전 구간을 완주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설악골 초입부터 범봉까지의 천화대 전 루트의 당일 주파는 우리산악회의 작은 바램이었다.
그렇다면 천화대종주가 왜 많은 회원이 참여해야 할 특별산행이었느냐? 대원선정 과정인 연습등반을 통하여 암벽경험이 없는 일반회원의 암벽등반 입문으로 산악회의 암벽등반의 저변화를 꾀하여 산행능력의 내실화를 기하고자 하는 기대효과를 노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논란의 소지는 다분하겠지만, 행락산행을 기피하는 산악회의 성격으로 비추어 볼때,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산행에 동참하고자 하였을 많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이해와 양보를 담보로 한 팀웍의 확인이 그 동기라고 말하고 싶다.
2. 대원 선정
일차적으로 암벽경험자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으며, 이차적으로는 성실성과 끈기를 전제로 하였다.
이재하회원이 훈련담당을 맡아 매주 계룡산, 대둔산 등지에서 암벽훈련을 하였으며, 대 상자는 원하는 회원 전원으로 하고, 만일 이 훈련에 단 1회도 동참하지 않은 회원은 그 회 원이 설사 훌륭한 크라이머일지라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또한 동참한 회원 중에서 도 본 산행에 심각할 정도의 시간지연을 초래할만한 회원은 대장이 선별하여 제외하기로 하 였다.
훈련 참석의 효과는 예상대로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천화대라는 암릉에 동참하고픈 회 원은 많았으나 암벽이라는 행위에 몰입할 자신은 없었던 듯 하다. 결과적으로는 소수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회원들 스스로가 배려한 것은 아닌가 한다.
꾸준히 훈련에 동참하고도 스스로 산행에 동참하지 않은 몇 몇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리 고 싶고 몸과 마음으로 지원하여 주신 모든 회원여러분들께 엎드려 절한다.
▶ 운행 보고
1. 차량운행
- 대원이 5명이므로 이순명회원의 크레도스 1대를 이용하였다. 애초에 5인의 등반대원과 전체 짐(막영을 생략했다고는 하나)의 부피를 감안할 때, 승용차 트렁크 용량의 한계로 인하 여 이동 중 대원들의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각오하였으나, 이외로 짐의 부피가 적어 뒤 트렁크에 꼭꼭 재겨 넣고 트렁크 뚜껑을 눌러 닫으니 해결되었다. 매트리스는 별도로 뒤 좌석 발치에 쌓아 운행하니 별로 큰 불편은 없었다.
- 오후 6시 30분경 대림상가 앞 출발 원주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기사식당 상가가 있는 곳의 '진명기사식당'에서 석식을 해결, 진부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진부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오대산쪽으로 진행하여 진고개를 넘고 양양 거쳐 설악동에 날이 바뀐 오전 0시 30 분쯤 도착.
- 귀가길은 연휴행락객들의 귀가로 고속도로가 많이 막혔음. 원주를 빠져나와 진천 톨게 이트까지 샛길을 이용.
2. 산행 시각
비선산장 기상 및 출발(04:30∼40) → 설악골 천화대 초입 통과(05:00) → 1, 2피치 우회 릿지 도착 및 휴식(05:45∼55) → 하네스 착용 → 하강 *3인 하강, 2인 클라이밍 다운* 및 조식(06:00∼30) → 35m하강 *2인 하강, 3인 클라이밍 다운* → 35m 하강 → 60m 벽 및 노란벽 정상 통과 *안자일렌 연등*(08:10) → 20m클라이밍 다운(08:10∼30) → 홈 통바위 통과 *연등* → 사선침니 통과 *클라이밍* 및 30m 하강(08:55∼10:05) → 슬랩 통과 *클라이밍* → 왕관봉 정상 *클라이밍* → 왕관봉 하강(11:10) → 측백나무 숲 통과 중식(11:55∼12:10) → 희야봉 통과 *칸테 등반, 연등* → 40m 하강 및 휴식(12:30 13:00) → 석주동판 하강 → 30m 슬랩 및 크랙 통과 *클라이밍* → 직상크랙 도착 *연등*(14:05) → 35m, 10m 2회 하강 및 간식(16:00∼30) → 마지막 피치 통과 *클라이밍* → 10m 하강, 범봉 측면 트래버스 *연등* → 하강지점 도착 및 25m, 40m 2회 하강 및 장비 정리(17:55∼18:30) → 비선산장 도착(20:00)
3. 등반보고
- 천화대 1피치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우회하여 1봉 안부로 붙었다. 구름도 적당하고, 대원들의 컨디션도 좋아 등반 내내 여유가 있었으며, 주위의 경치와 등반코스도 관찰할 수 있었다. 각 산악회에서 하계등반을 시작하는 시점이어서 천화대, 염라길, 흑범길, 석주길 등 을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왕관봉 이후에는 앞 팀에 밀려 자주 기다렸으나, 앞 팀의 등 반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기회도 되었다.
- 등반자일은 주 자일로 10.5mm 50m 1동과 하강을 위한 9mm 50m 1동이면 무난할 것 같 다. 사선침니 부근과 직상 크랙 등반 시에는 프렌드가 필요하다. 왕관봉에서 잦은바위골 쪽 으로 하강하면 오버행이므로 릿지 진행방향 쪽으로 하강하는 것이 좋다. 희야봉(석주길 동 판) 하강 후 범봉 측면하강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등반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 진행 하여야 한다. 등반 도중 탈출은 설악골 쪽으로 하여야 한다. 등산화는 대부분의 코스에서 릿 지화면 무난하나 왕관봉, 직상크랙, 범봉 전 봉을 오를 때는 암벽화가 좋을 듯 싶다.
▶ 장비 보고
1. 공동장비
- 막영구 : 산장이용을 하기로 함에 따라 텐트를 휴대하지 않았다. 당일 암릉종주 등과 같은 등반은 짐의 중량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므로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비 선산장은 평일에는 자리가 넉넉하므로 따로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 취사구 : 행동식 위주이므로 취사구도 중형 콕헬세트에서 큰놈으로 2개만 따로 꺼내어 휴대하였다. 콕헬의 휴대 시, 그 안에 먹을 것을 동시에 넣어 휴대하면 짐의 부피가 줄어들어 편리하다. 물주머니는 따로 필요 없었다.
- 운행구 : 천화대 종주 시, 인원이 5명 정도이고 2파티로 나누지 않는 이상 자일 이 2동씩은 필요 없다. 등반자일 11mm 1동과 하강용으로 9mm 1동이면 무난할 듯. 중량이 줄어 아주 추천할만하다. 범봉 측면 하강이나 범봉 정상 하강일 경우를 제 외하고는 자일 2동을 연결할만한 장소는 없었다. 굵기가 다른 자일의 연결은 피셔 맨매듭은 안된다. 반드시 8자매듭을 사용해야 한다. 퀵드로우는 10개 정도면 아주 적당하고(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소요되지 않음), 프랜드가 사선크랙과 석주동판 하 강 이후 2피치 등반 때 유용하게 쓰이며(직상크랙에서는 아주 큰 호수가 있으면 쓸 모 있을 듯), 너트는 필요없다. 슬링은 하강코스에서 교체할 필요가 있으므로 적당 하게 휴대하여야 할 듯. 이번 등반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지도와 컴파스는 길이 빤하므로 경험자들일 경우 휴대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을 듯. 휴대폰은 계곡 내 에서는 무용지물이나 일단 릿지에 올라서면 잘 터진다.
- 기록구 : 김정복회원이 산 지에서 카피하여 가져온 천화대 암릉 개념도가 각 도 착지점에 직접 시간을 기록하면 되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향후 기록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각 운행지점을 미리 작성하여 시간만 기록할 수 있도록 페이 퍼 준비를 하면 도움이 될 듯 하다. 카메라는 소형자동이 휴대하기 용이하나 역광 등의 촬영조건에 따라 좋은 기록을 남기기에는 문제가 있다. 이번 등반에 김정복 회원이 휴대한 무비카메라는 나중에 보니까 휴대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다만 휴 대하기가 좀 그렇고 찍사의 노고가 좀 그렇다. 그러므로 게으른 장비담당이 그걸 휴대한다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카메라 필름의 소요는 게으른 장비담당이 찍사 인 관계로 고작 1롤만 소요됨.
2. 개인장비
막영구 (침낭, 매트리스), 등반운행구 (배낭(어택쌕, 써브쌕), 윈드자켓, 헤드램프, 하네스, 하강기, 암벽화, 헤드램프), 취사구 (수저, 컵, 칼, 라이터, 수통(패트병 2개씩), 의류 (내의 1벌, 양말 2족, 모자 등), 기타 (신분증, 볼펜, 비닐봉지, 스카프, 타올, 세면구, 화장지 등),
개인장비 일람표
- 막영구 : 비선산장에서는 얇은 요와 이불이 비치되어 있으나, 그 수량이 적어 믿 음직스럽지가 않다. 따라서 산장 이용일 경우라도 반드시 침낭과 매트리스를 휴대 하여야 한다. 산장을 여관으로 착각하는 몰상식한 산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산매너 를 지켜야 하겠다. 매트리스는 꼭 필요치는 않으나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므로 휴 대의 가치가 높다. 하계용 침낭은 파일로 직조된 얇은 것을 권장하고 싶다. 부피가 엄청 작아 휴대 및 사용이 아주 용이하다.
- 등반 운행구 : 어택쌕이라기보담 대형쌕과 서브쌕(이게 어택쌕으로 사용됨)을 각 각 가지고 갔는데 암릉종주 시는 반드시 필요한 휴대방법이다. 그런데 1박2일 정도 라면 굳이 큰 배낭은 필요가 없다. 작은 배낭 2개(35리터 정도와 쬐끄만 놈의 티어 드롭형)에 짐을 나누어 두 놈을 동시에 지고 지원지점까지 캐러밴하는 방법이 훨씬 편하다. 이번 등반에는 쓰잘데 없이 먹을 것을 많이 지는 바람에 좀 문제가 있었다. 암릉종주 시에도 35리터들이 이상 조금 크다 싶을 정도의 티어드롭형 쌕이 유용하 다. 아주 작은 놈은 좀 문제가 있다. 이재하회원의 쌕이 아주 추천할만 하였다. 그 배낭은 적게 들어가면 적은대로 폼이 구겨지지 않게 질만하고, 짐이 많으면 많은대 로 들어가는 대식가이다. 암릉종주용 배낭일 경우 매트리스는 바깥에 달아 휴대해 야 한다. 신발은 2족씩을 휴대하였는데 암벽화만 달랑 신고 갔다가는 아주 눈물길 이 된다. 옛날 암벽화는 그런대로 괜챦다. 암벽화는 배낭 속에 고이 모시고 보통 운 행 시에는 리지화를 신는 편이 좋다. 리지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5.10의 녹색 테니스 화가 괜챦다. 단점이라면 내구성이 별로다인데 암릉종주용으로 따로 사는 편이 권 장할 만 하다. 딴 놈들은 다 고만고만한 데 비쌀 뿐만 아니라 부피도 크고 발도 그 렇게 훌륭하게 편하지가 않다. 이번 장비담당이 쓸데없이 진짜 테니스화를 신고 가 는 몰상식한 모습을 보였다가 신발 갈아 신느라 낭패를 보았다. 하강기는 당근 8자 이다. 로우 튜브는 가볍고 사용하기가 편하지만 줄이 잘 안 풀린다. 하네스는 옛날 것들은 하강 시 뿌드득 실밥 튿어지는 소리를 내어 하강자의 머리를 쭈뼛 솟게 만 들었다. 국산으로 김정복회원과 이재하회원의 트랑고가 괜챦게 보였는데 카라비너 고리가 연질인 것이 좀 맘에 안든다.
- 취사구 : 이제 수통은 별도로 마련할 필요가 없어졌다. 패트병이면 만사가 OK이 다. 이번 등반에는 큰놈으로 2개씩 휴대하였는데 물이 조금 남았다.
- 의류 :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내의 1벌씩과 티와 여벌바지 하나씩을 휴대했다. 장비담당을 제외하고는 여벌바지가 모두 반바지였는데 아주 부러웠다. 등반 시는 긴바지를 착용하고, 등반 이후는 반바지로 돌아 댕겼는데 얼마나 시원해 보이던지! 내 원 참.
3. 총 평
- 우선 맘에 안 드는 몇 가지. 아직도 짐이 좀 과하다. 물론 이번에는 식량이 주범 이었지만 짐 줄이는 기술이 아직 많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물론 무조건 짐을 줄인 다는 것은 때로 위험한 일일 수가 있다. 하지만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릴 줄도 알 아야 하겠다. 근데 어떤 것을 버려야 할 지를 고민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야 할 것 이다.
▶ 식량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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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사가 2회 그 나머지는 모두 매식이거나 도시락, 행동식이다. 취사는 표에서 보 는 바와 같이 등반 이후 하산하여 석식 1회, 그 다음 귀가일 조식 1회였고, 매식은 출발 당일 석식 1회, 귀가일 중식 1회였다. 아주 만족스러워 권장할 만 하다.
- 가장 심사숙고한 부분이 바로 암릉종주 당일의 중식 문제였는데, 새벽에 출발함 에 따라 아침을 취사하지 못하므로 전일 도시락을 꾸려야 하였다. 그러나 도시락은 계절이 여름이므로 이틀을 가지 못하고 상한다. 전문가에게 여쭈어보니 맨밥이라면 여름철에도 이틀정도는 상하지 않는다 한다. 집에서부터 한끼분의 밥을 지어 김정 복회원이 지참하고, 고창조회원은 충무김밥(고명이 안 들은 김밥) 스타일로 김밥을 말아 휴대하였다.
도시락 3개분의 밥과 다섯줄 가량의 김밥은 아주 좋은 에너지원이었다. 반찬은 김치, 오이지, 쇠고기장조림, 어리굴젖 등 등 너무 많았다. 이후 짐줄이기 차원에서 거론되어야 할 문제로 밑반찬 역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여 참석인원 각자에게 그 책임을 분배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복되는 식량류가 많아 쓸데없이 짐이 가중된다. 한 대원의 과중한 짐은 결국 전 팀의 하중으로 작용된다.
- 행동식으로 오이, 방울토마토, 미싯가루, 모닝빵, 잼 작은 것 2병, 육포, 사탕, 양 갱, 쵸컬릿 등속을 준비하였다. 밥이 있으니 행동식은 그다지 많이 소요되지는 않았 다. 개인당 2리터 정도의 물 덕분에 오이의 필요성 역시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오 이는 무겁고 부피가 크지만 물이 부족할 경우에는 아주 좋다고 사료된다. 미싯가루 가 상당히 괜챦았고 목이 마를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갈증과 허기를 동시에 해소시 키는 좋은 식량이었다. 어차피 미싯가루를 이용한다면 밑에서부터 물과 미싯가루를 섞어 휴대하는 편도 괜챦을 듯 하다. 방울토마토는 모두 처분했는데, 휴대하기가 까 다로워 물러터지는 등 하여 빨리 없애자는 심리가 작용했으며 맛도 괜챦았다. 모닝 빵은 먹기가 간편하여 제법 소요하였다. 라면도 지참했으나 전량이 남았음.
- 결론적으로 밥과 물이 있으니 행동식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꼭 필요할 것이다. 이번 등반 시는 행동식의 준비가 과다한 듯 하다. 또한 부식의 준비 역시 많았다고 여겨진다. 식량의 준비를 각자에게 맡기는 것은 다소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풍족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렇게 산뜻해 보이지는 않는다.
▶ 기 타
1. 의 료 : 크랙에서 비비적거리다 보니 대원 전원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그러 나 연고를 사용할 정도의 상처는 없었음. 모두가 건강이 양호한 상태였으며, 무사하 게 등반을 끝마쳤다. 등반 첫날 무지하게 졸려웠던 것이 문제.
2. 기록 촬영 : 암릉종주와 같이 긴장된 루트의 등반 시는 기록의 중요성에도 불구 하고 체력의 저하와 의욕의 감퇴로 인하여 기록에 소홀할 수가 있다. 또한 시간이 촉박한 운행일 경우에도 시간상의 제약으로 기록이 누락될 수밖에 없다. 특정지점 의 통과시간을 기억했다가 휴식 시에 기록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운행 중의 특정 이벤트를 정확히 기록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선은 기록자의 성실성과 기 억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하강과 확보를 받고 오르는 피치간의 시간 견적이었다. 기억으로는 한번 자일을 풀면 하강의 경우는 약 30분, 등반의 경우는 약 50분 정도 소요된 걸로 생각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사실 별로 어렵지 않으나 이를 소홀히 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향후 암릉종주와 같은 등반 시의 기록의 촛점은 등반과 하강 시의 자일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에 두어야 하며, 각 피 치의 난이도나 크럭스부분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똑딱이 카메라를 휴대하였는데 이게 촬영자의 입맛에 따라 움직여 주지 않는 다. 휴대는 간편하나 그다지 좋은 성능은 아니다. 따라서 그저 기록용으로 카메라의 한계에 따라 적당히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라스트의 등반하는 모습은 어디서 고 찾아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다.
김정복회원의 무비카메라는 그 부피와 무게로 미루어 좀 그랬지만 기록의 가 치적 측면에서는 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촬영자의 노고가 문제가 된다. 촬영자의 모습을 담는 것은 대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떤 의 미에서는 등반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어차 피 기록이란 차후 등반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야지 멋있는 모습 을 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회계보고 :
수 입 |
지 출 |
비 고 |
산행 참가비 : 150,000원 산악회지원금(작년 찬조금) : 100,100원 김해수지원금 : 10,100원 |
식량 구입비 : 47,000원 매식 : 20,000원 비선대 막걸리 : 24,000원 소주 : 6,000원 차량 : 82,000원 고속도로 통행료 : 13,400원 산장 이용료 : 30,000원 정심 지원비 : 37,1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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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00원 | 260,000원 | 0원 |
1999년 7월 16일 맑음
정말 간만의 천화대 등반이다. 설레이는 마음 한 켠에 웬지 불안한 기색이 엿보인 다. 물론 수차례의 연습바위가 있었지만 체력의 저하와 더불어 너무 오랜만의 바위가 부담 이 되는 듯 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마음은 평온하다. 소형쌕 두 개에 나누어 짐을 꾸려 오후 6시 신성동 대림상가 앞. 모두 모였는데 콕헬을 건네주기로 한 해수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이 회장님이 매트리스가 없다고 한다. 산장 이용이긴 하나 딱딱한 침상보다는 매트리스의 휴대가 좋다고 하여, 해수 올 시간동안 한빛아파트를 왕복한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주현이 에게 매트리스를 건네 받은 회장님이 바쁜 와중에 굳이 이천원을 꺼내어 딸에게 건넨다. 그 모양을 보면서 우리의 숙명 같은 부담을 공유한다. 처자식 있는 놈들이 이게 뭐람?
해수가 나왔다. 저 녀석 신혼만 아니라면 동행했을 텐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신혼 커플에게 관대한 면이 있다. 이놈아 한 1년 지나봐라. 내심 속으로 고소를 하며 녀석의 배웅 을 받으며 장도에 오른다. 핸들 옆의 전자시계가 6시40분을 가르킨다.
어데로 가나? 연휴인 관계로 영동고속도로가 붐빌 것이라는 예상이지만 뾰죽한 수 도 없다. 똥깡으로 호법 IC에 도착하니 한참 늘어서 있다. 다행히 공사 중인 관계로 일시적 인 정체현상이다. 뱃속이 꼬르륵거린다. 어데서 밥을 팔아줄까 궁리를 하는데 회장님이 옛날 설악산 갔다가 귀가길에 들렀던 원주의 기사식당 이야기를 꺼낸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그 기사식당의 김치찌개 생각이 오늘따라 간절하다. 원주IC를 빠져나가 자마자 바로 앞에 예의 그 기사식당가가 있다. 그 중 옛날에 들렀던 것으로 보이는 '진명기 사식당'이라는 데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때마침 8시 뉴스가 한창인데 신창원이 잡혔단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쟤가 어떻게 잡혔나? 요즘처럼 아리송한 세상에는 신창원이 밉지가 않다. 김치찌개와 소내장탕을 시켜 허기를 떼운다. 정말 이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톡톡한 음식 맛이 그만이다.
내쳐 강릉까지 갈까? 아니면 구룡령을 넘을까? 궁리 끝에 오대산 진고개를 넘어 어프로치하기로 절충한다. 진부에서 IC를 지나면 바로 왼쪽으로 오대산 이정표가 보인다. 진 고개에서 잠시 휴식하고, 양양을 거쳐 달리다보니 어느덧 물치. 설악동 도착시각이 12시가 한참 넘었다. 어랍쇼? 매표소 직원이 안 보인다. 얘들이 술먹었나? 뭐 어쨋거나 우리로서는 아주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통쾌하게 통과하여 내쳐 와선대까지 진입하려니 까 어째 좀 켕긴다. 그래 정고평 못 미처 짐과 회장님 등을 내려놓고 창조형과 설악호텔 주 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비선산장까지 밤길을 재촉한다.
1시 경 도착한 비선산장은 이외로 연휴의 등산객들로 부산스러웠다. 건물 1층 상가 의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여 밤을 잊고 술타령들이고 2층 산장 바깥 테라스에도 잠을 잊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끓여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어수선한 와중에 내일 가지고 갈 짐을 챙겨 꾸려 놓고, 잠시 아래층으로 가서 술을 두어병 산다. 얼마 안되는 시간이라도 푸 욱 잠이 들려면 이 방법이 최고이다. 한 병에 4000원 하는 제법 비싼 술맛은 사이다에 막걸 리 탄 듯이 묘한 맛이다. 둘러앉아 한 순배씩을 돌리는데 산장관리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천 화대 등반코치를 한다. 천화대 가이드만 한 40여회 했다는 청년 말이 자일은 한동이면 충분 하단다. 청년 말이 별로 틀리는 말은 아닌 듯 하나 좀 참견이 지나치다 싶다. 배정받은 2층 침상에 자리를 펴고 누운 시간이 한 두어시나되나?
1999년 7월 17일 맑음
석주동판까지
등산객들이 밤새 들락날락거리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자는 둥 마는 둥 선잠 끝 에 세상이 고요하여 단잠이 들만할 무렵, 옆자리의 회장님이 슬그머니 일어나 시간이 됐네 하면서 혼잣말을 한다. 모르는 척 그대로 누워 있기를 한 20여분. 모두가 꾸물꾸물 말 안 듣 는 몸을 억지로 세운다. 4시 40분, 어제 챙겨둔 배낭을 메고 산장 문을 나선다.
여름이라 해가 길기는 긴가보다. 아직 새벽녘인데도 불구하고 날이 훤하다. 설악골 못미쳐 우측의 작은 계곡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설악골 초입에 도착한 시간이 언뜻 확인 하기로 5시 정각이다. 제법 되는 인원들이 천화대 초입에 붙어있다.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아 첫 피치 아래쯤 왔을 때 위로부터 "낙석" 외침과 함께 넓적한 머리통만한 돌이 눈앞에 나타 난다. 얼른 고개를 돌리자 머리통 옆을 투웅 튕겨 저 밑으로 사라진다. 완전 십년 감수이다. 저 위에서는 그 이후로 미안하단 소리도 없다. 은근히 열이 오르는데 걔들도 미안하겠지. 오 죽하면 미안하단 말도 못 할까. 하고 그냥 참는다.
첫 피치 아래 우글거리는 모양을 보니 그만 정이 떨어져 우회하기로 한다. 회장님 이 우회길을 찾겠다고 저 밑으로 내려갔나 본데 우회길은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나간다. 오 른쪽으로 돌아 능선의 날등을 세미클라이밍으로 오른다. 올라가 보니 바로 첫 피치 위다. 저 밑에서 아직 웅성거리는 품이 아직 바위 준비 중인 모양이다. 바로 위 왼쪽의 가파른 릿지 가 2피치 진입 길이다. 회장님과 합류한 후, 2피치에도 사람이 붙었다면 역시 또 시간이 지 연될 터이니 이도 우회하자 한다. 둘 다 그렇게 등반성도 없고 재미도 없으니 그게 탁월한 선택인 듯.
릿지의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잠시, 왼 편 사면에 울퉁불퉁한 바위로 형성된 큰 벽 이 누워있다. 홀드나 스탠스 모두 양호한 듯 하나 낙석 문제도 그렇고 좀 위태스럽다. 저 앞 으로 돌아나가려는 회장님을 붙잡고 이리로 그냥 오르자고 해 본다. 회장님이 앞장 서 오르 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그다지 어렵지는 않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잠 모자란 눈 이 땡그래지고 천근의 발걸음이 서서히 신중하게 풀린다. 기분 좋다. 5시 45분, 드디어 릿지 에 진입. 2피치쪽의 봉우리너머 칠성봉과 권금성의 스카이라인 사이로 해가 돋는 중이다. "저걸 찍어야 하는데" 정복이 형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햇살을 향해 돌아 선다. 無心 아주 敬虔한 無心! 붉은 빗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첨봉의 실루엣을 황홀하게 하더니 그 사이로 봉긋 솟는 붉은 덩어리. 해가 솟는다. 그 해가 천천히 떠올라 어둔 봉우리 의 자태를 밝힌다. 우리가 올라 온 사면 방향으로 마등령 능선이 길게 꼬리를 긋고 있다. 그 꼬리를 따르다보면 끝에 우뚝 장군봉이 보이고 저 밑으로 적벽이 상어대가리처럼 삐딱하게 솟아있다. 벅찬 가슴을 열어 붉은 덩어리를 싸안고 돌아서서 진행.
쉬운 그러나 위태한 바위길이 계속된다. 릿지 상의 바람이 세차다. 모두 배낭에서 하네스를 꺼내어 착용하고 자일 2동으로 안자일렌을 한다. 한 5분 진행하니까 낭떠러지가 나온다. 예전에 좌측으로 클라이밍 다운하던 구간인 듯. 그런데 지금 이 광경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세월이 너무 지났나? 예전보다 길이 훨씬 좁아 보이고 굴곡이 심하다는 느낌이다. 재하가 좌측 직벽의 스탠스에 붙어 아래로 내려가 살피는 중, 위에서는 하강지점을 찾아낸 다. 거기에 9mm 자일을 걸어 하강준비를 하고 정복이형이 먼저 내려간다. 회장님은 재하를 따라 걸어 내려가고 창조형과 나는 걸어갈까 하강할까? 하다가 그냥 하강하기로 한다. 바람 이 제법 분다. 하강을 마치자 배가 꼬르륵. 안부에는 바람이 그리 세지 않다. 길 가운데 음 식을 꺼내 아침을 먹기로 한다. 밥을 먹고 있으려니까 저 위에 사람들이 나타난다. 1피치 우 회길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재하 말로는 그들도 1피치를 자유등반으로 온 듯 하다고 한다. 모두 다섯명인데 클라이밍 다운하는 몸놀림이 가볍다. 그들이 안부에 도착, 길막고 있는 것 이 미안스러워 "죄송합니다" 했더니 "아니요 우리도 쉬다 갈건데요 뭐" 하고 선선히 받아준 다. 물어보니 그 팀도 범봉까지 가기로 한단다. 범봉 측면까지냐니까 정상까지라 한다. 아무 튼 그들과 자주 만날 것 같다. 먼저 출발하고 싶었는데 그 팀이 먼저 일어선다. 이왕 앞을 빼앗겼으니 서두를 것은 없다.
안자일렌이 거추장스러워 안자일렌을 생략하기로 하고 5시 30분 출발. 눈 앞의 봉 우리를 오르니 두 번째 하강길이 나온다. 기억에 이 하강도 우측으로 클라이밍 다운하여 약 간 위태로운 트래버스 끝에 내려선 듯 한데, 지형이 눈에 익지가 않다. 저 앞에 앞 팀이 가 고 있다. 하강자일을 걸고 있는데, 앞 팀의 선두가 이쪽을 건너 올려다보며 말을 건다. "그 냥 클라이밍다운 하시는 게 편할텐데요" 웬지 약간 자존심이 켕기는데 그 말에 자일을 걷기 도 또 영 쑥스럽다. 앞 팀의 사람 중 김병지마냥 노랑물 들인 꽁지머리가 있었는데 그가 우 리에게 말을 건 톱을 나무란다.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쟎아" 그러자 앞 팀이 더 이상 참 견을 안하고 자리를 뜬다. 어쨋거나 재하가 먼저 하강을 하는 사이 정복이형이 앞 팀의 말 에 존심이 상하셨는지 우측으로 벌써 한참 걸어 내려갔다. 시간관계상 회장님도 창조 형도 그리로 내려갔고, 나는 쓸데없이 하강을 고집한다. 눈 앞의 봉우리를 올라서니 제법 긴 하강 길이 나타난다. 앞 팀이 그 앞의 노란 벽을 오르고 있다. 서둘러 하강을 마치고나자 회장님 이 자일을 찾는다. "뭔 자일?"하니까 한동이 보이지 않는단다. 아마도 아침 먹느라 배낭을 풀은 연후 챙기지를 못했나보다. 이것은 라스트의 책임이다. 물론 내 배낭에 챙기지는 않았 으나 바위가 시작되면 그건 라스트인 내 책임인 셈이다. -미안시러워- 다들 기분이 별로로 앉아 있다가 2동이면 충분하니까 잊어버리자고 한다. 자일을 회수하고 벽에 붙는다. 중단 지 점 약간 까리한 부분에 재하가 줄을 매고 앞에 나서고 나머지는 안자일렌을 하여 연등을 한 다. 두어마디 정도. 경사는 제법이지만 홀드가 아주 좋다. 갑자기 길이 뚝 떨어지고 하강볼 트와 하강슬링이 나타난다.
하강볼트를 지나쳐 클라이밍 다운으로 밑으로 내려선다. 코 앞의 오름길을 올라서 서 뒤 돌아보니 저 편에 클라이밍 다운한 곳에 여럿이 몰려있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어디 로 가느냐고 묻다가 문득 시계를 잊어먹지 않았느냐고 한다. "맞아요 그거 제 시계예요" 뜻 밖에 재하가 반갑게 입을 연다. 흘리고 다니는 우리 꼴이 우스워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빙 그레. 근데 저 팀과 합류하기가지 시간이 만만챦을 듯. 그들이 그런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이 "비선산장에서 찾아 가세요" 한다. 그 말에 우리들은 흐뭇해진다. 돌아서 진행방향의 저 쪽 벽을 건네다보니 사선크랙이 뻗어보인다. 암만 생각해도 저게 생각나지 않는다. 창조형 말씀으로는 했다고 하시는데...... 앞 팀의 동정을 살피니 사선크랙 좌측으로 우회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선크랙은 정면 벽을 프리로 오른 뒤 벽 우측으로 고도 없이 지나치면 바로 나타 난다. 여기까지는 그냥 왔지만 이 곳은 암벽화가 필요할 듯 하다. 회장님이 체중조절 차 자 리를 뜬 사이 정복이 형이 확보를 보고 재하가 나가는 동안 카메라를 꺼내 이리저리 앵글을 잡는데 벽이 어두워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이어 회장님이 붙어 오르는데 크랙 전문가답 게 쓱쓱 잘 오른다. 정복이 형 이어 창조 형까지 각자 2장씩을 필름에 담고 암벽화를 갈아 신는다. 벌써부터 발가락이 아프다. 크랙 진입 1/3 정도 지나면 크랙이 약간 꺾이는데 여기 서 몸을 쑤셔박고 팔 전체로 잼하면서 올라야 한다. 물론 아주 미세한 홀드와 스탠스를 이 용하여 외측등반도 가능한데 어덴지 불안스럽다. 후등이라 외측등반을 해보겠다고 용을 써 봤는데 실력도 없는 놈이 똥폼만 잡았지 뭐 별수 있간디. 할 수 없이 크랙에 짱박혀 낑낑대 는데 바로 밑에 프랜드가 꼭 박혀 있다. 위의 확보를 보고 있는 정복이형한테 우리 꺼냐니 까 "그럴 걸?"하고 약간은 자신없어 하신다. 가만보니 그닥 눈에 익은 놈은 아닌데 일단 회 수하자고 다시 기를 쓰고 내려가 밀었다 땡겼다. 아 제미랄 얼마나 꼭 쟁겼는지 옴쭉도 안 한다. 이건 우리 꺼라도 포기해야 마땅하다. 숨이 턱에 차 오르고 나니까 정복이 형은 미안 하신지 자일 회수는 당신에게 맡기고 그냥 올라가란다. 위는 한 2m쯤 되는 쉬운 곳인데 팔 이 얼얼하고 몸이 퍼져 겁이 난다. 확보줄을 풀고 위의 소나무를 잡아 흔들며 올라서서 휘 유우우. 하강지점에 다다라 언뜻 시계를 보니 10시가 다 됐다.
여기는 밑으로 동굴처럼 미로가 나 있는 곳으로 클라이밍 다운 한 뒤 짧은 하강을 할 수도 있고 그냥 위에서 긴 하강을 할 수도 있는 곳이다. 사선크랙 밑에서 오른쪽으로 뻗 은 릿지에 웬 사람이 보였는데 흑범길인 듯 하다. 하강지점에 그들이 먼저 도착하여 내려가 는 바람에 그 사이에 신발을 갈아 신고, 기다렸다 내려서니 눈에 익은 길이 보인다. 앞에 매 끈한 벽이 있는데 우측의 슬랩 중단에 볼트와 슬링이 보이고 저 안쪽의 왼쪽 벽엔 크랙이 나 있다. 예전에 저 크랙을 올랐었다. 재하가 준비를 마치고 슬랩으로 진입하여 사뿐하게 끝 낸다. 앞에 나가는 대원들을 차례로 촬영하고 내 차례에 다시 신발을 갈아 신는다. 릿지화라 면 그냥 갈만한 곳인데 괜히 테니스화를 신고 왔다가 생고생이라고 궁시렁대며 붙어보니 예 상외로 짭자름하다. 이제 어느덧 왕관봉이 코 앞이다.
왕관봉은 길이도 짧고 좀 만만하여 갈아 신은 테니스화채로 양쪽으로 뻐개고 올라 선다. 꼭대기 왕관바위는 군데 군데 장식고리를 달으라는 듯이 구멍이 숭 숭 세군데 뚫려있 다. 그 구멍에 짐 나를 때나 쓸만한 엄청 두꺼운 굵은 테이프고리가 둘러쳐져 하강고리가 달려있다. 누군지 참 지성이다. 하강을 하려고 낙자를 하는데 밑이 확인이 안된다. 하강길이 가 바로 밑이려니 했는데 꽤 긴 듯하다. 다섯명의 앞 팀은 우회 중인지 밑에서 소리가 들린 다. 회장님이 소리쳐 그들에게 하강방향을 확인한 후 하강. 모두 하강을 완료하니 11시 10 분. 배가 고프다. 걸음을 걷기가 고역이다. 뭘 좀 먹자고 하자니 아직 12시도 안 된 시각이 고 범봉까지의 일정도 좀 맘에 걸리고 하여 그냥 내쳐 간다. 가파른 숲길을 지나쳐 희야봉 을 코 앞에 둔 지점에서 먹고 가자는 이야기가 드디어 나온다. 12시가 조금 안된 시각. 미싯 가루를 물에 푸는 사이 남은 밥을 달래서 1/3가량 떼어내 혼자 다 먹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밥이 최고다. 창조형이 사오신 김밥도 아직 남고 먹을 게 아주 풍부하다. 물도 충분한 것이 마음이 든든하긴 하지만 그만큼 고생이다 싶다. 미싯가루를 풀어 마시고 사탕류도 좀 먹고 이래저래 배가 부르니 살 것 같다.
다시 출발 잠시 오르니 바로 희야봉이다. 이 곳은 정말 나이프 릿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으로 날등이 오른쪽으로 약간 누운 채로 정상으로 이어져 있다. 정상 역시 날등 이나 다름없다. 이 날등 초입을 넘어 날등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길로 진입하면 날등의 똥꼬 벌렁이는 깐테등반을 생략해도 된다. 그런데 똥꼬 시큰거리는 거길 가고 싶다. 재하가 그 말안장을 살피면서 "일루 가는 거 맞나요? 가기 싫은데요"하고 켕기는 미소를 짓자, 회 장님이 "그리루두 갈 수 있어 그럼 그리루 갈까?" 하면서 썩 나선다. 우회길을 찾느라 뒤로 처진 틈에 잽싸게 나서 날등을 말 타듯이 올라타니 다른 대원들이 조심하라고 걱정해 준다. 예전에 여길 지날 때는 히히대며 잘도 건넜는데 오늘은 웬지 떨린다. 날이 활짝 개어 시야 가 깨끗해서일까? 참 웃기게도 간사한 마음이로고. 똥꼬를 박박 긁어대면서 끝까지 나아가 왼쪽으로 진행하니 옴마 하강할 곳이 나와야 하는데 엉뚱하다. 다시 날등의 정상으로 돌아 와 위태한 정상을 밟고 밑을 보니 깡총 내려 뛰어 건너는 곳이 보인다. 저긴가보다 차례차 례 내려 뛰어 마루를 따라 이동해보니 거기도 아니다. 창조형이 옆으로 돌아 정상으로 올라 가셔 확인하시더니 찾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우르르 몰려가 보니 초입에 하강슬링들이 주렁 주렁 달려있는데 약간 누워 자일이 쓸릴 듯. 그 밑 한 5m 정도 클라이밍다운하면 하강슬링 이 또 보인다. 슬금슬금 내려가서 하강자일을 건다. 멀리 앞 봉우리 상단에 힘들다는 직상크 랙이 올려다 보이는데 상당히 위압적이다. 또 그 너머의 범봉은 아직도 갈 길이 험하다는 걸 알리는 듯 하다. 재하가 그 직상크랙을 올려다 보며 "저걸 해야해요?"한다. 저거 우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둥 하다가 하강하여 석주동판 바로 위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다. 앞 팀은 코 앞의 벽을 등반 중이다. 우리는 앞 팀이 그 봉우리의 첫 피치를 끝낼 때까지 석주 동판 하강을 보류하고 여기서 쉬기로 한다. 햇볕이 따갑다. 그 사이 우리 회장님은 바위에 짱 박혀 골아 떨어졌다. 나도 잠이 쏟아지는데 영 잘 맛이 안 난다. 여기까지 오니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만사가 귀챦은 게 내려만 가고 싶다. 창조형께 슬그머니 "형 내려가지 않을 래요?"하고 의사타진하니 "대장 말대로 해야지"하신다. 허기는 대장이 까라면 까야지. 바위 틈에 골아떨어진 회장님의 땡그란 머리통을 바라다보면서 '저 녀석 고집을 누가 말릴까?' 존 경스런 마음이 울컥! 가끔 햇볕이 수그러들고 바람이 쉬-ㅇ 쉬-ㅇ 거리는 심상치 않은 분위 기가 되기도 한다. 아 바람부는 날이면 바위가 싫어. 창조형의 레파토리라지만 나 역시 그렇 다.
범봉까지
앞 팀의 톱이 오르는 걸 보니 전면 벽이 보기와는 달리 별로 어렵지 않은가 보다. 4번째 젊은이가 좀 힘들게 오르고 나머지는 모두 몸놀림이 가볍다. 특히 라스트는 김병지의 노랑 꽁지머리인데 썩 가볍게 오른다. 그들이 위에서 장비를 챙기고 사라질 무렵이 되어서 기다리던 하강을 마치고 전면 봉우리의 첫 피치 아래 모여 등반준비를 한다.
재하가 오르기 시작 프랜드 2개를 걸고 상단 크랙을 오르는 품이 아주 가쁜하다. 흐음 멋져. 괜스리 흐뭇한 기분, 자랑스럽다. 카메라를 꺼내 찰칵대다가 정복이형이 크랙너 머 사라질 즈음 얼른 준비를 마친다. 한참 후 "완료" 소리에 냉큼 자일을 묶고 나서 "출발" 하니 "잠시 대기" 아이고 발 아파. 드디어 위에서 "출발". 밑에서 보기와 달리 이놈의 피치 는 너무 싱겁다. 올라가니 확보를 보던 정복이 형이 "안 내려가길 잘 했지"한다. -글씨요 아 직 모르갔는디요- 다시 멍청한 테니스화를 갈아 신고 가파른 잡목숲을 헤쳐 오르자 직상크 랙 바로 아래 바위가 나온다. 앞 팀이 직상크랙을 하는 중인지 두런두런 소리가 들린다. 그 래 기다리려다가 그들이 문제의 크랙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힌트를 얻고 싶은지 "앞 팀 하 는 거 한번 보지" 회장님이 재하를 재촉한다. 내쳐 오르는데 재하가 위돌아보며 "순명이 형 신발 갈아 신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한다. 별볼일 없을 듯 했는데 막상 가 보니 아주 짧은 슬랩의 경사가 제법 맨드름하다. 코 앞의 창조형이 뒤돌아보시며 시익 이빨을 보이시더니 사뿐히 내빼신다. 존심이 구겨져가며 또 신발교체.
2시 5분 직상크랙 도착, 앞 팀은 3명째가 크랙 너머로 사라지는 참인데 우선 신발 부터 벗고 맨발을 식히니 아주 시원하다. 올려다보니 별 것 아닌 듯도 한데 그게 아닌지 4 번째 젊은이가 시간을 죽이고 있다. 왼쪽 슬랩 하단의 볼트와 슬링으로 보아 그리로도 할 듯 하여 라스트를 보는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해 본 사람이 별 것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등반모습이 좀 힘들어보여 얌전히 찌그러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 정복이 형이 그 밑에서 계속 어떻게 올라갈까 토론하시다가 급기야 창조 형이 몇마디 짜증을 내신다. 에그 형님도 참. 못 참으신다니까! 앞 팀의 등반이 끝나고 재하가 하단에 프랜드 2개를 설치하고 크럭스 에 진입 또 하나의 프랜드를 걸고 나서 시도를 한다. 오른발을 들어 찢어진 스랩스탠스를 디디고 왼발도 나란히 디디는데 성공 다 끝났나부다 했는데 다리를 못 편다. 갸우뚱? 다시 빽. 회장님이 내려오라고 한다. 재하가 더 해 보려다가 그냥 줄 달고 내려오는데 폼이 영 어 색하다. "왜 그래?" "프랜드가 불안해요". 그렇군. 새삼 톱의 고마움이 눈물겹다. 회장님이 톱자를 인계받아 오르기 시작. 나는 크랙도사가 어델 가겄나고 태평스럽다. 아니나달라? 크 럭스의 크랙에 몸을 끼우고 암벽화를 바위에 빠각 빠각. 금새 상단부다. 길이가 좀 길어 모 두가 불안하여 확보 한 개 더를 합창하니 그제서야 멈춘다. 프랜드 하나를 들고 자세잡다가 설치가 마땅치 않은지 그대로 밑의 사람 가슴졸이게 하면서 우측 슬랩으로 진입. 이제 안심 이다. 재하와 정복이 형 창조형이 그 뒤를 잇고, 차례가 되어 붙는다. 오르다보니 크럭스 못 미쳐 딴 팀들이 회수 못한 프랜드가 2개씩이나 짱박혀 있다. 사선크랙의 프랜드를 생각하며 씁쓰름. 재하가 처음에 시도한 스탠스에 발을 얹어보니 과연 다리를 펼 수가 없다. -그럼 그렇지 남들 못하는 걸 낸들 별 수 있나- 참담해지면서 앞사람 무브를 열심히 흉내내면서 간신히 올라선다. 이제 하강 5회 바위 한번만 하면 된다. 온 길을 돌아보니 희야봉 하강지점에 사람들이 오글오글하다. 인원수로 보아 그들은 아마도 설악골로 하강하겠지. 만 일 이리로 계속 진행한다면 우리를 보면서 꽤나 부러워할는지도 모른다. 앞 팀이 하강 중이 므로 정상의 파노라마를 배경으로 간만에 증명사진을 찍는다. 간혹 스치는 바람도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아주 상쾌하다.
양 쪽의 단애를 즐기면서 조심스럽게 스탭을 옮기다보니 암각과 나무등걸에 칭칭감 은 슬링과 하강고리가 보인다. 하강자일이 걸려있는걸 보니 앞 팀은 아직 하강 중인 모양. 암각은 뜬바위처럼 보이고 나무도 그다지 굵지않은 잡목둥치 서너개로 좀 찝찝한 기분. 자 세히 보면 한쪽 바위크랙에 하켄도 박히고 하여 여기저기 슬링이 이퀄라이징 되어있는 것이 그런대로 믿을만하다. 연이어 2번의 하강인데 밑의 상태를 몰라 2동을 이었는데 회장님과 재하가 내려가더니 매듭을 풀겠다고 한다. 첫 번 하강은 한동으로 충분하고 그 밑 하강자가 필요한 듯. 매듭을 내려주고 정복이 형과 창조 형이 하강하신 후 줄에 매달린다. 테라스에 도착하니 창조 형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자일을 회수하고 사리 는 중 바닥 줄에 끌린 주먹보다 더 큼직한 돌멩이가 저 아래로 휭 나른다. 밑에는 저마치 거리를 두고 하강을 마친 앞 팀이 쉬고 있는데 바로 밑의 우리 팀이 걱정이다. "낙석"을 외 치니 앞 팀도 놀라 "낙석"을 부르짖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돌 떨어지는 곳에 정복이 형이 하강 중이었단다. 어쨋든 천만다행으로 사고는 없었다. 설악산 바위길은 언제나 낙석이 큰 사고를 부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너무 미안하여 밑을 보고 "죄송합니다"고 소리친다. 계속 자일을 사리는데 또 돌이 "우스스" 급기야 창조 형이 나무라시고 나는 쥐구멍 신세. 창조 형까지 내려가신 후 홀로남은 고독을 짓씹으며 하강기에 자일을 끼운다. 초입의 엉거 주춤한 하강자세가 스스로도 우스꽝스럽다. 어차피 자력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바로 이 하 강의 세계인데...... 씁슬한 미소와 함께 전 체중을 자일에 건다. 제법 빠른 속도로 줄이 빠져 나간다. 고도가 낮아지는 동안 밑에서는 작별인사가 한창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 안녕 히 가세요" 범봉 정상까지 간다던 그들이 떠난다. 웬지 허전하고 시원섭섭. 초면인데도 정이 가는 사람들.
바닥에 내려앉자 내려가고픈 얄팍한 꾀. 예의 뺀질대는 속성이 또 시작된다. 그런 한심한 심정은 4시밖에 안 된 이른 시각으로 하여 사정없이 묵살된다. 30분 가량을 퍼질러 앉아 주전부리 끝에 다시 출발. 지저분한 급경사 걸리를 올라 마지막 피치 밑에 도착. 벽의 각도가 제법 세다. 상단부에 펑퍼짐한 크랙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볼 때, 밸런스와 힘이 반 반씩 필요할 성 싶다. 줄을 맨 재하가 사뿐하게 올라 사라진 뒤를 이어 모두 오른 뒤, 이제 마지막으로 신을 듯한 암벽화를 갈아 신고 붙는다. 천화대 전 구간을 통해 난이도가 세 번 째 정도는 될 것 같은 생각. 직상크랙, 사선크랙, 그리고 바로 이 곳. 등반자일을 사려 목에 걸고, 지긋지긋한 신발을 갈아신을까 하다가 범봉측면 트래버스가 생각나 내쳐 가기로 결정, 대신 끈을 느슨히 풀고 과감히 꺾어 신어 발가락의 고통을 줄여본다. 짧은 하강, 여기가 범 봉이다. 정상까지는 직등을 하여도 되고 왼쪽 잡목 숲을 통해 지저분하게 올라도 된다. 우리 들로서는 설악골 쪽의 측면하강을 선택한 뒤라 이제부터 오름짓은 없다. 트래버스 길은 홀 드나 스탠스 모두 양호하지만 나름대로 고도감을 느끼게 한다. 어디로 가느냐고 엄살을 떨 어대니까, 암벽화 꺾어신은 한심한 모양새를 보고 뒤따르던 창조 형이나 저쪽으로 건너 가 있던 재하가 심히 불안한 눈치다. 엄살 끝에, 또 괜챦다고 호기를 보이는 꼴값을 떨어댄 끝 에 트래버스를 마치자, 왼쪽으로 작은 바위틈새 사이로 3명 정도 설만한 테라스가 있고 그 곳이 하강지점이다. 틈새 오른쪽으로는 너럭바위인데 그리로 올라서 보니, 우와 멋지다. 범 봉의 매끈한 벽이 코 앞에 펼쳐져 있다. 바로 이 모습이 마등령이나 공룡에서 확인하는 범 봉의 전모이다. 혼자 보기 아까와 신발을 갈아신으며 "형님 이리 올라와 보세요 끝내줘요" 창조 형에게 호들갑이다. 말 없이 올라 와 보시더니 역시 감탄하시다가 무섭다고 슬그머니 저 쪽 하강 테라스로 넘어가신다. 6시 하강지점 도착. 이 곳 역시 두 번의 하강이 기다리고 있다. 일행을 뒤를 따라 20여m 정도 하강하니 마지막 하강터엔 창조형 외에 벌써 아무도 없다. 저 밑에는 등산객들이 몇 보이는데 "저 사람들 뭐하러 여기까지 왔나?" 한심한 생각 이 든다. 그 말에 형님이 "우린 뭐 다를 거 있어?". 낄낄거리다 웃음의 여운을 동반한 형님이 내려가신 후, 그 뒤를 따라 20여m 정 도 하강한다. 마지막 하강터인 좁은 테라스에는 표면이 다소 푸석하게 보이는 바위에 2개의 하강볼트가 설치되어 있고 두 개의 가느다란 하강 고리가 슬링으로 이퀄라이징 되어 있다. 이 마지막 하강구간은 천화대 전 구간을 통해 두 동의 자일이 필요한 유일한 벽으로, 90도 정도의 경사에 가끔 오버행기를 이루고 있다. 비좁은 테라스에 다섯명이 옹색하게 모여 신 중하게 작업을 한다. 하강고리를 통과한 자일에 회수한 자일의 끝을 8자 매듭으로 이어 사 려 각 각 한동씩을 회장님과 내가 힘껏 낙자. 한 명 두명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저 아래 하 강을 마친 정복이 형은 벌써 배낭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지옥에서 천당으로 빠져나 온 기분이겠지. 그 안전한 평평함으로 향하기 위한 마지막 작업을 한다. "조심해" 하고 밑으 로 사라지신 창조 형의 노파심에 부응하듯 습관처럼이 아니라 일종의 성스런 의식처럼 신중 하게 줄을 끼우고 체중을 싣는다. 천국의 평탄함이 서서히 올라오고 드디어 등반 끝. 성취감 보다 진한 산정을 악수로 대신한다. 누군가 "오늘 이 등반은 참석하지 않은 다른 회원들의 것이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즐거움이 이렇게 각별하진 않았을 것이다. 장비를 챙겨 배낭에 꾸겨넣고, 출발한 시각이 6시 30분이다.
하산: 비선산장
설악좌골 합류지점까지 꽤 지겨운 급사면이다. 길은 조금 주의를 기울이면 찾기가 수월할만큼 잘 나 있다. 설악 우골 합수점까지는 한 30여분 정도 걸리나? 중간에 손 한번 씻고, 날 밝을 때 잠자리까지 하산해 보자는 소박한 꿈을 안고 계속 내려간다. 천불동이 얼 마 안 남았는데 앞서 가던 재하에게 쉬고있던 등산객이 말을 건넨다. 행색을 보니 일반 등 산객인 듯 한데 웬 아줌마가 퍼져 있고 웬 아저씨가 난감하게 서 있다. 난감한 아저씨 말씀 이 아줌마가 발병이 났는데 모시고 가야 하니 배낭을 좀 매어 달라는 부탁이다. 근데 좀 당 당한 어투다. 기분이 좀 상한 재하가 아저씨 배낭을 슬쩍 들어보더니 "아이쿠 이거 장난이 아니네" 내가 들어보니 검은 색의 배낭은 등치는 쪼그만 게 묵직하다. 재하더러 재하배낭을 달라니까 "형 배낭을 저 주시죠" 한다. 그래 내 배낭을 재하에게 주어 포개어 지게 하고 그 밉살머리 나는 시커먼 쌕을 메어보니 덜렁이는 게 영 불편하다. 끈 조정을 대충 하고 먼저 가서 비선산장에 맡기겠다고 했더니 이 아저씨 미안하셨던지 자기 팀이 설악골 초입에서 기 다리기로 했단다. 천불동이 코 앞에 올 때까지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다보니 우리 일행이 기 다리고 있다. 합류하여 설악골 초입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물어봐도 배낭의 임자 일행은 종 무소식이다. -그럼 그렇지 그 양반들 비선산장까지 갔을 꺼야- 드디어 8시 정각이 되어 비 선산장에 도착. 이번 산행은 운도 좋게 우리의 소원을 여러개 풀어준다. 하나 입장료 주차비 안내는 거, 둘 천화대 전 구간 종주, 셋 날 밝은 때 내려오는 거. 흐음 괜챦네. 이제 한가지 는 내일 귀가길에 부르조아 흉내내는 생선회 포식만 남았다. 아래층 상인들에게 배낭을 맡 겨두고 산장에 올라가니 적벽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전한다.
배낭을 부려두고 일동이 1층 상가 테라스에 둘러앉아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시킨다. 갑자기 가게 아저씨가 나를 가리키며 "저 아저씨예요"한다. 나는 내가 간첩 수배라도 내렸 나? 하는 기분으로 심드렁하게 바라다보니 아까 그 시커먼 배낭 맡긴 아저씨 일행인가보다. 한 키 큰 아저씨가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고맙다고 한다. "아 뭘요" 내심 처음에 나빴 던 기분이 부끄러워 마음쓰지 마시라고 하니까, 그 아저씨 굳이 맥주를 한캔씩 앵긴다. "어 디를 갔다 오셨나요?" "천화대요" "아 우리도 천화대를 하려다가 아줌마가 탈이 나서 그만". 기분이 또 잡치려 한다. 천화대 팀이 대책없이 그런 아줌마를 모시고 나서?!
한잔씩을 기분좋게 마시고 재하의 전화카드로 집에 안부전화를 하던 회장님이 심각 하게 "형 집으로 전화해 보세요"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까 오늘 적벽의 사고가 TV 저녁 뉴스에 나와서 온통 마눌걱정이 대전에서 천화대까지 늘어졌다는 소식이다. 집에 전화를 하 니 마눌은 안 계시고 슬비가 받는다. "아빠야?" "음 그래 아빠 잘 내려왔다고 전해라" 찰칵. 임무를 마치고 저녁하러 올라간다. 나중 안 일이지만 사고자 이름이 이순용이라고 발표가 되어서 내가 아니냐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바위에서의 일.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평평한 흙 위의 일도 그 누구도 모른다. 누가 있어 그 섭리를 알리오. 우리는 그저 한바탕의 꿈 속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경건하고 간절하게, 후회없이 살아갈 뿐이다. -그래도 바위는 무섭지? 아마?- 그 두려움이 우리를 키운다. 두렵지 않다면 무슨 재미로 두려움에 도전하리오. 자신에 솔직해진다면 우리가 거부해야 할 그 무엇도 없다.
저녁을 짓는 동안, 재하가 어데가서 홀랑 벗고 씻어야겠다고 한다. 씻을 데는 많으 니 밥먹고 가자고 했는데 재하가 사라졌다. 재하를 기다리다 나머지 일행끼리 저녁을 마치 고, 창조 형과 정복이 형이 씻으러 나간다. 저녁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볼 일을 마친 정복이 형이 재하가 자고 있다고 하신다. 가 보니 재하는 한밤중이다. 깨워 밥을 멕이려다 말고 저 게 보약이려니 하고 냅두고, 저녁자리를 대충 치우기 시작한다. 씻고는 싶은데 꼼지락거리기 가 싫다. 창조 형이 오셔서 소주한병을 비우자 하시어 회장님과 셋이서 산장건물 지붕에 올 라가보니 침낭속에 구겨진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딩굴고 있다. -참 좋을 때다- 비선대 앞에 장군봉과 적벽의 어두운 벽과 천불동의 물소리. 저녁 참에 먹은 술기운이 삼삼하다. 내려와 잠든 시각은 지금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1999년 7월 22일 보고자 이 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