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7.6.5,4코스 어제 밤 늦게 도착하여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그 사이 물이 많이 빠져 나갔다. 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지만 더 누워있어도 달아난 잠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 바닷바람이 아주 상쾌하다. 물이 빠져나간 해안에 나가서 솔섬에 다녀오다. 손바닥만 하다. 소나무 예닐곱그루가 해풍에 시달리며 세월을 견디어 내고 있고, 그 아래 아주 작은 소나무 수십그루를 인공조림하여 다음 세대를 대비하고 있다. 여기 해양수련원은 전북도 교육청에서 직영하는데, 고운 모래의 해수욕장과 물이 빠지면 연결되는 솔섬, 좌우에 암석이 돌출된 해안 길등 자연조건을 구비하고 있고, 잔디구장, 세미나실, 대강당, 육상풀장과 사워장등의 부대시설과 가로수 조경수 정원들이 잘 정비되어 있어, 제주중문에서 볼 수 있는 휴양시설 못지않게 두루 갖추고 있는 학생수련원이다. 주중에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주말에는 제한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하는데 그 호사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정원의 잔디밭을 걷는데 소쩍새가 아침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침식사를 곰소에서 하고 인근의 명승을 답사하였다. 선계폭포, 비가 올 때만 물이 떨어지는 간헐폭도다. 암벽은 수십미터 되어 보이는데 물이 말라서 나그네 목을 축이기도 힘들 정도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숲길은 연중에 가장 화사한 빛깔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오월은 역시 계절의 여왕이다. 연녹색의 풀잎은 무성하고, 야생화의 방향이 가득하다. 찔레와 떼죽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잎을 드리우고 있다. 우동저수지를 돌아서 작은 암자 지나 다시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숨이 턱에 차오를 듯 가파른 시누대 숲을 헤치고 올라가니 거대한 동굴 나온다. 굴 바위, 거대한 암석사이에 형성된 천연동굴이다. 동굴에 제단이 차려져 있고,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 있다. 타다 남은 초가 세 개있고 소주한병과 어린이용 군것질 거리 말랑카우, 흑사탕이 제단에 제물로 올려져 있다. 제물을 보고 코믹함이 느껴진다. 전통의 지성소에 웬 국적불명의 과자가 놓여있단 말인가? 오래전 우리의 선조들은 거대한 대자연 앞에 거역할 수 없는 경외심을 느꼈을 것이다. 절로 숭배하게 되고, 소원을 빌고 치성을 드리면서 그 어떤 절대적인 힘을 기리게 된다. 우리 또한 그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고 말았다. 동굴 안은 널찍하여 90명이 넘는 우리 회원들이 다 들어와도 공간이 넉넉하다. 그때 회원들로부터 노래 신청이 들어왔다. 외경심에 머뭇거려졌지만 단에 올라서 목소리를 다스려 가며 “청산에 살리라”와 앙콜 곡 “그리움 마음”을 불렀다. 마치 하늘과 접신을 하는 무당마냥 거대한 자연에게 우리들의 경건함과 정결함을 전하는 숭엄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어떤 울림통이 이렇게 맑고 고울 수 있을 것인가? 신선생님! 그리고 여러 도반님들! 감사드립니다. 그런 신성한 자리의 제단에 오를 수 있었던 영광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우반동 반계서당에 올라 유형원 선생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시 곰소항으로 돌아와 부안 마실길을 걷기 시작했다. 곰소항은 곰같은 섬에 소가 있었다고 해서 곰소항이 되었다는데 유래가 썩 멋지지 못하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젓갈시장이다. 시장에 이르니 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시장과 선착장을 거쳐서 방파제를 지나서 염전지대와 개벌 제방을 따라서 산기슭에 이른다. 해안가 산기슭을 돌아가며 오솔길을 따라간다. 나무가 울창하여 햇빛이 두렵지 않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숲길이다.
울창한 시누대 숲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 나오고, 산허리를 돌아서서 갯가에 이르고 제방을 따라가면 다시 산길에 이른다. 오전에 6키로를 걸어서 미동방조제에서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을 하였다.
오후 한시에 미동방조제에서 일정을 시작하였다. 산길에 바로 접어들어 성인 허리 높이 정도로 파여진 호를 따라간다. 군대 용어로 교통호라 한다. 부안마실길의 특징은 오래전에 이 근방 해안방어와 경계근무를 하던 병사들이 만들었고, 사용하였던 야간 초소진입과 철수를 하던 순찰로와 부대와 부대를 연결하던 작전도로를 연결하여 만든 길이다. 교통호를 따라 녹슬은 철조망이 깔려있고, 좌우 조망이 양호한 위치에는 어김없이 분대 규모 이상의 부대가 주둔하였을 지하벙커가 있다.
물론 지금은 사용한지가 오래되어 잡초가 수북하고, 사람의 흔적이 스쳐 지나간 지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80년대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지금은 환갑이 지났을 우리 친구들, 아우들이 젊은 시절 국방의무를 다하던 현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간첩 침투 방어해안 초소인데, 그 당시 병사들이 피와 땀을 흘렸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경계초소는 조망이 양호하기도 해야 하지만, 사람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취약지역에 지을 수 밖에 없다. 간첩은 쉬운 곳을 택해서는 절대로 침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출부나 험한 바위위에 초소를 짓고 진입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병사들의 노고가 오늘의 부안 마실길을 명품길로 만든 것이다. 이틀 내내 부안 해안의 눈이 부실 정도의 비경을 따라 걸었다. 최근에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들이 걷는 길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 홍보에 열중하고 있는데 부안 마실길의 특징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길을 연결 연결하여 명품길을 만든 것이다. 가는 곳 마다 오래전 이 길을 오가던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길이다.
우리는 부안마실길 7코스를 거꾸로 가고 있다. 오전에 곰소항에서 왕포까지 걸었고, 왕포에서 6코스 왕포에서 산등성이 초소길을 돌아가니 마동방조제에 이르고 마동 방조제에서 산길을 따라도니 갯벌체험장에 이른다, 기철호 기사님이 조립식테이블을 펴놓고 우리 회원들을 기다리신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수박을 대형과도로 솜씨 있게 좍좍 갈라서 한쪽 씩 나누어주신다. 등에 땀은 흥근하게 젖었고, 갈증에 목이 타는데 얼마나 고마웠던 손길이었든지. 고맙습니다, 기철호 기사님! 당신의 넉넉한 배려는 우리땅 걷기의 자랑입니다. 수박뿐만아니라 다른 길목에서는 냉맥주와 얼음물을 준비하여 지친 여정을 달래 주셨다. 이틀 동안 기철호 기사님의 배려는 우리 기행에 청량제였고, 오아시스였다.
갯벌 체험장을 지나 작동마을에 들어섰다. 풍랑이나 태풍의 피해가 거의 없는 내해의 평화로운 바닷가 언덕에는 뽕나무와 감나무 석류나무 들이 열매를 만들어 가며 제철을 기다리고 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 한분이 뽕나무 한그루를 내어주며 오디를 맛보라 한다. 잘 익은 오디는 색깔이 검붉다. 오디를 따먹으며 서로의 입술이 검붉어 지는 것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5코스 모항 해수욕장을 지나간다. 모항은 경치가 뛰어나 오래전부터 리조트 시설이나 해양연수원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아주 번창한 항구 마을이다. 모항을 지나서 바닷가 산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와 거꾸로 걷는 일행 중에 낮 익은 얼굴들을 만나서 깜짝 반가워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명구, 용주, 봉철이. 성진이 서울 사는 친구들이 멀리서 부부동반하여 마실을 왔다. 그 중에는 일주일 전에 본 얼굴도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조우하니 새롭다. 변산 마실길이 전국에 소문이 나서 이렇게 길 걷는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후 다섯 시 쯤 우리가 묵고 있는 전북학생 해양수련원 앞 솔섬을 지나간다.
솔섬을 지나서 상록해수욕장이 나온다. 변산일대는 전북지방에서 명승지로 이름이 높아 전에 한두번은 다녀간 기억이 있지만 이렇게 걸어서 가니 전혀 새롭고 낯설게도 느껴진다. 오감을 즐기며 가는 여행 중에 도보여행보다 나은 것은 없다. 밀물시간이라 바람 솔솔불어 바람에 땀을 식혀가며 가는 산길, 찔레꽃, 해당화, 깨죽나무 꽃들이 흐르러지게 피어있고, 바람에 한껏 들꽃들의 향기가 북욱한다. 거대한 규모의 농협생명 연수원이 상록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데 덩치만 크고 구성이 없어 보인다. 상록 해수욕장에서 궁항으로 가는 언덕을 넘어가는데 벌써 여섯시가 지났다. 허기지고, 피로감이 밀려온다. 궁항에서 앞서가는 도반들을 불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제목이 붕어빵 호떡등이어서 허기진 시간에 약간의 허기짐을 달랠 수 있었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니 격포로 갈려면 제법 가파른 산길을 넘어야 한다는데 , 앞으로 한 시간 가까이 걷는 길이 오늘 하루의 마감인 데 녹녹하지는 않겠다. 가파른 임도를 올라서니 후미진 해안가에 전라 좌수영세트 장이 있다. 칠팔년전 불멸 이순신을 촬영했던 세트장이다. 그사이 시설물들이 많이 낡아져, 파수 보는 망루가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드디어 격포가 내려다 보이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격포항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서니 하루의 피로가 확 풀린다. 오후에만 20킬로를 넘게 걸었다.
요즈음 아이들의 표현대로 빡센 일정이었다. 부안 마실길 7코스에서 시작하여 6코스, 5코스, 4코스의 격포항까지 걸어온 것이다.
둘째 날 3,2,1 코스 잠을 설쳤다. 어제의 강행군에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바닷가의 밤바람이 너무 좋아 숙소에 들 수가 없었다. 숙소 앞에서 펼쳐진 광어회 파티도 좋았지만, 그 후에 바닷가로 내려가 해안가 몽돌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이완감이야 무엇에 비할 것인가! 별이 보이지 않아도 좋았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득히 오래전의 시원으로 다시 돌아간 포근함이었다. 어제는 쾌청했지만 오늘은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하여, 인근의 수퍼에 가서 일회용 우의를 사서넣고 일정을 시작하다. 어제 걸었던 격포항에서 오늘 일정이 다시 시작된다. 부두를 따라 돌아서 어판장을 지나니 이제야 격포항의 익숙한 모습들이다, 어제 내려섰던 격포항은 전혀 생소한 낯선땅의 항구였다. 방파제 의 우측으로 채석강이 전개된다. 중생대 백악기 지형이다. 일억 삼천만년 동안 풍우와 파도에 침식되어 수백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퇴적층이 기암절벽을 형성하였다. 언제 보아도 절경이다.
채석강을 돌아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대명콘도를 뒤로하고 언덕길에 오르니 후박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돌출부 정상엔 용왕님께 제사를 올리는 수성당이 있다. 제를 올리는 제각이 있고, 제단에는 촛불이 살아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사라져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토속신앙의 성소이다.
다시 해안으로 내려서 적벽강을 지난다. 적벽은 화순에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지명을 따다썼다. 욱일승천하던 조조의 백만대군이 오나라의 명장 주유에게 씻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한 곳이 적벽이다. 이름만 요란하였지 별 보잘 것이 없었다. 적벽을 지날 쯤 비가 뿌리기 시작하여 우의를 뒤집어썼는데 후덥지근하기도 하거니와 비도 오는 듯 마는 듯 하였다. 우의를 배낭에 다시 접어 넣으면서 다시 끄집어 내지 않을 것을 다짐하다. 성천항 .3킬로 변산까지는 10킬로가 남았다.
오전 일정이 만만치 않다. 하섬전망대에 오르니 이번에는 기철호 기사님의 냉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간단히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찻길을 따라 좀 걷다가 다시 해안 오솔길로 내려섰다.
아! 뉘신가? 저 마삭줄로 뒤덮힌 오솔길 터널을 양손을 힘차게 저으며 걸어가는 이는 아이들 걱정 다 잊어버리고, 미욱하고 고집스러운 남편, 시댁식구 들에 대한 미움도 삭이고 바람에 머릿결 씻기어 가며 들꽃향기에 취하여 걷는다. 지난 날 보다 오늘 이순간이 중요하고 내일은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기에 오늘 이 길을 같이 걷는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이 즐거움을, 이 만족감을 누가 엿보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사포 해수욕장에 내려섰다. 해수욕장의 길이가 1.5킬로 정도로 길고 방풍림이 잘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송림 길을 걷는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오전 열한시 반이다. 세시간 반 15킬로 가까이 걸었다. 시장끼가 돈다. 마침 고사포 해수욕장 끝에 우리차가 보여서 무엇이라도 얻어 먹을까하고 기철호 기사님의 눈치를 보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듯 맹하다. 첫째는 내가 너무 뻔뻔한 것이고, 둘째는 기철호 기사님이 우리들 버릇을 잘못 들인 것이다. 마침 해수욕장 길 끝에 가게가 있어 아이스크림 통을 열어놓고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시장기는 면하지 못하였지만, 간에 기별은 보낸 것이다. 다시 산길을 오른다. 해변가에는 해당화가 피어 있고, 초소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다. 사십여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전 연평도 해안방어 시절의 풍경과 마찬가지다. 지금 그 옛 초소에는 거미줄이 쳐있고 잡초가 우거져 있다.
저 서쪽 해안으로 난 창에는 그 시절 젊은 병사들의 애환과 그리움이 그려진다. 무작스런 선임병들의 괴롭힘도 여기 초소에 오면 멀어지고 고향의 어머니 생각과 짝사랑하던 이웃 동네 처녀에 대한 간절함이 더 깊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처절한 외로움과 되새김의 시간을 저바다를 보며 견디어 냈을 것이다.
그 산길을 돌아서니 오늘 오전의 종착점인 변산해수욕장이 전개된다. 옛날에는 부안의 변산해수욕장과 격포의 채석강을 보면 변산을 다 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명승이 많이 개발되었다. 모항의 리조트 시설, 궁항의 요트경기장, 상록해수욕장, 고사포 해수욕장 그리고 내변산의 아름다운 숲길 등 해수욕장 입구 까지 갔어도 우리가 쉴 곳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전복죽을 먹었던 동그라미 식당까지는 1킬로를 더 걸어야했다. 어제 오후와 오늘 오전에 각각 다섯 시간이 넘도록 걸어 총 사십 킬로를 걸었는데 아주 빡센 일정이었다. 점심을 먹고 3킬로를 더 걸어 새만금 홍보관까지 가는 길이 부안 마실길의 1코스인데 우리 일정으로는 하나마나하게 생각했는데 웬걸 보너스로 아주 훌륭한 길이었다.
때죽나무 낙화가 발등에 덮힐 정도로 수북히 쌓인 낙화길과 사누대 가 터널을 이룬 시누대길과 양귀비꽃의 붉은 색과 마거리트 하얀색이 어우러진 꽃길과 양탄자처럼 푹신하게 자란 클로버 길을 걸어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계절의 여왕 오월에 걸었던 변산 마실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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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2년 전 이맘때 회사에서 대명콘도에 묵으면서 3코스를 걸어 보았습니다.
수성당 해안절벽, 하섬의 모세의 기적...우측으론 외변산, 좌측으론 서해바다...
고요,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