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서의 돌 때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족 사진. 영화 '더 하우스 오브 서'는 우리에게 '아메리칸 드림' 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 하우스 오브 서 캡쳐]
'더 하우스 오브 서' 의 심경미 감독
시카고 출신의 영화감독 심경미(28·미국명 아이리스 심)씨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시카고 한인 이민가족의 비극적 종말을 그린 다큐멘타리 영화 ‘더 하우스 오브 서(The House of Suh)’로 지난해 권위 있는 다큐멘타리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영화 ‘더 하우스 오브 서’는 지난 1993년 시카고에서 큰 이슈가 됐던, 누나의 사주를 받은 동생이 누나의 약혼자를 살해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당시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현지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앤드류 서(37·한국명 서승모)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앤드류 서는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한 친모 살해 사건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누나 캐서린 서의 백인 약혼자 오두베인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1995년 징역 100년형(이후 80년형으로 감형)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일리노이주 폰티악 교소도에 복역 중이다.
2세 때 이민 온 앤드류 서는 11세 때 아버지를 잃고 2년 뒤에는 세탁소를 운영하던 어머니마저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고교 학생회장, 대학 전액 장학생 입학으로 슬픈 가정사를 이겨내던 서 씨는 1993년 누나로부터 “어머니를 죽인 건 생명보험금을 노린 건 약혼자 로버트 오두베인”이라는 말을 듣고 권총으로 그를 살해했다.
‘더 하우스 오브 서’는 지난해 10월 필라델피아 아시안 필름 페스티발 최우수 다큐, 샌디에이고 아시안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12월에는 햄튼 영화제에서 심층탐사보도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이민가정과 현지사회에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영화는 2005년부터 제작, 2010년 완성했으며 상영시간은 총 90분으로 앤드류 서가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직접 맡았다.
지난 9일 일리노이대학 시카고 캠퍼스(UIC) 학생회관에서 열린 ‘더 하우스 오브 서’ 시사회에서 아이리스 심 감독을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당찬 모습으로 3년만에 영화에 대해 다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그동안 시카고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얼굴에 자신감이 드러나 보였다.
심 감독은 “살인사건이라는 사건 자체만 보는 시각에서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 숨겨진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명했다. 생업에만 전념하며 가족과 단절된 이민생활을 하는 부모세대 그리고 알 수 없는 편견과 보이지 않는 차별에 처한 2세대의 갈등을 그린 타큐멘타리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2가지 측면으로 압축된다. 이민 1세대와 2세 자녀들 간의 언어소통과 문화적 갈등으로 이는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이민가족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또 다른 측면은 이민자들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 심 감독은 3년 전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밝히며 “앤드류 서의 어머니가 세탁소에서 살해당했을 때는 단지 에반스톤 지역경찰에 의해 사건이 조사됐다. 그러나 누나의 약혼자 오두베인이 살해됐을 때는 연방수사국(FBI)이 사건을 맡았다. 또 어머니, 동양여성의 살인사건은 지역 뉴스에 불과한 반면 백인이 동양인에 의해 살해된 사건은 지역 뉴스가 아닌 내셔널 와이드 뉴스가 됐다. 만약 오두베인이 백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반문했다.
심 감독과 앤드류의 인연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 감독은 당시 시카고 순교자성당에서 학생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우연히 어머니가 앤드류에게 쓴 편지를 보고 앤드류에 대해 알게 됐다.
앤드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긴 편지를 한인사회에 전달하며 한인 청소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 편지 중의 하나를 심 감독이 받아봤다. 앤드류와 서신 왕래를 하던 친구가 앤드류를 만나고 싶어했고 2001년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일리노이주 폰티악 교도소에 수감된 앤드류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심 감독은 19살이었고 그때부터 앤드류와 심 감독은 서신 왕래를 하며 친구가 됐다.
심 감독은 UIC에서 심리학은 전공한 뒤 2004년 LA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영화프로덕션에서 일할 때 앤드류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사람을 찾고 있었고 심 감독에게 제작을 맡겼다.
심 감독은 2005년 12월 25일 시카고로 돌아왔다. 2006년 초부터 본격적인 다큐멘타리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0년 완성됐다.
심 감독은 “영화제작에 가장 큰 어려움은 제작비 충당이었다”며 제작이 오래 걸린 이유를 설명한 뒤 “조셉 리(조연출), 제리 김(연출)을 비롯해 그동안 25명 가량의 스텝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제작 기간 5년 동안 다큐멘타리 영화 ‘더 하우스 오브 서’에는 앤드류의 나레이션을 중심으로 오두베인 가족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사건의 담당판사 모리시 잔을 비롯해 그 가족, 앤드류의 친구 및 친척, 대부였던 이긍구씨 부부, 앤드류의 변호를 맡았던 저스틴 슈왈트, 라리사아 하울리, 케롤 호건 변호사 등 20여명의 사건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살인 사건이 재조명됐다.
3년 전 심 감독은 “영어에 ‘ambiguous(모호한, 중의적인)’라는 단어가 있다. 오두베인 가족이 보는 앤드류에 대한 시각과 앤드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앤드류에 대한 시각은 틀리다.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며 양측 가족과 주변 인물에 대한 인터뷰 후 느낌을 밝히기도 했다.
심 감독은 여성이라는 특유의 시각으로 영화를 통해 현재 미국 이민자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리고 싶어했다.
유명해졌다는 지적에 그는 “이 영화와 사건을 통해 내가 유명해지려는 의도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며 “또 이 영화를 이용해 감형 등의 법적인 도움을 주려는 의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 감독은 “많은 한인들이 이민생활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를 보고 세대간의 벽을 허물며 나와 가족의 올바른 관계를 다시 한 번 정립해 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심 감독은 “막바지 편집을 하고 있다. 2~3개월이 지나면 DVD로 출시 될 것”이라며 “앤드류와는 한 달에 한번 통화한다. 지난 6일 만났다. 4월 혹은 5월쯤 케이블 방송 msnbc에서 1시간짜리 영화로 상영될 것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앤드류도 그 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심 감독은 현재 뉴욕 콜럼비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다. 아버지 심희섭, 어머니 심 안젤라 씨 부부사이의 1남 1녀 중 막내다. 최근 교통사고를 당한 문화회관 심지로 수석부회장이 심 감독의 둘째 큰아버지다.
그는 차기 다큐멘타리 영화로 탈북 난민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을 제작 중이다. 역시 제작비 마련이 가장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앤드류 서는 지난 2006년 초, 초등학교에 시절에 만난 이 모씨와 옥중 결혼을 한 뒤 곧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