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고래
정신줄을 놓았던 연말을 보내고 나니 미뤄두었던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에 개봉하였던 영화였기 때문에 내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양 이틀을 영화관에서 보내기로 마음먹고 티켓팅을 했다.
그렇게 해서 본 영화는 「용의자」 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였다. 전혀 다른 장르(「용의자」는 액션이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드라마 장르이다.)의 영화를 보고난 후, 나는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주인공이 ‘아버지’였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이기 때문에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죽은 딸의 복수를 하고자 하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과 똑같이 자라길 바라는 것은 다른 방식이지만 그것이 그들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이 넘치고 넘쳐 복수를 위해 누군가를 해치려 하고,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라길 바라 한없이 욕심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 마음으로 지키고 싶은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 것 같았다. 그들의 그런 마음은 누군가에게 약점이 되지 않게 감추었으면 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만 완곡하게 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영화 보는 내내 갖고 있었다. 내 바람대로 되기도 안 되기도 하였지만 나는 어째서 그랬을까?
‘아버지’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앞으로도 아버지가 될 일이 없어 평생가도 알지 못하겠지만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건 ‘무겁다’라는 것. 그 ‘무거움’은 책임이라는 말로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을 꾸리고, 돌보고 하는 일 등등 모든 부모가 함께 짊어지는 것이겠지만 그에 대한 무게는 조금 더 하지 않을까라고 감히 이야기해본다. 그런 무게를 지고 있으면 어느 때라도 강해야 할 것 같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늘 그런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픈 마음이 든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라 그 애씀의 정도도 알 길이 없어 서글픈 마음마저 든다. 이렇게 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다른 ‘아버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에게는 어떤 마음을 느낄까...?
우리 ‘아버지’는 천성이 유한 사람으로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사람이다. 그 착함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드센 모습을 갖게 되었다. 반대로 사는 것에 대해 부대끼는 상황이 오면 내가 이렇게 살고자 마음먹었던 이유를 원망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반대로 살기로 선택한 것은 나였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애증의 대상이 되어 원망하였던 것을 내려놓고 나니 그냥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약한 부분을 감추려고 애썼던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하여 더 이해하게 되었고, 못마땅했었던 부분까지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보다 큰 사람이기 보다는 이 세상을 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달리 보고 나니 내 입장만이 아닌 ‘아버지’의 입장도 보이기 시작해서 내가 도와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다. 혼자 짊어지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나누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자식으로써 도와주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간섭이 되지 않게 적절하게 조율해가면서 이것저것 관여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스킨십으로 애정을 표현했다면 이제는 마음으로, 생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애써준 ‘아버지’와 고마움의 의미로 짠~ 한 번 해야겠다. 이런 게 자식 키운 맛이겠지? ㅋㅋ 더욱 성장해서 그 맛을 더 맛보게 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소원이자 효도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