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7장 강해 (행27:1-8)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이느냐에 生死禍福이 결정된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불행이 있다면 그게 뭘까?....
저는 아마 불신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믿을 사람이 잘 없습니다.
교회도 못 믿고, 목사도 못 믿고, 신앙인도 못 믿는 사회 아닙니까?
남편은 아내를 못 믿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못 믿고, 자식은 부모를 못 믿고
부모 또한 자식을 못 믿는게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것만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왜 이런 불신이 팽배한 불행한 사회가 된 걸까?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 원인은 말에 있습니다.
불신의 가장 근원은 사람의 말을 못 믿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사람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것만큼 불신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표현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불신의 끝판왕 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김목사의 말을 못 믿는다....그러면 이 김목사는 목사로서의 생명은 끝이라고 보면 됩니다.
김목사의 말을 못믿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대언하는 설교를 어떻게 믿고 받아들이겠습니까?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랑...진실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꽹과리와 다를바 없다......소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을 못믿는다는 것은 불신이고 그것은 불행입니다.
그런데, 이 불신보다 더 큰 문제가 뭐냐?
옳은 말인데, 말씀은 맞는데 따르지 않는게 더 큰 문제라는데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안따르는건 이해가 되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인데 그 말을 안따른다....이건 더 심각한 문제요. 더 큰 불행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불신이 팽배해 있다 보니. 옳은 말인데도 안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 옳은 말을 해도 안따릅니다. 이건 최악의 불행입니다.
언젠가 제가 믿음은 순종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안가는데 불순종하는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가는데 순종하지 않는건 불행 중에 불행이요, 재앙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말을 불신하는 것 중에 하나의 이유는
전문가가 아니면 우리는 그 말을 잘 안 믿습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는 말이요, 옳은 말이라 믿습니다.
혹은 그가 높은 지위에 있는 권위자 혹은 학문이 높은 학자의 말이라면 믿어도
자기보다 학문이나 학벌, 그리고 지위가 낮은 사람,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이라면 잘 안 믿습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니가 뭘 알아...라고 얕봅니다.
우리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석.박사의 타이틀을 따면 다 그 사람의 말을 옳다고 여기는 습관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 말은 들으려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 중에는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심합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의사죠.
우리는 의사의 말이라면 100% 그 사람들의 말이 옳다라고 생각하고 따릅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에 안따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따릅니다.
옳지 않다고 고개를 갸웃 거리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설사 그런 의심이 들어도 따릅니다.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사들도 실수합니다. 오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희 장인어른도 의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 처남도 의사지만 초기 조치를 못한 그 의사를 원망합니다.
처남도 의사인데도 담당의사에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이건 아닌데라고 해도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안 따르면 진료와 치료를 거부합니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오히려 그런 전문가의 말이 잘못되면 위험성은 더 큽니다. 더 큰 불행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할 때, 항상 여러분들이 그 설교를 들으면서 무조건 믿습니다. 아멘하지말고, 그런가 아닌가를 곰곰이 묵상하고, 연구하고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목사의 설교가 옳지 않다라고 정확하게 판단되면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목사니까, 목사의 설교가 무조건 옳을 것이다라고 아멘하고 따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의 힘이라는 것은 대단합니다.
말에 따라 불신할 수도 있고, 맹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하면 신뢰가 무너지고, 맹신하면 반인륜적, 반윤리적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사이비가 그 좋은 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건전한 비판과 보편적 상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사도행전27장 본문은 오늘 우리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사건이 실려있는 본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이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어가는 장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갈려면 배편을 이용해서 지중해를 건너는 방법이 그 당시에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항해를 하다가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광풍이라는 말대로 이 유라굴라라는 풍랑은 겨울 지중해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무서운 폭풍요, 풍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풍랑이 일자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과동 즉 겨울을 지나고 항해하자고 선장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원들은 이 사도바울의 말을 묵살해 버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들은 전문가고 사도바울은 바다에 대해서, 또 항해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바울의 말은 묵살되었고, 항해의 전문가인 선장과 선원들의 말에 따라 항해를 강행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배는 결국 파손되고
모든 짐은 다 바다에 잃어버렸습니다.
겨우 목숨만 건져 어느 작은 섬에 안착한 사건이 기록된 곳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지를 배우고 교훈받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전문가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지식은 지혜보다 아래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도 지혜보다는 못합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지식으로 앞설 수 있겠습니까?
가끔 목사가 성도들에게 조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모르는 목사님이 뭘 안다고 저러시나...라고 목사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목사님께서 기도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저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목사가 다 옳다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가 때로는 여러분들보다 전문지식이 없다고 할찌라도
어떤 말씀으로 조언이나 충고를 드릴 때, 내가 어떤 자세로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평생 책만 봐온 사도바울이 바다에 대해서 항해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을 전할 때, 그 말을 신중하게 받아 들였다면
그 배가 파선하거나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는 불행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으며,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항상 귀 기울려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그런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매주 설교를 듣습니다.
수시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주목하지 하지 않는다면, 소귀에 경 읽기가 되고 맙니다.
항상 하나님 말씀에 민감하게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 우리 두란노교회의 축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