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장은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해석을 두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셨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는데, 이것이 장로들의 전통을 어긴 것이라고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됩니다. 중심 내용만 살펴보겠습니다. 18~23절입니다.
1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9 밖에서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하셨다.
2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 15장에도 말의 순서와 표현상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거의 같은 내용으로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오늘날의 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 문제가 있습니다. ‘손을 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몸의 정결보다 마음의 정결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마치 손을 씻는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상식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는 세균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시대였기에 위생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예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시는 이야기입니다. 24~30절을 보겠습니다.
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으나,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수로보니게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시기를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8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아이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하였다.
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이 본문이 갖는 중요성은,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인은 그리스인이고 수로보니게 출생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수로보니게’라는 말은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합성한 단어로 갈릴리 북쪽 두로와 시돈이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이방여인의 요청을 예수님은 처음에는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아이들이 먹을 빵을 개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고, 개는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인은 이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들도 아이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논리로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요청을 들어주어 딸아이에게 든 귀신을 쫓아내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도 마태복음 15장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본문을 가져오면서 문장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4절을 보겠습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하셨다.
이 문장은 마가복음에는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마가와 누가는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마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마태로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좀 더 강력한 표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적자입니다. 그러나 새 시대가 되었으니 이방인도 서자로 받아들이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사랑을 우리도 인정해야 됩니다.’ 라는 의미가 이 추가된 문장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7장의 마지막 본문에는, 예수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을 때 일어난 일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데가볼리’라는 말은 열을 뜻하는 데카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주로 사는 10개의 도시가 있는 요단강 동쪽 지역입니다. 거기서 예수께서 여러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개들도 아이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과 고백을 계기로 복음이 이렇게 이방세계로 활짝 열렸음을 나타내는 본문이 되겠습니다.
이 본문 역시 마태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는 데가볼리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내용은 빼고,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많은 장애인들을 고쳐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선교의 길이 트이자마자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듬뿍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배 아파할까 염려해서 그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