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구정 설, 뉴스에서는 설연휴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카페에서 공부하는‘카공족’의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정부가 올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을 9.8%지만 이것을 허수일 뿐, 취업 포기자와 임시직 등을 포함하면 실제는 34%에 이릅니다. 청년 셋 중 하나는 백수입니다. 청년은 실업자 아니면 신용불량자란 뜻의 ‘청년실신’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연애·결혼·출산의 ‘3포’도 모자라 이제는 내 집, 인관관계, 꿈과 희망 등을 포기한 ‘N포 세대’로 진화한지 오래입니다.
많은 20대들 앞에 길이 닫히고 있습니다. '헬조선'은 분명 청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의 이익만 챙기는 기업, 지속가능성이 낮은 청년 정책으로 젊은이를 희망고문 하는 정부 등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이런 암흑의 시기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의 저자 파커 파머는 "등 뒤에서 길이 닫힐 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오래 전부터 사회적 암흑기에 되레 '삶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취직을 할 수 없었던 ‘고학력 백수’ 조지프 캠벨은 오두막으로 들어가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들이 팠고, 그 5년의 시간이 그가 세계적인 신화학자로 거듭난 계기가 되었습니다.
35세까지 증권회사 직원이었던 폴 고갱은 프랑스의 주식시장 붕괴되고 고용이 불안해지자 가끔씩 취미로만 즐겼던 그림을 종일 그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전업 화가가 되었습니다. 아니 일하나 갖는 것은 정말 쉬운 것에 속하지만
다른 일이 나한테 맞느냐의 부분적인 문제이지 전반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이 되었던 것이지요.
일을 하면서 ceo들처럼 은행장하고 잘 협의가 되어서 협력되어 회사를 설립해서 매출 창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런 일은 하늘에서 내리는 사람에 한해서만 그리 되는 일이지 아무나 다 밑의 직원처럼 하는 것은 아니지요.
간디, 칼 융, 헤르만 헤세 등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에 자신의 '새로운 길'을 발견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는 '추락'을 우리를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지 말고, 우리를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신의 손길’로 생각하라고 부드럽게 조언합니다.
신을 존재의 토양(the ground of being)이라고 표현한 폴 틸리히 역시 신에게 이르는 길이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아래로 내려서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길이 닫히는 것, 실패하는 것 역시 삶이 우리를 준비된 길로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추락을 통해 삶을 가만히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추락의 시기에 해야 할 것은 삶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는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 경험이 내포하는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삶을 바꿔줄 '결정적 사건'을 기다려서는 안 되니다.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그것을 훌륭하게 재해석해 낼 수 있는 힘에 자신의 자신한테서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경험의 크기가 아니라 '깨달음의 크기'가 삶을 바꿉니다.
'길 막혔음'이라는 표지 앞에 주저 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등을 돌려 무수한 길 중 어느 길이 나에게 어울리는 길인지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나를 추락하게 하는 그 사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건이 상징하는 의미를 조용히 성찰할 때, 우리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삶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추락하는 것이 비상하는 날개를 가진 이유입니다.
첫댓글 정말 살아가다보면 그러한 경우가 삶에서도 몇 번씩 일어나는 경우를 느끼게 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종교에 심취해 계신분들은 아마도 더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