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후에 산성 쪽의 투어를 하려고 해서 입장을 하려고 우리가 들어올 때 사두었던 영수증을 보여주었습니다. 징수원은 카메라가 없느냐고 묻기에 없다고 말하고 입장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꼭대기를 올라가니 자이푸르 시내가 한눈에 보여서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를 꺼내서 찍는데 나는 찍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사람이 와서 사진 찍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더니 끝났습니다. 그 지역을 모두 본 후에 버스로 돌아와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니 기운이 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는 도중에 마드라스에서 은행에 다니는 사람과 이야기했는데 그는 두 언어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는 영어로서 Mother Tongue이라고 했고 다른 언어는 힌디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른 인도인들의 영어 발음과 다르게 깨끗하게 잘 들리는 좋은 영어를 구사한다고 칭찬하니 그는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차에 올랐습니다.
차가 출발하여 산 아래로 내려가며 계속 달렸습니다. 6시가 다 되어 시내에 있는 크리쉬나 힌두사원 옆에 버스가 정차했습니다. 그리고 20 분 정도를 줄테니 크리쉬나 신전을 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크리쉬나 신전의 시설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인도에서 요즈음은 어떤 힌두 신보다도 사랑을 받는 것이 크리쉬나인 것 같았습니다. 인도 어디를 가도 크리쉬나 신전은 아주 잘꾸며 놓은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발을 맡기는 곳으로 갔고 이 신전은 신발을 맡기는 것이 다른 신전들과 다르게 무료였습니다. 우리 여행객들의 신발들을 한 군데에 무더기로 쌓아놓았습니다. 우리는 맨발로 사원으로 들어가서 관람했는데 이 사원은 대리석으로 너무나 멋지게 꾸며 놓았으며 우리 여행객들 중에 상당수가 크리쉬나에게 가서 숭배 의식을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탈리 하나만 시켜서 나누어 먹던 대학생 아이들도 참배를 하더니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헌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홀 가운데 크리쉬나와 그의 부인의 우상이 서있고 그 둘레를 대리석으로 둘러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리석에는 크리쉬나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뒤로 돌아가보니 어떤 사람이 그림이 있는 벽에 양손을 넓게 벌려 몸과 얼굴을 붙이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 낮은 소리로 이 사람들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크리쉬나 악령에 대해 명령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나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것을 돌아보고 돌아오면서 우리 여행객 중 한 친구에게 크리쉬나 옆에 있는 아내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무엇이라고 대답했었는데 현재 기억이 안납니다. 다만 그들은 크리쉬나에게 아내가 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서, 나는 그렇다면 크리쉬나는 폴리가미(Polygamy,일부다처)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들에게 인도는 일부다처를 허용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도인들은 모노가미(Monogamy)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신발을 맡기는 곳에 왔더니 신을 나눠주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이었고 게다가 우리 여행객 중에서 한 사람은 신발을 쌓아놓은 곳에 들어가서 자기 가족 신발만 챙겨 주고서 그냥 나왔습니다. 나는 그가 우리 모두의 신발을 내어 줄줄 알았으나 그렇게 하지 않아서 내가 들어가서 우리 여행객들의 신발을 모두 내어주었습니다. 영국 연인들과 인도인들이 자기 신발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모두 꺼내주고서 끝날 무렵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신발을 모두 내어준 후에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차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으니 인도인 여행객 하나가 와서 나에게 Gentleman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