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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年甲子(先生四十三歲) 四月(사월) 授宣敎郞(수선교랑)
4년갑자(선생43세) 4월 선교랑에 임명되었다.
○五月 授承訓郞
5월 승훈랑에 임명 되었다.
○七月(칠월) 監司閔公聖徵上治行(감사민공성징상치행) 賜表裏(사표리)
7월 감사 민 성징공이 치행을 올려 표창이 내려졌다.
諭曰(유왈) 爾居官(이거관) 愛民如子(애민여자) 治邑如家(치읍여가) 凡所除弊(범소제폐) 有若嗜欲之難制(유약기욕지난제) 盡心孜孜治(진심자자치) 有茂績(유무적) 不負朝廷擢拔之意(불부조정탁발지의) 極爲可嘉(극위가가)
말하기를 너는 관직에 임명되어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과 같이하고 고을 다스림을 집과 같이 하니 무릇 폐단을 없애는 바가 제어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하고자 즐기는 것 같으니 진심으로 자자하게 다스리니 공적이 무성하여 조정에서 발탁한 뜻을 져버리지 않으니 극히 가상할 따름이다.
九月(구월) 令人權氏卒(영인권씨졸) 呈辭歸(정사귀)
9월 영인 권씨 운명하셔서 사임하고 귀향하셨다.
縣民立石(현민입석) 以頌之(이송지)
현민이 그를 칭송하여 비를 세웠다.
十一月(십일월) 葬令人于善山府治東朴谷(장영인우선산부치동박곡)
11월 영인 권씨를 선산 치동 박곡에 장사 지냈다.
○十二月(십이월) 拜刑曹正郞(배형조정랑) 辭不赴(사불부)
12월 형조 정랑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부임하지 않으셨다.
五年乙丑(先生四十四歲) 寓四勿村(우사물촌)
5년을축(선생44세) 사물촌에 머물렀다.
一日拙齋公問學(일일졸재공문학) 先生曰(선생왈) 愼獨爲緊要(신독위긴요) 又拙齋公嘗苦思慮雜沓(우졸재공상고사려잡답) 於竹片上書屏思慮三字(어죽편상서병사려삼자) 先生偶見之(선생우견지) 召使前曰(소사전왈) 屏雜慮則可(병잡려즉가) 屏思慮 則不可(병사려즉불가) 又曰世間萬事(우왈세간만사) 如鳥音過耳(여조음과이) 不足累吾靈臺(부족누어영대) 惟當一切掃置(유당일절소치) 以修身竢命爲心可也(이수신준명위심가야) 又曰(우왈) 近自數年來(근자수년래) 自覺心地寬平(자각심지관평) 胡思雜慮(호사잡려) 又似退聽(우사퇴청) 不大用力(불대용력) 惟於動時易差了(유어동시이차료) 是可懼也(시가구야)
하루는 졸재공이 배움에 대해 물으시자, 선생 말하기를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가 함이 긴요함이 된다.” 하셨다. 또 졸재공 일찍이 붐비는 가운데서도 실로 깊이 생각하며 죽편 위에 병사려 세 글자를 써놓은 것을 선생께서 우연히 보시고 앞에 불러 말하시기를 “병잡려라면 가하나, 병사려라면 불가하다.”하시면서, 또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만사는 마치 새소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하시고, “내 마음을 번거롭게 하기에는 족하지 않다. 오직 일체를 수신으로 깨끗이 하고 명을 기다리는 마음이 되면 가할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요사이 수년 동안 자각하는 마음으로 지관평이 마음속에 뒤엉켜서 또 물러나서 들으면 크게 힘쓰지 않은 듯하니 오직 움직일 때에 바른 깨달음이 쉽게 어긋날까 두려울 뿐이다.”라고 하셨다.
○按李月澗戒子姪書曰(안이월간계자질서왈) 常愛柳季華家傳詩 (상애류계화가전시) 禮學有淵源(예학유연원) 見識明白(견식명백) 踐履篤實(천리독실) 孝悌於家(효제어가) 忠信於朋友(충신어붕우) 沈厚謹重(심후근중) 表裏如一(표리여일) 德容之盛(덕용지성) 視古人(시고인) 無多讓今(무다양금) 汝輩之所標準者(여배지소표준자) 非此人乎(비차인호) 見其忠厚寬裕(견기충후관유) 而思以矯吾之刻薄(이사이교오지각박) 見其莊整齊肅(견기장정제숙) 而思以矯吾之惰慢(이사이교오지타만) 至於動止(지어동지) 威儀無不取之爲模範(위의무불취지위모범) 則觀感親炙之益(즉관감친적지익) 豈不愈於卷中之賢邪(기불유어권중지현사)
이월간공이 자식과 조카들을 경계하는 글에서 말하기를 “류 계화는 가족을 늘 사랑하며 전하는 시가 있으니, 예학은 사물의 근본에 있고, 보고 아는 것은 명백하여야 하며, 실천함은 독실히 하고, 집에서는 효우하며, 친구를 사귐은 충성과 신의로 하고, 침착하고 중후하여 삼가 하고 무거우며 표리가 한결같아 덕스러운 용모가 풍성한 옛사람을 봄이라 사양함이 많지 않은 지금 너희들의 표준이 되는 자, 이 사람이 아니겠는가. 충후하고 관유하니, 그리고 생각은 우리의 각박함을 바로잡아 장엄하고 정숙함을 보이고, 생각은 우리의 게으름을 바로잡아 움직임을 멈춤에 이르러 위의는 모범됨을 취하지 않음이 없으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 스승에게 가르침 받기를 더함이 아마 책 중의 현명함보다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編次喪禮諸說(편차상례제설)
상례제설을 편차하셨다.
先生以家禮(선생이가례) 雖有後賢附註(수유후현부주) 變禮無所裁訂(변예무소재정) 因集古今喪禮說(인집고금상례설) 以補其未僃(이보기미비) 分門立条(분문입조) 使便考閱書(사편고열서) 旣成欲㪅定而未果(기성욕경정이미과)
선생 가례를 비록 뒤에 현자의 주는 첨부하였으나, 변례를 헤아려 바로 잡은 바는 없다. 고금 상례 설을 모아 미비한 점을 보완함으로써 문벌로 나누어 법도를 세우시고, 글을 열람하고 상고함을 편리하게 끔 하였으나, 다시 바로잡아 고침을 이루지 못했다.
六年丙寅(先生四十五歲) 八月(팔월) 陞奉直郞(승봉직랑) 拜刑曹正郞(배형조정랑) 赴闕肅謝(부궐숙사)
6년병인(선생45세) 8월 봉직랑으로 승차하여 형조정랑에 임명되어 궐에 숙배하고 사은한 후 부임하였다.
先生雅意林泉(선생아의임천) 不樂仕進(불락사진) 而每有除命(이매유제명) 必皆赴謝(필개부사) 嘗謂拙公曰(상위졸공왈) 我世臣也(아세신야) 不可以山野自處(불가이산야자처) 有所偃蹇(유소언건) 汝須知此意(여수지차의)
선생의 우아한 뜻은 임천이요, 벼슬에 나아감을 즐거워하지 않으셨으나, 매번 벼슬을 내리는 명이 있으면 사은하고 부임하였으며, 일찍이 졸재공이 말하기를“우리는 대대로 벼슬 살이 한 집안으로 산야에 스스로 처하여 거드름을 피우고 거만해서는 안될 것이며 모름지기 이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先是公州人(선시공주인) 有爲本州鄕任者(유위본주향임자) 與其地黃姓人交惡(여기지황성인교악) 爲其所誣告(위기소무고)逮繫京獄(체계경옥) 互相證援文書盈几閣(오상증원문서영궤각)官吏不能遍覽(관리불능편람) 先生一日夜搜檢都盡(선생일일야수검도진) 得其姦狀(득기간상) 時李完豊曙判本曹(시이완풍서판본조) 大驚服歎曰(대경복탄왈) 微公幾誤此獄(미공기오차옥)囚呼曰(수호왈) 先大監按某獄申其枉 (선대감안모옥신기왕) 今公又能燭我冤(금공우능촉아원) 可謂世其家者(가위세기가자) 感泣不已(감읍불이) 告者遂逃去(고자수도거) 事因得解(사인득해) 物論快之(물론쾌지)
이에 앞서 공주사람으로 본 고을의 향직으로 근무하는 사람과, 그 땅에 황가의 성인 사람이 서로 다투어 무고하는 바가 있어, 경옥에 체포되어 상오간에 증거 서류가 가득하여 해당관리가 모두 다 볼 수가 없었는데, 선생 하루 밤에 모두 검사하여 찾으니, 간교한 실상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이 때 본조 이 완풍 서판이 대경 실색하고는 감탄하여 말하기를 “공이 아니면 이 옥의 죄수가 잘못 처결되었을 것이야.”하였으며,옥수가 말하기를 “선 대감이 모 옥사를 헤아리더니, 지금 공이 있어 명백하게 하니, 또한 우리의 누명을 밝혀주심이 대를 이어가는 집안이요.” 하며 감읍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무고한자 드디어 도망가 달아나고 사건이 풀려져 논의가 명쾌해졌다.
辤歸(사귀)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供職僅十日(공직근십일)
직에 근무한지 겨우 십 일째이다.
十一月(십일월) 拜榮川郡守(배영천군수) 因事遞(인사체)
11월 영천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일로 교체되었다.
○月(월) 聘夫人河氏(빙부인하씨)
그달에 하씨 부인을 맞이 하였다.
學生沃之女(학생옥지여)
학생 옥의 따님이시다.
七年丁卯(先生四十六歲) 正月(정월) 北兵至(북병지) 號召使(호소사)
7년정묘(선생46세) 정월 북병에 오랑케가 침략하여 사신으로 부르다.
鄭愚伏(정우복)
정 우복
差先生尙州義兵將(차선생상주의병장)
선생을 상주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先生糾合義旅(선생규합의려) 申嚴部伍(신엄부오) 號令嚴肅(호령엄숙) 李蒼石語人曰(이창석어인왈) 吾以柳某爲直柔耳(오이류모위직유이) 不意其剛勇(불의기강용) 乃如此(내여차)
선생 의병을 규합하였는데 부대의 대오에는 엄격하게 말하고, 호령도 엄숙 하였다. 이창석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류모는 바르고 부드러울 뿐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강건하고 용맹함이 이와 같구나.” 하였다.
俄拜淸道郡守赴任(아배청도군수부임)
잠시 후 청도군수에 부임하셨다.
爲治如奉化時(위치여봉화시)
다스림이 봉화 때와 같았다.
與義兵所金風雷書(여의병소김풍뢰서)
의병 김 풍뢰의 편지
略曰(략왈) 姜朴二虜還去後(강박이로환거후) 朝議欲羈縻之(조의욕기미지) 以爲緩兵之計(이위완병지계) 區區過慮(구구과려) 狼心叵測(랑심파측) 變詐百出(변사백출) 所謂羈縻者(소위기미자) 不足以縻賊(부족이미적) 而適足以自誤也(이적족이자오야)
대략 이렇다. 강박 두 명의 포로가 돌아간 후 조정 의론은 기미하고자 하니, 병을 늦추도록 하는 계책으로는 구구하고 지나친 걱정이라, 이리의 마음은 측량할 수 없으며, 변화와 거짓이 백출하니, 기미하는 것은 적을 얽어 매기에는 부족하나 그러나 족히 스스로 잘못하게 하기에는 적당하다
答(답) 洪東洛書(홍동락서) 論軍糧事(론군량사)
홍동락의 답서로 군량의 일을 의론하다.
時東洛在金巡察時讓幕下(시동락재김순찰시양막하)書略曰(서략왈) 承巡使(승순사) 關賊兵已到黃州(관적병이도황주) 而關西割地之言(이관서할지언) 尤令人痛憤(우령인통분) 欲死此軍爲一(욕사차군위일) 道米豆都會(도미두도회) 今看都數大小米七萬餘石(금간도수대소미칠만여석) 合雜穀多(합잡곡다) 至卄七萬餘石京畿忠淸穀(지입칠만여석경기충청곡) 數在此道之下合(수재차도지하합) 兩道亦不下數十萬石(양도역불하수십만석) 若没數聚於南漢城(약몰수취어남한성) 可支數萬兵半年之糧(가지수만병반년지량) 取其便近先此運用(취기편근선차운용) 而遠道之穀則姑爲畱置(이원도지곡즉고위류치) 以待事定後(이대사정후)從容輸運(종용수운) 以償兩道所用之數(이상양도소용지수) 極似便當云(극사편당운)
동락이 순찰사 김 시양의 막하에 있을 때 편지를 보냈는데 대략 이러하다. “순찰사께 올립니다. 관문의 적병이 이미 황주에 도착하여 관서 할지의 말로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통분하게 하여 군이 하나가 되어 여기서 죽고자 합니다. 도의 미두를 모아서 지금 헤아려 보니, 대소 미 칠만여 석이며 잡곡이 썩인 것이 많고, 경기 충청 곡식이 이십칠 만여 석에 이르고, 이 도의 아래에 있는 것을 합하고 양도 또한 내려 보내지 않은 수십 만석을 만약 남한산성에 수량의 전부를 모아 놓는다면 수만의 병력이 반년은 버틸 수 있는 양식이며, 그 편리함을 취해 가까운 곳을 먼저 운용하고, 멀리 떨어진 도의 곡식은 잠시 머물러 두었다가 일을 기다려 정한 후 차분하고 침착하게 운반하면 양도에서 소용되는 바의 수를 극히 비슷 하게하여 편리하고 마땅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作文諭諸生(작문유제생)
문장을 지어 여러 유생을 가르쳤다.
略曰(략왈) 舜命契曰(순명설왈) 百姓不親(백성불친) 五品不遜(오품불손) 汝作司徒(여작사도) 敬敷五敎在寬(경부오교재관) 此敎學之所由始也(차교학지소유시야) 蓋人倫者(개인륜자) 日用當行之(일용당행지) 道學者學此而已(도학자학차이이) 敎者敎此而已(교자교차이이) 子朱子小學一書(자주자소학일서) 爲小子培養德性之根本(위소자배양덕성지근본) 而其所眷眷者(이기소권권자) 惟在於入孝出悌(유재어입효출제) 隆師親友(륭사친우) 正容謹節(정용근절) 愼言篤行而已(신언독행이이) 今妙選儒生(금묘선유생) 擇定訓長(택정훈장) 每朔望謁聖(매삭망알성)因與難疑答問(인여난의답문) 啓發其志意(계발기지의) 高下其勤慢(고하기근만) 而其於升降揖讓之(이기어승강읍양지) 節忠信篤敬之本(절충신독경지본) 尤加戒焉(우가계언) 諸君誠能學(제군성능학) 而講之日益明習(이강지일익명) 而行之日益進(이행지일익진) 優游涵泳(우유하영) 毋急毋怠(무급무태) 則爲聖爲賢之 功亶在於是矣
대략 말하자면 “순이 설에게 명하기를 백성이 불친 하고 오품이 불손하면 너희는 사도를 만들어 공경함을 펴고 오교는 관대함이라 이것이 가르치고 배우는 시초가 된 까닭이다. 인륜이라는 것에서 일용은 마땅히 행해야 하고 도를 배우는 자는 이를 배울 뿐이고 가르치는 자는 이를 가르칠 뿐이다 하였으니 주자선생께서 소학 한 권으로 어린 자식의 덕성의 기본을 배양하려고 권권 한 것은 오직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가면 공경하여 스승을 존중하고 벗들과 친하여야 하나니 바른 용모로 삼가 하고 절제하며 말은 신중히 하고 행동은 독실히 할뿐이다. 지금 유생 중 뛰어난 자를 선발하고 훈장을 선정하여 매 상망에 선성을 배알하고 의심되고 어려운 것을 묻고 답하고 뜻과 생각을 계발하고 근면과 태만을 높이고 낮추어 그리고 오르내리며 읍하고 양보하며 충절 독신으로 공경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더욱더 경계할 뿐이다. 그대들은 실로 배워야 하고 그리고 강하면 날로 더욱 밝게 익혀지고 행하면 날로 더욱 나아가 우유 함영하여 급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면 성스럽게 되고 현명하게 되니 공적의 도타움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하였다.
十月(시월) 授通善朗(수통선랑)
10월 통선랑에 임명되었다.
○十二月(십이월) 因事罷歸(인사파귀)
12월 일을 끝내고 귀향하셨다.
郡民立石以頌之(군민입석이송지)
군민이 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毅宗皇帝崇禎元年戊辰(先生四十七歲) 月(월) 子百之生(자백지생)
의종황제숭정원년무진(선생47세) 월 아들 백지가 태어났다.
○九月(구월) 拜果毅校尉世子翊䘙司翊䘙(배과의교위세자익위사익위) 赴闕肅謝(부궐숙사)
9월 과의교위 세자익위 사익위에 임명되어 대궐에 엄숙히 사은하고 부임하셨다.
時(시) 鄭愚伏爲副提學(정우복위부제학) 將進講璣衡註(장진강기형주) 自䘙曹直所邀先生(자위조직소요선생) 至玉堂(지옥당) 講論疑義(강론의의)
이때 우복 정 경세 선생께서 부제학이 되어 기형주를 진강 함에 위조직소로부터 선생을 불러 옥당에 이르러 의심되는 의론을 강론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