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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언문(훈민정음)’ 관련 기사(모두 966건) 요약
*출처: 김슬옹(2005.8.23).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관련 기사를 통해 본 문자생활 연구. 상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 김슬옹(2005).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 연구≫. 한국문화사.
❀ 세종
세종 25/1443/12/30/임금이 이 달에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훈민정음이라 일컫다. [언문*훈민정음]
세종 26/1444/02/16/집현전 교리 최항․부교리 박팽년 등에게 언문으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다. [언문]
세종 26/1444/02/20/㉠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은 중화제도 준행(遵行)에 큰 흠절(欠節)임을 상소하다 ㉡세종이 언문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답하다 ㉢김문은 언문 제작이 불가할 것은 없다고 하다가 다시 말을 바꾸다 ㉣삼강행실 등을 언문으로 번역하면 교화에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세종과 정창손의 대립 논쟁. [언문28]
세종 27/1445/01/07/집현전 부수사 신숙주 등에게 요동에 가서 운서(韻書)를 질문해 오게 하다. [운서]
세종 27/1445/04/05/권제․정인지․안지 등이 ≪용비어천가≫ 10권을 올리다. [국어]
세종 28/1446/09/29/ ㉠ ≪훈민정음≫이 이루어져 임금이 직접 취지와 내용을 어제(御製)로 지었다 ㉡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에 전하가 28자를 만들고 예의(例義)를 들어 새 문자 명칭을 ‘훈민정음’이라고 일컬었다고 하다. [훈민정음2*정음2]
세종 28/1446/10/10/대간(정창손․조욱․유맹부․강진)의 죄를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이다. [언문]
세종 28/1446/10/10/이계전 등이 대간 처벌을 거두어 달라고 하자 그들의 죄를 의금부에 유시한 언문서를 보이다. [언문]
세종 28/1446/10/13/하연 김종서 등이 정창손․조욱․유맹부 등의 용서를 청하자 그들의 죄를 적은 언문서를 수양대군을 통해 가져와 보이다. [언문]
세종 28/1446/11/08/언문청을 설치하여 용비어천가를 들이게 하니 춘추관에서 언문청의 경비 허술함을 간하다. [언문청2]
세종 28/1446/12/26/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취재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되 뜻은 모르더라도 쓸 줄 알면 뽑게 하다. [훈민정음]
세종 29/1447/04/20/함길도 자제 관리 선발에 다음 식년(式年)부터 훈민정음을 1차 시험으로 하고 각 관아 관리시험에서도 모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다. [훈민정음2]
세종 29/1447/06/04/의정부에서 용비어천가를 내린 취지를 아뢰다. [용비어천가]
세종 29/1447/07/01/언문청 ≪의방찬집≫서사인 등에게 별도(別到)를 줄 것을 의논하다. [언문청]
세종 29/1447/09/29/≪동국정운≫ 완성에 따른 신숙주의 서문에서 신숙주가 중국 운과 자모를 정해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다. [동국정운, 훈민정음]
세종 29/1447/10/16/≪용비어천가≫ 5백 50본을 군신에게 내려 주었다. [용비어천가]
세종 29/1447/11/14/이석형 등이 상서에서 세자의 서연관들이 일이 많다고 하면서 언문과 의서 담당 서연관을 언급하다. [언문]
세종 30/1448/03/28/직제학 김문이 죽어 상주사 김구를 불러들여 ≪사서≫를 언문으로 번역하게 하다. [언문]
세종 30/1448/07/22/상소에서 불교와 관련하여 용비어천가의 취지를 아뢰다. [용비어천가]
세종 30/1448/07/27//하연 등을 빈청(賓廳)에 불러 환관에게 언문서를 가져오게 한 뒤 비밀히 의논하다. [언문]
세종 30/1448/10/17/≪동국정운≫을 여러 도와 성균관·사부 학당에 내려 주다. [동국정운]
세종 31/1449/01/27/헌부에서 병조 관리의 죄를 청하자 임금이 현로 최읍이 언문청에서 만난 지 오래되었다고 언급하다. [언문청]
세종 31/1449/03/26/이선로의 죄의 경중을 논하는 과정에서 임금이 언문청을 처음 열 때 현로(이선로)를 알았다고 하고, 죄와 관련하여 언문청에 있던 자들이 언급되다. [언문청2]
세종 31/1449/06/20/임금이 의정부 좌의정 하연 등에게 언문으로 20여장을 기록하며 사대부들의 불교 태도와 집현전 학사들의 그릇된 점을 비판하다. [언문]
세종 31/1449/10/05/어떤 사람이 하정승을 비난하는 언문 글을 벽위에 쓰다. [언자]
세종 32/1450/01#03/성삼문․신숙주․손수산 등에게 명하여 운서(韻書)를 사신에게 묻게 하다. [운서]
❀문종
문종 00/1450/10/28/ ㉠ 간언이 정음청을 혁파하자고 상소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아 불만이다 ㉡ 따로 정음청을 설치하여 환관으로 하여금 맡아 보게 하므로 지나치다 ㉢ 문종이 말하기를 정음청은 일찍이 이미 설치한 것이고 문제가 많지 않다 ㉣ 안완겸 어효첨 등이 말하기를 정음청은 임금께서 불경을 찍기 위하여 설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다. [정음청5]
문종 00/1450/10/30/불사 상소 답변 과정에서 정음청에서 소학을 찍던 것을 끝내면 모두 주자소로 돌리겠다고 말하다. [정음청]
문종 00/1450/11/01/정음청은 내가 설치한 것이 아니고 소학 인쇄 끝나면 혁파하겠다. [정음청3]
문종 00/1450/11/09/의정부에서 정음청의 책방은 주자소로 돌리었다고 말했고 임금은 소학 인쇄 끝나면 정음청 혁파하겠다고 말하다. [정음청2]
문종 00/1450/12/17/≪대학연의≫를 언자로써 어조사를 써서 종실 가운데 문리가 통하지 않는 자를 가르치려고 하였다. [언자]
문종 00/1450/12/17/소학 인쇄가 끝나 정음청에 보관하던 주자를 주자소에 돌려주게 하다. [정음청2]
문종 00/1450/12/23/정분․이사임에게 명하여 정음청에서 갑옷 만드는 것을 감독하게 하다. [정음청]
문종 00/1450/12/24/정음청 건물이 견고하니 군기감과 상의원에서 갑옷 만드는 일을 이곳에서 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다. [정음청4]
문종 01/1451/06/08/주자소가 글자를 전담하니 책방․정음청은 없어도 된다고 정창손이 아뢰다. [정음청3]
문종 01/1451/11/17/양녕 대군이 김경재로 하여금 상경하여 그 딸을 시집보내도록 하기를 언문서로 청하다. [언문]
문종 02/1452/04/04/예조에서 진사 시험 조건을 건의하면서 ≪동국정운≫은 이미 고금의 운서를 참작하여 정한 것이므로 운(韻)을 사용하는데 장애가 없으니 압운하는데 사용하자고 건의하여 문종이 따랐다. [동국정운]
❀단종
단종 00/1452/06/18/사약 가운수가 세조를 헐뜯고 정음청을 비난하니 국문하여 벌하다.
단종 00/1452/07/23/권남 관련 기록에 문종 때 문종이 세조에게 명하여 병서의 음주(音誅)를 편찬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오다. <<음주(音誅>>
단종 00/1452/11/02/정음청을 혁파하다. [정음청]
단종 00/1452/12/24/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예조에서 과거 시험에서 ≪동국정운≫을 쓰게 하였으나, 아직 인쇄 반포되지 않았으니 ≪예부운(禮部韻)≫에 의거하도록 건의하여 단종이 따랐다. [동국정운]
단종 01/1453/04/02/한 시녀가 언문으로 유모의 안부를 써서 혜빈에게 보냈고 혜빈은 내전에 바쳤고 내전은 그 언문을 승정원에 보냈는데, 그 내용은 시녀와 별감 사통 내용에 관한 것이다. [언문2]
단종 01/1453/04/14/ 별감 부귀가 시녀 월계에게 언문으로 서신을 중비에게 써 주도록 청하다. [언문]
단종 01/1453/04/20/혜빈이 언문으로 영풍군의 집에 옮겨 들어가기를 청하다. [언문]
단종 01/1453/05/08/의금부에서 시녀와 별감이 언문으로 간통하고 물건을 빼돌린 사건에 대해 벌을 청해 주다.
❀세조
세조 02/1456/04/09/예조에서 연소한 문신과 의관 자제를 선정하여 언문을 활용하여 홍무정운을 통해 한어를 익힐 것을 청하다. [언문]
세조 03/1457/06/28/판서운관사 양성지가 용비어천도 서문을 바쳤는데 그 서문에 동궁 저하가 용비어천가를 신들로 하여금 구결을 정하여 읽게 하다. [용비어천도*용비어천가]
세조 04/1458/08/24/중궁이 임금에게 감형을 언문으로 청하다. [언문]
세조 04/1458/10/15/최항, 한계희가 언문으로 ≪초학자회≫의 주를 달다 그만두게 되어 승정원에서 언문을 해득한 김구 이승소 우보덕 최선복 등 12인을 추천 마무리하게 하다. [언문2]
세조 05/1459/02/09/김수온, 성임은 낮은 벼슬아치로 월인석보를 교정본 공으로 관직을 받았다. [월인석보]
세조 06/1460/05/28/예조에서 ≪훈민정음≫․≪동국정운≫․≪홍무정운≫을 문과 초장에서 강할 것 등을 아뢰어 따르다. [훈민정음]
세조 06/1460/09/17/예조에서 식년(式年)의 강경(講經) 과목으로 ≪훈민정음≫․≪동국정운≫․≪홍무정운≫ 등을 들었다. [훈민정음]
세조 06/1460/10/13/임금의 수레가 황주에 이르니, 기녀 등이 언문 가요를 지어 올리다.
세조 06/1460/10/15/임금의 수레가 평양부에 이르니, 기녀 등이 언문를 지어 올리다.
세조 06/1460/11/04/임금의 수레가 남대문에 이르니, 기녀와 세류지 등이 언문 가요를 지어 올리다.
세조 07/1461/03/14/최항․한계희 등 30여 인에게 명해 언자를 사용해 잠서(蠶書)를 번역하게 하다. [언자]
세조 07/1461/06/16/처음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도제조․제조․사․부사․판관을 두다. [간경도감]
세조 07/1461/08/27/서거정과 임원준 등에게 언문으로 ≪명황계감≫을 번역케 하다. [언문]
세조 09/1463/05/15/영응 대군 이염․도승지 홍응․전 상주 목사 김수온에게 ≪명황계감≫의 가사를 번역하게 하다. [명황계감]
세조 09/1463/05/16/중추원부사 최항․예문 제학 이승소 등에게 ≪명황계감≫의 가사를 번역하게 하다. [명황계감]
세조 09/1463/05/19/좌승지 이문형에게 ≪명황계감≫의 가사를 교정케 하다. [언해/명황계감]]
세조 09/1463/09/02/간경도감에서 새로 간행한 법화경(언해본)을 바치다 [간경도감*법화경]
세조 09/1463/09/05/최항․양성지 등에게 동국통감의 편찬을 명하다․명황계감을 수교하게 하다. [명황계감]
세조 09/1463/11/09/이부와 최효원이 팔괘도법을 지으니 그대로 번역하게 하다. [번역]
세조 10/1464/02/08/김수온․한계희․노사신 등에게 ≪금강경≫을 번역하게 하다. [역*금강경]
세조 10/1464/09/21/예조가 성균관의 구재의 법을 참정하고 아뢰면서 훈민정음도 식년(式年) 과목으로 선급하다. [훈민정음]
세조 11/1465/03/09/효령 대군 이보가 원각경 수교를 마쳐 잔치를 베풀다. [원각경2]
세조 11/1465/04/07/원각사가 낙성되어 잔치를 베풀면서 임금이 찬정(撰定)하고 구결번역한 ≪원각수다라료의경≫을 살펴 보다. [번역*원각수다라료의경]
세조 11/1465/09/04/궁인 덕중이 언문편지로 환관을 통해 귀성군에게 사랑고백하다. [언자]
세조 12/1466/11/17/대사헌 양성지가 군사기밀 보호를 위해 총통등록 등의 문적(文籍)을 언문으로 베껴 쓰고 태워 없애자고 상소하다. [언자]
세조 14/1468/02/04/최항․김국광․노사신․성임 등에게 명하여 어마법(御馬法)을 번역하게 하다. [언문]
세조 14/1468/05/12/임금이 사정전에 나아가 종친․재신․제장 등과 술 마시며 8기에게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언문 가사를 부르게 했다. [언문]
❀예종
예종 01/1469/06/27/≪금강경≫과 ≪법화경≫에 능하지 못한 자를 환속시킨다는 말을 듣고, 신미가 언문으로 상소하여 벌받다. [금강경*법화경*언문]
❀성종
성종 01/1470/03/09/내전에서 나온 언문에 경신옹주 모녀가 서로 송사한 일의 처결내용을 담았다. [언문]
성종 02/1471/03/28/≪삼강행실≫을 여러 고을의 교생(校生)으로 하여금 강습(講習)하게 할 것을 명하다. [삼강행실]
성종 02/1471/06/18/예조에 전지(傳旨)하여 관찰사로 하여금 소학과 삼강행실 간행을 통해 백성의 풍습과 선비의 습속을 장려하게 하다. [소학*삼강행실]
성종 02/1471/12/05/간경도감을 파하게 하다. [간경도감]
성종 03/1472/09/07/절검을 힘쓰고 몸소 행하라는 교지를 부인과 어린이들까지 알 수 있도록 언문으로 옮겨 중외(中外)에 반포하도록 명하다. [언자]
성종 07/1476/01/13/대왕대비가 정무(政務)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는 언문편지를 정승들에게 전하니 원상(院相)이 내려 만류하다. [언문2]
성종 07/1476/07/23/관찰사로 하여금 ≪소학≫과 ≪삼강행실≫ 간행을 통해 백성의 풍습과 선비의 습속을 장려하게 하다. [소학*삼강행실]
성종 07/1476/07/25/관찰사로 하여금 소학과 삼강행실 간행을 통해 백성의 풍습과 선비의 습속을 장려하게 하다. [소학*삼강행실]
성종 08/1477/03/29/ ㉠폐비와 삼월이 감찰을 사칭 권숙의 집에 정소용과 엄숙의를 비방하는 언문 투서(익명서)를 하다 ㉡삼월이 공초에서 삼월이 익명서를 윤구 아내가 썼다고 했으나 윤구의 아내는 언문을 모른다고 해 석방하다. [언문5]
성종 08/1477/03/30/중궁의 일로 삼월이 등을 국문하고 죄를 의논하다. [언문3]
성종 08/1477/04/22/예조에서 ≪삼강행실≫에 의거하여 절부를 대우하는 방법을 아뢰다. [삼강행실]
성종 08/1477/09/04/우의정 윤자운이 언문으로 번역한 ≪몽한운요≫의 의주로의 반행은 중국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아뢰다. [언문]
성종 09/1478/04/30/임원준이 상소에서 자신이 세종조 때 용비어천가 찬집(撰集)에 참여했음을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성종 09/1478/10/13/공조 판서 양성지가 ≪오례의≫를 언문으로 베낀 다음 병기 도설(兵器圖說) 부분을 삭제하고 반포하기를 청하다. [언자2]
성종 10/1479/06/05/㉠임금이 중궁을 폐출한 연유를 대신들에게 알리는 내용에 언문 익명 투서가 언급되다 ㉡대비가 내관 안중경으로 하여금 언문 의지(교지)와 윤씨가 만든 언문 글을 빈청(賓廳)에 내렸다. ㉢ 채수(蔡壽)가 윤씨가 조작한 언문서를 한자(漢字)로 번역해서 역사책에 쓰게 하라고 건의하여, 성종이 채수 및 이창신(李昌臣)·정성근(鄭誠謹)에게 번역하게 하였다. ㉣ 삼월이가 말하기를, 곡성현감 첩이 가지고 있는 언문 방양서(方禳書)를 몰래 가지고 윤구 아내에게 보이고 그와 사비에게 베끼게 하다. [언문5*언자3]
성종 10/1479/09/04/임금이 승정원에 언문과 한자가 섞인 글을 보내 대간이 관사에 대해 말한 것을 의논케 하다. [언자]
성종 11/1480/05/30/대비가 모든 일이 불사를 좋아하는 자신의 탓이라는 언서를 내리다. [언서]
성종 성종이 언문12/1481/03/24/으로 된 ≪삼강행실열녀도≫를 박아 부녀에게 강습(講習)하도록 예조에 교지를 내리다. [언문]
성종 12/1481/04/21/예조에서 ≪삼강행실열녀도≫를 강습(講習)시킬 절목을 아뢰다. [삼강행실열녀도]
성종 12/1481/10/22/예조에서 ≪동국정운≫에 근거하여 운을 교정하고, 초학자들이 ≪동국정운≫을 배운 뒤 ≪홍무운≫을 배우게 하기를 아뢰어 성종이 따랐다. [동국정운]
성종 13/1482/02/13/양성지가 편찬 사업(훈민정음 외)을 일으키고, 중요한 책과 병서 등을 언문으로 베껴 보관하기를 청하다. [훈민정음*언문]
성종 13/1482/06/10/대내에서 나온 언문 편지를 내시 안중경과 형방승지 강자평에게 번역케 하다. [언문]
성종 13/1482/06/11/㉠제안대군부인이 시비에게 언문으로 사랑 여부를 확인하다 ㉡형방승지가 강자평이 제안 대군의 아내 박씨가 몸종들과 동침한 사실을 왕대비전에 알리다. [언문*언자]
성종 13/1482/08/11/폐비에 대한 예우 문제 논쟁에서 대사헌 채수가 승지일 때 폐비가 조작한 언문서를 한문으로 번역해 기록에 남겨야 후세 사람들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건의한 일을 다시 언급하다. [언문]
성종 13/1482/08/11/의정부․육조․대간에게 언문으로 된 글을 보이면서 권경우가 폐비 윤씨를 옹호한 것에 대하여 의논하다. [언문]
성종 13/1482/08/11/대사헌 채수가 윤씨 죄를 언문으로 적고 한문으로 옮긴 일에 대해 대죄를 청하다. [언문2]
성종 13/1482/08/11/대비전에서 폐비옹호를 한 권경우를 징계하라는 언문의 글을 내리다. [언문2]
성종 13/1482/08/12/난신의 동반직 서용 문제와 폐비 윤씨(권 경우 징계를 명한 대비 언문교서)에 대한 일을 논의하다. [언문]
성종 13/1482/08/12/임금이 권경우․채수와 관련된 반은 한문이고 반은 언문인 작은 서간을 내려서 재상들에게 보게 하였다. [언]
성종 13/1482/08/13/이창신이 폐비 일에 관한 한문으로 번역하여 승정원일기에 실었다고 말하다. [언서]
성종 13/1482/08/16/삼전(三殿)이 임금이 폐비를 옹호한 권경우를 벌준 것의 의의를 담은 언문서간을 보내 임금이 대신들에게 들려주다. [언간]
성종 14/1483/05/13/양전에서 손비장을 보내 고기반찬을 먹기를 권해도 임금이 따르지 않자 언서로 다시 설득하여 허락을 받다. [언서]
성종 14/1483/07/13/임금이 언서로 사직 상서에 대한 유감을 승정원에 표명하다. [언서]
성종 14/1483/07/29/서거정․유순․어세겸 등에게 ≪연주시격≫과≪황산곡시집≫을 언문으로 번역하게 하다. [언문]
성종 15/1484/03/01/양전이 안암사 반대 상소에 대해 언문교지≪내지≫로 반박하다. [언문]
성종 15/1484/03/02/안암사 중창(重創) 반대 상소에 대해 재차 언문교지로 반박하다. [언문2]
성종 15/1484/03/13/임금이 내관에게 명하여 홍문관의 소를 양전에게 아뢰게 하자 양전이 절문제는 법으로 보나 정황으로 보나 문제없다는 언문 답을 내리다.
성종 15/1484/03/15/대간을 불러 안암사 중창(重創)에 대한 두 대비전의 언문을 보이다. [언문]
성종 16/1485/05/29/제안 대군 이현이 첫 부인 김씨와 다시 결합하기를 희망하는 언문서를 올리자 한문으로 번역하여 승정원에 올리다. [언문]
성종 16/1485/07/05/임금이 홍문관의 상소에 대해 언서로 의정부에 유시하다. [언서]
성종 16/1485/07/17/호조 판서 이덕량 등이 저자 사람들의 언문 투서(익명서) 두 장을 바치다. [언문]
성종 16/1485/08/02/임금이 불량한 무리들이 재상을 비방하는 언문 투서(익명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다. [언문]
성종 16/1485/09/21/언문 투서(익명서)로 의금부에 갇힌 사람 가운데 언문을 해석할 수 있는 16인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풀어 주도록 하다. [언문]
성종 16/1485/11/09/저자 사람들이 언문으로 호조 당상을 욕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언문2]
성종 16/1485/11/10/㉠종의 아들 유막지는 언문을 잘 쓴다 ㉡저자 사람들의 언문 투서(익명서)는 용서할 수 없다. [언문2]
성종 16/1485/11/12/저자 사람 추국에서 언문을 쓸 때에 가서 참여한 사람의 수와 좌석의 차례가 어긋나고 동일하지 않아 정실을 얻는 데에는 오히려 미진하다. [언문]
성종 16/1485/11/14/유막지가 내가 언문을 아는데 왜 빌려썼겠는가라고 말하다. [언문2]
성종 16/1485/11/17/유막지가 언문투서로 대신을 비방했는데 이를 어찌 처리할지를 묻다. [언문]
성종 16/1485/11/22/유윤동이 언문을 쓴 것이 정실에서 나온 것이고 허위로 자복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다. [언문]
성종 18/1487/02/02/세종조에 신숙주․성삼문 등을 보내어 요동에 가서 황찬에게 어음과 자훈을 질정하게 하여 ≪홍무정운≫과 ≪사성통고≫ 등의 책을 이루었음을 회고하다. [운서]
성종 19/1488/09/20/≪향약집성방≫에서 일상에 절실한 것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민간에 펴게 하다. [언문]
성종 21/1490/04/01/≪삼강행실도≫의 보급에 대해 명하다. [삼강행실도]
성종 21/1490/11/13/정희의 종 남편 정의손이 수춘군 아내가 가져온 언문 서장을 한문으로 바꾸어 금부에 올리고, 같이 올린 언문 장초도 정의손이 지었다. [언문2]
성종 23/1492/11/21/임금이 양전의 중 문제에 대한 언문 한 장을 내려서 승지에게 한문으로 번역하여 대간 등에게 보이게 하다. [언문]
성종 23/1492/11/25/대비의 언간을 대간과 홍문관에게 보이게 하다. [언간]
성종 23/1492/12/01/성균관 생원 박신원 등이 중을 금하는 법을 빨리 회복시키기를 아뢰면서 양전의 언서를 통한 정치 간여를 비판하다. [언서]
성종 23/1492/12/02/대비가 허종과 유지에서 법에 따라 잘못된 불교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는 언문 교지를 내리다. [언문]
성종 23/1492/12/02/부제학 안침 등이 대비의 언서를 통한 정치 간여가 부당함을 아뢰었으나 임금이 양전을 옹호하다. [언서3*언간]
성종 23/1492/12/03/대비의 언서를 통한 정사 간여가 정치 간여가 아니라고 임금이 말하다. [언간]
성종 23/1492/12/04/성균관 생원 이목 등이 일곱 조목에 걸쳐 상소하자 대비의 언간을 못본 신하들은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하다. [언간]
성종 25/1494/04/02/≪안기집≫의 수우경을 속히 번역․반포하여 우마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라고 승정원에 명하다. [번역]
성종 25/1494/07/10/존금이 통간 관계로 임광재에게 언문 편지를 보내다. [언문]
❀연산
연산 01/1495/01/02/왕대비가 성종의 효성에 대해 언서 교지를 내리다. [언서]
연산 02/1496/01/01/계금이 이귀종에게 언문 편지를 보내다. [언간]
연산 02/1496/03#02/유인홍이 첩에게 언문편지로 살인사건 조작을 하다. [언간3]
연산 02/1496/03#08/유인홍 첩이 딸을 죽였는데 첩에게 언간을 보내 딸이 실행으로 자살했다고 발명하라고 알려주다. [언간]
연산 02/1496/03/29/유인홍에 첩에게 언문편지로 살인사건을 조작하다. [언간3*언서]
연산 10/1504/04#05/폐비 일 때 언문을 쓴 자는 나인인데 상고할 수 없고 언문을 가져온 자는 노공필, 상준이었다. [언문2]
연산 10/1504/04#16/폐비의 일에 언문을 번역한 자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다. [언서]
연산 10/1504/04#17/폐비 관련 언문 글을 번역한 이는 채수․이창신․정성근, 언문을 펴 읽은 이는 안중경, 풀어보인 이는 강자평이었습니다. [언서*언문2]
연산 10/1504/04/01/김괴가 궁중 비밀을 유출한 궁인을 고발하여 원안군 이수와 집안사람을 국문하고 나읍덕을 능지 처형하고 언문이 궁중에 들락거리지 않도록 하다. [언문]
연산 10/1504/07/19/신수영이 언문으로 된 투서(익명서)를 비밀히 아뢰다. [언문]
연산 10/1504/07/20/투서(익명서)의 일로 언문을 배우거나 쓰지 못하게 하다. [언문2]
연산 10/1504/07/20/언문을 아는 자를 적발하여 하나하나 쓰게 하여 봉해 내린 글과 비교하여 살피라고 했다. [언문]
연산 10/1504/07/22/언문으로 구결 단 책을 불사르되 한어를 언문으로 번역한 것은 금하지 말라. [언문3]
연산 10/1504/07/23/오부 중에 언문 아는 자들 글씨 시험하였으나 비슷해 못 가리자 유순 등이 익명서의 필적을 알아내는 자에게 상 주기를 청하다. [언문]
연산 10/1504/07/25/언문과 한자를 아는 자들로 하여금 각각 4통씩 써서 책을 만들어 의정부, 승정원, 사헌부, 대내에 보관하게 하다. [언문]
연산 10/1504/07/27/정승과 승지 등이 언문 아는 사람들에게 언문을 베끼게 한 뒤 익명서의 필적을 대조하다. [언문2]
연산 10/1504/08/02/승지 박열 등이 오부 사람들이 쓴 언문을 임금께 보고(入啓)하자 성밖까지 조사하게 하다. [언문]
연산 10/1504/08/05/김인령의 종 장내은산이 주인집 아들이 언문을 알고 있다고 무고하니 신문하게 하다. [언문2]
연산 10/1504/08/05/나지와 만년이 언문을 태웠다는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하니 그를 형신(刑訊)하라고 하면서 익명서는 임금의 악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여, 죄수 중 의심스러운 자를 심문케 하다. [언문]
연산 10/1504/08/10/심문결과 두 종이 향도(香徒, 상여군)가 되어 언문을 판에 썼다가 태워버리다. [언문2]
연산 10/1504/08/11/심문 결과에, 이윤형․이윤선이 이윤청 집에서 언문 사건으로 그 종을 결박하는 걸 보고 고발했다고 하다. [언문]
연산 10/1504/09/07/풍천부사가 수상한 사람을 조사하여 언문책 두 권을 얻었는데 이극균 윤필상 조지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언문]
연산 10/1504/09/18/≪삼강행실≫을 내리며 서견․혜소 같은 충신을 구하고자 전교하다. [삼강행실도]
연산 10/1504/11/18/익명 투서 사건으로 이창신이 폐비일을 언문으로 옮긴 것을 언급하다. [언문]
연산 10/1504/12/10/병조 정랑 조계형에 명하여 언문으로 역서를 번역하도록 하다. [언문]
연산 11/1505/03/09/≪명황계감≫을 대내에 들이게 하다. [명황계감]
연산 11/1505/05/22/한곤이 첩 운평에게 보낸 언문 편지가 발각돼 언서의 죄율로 한곤을 잡아들이게 하다. [언서2]
연산 11/1505/05/24/한곤이 첩 채란선에게 뽑히지 않게 꾸미지 말라고 언문편지를 보낸 죄로, 그를 능지하고자 하다. [언간]
연산 성종 1505/06/18/ 이11/창때신이 정희왕후의 폐비죄상언문을 한문으로 번역한 데에 대해 해외에 이배하도록 하다. [언문2]
연산 11/1505/09/15/궁인의 제문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의녀를 시켜 읽게 하다. [언문]
연산 11/1505/11/18/악장을 새로 지어 진서와 언문으로 번역하여 흥청 등으로 학습하게 하여 틀리면 벌을 주게 하다. [언문]
연산 12/1506/05/29/양천을 막론하고 언문을 아는 여자를 뽑아 들이게 하다. [언문]
연산 12/1506/06/01/새로 뽑힌 흥청 등을 위하여 어전의 존칭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분포하게 하다. [언문]
연산 12/1506/06/24/대비의 탄일 전문을 언문으로 번역하게 하다. [언문]
연산 12/1506/07/28/몰래 언문 편지를 암통한 흥청을 죄에 처하게 하다. [언간]
❀중종
중종 01/1506/09/04/언문청을 혁파하다. [언문청]
중종 01/1506/11/02/사온서 주부(主簿) 우행언(禹行言)은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강송(講誦)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삼강행실]
중종 02/1508/08/27/㉠이과(이창신아들)가 윤탕로에게 언서를 보내 공신으로 책정될 수 있도록 청하다 ㉡이과 어머니가 재상가에 편지를 넣어 이청신의 공적을 되돌려 받으려 했다. [언서2*언간]
중종 04/1509/09/11/철비가 언문으로 사천을 면해줄 것을 상언함에 추고하여 죄를 다스리다. [언자]
중종 05/1510/01/04/≪삼강행실≫을 팔도에 반사(頒賜)하다. [삼강행실]
중종 06/1511/08/28/삼강행실의 반포를 전교하다. [삼강행실]
중종 06헌1511/09/02/부가 채수가 지은 설공찬전이 한문이나 언문으로 번역하여 퍼지는 일에 대해 탄핵하다. [언어諺語]
중종 06/1511/10/20/삼강 행실 2천 9백 40질을 반포하다. [삼강행실]
중종 06/1511/12/01/명황계감을 안에 들이라 명하다 . [명황계감]
중종 07/1512/10/08/≪삼강행실≫의 반포를 전교하다 . [삼강행실]
중종 07/1512/12/04/찬집청이 환관 김처선과 김순손의 실적을 ≪속삼강행실≫ 편찬과 관련하여 물음에 실을 필요없다고 전교하다 . [속삼강행실]
중종 08/1513/02/02/의정부에 내렸던 검박을 권장한 언문 번역 책을 정원에 내리다. [언문2]
중종 08/1513/02/06/임금이 의정부에 검소를 권장하는 교지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부녀자와 어린이로 하여금 모두 알게 하라고 지시하다. [언문]
중종 08/1513/02/28/≪삼강행실≫ 찬집(撰集)에 충절을 수록토록 전교하다. [삼강행실]
중종 09/1514/04/02/≪삼강행실≫을 속찬할 때 반정 후의 일도 수록하고 여항의 우민도 알 수 있도록 언문 번역 인쇄 글자를 크게 하도록 하다. [언자]
중종 09/1514/04/04/1513년 왜란 때 잡혀간 영등포 만호 양지손의 첩과 수종 여자 3인이 대마도에서 언간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여 쇄환(刷還)하기로 하다. [언간]
경오년 왜란 때에, 영등포 만호 양지손(梁智孫)의 첩과 수종하던 여자 세 사람이 포로로 잡혀 대마도에 있으면서 언간을 보내어 돌아오기를 희망하다.
중종 09/1514/04/14/≪언해의서≫를 정원에 내리고 약을 만들어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 [언해*언문]
중종 09/1514/06/27/신용개 등이 ≪속삼강행실≫을 펴내다. [속삼강행실]
중종 10/1515/03/23/박씨 부인에게≪소학(小學)≫․≪내훈(內訓)≫의 여러 편을 가르쳤는데, 드디어 경서와 사기를 통달하여 크게 행신에 드러났다. [소학*내훈]
중종 10/1515/05/21/≪삼강행실≫을 나누어 주는 일에 관해 계획을 세우도록 전교하다. [속삼강행실]
중종 10/1515/06/09/불교를 혹신(惑信)하는 일로 개성부에 ≪삼강행실≫을 더 많이 보내도록 하다. [삼강행실]
중종 11/1516/08/08/세종조 때 헌부 문에 법사를 비난하는 언서 투서(익명서)를 붙이다. [언서]
중종 12/1517/06/27/홍문관에서 특수한 일을 다룬 ≪삼강행실≫보다는 일상사를 다룬 ≪소학≫, ≪열녀전≫, ≪여계≫, ≪여측≫등을 언문으로 번역․반포하여 교화할 것을 아뢰니 따르다. [언자]
중종 12/1517/08/27/정순붕 등이 이학(소학, 속삼강행실)을 숭상하지 않는 풍습을 교정하도록 아뢰다. [속삼강행실*소학]
중종 12/1517/12/28/천재로 인해 ≪소학≫․≪삼강행실≫을 반포하여 교화에 힘쓰도록 하다. [삼강행실*소학]
중종 13/1518/04/01/㉠≪여씨향약≫을 사람들이 보는 즉시 이해할 수 있게 언해하다 ㉡≪정속(正俗)≫을 번역하였다 ㉢≪벽온방≫도 세종조에 이어로 번역하여 인쇄 반포한 적이 있는데 희귀해져 언해를 붙여 개간하였다 ㉣≪창진방≫도 번역 개간한 적이 있으나 경향에 반포하지 않아 경상도에 가져 가 간행 반포하다. 성종조 전례에 따라 개간하여 널리 반포해달라고 하다. [언해4*언자]
중종 13/1518/06/19/한충이 시골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는, 김안국이 교정한 ≪향약≫을 널리 간행 반포하기를 아뢰다. [언해]
중종 14/1519/03/03/금부에서 김우증 문초에서 김우증의 언문 해득 여부가 문제가 되다. [언문2*언자]
중종 14/1519/03/03/유담년․조원기․민숭영에게 김우증이 언문을 해득하는지를 물으니 해득하지 못한다고 답하다. [언문]
중종 14/1519/03/04/조광조․신용개 등이 김우증에게 난언율로 논단하니 우증은 언문을 모르니, 전교하여 가하다고 하다. [언문]
중종 14/1519/03/04/화살에 맨 글이 반은 예서이고 반은 언문이었으므로 증험(證驗)하고자 하여 우증을 시켜 언문과 예서를 각각 몇 줄씩 씌워 비교해 보니 현격하게 서로 같지 않았다. 종들도 주인이 모른다고 하니 우증의 소위가 아닌 것 같다. [*언*2언서]
중종 14/1519/04/22/시강관 이청이 여사(女史)를 두어 언문으로 기록해도 무방하다고 주청하다. [언서]
중종 14/1519/12/29/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중종이 홍경주에게 내린 밀지에 언서를 섞은 글이 있다. [언서]
중종 16/1521/01/24/주청사 신상과 한효원이 경사에서 돌아와 포르트칼 사람과 만나 그들 책을 보니 언문과 비슷했다고 말하다. [언문]
중종 16/1521/10/11/송사련이 안처겸 등을 역적 모의로 고변한 내용에 대영공(大令公) 논계할 것을 언간으로 써서 임금께 보고(入啓)했으므로 상이 윤허할 것이라고 말하다. [언간]
중종 16/1521/10/14/권전․안처겸을 형장 심문한 내용 중에 언간이 언급되다. [언간]
중종 17/1522/02/25/≪황후내훈≫을 인출함에 준거할 책으로 내장본 한 권을 내 주다. [내훈]
중종 17/1522/12/15/자전이 언서로 대신들에게 상사를 당해서는 주상과 세자가 약하니 상사의 예제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다. [언서]
중종 19/1524/02/28/예조가 세자 친영 ≪의주≫와 ≪책빈의주≫를 언문으로 번역하라는 임금 전교에 대해 최세진을 추천하다. [언문]
중종 20/1525/01/23/새로 초록(抄錄)한 ≪속벽온방≫을 정원에 내리면서 전례대로 인쇄하고 그 전에 일단 필사본을 함경․평안도에 내려 보내게 하다. [언해]
중종 22/1527/04/07/대신들을 불러 세자에 대한 양법(兩法) 범인을 색출하는 문제를 논의하며 “자수하는 자는 죄를 면해주고 알면서도 고하지 않은 자는 죄준다.”는 포고절목을 언문으로 바꿔 써서 내외에 방을 붙이기로 의견을 내다. [언문]
중종 22/1527/04/14/자전이 세자에 대한 양법(兩法) 사건의 관련자로 경빈을 지목하여 대신들에게 언문으로 알려주다. [언문]
중종 23/1528/06/16/≪명황계감≫을 교서관과 문무관에서 전질이 갖추어진 것으로 궐내로 들이게 하다. [명황계감]
중종 23/1528/12/27/속삼강행실의 추가 편집을 전교하다. [속삼강행실]
중종 25/1530/08/23/임금이 대행왕대비(고 중종 어머니)가 언문으로 대략 써 놓은 비망기(備忘記)를 예조에 내리다. [언서]
중종 25/1530/09/07/대행 대비 정현 왕후가 언찰로 추관에게 나인들을 벌주게 하다. [언찰]
중종 28/1533/05/18/영의정 정광필 등과 익명서 사건을 의논하다 연산군 때의 언문 익명서가 언급되다. [언문]
중종 28/1533/05/20/김형경의 집에는 딸에게 보냈다는 언문편지가 있었다. [언간2]
중종 28/1533/05/21/정원에 의금부의 추안(推案)에서 거론된 언문 편지의 여인 은이는 죄인 동생이라 추방했다. [언간]
중종 29/1534/05/10/남효문의 아내와 남순필의 집에 금부 낭관과 내관을 보내어 언문 편지를 수색하게 하다. [언간]
중종 29/1534/05/11/ 언문 편지를 주고 받은 남효문(南孝文) 집안의 치정 사건을 수사하다가 두 부대의 언문 편지를 찾아내다. [언간2]
중종 29/1534/06/04/윤풍형이 위관의 의견으로 옥사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음을 아뢰면서 남순보 집 수색에서 찾아낸 언문편지를 얘기하다. [언간]
중종 31/1536/05/10/대제학이 언문으로 번역한 삼강행실도 등이 출판한 지 오래되어 얼마 남아 있지 않아 다시 출간하여 백성을 교화시킬 것을 건의하다. [언어]
중종 31/1536/05/12/≪삼강행실도≫․≪위선음즐≫․≪명신행신록≫ 등의 책은 다만 지방의 궁벽한 시골 사람들을 위해 언문으로 번역하여 두루 알리자고 상소하여, 성종이 여러글 가운데 본받을 만하고 경계할 만한 자취를 찬집(撰集)하여 별도로 책 한 권을 만들어 언문으로 번역하라고 지시하다. [언문3*언서]
중종 31/1536/05/12/≪삼강행실도≫․≪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위선음즐(爲善陰)≫을 함께 펴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모으다. [삼강행실도*명신언행록*위선음즐]
중종 31/1536/05/12/≪삼강행실도≫․≪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위선음즐(爲善陰)≫ 간행을 의논하게 하다. [삼강행실도*명신언행록*위선음즐]
중종 33/1538/07/07/예조 판서 김안국이 ≪이륜행실도≫를 간행하여 반포할 것을 아뢰다. [이륜행실도]
중종 34/1539/05/17/최세진이 앞서도 올렸던 언해한 ≪효경≫․≪소학≫․≪훈몽자회≫․≪사성통해≫ 같은 책들을 또 올리다. [언해]
중종 34/1539/05/21/중 은수 공초에 서울 사는 내수사의 노비 윤만천이 언문으로 된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다고 하다. [언간]
중종 34/1539/06/04/임형수가 아뢰기를 젊어서 산사에 있을 때 중들이 궁궐내 원당과 언문 서찰을 주고받았음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언찰]
중종 34/1539/10/18/임금이 ≪용비어천가≫ 1권을 정원에 내리며 ≪경국대전≫에 있는 태조에 관한 내용의 차이에 대하여 의논하다. [용비어천가2]
중종 34/1539/11/19/주양우가 언문을 중국인에게 가르쳐 준 사건이 있어 사신에게 누설하지 말 것을 당부하다. [언자]
중종 34/1539/11/22/중국인에게 언문을 가르친 주양우를 추국하여 벌을 주다. [언자2]
중종 35/1540/01/24/동지사 성세창이 아뢰기를 언로가 막혀 있어 무사같이 한문을 모르는 자가 언문으로 의견을 쓰면 웃음거리가 된다고 하다. [언서]
중종 37/1542/02/10/한어에 정통했던 최세진이 죽었는데 그의 저서에는 ≪언해효경≫, ≪훈몽자회≫, ≪이문집람≫ 등이 있다. [언해]
중종 38/1543/02/24/삼공이 외척의 당류에 대한 사론과 패륜에 대해 의논하면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을 이미 번역하여 반포했음을 얘기하다. [번역*언해]
중종 38/1543/06/22/주양우가 북경에 갔을 때 중국인에게 언문을 가르친 잘못이 언급되다. [언문]
중종 38/1543/07/22/김인후․이언적이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데에 ≪소학≫, ≪향약≫, ≪삼강행실≫ 등을 통해 유념할 것을 건의하다. [소학*향약]
중종 39/1544/03/14/평안도 관찰사의 서장에서 죄인 김세필이 악인들과 밀약한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인종
인종 01/1545/01/24/이조 참의 홍춘경이 지은 중종의 지문: 1523년에 ≪언해소학≫을 인쇄하여 중외(中外)에 펴내게 하셨는데, 여염의 아낙네와 아이들도 다 알 수 있게 하려 한 것이다. [언해]
인종 01/1545/07/04/중전이 대행왕의 유교를 언문으로 써서 내려 보이다. [언서]
인종 01/1545/07/04/중전이 쓴 대행왕의 언문유교를 한문으로 조정에 공포하다. [언서]
❀명종
명종 00/1545/07/21/원상 이언적이 ≪소학≫을 언해, 인출하여 경연에서 진강(進講)하고 널리 펼 것을 청하다. [언해]
명종 00/1545/07/21/왕대비가 궁중에서의 가언(嘉言)․선행과 유언이 담긴 언서 두 폭을 빈청(賓廳)에 내리다. [언서]
명종 00/1545/07/25/윤인경 등이 10개 조항의 경계문을 언문으로 언해하여 자전께 올리다. [언해]
명종 00/1545/08/23/영의정 윤인경 등의 건의에 대해 왕대비가 언문 교서로 답하다. [언서]
명종 00/1545/08/28/내간에서 은밀한 언문편지가 오가다. [언서]
명종 00/1545/08/28/대비가 은밀한 언문 편지를 이기에게 보냈는데 유인숙에게 잘못 전달되었다. [언자2*언서]
명종 00/1545/09/06/논난(論難)의 공초에 윤임 딸이 언문 서간을 숙의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언간])
명종 00/1545/09/07/왕대비가 언간으로 왕의 병에 대해 말하다. [언간*언자]
명종 00/1545/09/08/윤임이 언서로 비밀하게 통하다. [언서]
명종 00/1545/10/10/유인숙이 언간으로 발의․논박한 사건이 언급되다. [언간]
명종 00/1545/10/14/시위 궁인들이 언문으로 윤인경, 이기에게 산릉 흙에 대해 아뢰다. [언서]
명종 01/1546/06/09/백성의 교화를 얘기하며 중종 조 때 ≪번역 소학≫, ≪삼강행실≫을 반포했으나 풍속을 문란하게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으나 거듭 시행해야 함을 아뢰다. [번역]
명종 02/1547/09#18/호산군 송세형이 밀계하여 임금을 저주한 익명서에 나오는 전성정 등을 추국하였으나 혐의가 없어 석방하다. [언간2*언문]
명종 02/1547/09#28/대사간 이명 등의 상차에 송세형의 언문 밀계가 언급되다. [언서]
명종 04/1549/06/22/갑사 전석정이 언문으로 쓰여진 작은 책을 가지고 와서 고변하다. [언서]
명종 04/1549/06/23/전석정이 바친 언문책≪언서≫을 보니 자신이 쓰고서 남이 쓴 것으로 무고한 것임을 사투리 내용으로 알 수 있다. [언서2]
명종 06/1551/03/21/정학원정인 이수복이 경연과 관학에서 경서를 ≪동국정운≫에 의거하여 읽어 자운의 오류를 없앨 것을 청하다. [동국정운2]
명종 06사1551/10/24/신의 언급에 이기 언서를 별감이 유인숙에게 잘못 전달된 사건을 평하다. [언서]
명종 07/1552/10/13/오랑캐에게 잡혀간 성인우가 상황을 언서로 보내다. [언서]
명종 07/1552/10/23/승정원에서 죄수 연정의 언문 익명서에 관해 아뢰다. [언서]
명종 08/1553/12/12/윤사철이 언간으로 첩 의수에게 맹세하다. [언문2*언간3]
명종 09/1554/03/16/≪삼강행실≫을 중외(中外)에 반포할 것을 전교하다. [삼강행실]
명종 09/1554/11/25/언문으로 번역한≪구황촬요≫를 중외(中外)에 널리 반포하여 집집마다 알게 하도록 할 것을 진휼청이 아뢰다. [언자]
명종 10/1555/04/23/중 보우가 자주 언서로 대왕대비에게 청탁하다. [언서]
명종 11/1556/10/08/한리 학관 임기 상소에 바닷가 사람들이 중국 지방에 표류할 경우 신표의 언문 때문에 살해당하는 경우가 있음을 아뢰다 . [국문]
명종 14/1559/11/09/중 성청이 언문 사찰을 위조한 것이 금원군 이영과 관련되다. [언서]
명종 15/1560/04/13/중 성청이 자전의 언문 서찰을 위조 경상도 관찰사에게 압력을 가하다. [언서]
명종 18/1563/11/06/양사가 전 군수 고경명이 이양의 심복이면서 옥당이 이양을 논박할 때는 언서로 몰래 탄핵하였음을 고발하다. [언서]
명종 19/1564/04/14/별감 문희준 공초에 불순한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명종 20/1565/04/06/대왕대비가 언서 유교를 내리다. [언서]
명종 20/1565/09/15/중궁이 언문 교지로 임금 위독으로 감형을 명하다. [언서3]
명종 20/1565/09/16/이준경 등이 이양․윤원형 등의 감형에 관하여 중전에게 아뢰자 중전이 언서로 알았다고 답하다. [언서]
명종 20/1565/09/17/㉠영평부원군 윤개 등이 언서로 중전에게 국본을 아뢰다 ㉡중전이 언서로 답하다. [언서4]
명종 20/1565/09/18/㉠영의정 이준경 등이 후사에 관하여 중전에게 아뢰다 ㉡중전이 언서로 답하다. [언서2]
명종 20/1565/09/19/㉠대신 등이 중전에게 후사에 관하여 아뢰자 ㉡중전이 언서로 답하다. [언서*언문]
명종 20/1565/10/10/김귀영 등의 상소에 내인의 언문 편지가 절간에까지 전달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나오다. [언서]
명종 22/1567/03/12/대비전이 영의정 등에게 후손 문제에 대하여 언문 교지를 내리다. [언자]
명종 22/1567/03/14/사헌부가 의전의 언서와 관련하여 상례의 상고와 관련한 관원들을 파직할 것을 청하다. [언서]
명종 22/1567/06/27/중전이 언서로 죄수 석방에 대해 정원에 하교하다. [언서2]
❀선조
선조 01/1568/07/12/홍문관 상소에 답하면서 석상궁 관련 언문 선수 03/편지와 관련해 처벌할 수 없다고 하다. [언서]
선조 03157004/01/홍문관 상차에 윤원형이 윤임 일파를 몰아내기 위해 날조한 언문 편지를 다시 날조하여 대궐 뜰에 떨어뜨려 문정 왕후의 마음을 동요시켰음을 언급하다. [언서]
선조 03/1570/07/10/양사가 인종․명종 때의 일을 바로잡기를 청하면서 명종 때의 언서를 통한 조작 사건을 언급하다. [언서]
선조 06/1573/02/25/인쇄한 ≪황화집≫․≪내훈≫이 흐릿하자 담당관을 추고하다. [내훈]
선조 06/1573/02/26/제조 유희춘이 ≪내훈≫․≪황화집≫의 부실을 이유로 사직하다. [내훈*황화집]
선조 06/1573/03/17/조강에서 내훈 출판 문제가 논의되다. [내훈]
선조 06/1573/03/17/형조가 교서관에서 ≪내훈≫․≪황화집≫을 잘못 낸 데 대한 법적용을 논하다. [내훈]
선조 06/1573/04/12/조강에 유성룡 등이 인재 배양, 현릉 수호군, ≪내훈≫․≪학부통변≫ 출판을 논하다. [내훈]
선조 06/1573/04/12/임금이 ≪학부통변≫의 개간과 ≪내훈≫을 더 찍으라고 교서관에 전교하다. [내훈]
선조 06/1573/05/04/공의전이 장사를 검소히 할 것, 주상은 고기를 먹을 것 등을 언서로 유교하다. [언서]
선조 06/1573/07/11/약방 제조 권철이 자전께서 언서로 약방에 하유함에 안부를 전하다. [언서]
선조 06/1573/11/04/심의겸이 ≪가례≫와 ≪번역소학≫을 인출하기를 청하다. [번역]
선조 07/1574/10/10/임금이 유희춘이 정한 사서와 경서의 구결과 언석을 높이 평가하다. [언석]
선조 07/1574/10/19/유희춘이 임금 명으로 사서와 오경의 구결과 언해를 상정하였으나 어려움을 호소하고 이황이 교정한 사서․오경의 구결․언해에 관한 설명을 참고할 것을 아뢰다. [언해2]
선조 08/1575/01/07/대신들이 공의전에 나가 위로하니 언서로 답하다. [언서]
선조 08/1575/01/18/2품 이상의 신하들이 공의전에게 육식을 청했으나 공의전은 오히려 주상을 걱정하는 언문을 내리다. [언문]
선조 08/1575/02/15/공의전이 고기를 권하니 상이 물리치고 받지 않아, 대신들에게 걱정하는 언서를 내리다. [언서]
선조 08/1575/02/30/악방 제조가 공의전을 문안하니 공의전이 언서로 병증을 설명하다. [언서]
선조 08/1576/02/30/삼공이 공의전을 문안한 일로 상께 아뢰면서 공의전 언서 2통을 등봉하다. [언서]
선조 09/1576/08/04/윤두수는 임기가 중국 사신으로 가면서 언문으로 번역된 ≪소학≫을 가지고 간 것은 중국 사신의 질문에 대답할 적에 단지 참고해 보기 위한 것이었으나, 임기는 이 언문을 중국 사신에게 보여 죄 없는 사람을 죄에 얽어 넣는 결과가 발생해 임기를 벌줄 것을 청하였으나 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언역*언문]
선조 10/1577/04/01/양사가 전 군수 고경명이 이양의 심복이면서 옥당이 이양을 논박할 때는 언서로 몰래 탄핵하였음을 고발하다. [언서]
선조 10년1577/05/01//유희춘은 만년에 교지를 받들어 ≪경서구결언석≫․≪선주대학석의≫를 찬정(撰定)하였다. [언석]
선조 10/1577/11/28/공의전이 졸곡(卒哭) 후 오사모․흑각대를 쓰고, 의녀를 추문하지 말 것을 언서로 전교하다. [언서]
선조 17/1584/01/01/이이는 살아생전에 비복에 이르기까지 훈사(訓辭)를 만들어 언문으로 번역해서 가르쳐 규중이 관청같았다. [언역]
선조 18/1585/02/??(□□/조목이 서울에 와서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번역 교정 책임은 못 맡겠다고 아뢰다. [번역]
선조 20/1587/12/25/교정청이 사서와 삼경의 교정을 끝냈음을 아뢰면서 ≪대학≫은 언문(방언)이 지리한 것 같고 글의 뜻을 도리어 손상시키기에 개정했다고 하다. <방언*사서*삼경>
선조 21/1588/10/29/지난 갑신년에 교정청을 설치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을 모아 사서삼경의 음석을 교정하고 아울러 언해를 달도록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모두 마쳤다. [언해]
선조 25/1592/08/01/황해도에 내리는 교서(한문)를 의병장이나 감사 등에게 언문으로 번역하게 하여 촌민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작성하라고 전교하다. [언서]
선조 25/1592/08/19/언서로 방문을 써서 송언신과 유성룡에게 보내라고 전교하다. [언서2]
선조 25/1592/09/04/칙서를 반포하되 언문으로 베껴 함경도에 많이 보내라고 전교하다. [언서]
선조 25/1592/10/02/왕자와 김귀영․황정욱․황혁 등이 왜통사에게 뇌물을 써서 왕자를 구출하겠다는 언서 비밀문서를 보내와 그대로 따르게 하다. [언서]
선조 26/1593/03/16/적중에서 윤백인에게 보낸 이영의 언문 편지를 대신에게 보이고 선전관을 보내 처단하라고 이르다. [언서2]
선조 26/1593/03/17/사헌부가 한극함은 언문 편지 외의 죄도 중하여 국문하여 정하라고 청하다. [언서]
선조 26/1593/06/28/예조 참의 이관이 송산의 시체를 봉심(奉審)하고 의견을 아뢰였는데 나인과 덕양 부인이 언서로 기록한 용모를 참조하다. [언서]
선조 26/1593/07/11/명종의 후궁인 숙의가 사명(使命)이 이곳을 지날 적에 종을 시켜 언문 편지를 보내어 기아(飢餓)를 호소했다. [언찰]
선조 26/1593/08/02/황정욱 공초에서 황정욱이 긴 글(한문)을 지어 한극함과 군관 이장배를 시켜서 정서하게 하고 또 언문으로 번역하여 통사 함정호를 시켜 일본군 적중에 선포하게 하였다고 진술하다. [언서]
선조 27/1594/05/17/≪기효신서≫를 언문으로 번역하는 낭청 한교가 상을 당했으나 기복(起復)시켜 일을 마치게 할 것을 아뢰다. [번역]
선조 27/1594/08/25/유 총병을 좇아 중국으로 들어간 조선인을 쇄환(刷還)시키기 위해 방문을 언문으로 번역해 따라간 조선인들을 설득하도록 하다. [언문]
선조 27/1594/09/04/비변사가 왜적을 이간시킬 계책을 아뢰면서 관련 문서를 일본 정탐을 우려하여 언서로 한다고 하다. [언서2]
선조 27/1594/10/24/소학언해, 주역언해 등을 들이라고 하였으나 홍문관에서 책들이 더럽고 떨어지기도 해 다시 장정하여 들이겠다고 보고하다. [언해2]
선조 27/1594/12/20/비변사가, 이시발이 적진에서 정탐할 조목을 언서로 번역해 가는 것이 좋음을 아뢰다. [언서]
선조 28/1595/05/28/두루 알도록 하라는 교지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 꾸짖다. [*언*]
선조 29/159612/08/포수와 살수의 교육방법으로 기효신서 번역 문제를 훈련도감이 아뢰다. [번역]
선조 31/1598/06/03/요시라는 본래 대마도 사람으로 언자를 잘 알고 있는 간사한 사람이다. [언자]
선조 32/1599/04/15/전 형조 좌랑 강항이 상소하기를, 일본 제판(題判)에 쓰여 있는 일본 언문을 등사(謄寫)하였음을 아뢰다. [언서2*언록]
선조 32/1599/06/16/정원이 중국에 끌려가 있는 조선인들 가운데 유대춘이란 자의 언서 1통에 관해 아뢰다. [언서2]
선조 33/1600/02/03/외방 책 수집은 반포 의도에서이고 ≪사서언해≫등을 구할 수 없어 안타깝고 이 책의 활자로 인출한 ≪손자(孫子)≫․≪병요(兵要)≫ ≪십구사략≫ 2∼3건과 ≪양몽대훈≫․≪훈몽자회≫등의 책도 구하고 싶다. [언해]
선조 33/1600/07/03/좌의정 이헌국이 대행 왕비 언문 유교에 따라 대렴의로 유의를 쓰게 된 연유를 아뢰다. [언서]
선조 33/1600/09/01/의금부 건의에 따라 여러 대신들이 황백인 부자의 언문 소장(언서)에 대해 논의하다. [언서3]
선조 34/1601/09/05/홍문관이 상이 분부한 ≪주역≫의 언해가 어려움을 아뢰다. [언해]
선조 34/1601/10/19/오억령이 ≪시경≫과 ≪서경≫을 언해하려 하지만 변란 전에 인출한 것이 외방에 있으면 다시 번역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평일 사서를 언해할 때에 함부로 고치지 말라는 전교에 대해 의논하다. [언해2]
선조 36/1603/03/09/양녕대군에 대한 회고: 강관이 진달하는 글은 모두 읽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언문으로 번역한 연후에야 진달하도록 허락하였다. [언어]
선조36/선1603/03/20/조가 ≪황화집유편≫ 완성에 따른 상을 내리자 사신이 ≪희경≫을 언해하기 위한 국설치와 같은 문치보다 무략(武略)이 시급함을 논평하다. [언번]
선조 36/1603/05/13/교서관에서 ≪주역언해≫는 많은 관원들을 모아놓고 여러 가지 서적을 가지고서 상확(商確)하고 절충하여 만들어낸 책이므로 인출하여 반포하기를 아뢰다. [언해]
선조 37/1604/11/01/임금께서 제주 목사 최관의 언간을 보고 그의 어리석음을 들어 전조의 인사오류를 꾸짖다. [언간]
선조 37/1604/11/16/평천군 신잡이 아들 신경희가 윤섬을 체포해 찾아낸 문서를 언급하며 수령인 최관이 언서로 통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언급하다. [언서]
선조 38/1605/01/25/최관공초에 불경부도한 말이 들어있는 언문서간은 자신은 읽을 줄 몰라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다. 사건 처리에 관한 일로 여쭈다. [언서3*언문2*언간2]
선조 38/1605/01/26/위관 기자헌이 최관 윤세침은 언문을 알면서 모른다고 속인다고 아뢰다. [언문*언서5]
선조 38/1605/02/01/최관 언문서간 사건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재령 군수 신경희의 관작을 삭탈하고 성문 밖으로 내쫓다. [언간*언문]
선조 38/1605/02/07/㉠위관 기자헌이 최관․윤세침의 언문 서간을 다시 언급하다 ㉡신경희가 언문서간을 한문으로 제대로 옮기지 않았음을 고발하다. [언서4]
선조 38/1605/02/09/헌부가 언문서간을 한문으로 장황하게 번역하여 보고한 신경희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 진사 초시 관련자 처벌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0/지평 민덕남이 언문서간을 조작한 신경희의 처벌을 청하자 윤허하지 않다. [언서2]
선조 38/1605/02/11/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1/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이질수의 사판 삭제를 청하다. [언서2]
선조 38/1605/02/12/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 이질수의 사판 삭제를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2/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2]
선조 38/1605/02/13/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3/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삭탈관직과 문외 출송, 이질수의 사판 삭제를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4/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 이질수 사판 삭제, 과거장 단속관 파직을 청하다. [언서2]
선조 38/1605/02/14/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 우봉 현령 이경하의 체차를 명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5/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9/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19/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 이질수의 사판 삭제를 청하다. [언서2]
선조 38/1605/02/20/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2]
선조 38/1605/02/21/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1/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2/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3/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3/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5/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 문외 출송, 창고 곡식 담당자 박준 등의 파직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7/간원이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
선조 38/1605/02/29/헌부가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신경희의 국문 관련자 한언침의 삭탈관직 및 문외 출송을 청하다. [언서2]
선조 38/1605/11/03/㉠박진원이 “≪사서≫와 ≪시전≫의 언해를 아직 완간하지 못한 권책과 ≪소학언해≫를 양남의 종이가 생산되는 고을로 하여금 개간하여 반포하게 함이 어떠하겠냐” 고 아뢰자 상이 동의하다 ㉡세자가 ≪상서≫를 진강(進講)하는데 언해가 없으니 ≪상서≫와 ≪예기≫를 현토(懸吐)하고 해석하여 ≪시전언해≫를 개간하듯이 하면 경연에 도움이 있을 뿐 아니라 여염의 훈몽에도 크게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언해5]
선조 38/1605/11/17/함경북도 병사 이시언이 홀적의 정세를 보고하면서 쇄환(刷還)문제를 다룬 언서에 인을 찍지 않아 문제가 되다. [언서2]
선조 38/1605/11/17/전 북병사 짐종득이 오랑캐 하질이에게 언서로 타이르는 글(절목)을 제시하다. [언서*언문]
선조 39/1606/03/03/강원도 암행 어사 박안현이 아전들의 비행으로 언문 첩자가 아랫사람 사이에 나돎을 상소하다. [언서]
선조 39/1606/03/22/헌부에서 언문서간을 찾아내 한문 번역으로 잘못 첩보한 전 군수 신경희․전 한언침 등을 탄핵하다. [언간]
선조 39/1606/05/21/≪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의 반포를 요청하고 순천 부사 이수를 탄핵하는 사헌부의 상소문.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
선조 39/1606/05/24/예조에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의 인출을 요청하다.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
선조 39/1606/06/23/벽서 사건에 관련된 이시정의 면질 답변에서 범인 경오가 살기 위해 네 이름을 끌어들였다는 언서를 보냈다고 했다고 하다. [언서]
선조 39/1606/09/19/실록 인출 후 상격(상격)을 아뢰고, ≪주역언해≫․≪청ᄒᆦ집≫ 등을 간수하게 하다. [언해]
선조 40/1607/10/11/삼공을 불러 세자에서 전위하거나 섭정케 하라는 임금 지시를 중전이 따르라는 언서를 대신들에게 내리다. [언서]
선조 40/1607/10/11/중전이 홍경신에게 언문 교지로 전섭(傳攝) 명령을 따르라고 내리다. [언서]
선조 40/1607/10/11/영의정 유영경 등 삼공이 내전의 언문 내지에 회계하다. [언서]
선조 40/1607/10/11/중전의 언문 내교에 대해 사신이 비판 인정하다. [언서]
선조 41/1608/01/01/정인홍이 세자의 전위와 영의정 유영경을 논박하는 상소 가운데 유영경이 중전의 언서를 비밀로 처리한 것을 비판하다 [언서]
선조 41/1608/01/22/정인홍의 상소로 좌의정 허욱과 우의정 한응인이 대죄하면서 중전 언서를 언급하다. [언서]
❀광해
광해 00/1608/02/07/대비전이 선왕의 원릉을 정한 곳에 자신의 장지를 정하라고 언서 비망기(備忘記)를 내리다. [언서]
광해 00/1608/02/12/자전이 내린 언지를 대전의 계하없이 빈청(賓廳)에 내려 승지 징계를 요구하다. [언지]
광해 00/1608/02/14/능 위치에 대한 대왕대비의 언지에 계자(啓字)를 찍어 빈청(賓廳)에 내리다. [언지]
광해 00/1608/02/21/임해군 관련 사건에서 왕족 이득이 임진왜란 때 임해에게 쌀과 언문 편지를 함께 보냈음을 공초하다. [언간]
광해 00/1608/04/15/추국청에서 몰로의 공초에서 모의자들이 의논과정에서 언문을 보이기도 했다. [언문]
광해 00/1608/07/11/대비가 약방에 언서를 내려 전하의 건강을 염려하다. [언서*언지]
광해 00/1608/07/12/자전이, 주상께서 거처를 동궁으로 옮겨 섭양(攝養)할 것을 언서로 정원에 하교하다. [언서]
광해 02/1610/03/01/≪내훈≫을 모아서 반포토록 홍문관에 전교하다. [내훈]
광해 02/1610/03#18/영천의 진사 박회무가 ≪용비어천가≫를 바치다. [용비어천가]
광해 02/1610/03#22/[용비어천가], ≪내훈≫ 등을 인쇄토록 교서관에 전교하다. [언해]
광해 02/1610/05/05/의금부에서 이홍로의 처 기씨가 언문으로 쓴 단자로 상언하다. [언서2]
광해 02/1610/05/10/의금부 관리들이 이홍로 처의 상언의 일로 대죄를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언서2]
광해 02/1610/09/19/책 인출 순서를 ≪서전언해≫와 ≪내훈≫을 먼저 하고≪용비어천가≫ 등은 나중에 하라고 하다. [서전언해*내훈*용비어천가]
광해 03/1611/01/23/용비어천가를 내리어 교정한 뒤 다시 들여보내게 하다. [용비어천가]
광해 04/1612/01/16/≪시경언해≫와 ≪내훈≫을 교정한 홍문관의 관원의 직급을 올려주고 물건을 내리다. [언해]
광해 04/1612/01/16/≪신정사략≫․≪통감찬요≫․≪시경언해≫를 쓴 사람들에게 미포(米布)를 하사하다. [언해]
광해 04/1612/01/16/사간원이 ≪시경언해≫ 등 교정 작업에 대한 상이 후함을 간하다. [언해]
광해 04/1612/01/18/사간원이 내훈 교정 일로 상이 지나침을 아뢰다. [내훈*시경언해]
광해 04/1612/02/02/사간원이 내훈 교정 일로 상이 지나침을 아뢰다. [내훈*시경언해]
광해 04/1612/02/03/사간원이 내훈 교정 일로 상이 지나침을 아뢰다. [내훈*시경언해]
광해 04/1612/02/05/사간원이 근래 시경언해, 내훈 등의 교정에 대한 상으로 가자한 일의 지나침을 아뢰고 개정을 청하다. [내훈*시경언해]
광해 04/1612/02/05/사간원이 내훈 교정 일로 상이 지나침을 아뢰다. [내훈*시경언해]
광해 04/1612/02/07/사간원이 내훈 교정 일로 상이 지나침을 아뢰다. [내훈*시경언해]
광해 04/1612/06/01/예조의 속삼삼행실 간행 건의를 윤허하다. [삼강행실]
광해 04/1612/06/03/교인도감이 ≪경제육전≫ 인출 의견에 대해 ≪용비어천가≫등을 먼저 간행했음을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광해 04/1612/08/04/개성부 유수 이시언이 김덕겸의 집에 던져진 언문 익명서에 대해 장계(狀啓)하다. [언서2]
광해 04/1612/08/05/추국청이 개성 유수 이시언의 장계(狀啓) 및 언문 익명서를 신중히 처리할 것을 아뢰다. [언서4]
광해 04/1612/08/05/추국청이 개성 유수 이시언이 보고한 언문 익명서에 대해 아뢰다. [언서]
광해 05/1613/08/11/이이첨이 언문을 통해 김상궁 개시로 하여금 임금에게 개진하게 하다. [언서]
광해 05/1613/12/12/홍문관이 효자․충신․열녀의 자료를 모아 간행하는 방법으로 조종조 때의 시찬, 도화, 언해를 언급하다. [언해]
광해 06/1614/01/07/김제남 사건으로 병조 서리 서응상과 대비전 나인이 언문 편지를 주고받은 일로 국문하다. [언서]
광해 06/1614/01/08/서청에 나가 별감 하자징의 언문 편지에 대해 친국하다. [언서]
광해 06/1614/01/10/서청에 나가 김란의 언문 서찰에 대해 친국하다. [언찰]
광해 06/1614/01/12/서청에 나가 김란의 언문 서찰을 문제삼다. [언서]
광해 06/1614/01/25/김란의 언문 서찰 내용을 문제삼다. [언찰]
광해 06/1614/02/12/승정원이 경기 감사가 싸서 보내온 옷깃의 글 언서는 서얼의 수치에 대한 통분과 길터준 성은에 감축함을 담았다. [언서2]
광해 06/1614/02/25/홍문관 부제학 이성 등이 흉악한 언서로 역적질을 한 자를 비호한 정온을 법으로 처단하기를 청하다. [언찰2*언서]
광해 06/1614/04/04/추국청이 김덕룡의 언문 공사에서 왕춘경이 왕치국으로 잘못 기록되었음을 들어 석방을 청하다. [언서*언문]
광해 06/1614/04/09/언문 도목으로 너무 많이 잡혀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석방을 건의하다. [언서2]
광해 06/1614/04/24/심희수가 김덕룡이 언문 도목을 스스로 만들고는 거리에서 주운 것이라 둘러대다. [언서]
광해 06/1614/04/24/행 판중추부사 심희수가 언문도목으로 인한 반역의 옥사 등을 염려하는 상소를 하다. [언서]
광해 06/1614/04/25/김언춘이 포도대장이 인명을 많이 쓰라고 해서 언문도목을 많이 썼다고 공초하다. [언서]
광해 06/1614/04/25/임금이 대장 한희길에게 죄인 김언춘의 언서 문제에 대해 하문하다. [언서2]
광해 06/1614/07/11/찬집청이 효녀 열녀 충신에 관한 책을 펴낼 때 사실 기록과 그림 그리고 언해를 붙이면 기존 책보다 10배나 늘어 예조 공사로 감당하기 어려워 [속삼감행실의] 편찬을 미루기를 건의하다. [언해]
광해 07/1615/02/18/나인 의일공초에 한문과 언문으로 섞어 쓴 것은 별감 하자징이다. [언문*언간]
광해 07/1615/08#02/역변을 고한 죄인 문경천의 공초 내용에서 김경남이 역모 군사 36명의 언문 명단을 언급하다. [언서]
광해 07/1615/08#02/문경천과 김경남의 대질 심문에서 역모 언문 명단이 언급되다. [언서]
광해 07/1615/11/02/찬집청에서 전교한 책자 언해가 끝났음을 아뢰고 교정이 끝나는 대로 책자를 올릴 것을 아뢰다. [언해]
광해 07/1615/11/11/≪삼강행실≫을 편찬할 때 효자․충신․열녀를 자세히 살펴 수록하게 하다. [삼강행실]
광해 08/1616/03/24/인왕산 아래 새 궁궐터 잡는 일에 미친 중성지가 언문으로 풍수에 대해 논했음을 언급하다. [언서]
광해 08/1616/08/23/유간이 정원에 언서를 올리면서 사간원에는 고하지 않은 금부도사의 파직을 청하다. [언서]
광해 08/1616/08/23/이현문이 올린 언서를 대신과 추관들에게 보이다. [언서2]
광해 08/1616/08/23/이현문과 순경을 면질시키고 그들의 죄를 보고하면서 관련 언서를 언급하다. [언서*서*]
광해 09/1617/02/12/포도 대장이 신점과 효업을 체포하였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언서 두 통도 압수하다. [언서]
광해 09/1617/02/13/신점 언서와 관련된 자들의 문초 필요성을 아뢰다. [언서]
광해 09/1617/03/11/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각 지방에서 간행보급하다. [삼강행실]
광해 09/1617/03/19/서적 교인 도감이 삼강행실도를 거두어 유포시키기를 청하다. [삼강행실]
광해 09/1617/10/10/족친위 김계남이 공초에서 언문조차 모른다고 하다. [언서]
광해 10/1618/01/04/우의정 한효순 등 백관이 폐모론을 주장하면서 인목대비가 역적 유영경 등과 결탁하여 언문으로 자기소생을 세우려고 밀지를 주고받은 이유를 들다. [언지]
광해 10/1618/03/16/분병조가 경운궁 안에서 얻은 언서와 한문을 임금께 보고(入啓)하다. [언서]
광해 10/1618/04#09/한찬남이 소명국․김중신․박희룡이 곽영을 언서 서간으로 사주한 일로 아뢰다. [언자*언서]
광해 10/1618/04#09/소명국이 공초에서 자신이 곽영에게 언서와 한문서를 보냈다고 했다. [언서]
광해 10/1618/04/19/박정길이 전라 감사가 죄인 진명생의 일로 동봉한 문서 가운데 언서 가사 2장이 들어 있다. [언서]
광해 10/1618/08/23/하인준의 공초에 황정필이 허균의 역모 관련 언서 익명서를 가지고 왔다고 하다. [언서2]
광해 10/1618/08/23/황정필의 공초에서 자신과 대론소에 참여한 자를 비방하는 붉은 언문 쪽지를 발견하여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불태웠다 하다. [언문]
광해 10/1618/08/29/소명국이 곽영에게 보낸 언서가 자신이 보낸 것이라 자복하다. [언서]
광해 11/1619/12/17/희개(옥지 유모)와 세동이 음간의 언문 편지를 주고 받다. [언간]
광해 12/1620/03/22/강홍립의 숙질․형제가 쓴 언문 편지를 보내는 일을 의논하게 하다. [언간2]
광해 12/1620/03/25/차호가 국서를 가져갈 때 언문 편지는 호인이나 화인이 볼까봐 두려우므로 조심하도록 지시하다. [언서2]
광해 12/1620/04/15/강홍적이 강홍립에게 언문 편지 보내는 일은 노추와의 일에 상관없다고 하다. [언서5]
광해 13/1621/06/23/비변사가 강홍적이 언문으로 쓴 편지로 임금께 보고(入啓)한 것을 아뢰다. [언찰]
광해 14/1622/03/02/죄인 허환과 이덕복이 외간과 언서를 서로 통했다는 일은 너무도 흉하고 괴이하다. [언서]
광해 14/1622/03/08/곽천호․이시정․정담 등이 허환 어미의 언문 편지에 드러난 전유형․이귀․권진의 엄중 처벌을 청하다. [언서]
❀인조
인조 01/1623/03/14/자전(인목대비)이 언서로 폐군의 조목 열가지를 들어 하교하다. [언서]
인조 01/1623/10#06/영사 윤방이 자전께서 언문 편지 내린 일이 미안하다는 뜻을 개진하다. [언서]
인조 01/1623/10#07/대간이 영창 대군 시호 문제로 자전이 언문편지를 승정원에 내린 것은 규칙(상전)에 문제가 됨을 아뢰다. [언서]
인조 01/1623/10/29/자전이 영창 대군의 행장을 언서로 지어 내리다. [언서]
인조 01/1623/12/07/인목 대비가 언문 교지로 어승마를 영안위 홍계원에게 주라고 하교 하여 간원이 임금께 간하다. [언서2]
인조 02/1624/02/01//평안 감사 이상길이 언서를 섞어쓴 방문을 적군에게 보내다. [언서]
인조 02/1624/05/16/이정구가 향약의 절목을 간략히 하여 혹 언서로 풀이한 뒤 경기 지역에 효유하기를 간하다. [언서]
인조 02/1624/07/12/황정욱 후손 탄원서에 언서로 밀통한 왕자의 수찰이 언급되다. [언서]
인조 04/1626/01/16/대신들이 대비전에 상의 부당함을 청하니 대비가 언서로 비답을 내리다. [언서]
인조 04/1626/07/02/자전이 신하들에게 언서로 하교하여 왕이 건강에 힘쓰도록 청하기를 요구하다. [언서2]
인조 04/1626/07/03/자전이 언찰로 외조에 왕 건강 문제에 대해 하교하다. [언찰]
[승려/궁녀]인조 04/1626/07/07/사헌부에서 임해군 이숙노의 집에 출입한 승려를 추국하였는데 산승들 보자기에서 나인과 통한 언간 10여장이 발견되다. [언간]
인조 04/1626/07/10/자전이 정명공주(선조의 딸)의 집을 수리하도록 한 명령을 환수토록 승정원에 하교하다.
인조 04/1626/10/24/평안 감사 윤훤이 오랑캐가 조선을 먼저 침범할 것이라는 중국 장수 서고신의 말(적장 유애탑이 언서로 이달자에게 보낸 내용 근거)로 치계(馳啓)하다. [언서]
인조 05/1627/01/19/자전이 육선을 올리도록 삼정과 정원에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인조 05/1627/02/04/자전이 농우의 죽음을 염려하여 쇠고기를 올리지 말라고 언문교지를 내리다. [언서]
인조 05/1627/02/09/자전이 하교하여 대신에게 방수(防戍)하도록 하고 부민도 위로하는 언서를 내리다. [언서]
인조 05/1627/02/09/자전이 언서로 대신과 정원에 하교하여 지키는 계책에 대해 말하다. [언서]
인조 05/1627/04/25/자전이 환도할 때 노량에 부교를 설치하는 것은 민폐가 된다고 언서로 진달하다. [언서]
인조 05/1627/07/17/서평부원군 한준겸이 살아생전에 북방의 관찰사가 되어 먼저 [가례]와 [소학]을 간행하여 언서로 번역한 바 있다. [언석]
인조 06/1628/01/03/허유 역모사건에 인성군이 연루되자 자전이 국청에 언문교지를 내리다. [언서]
인조 06/1628/01/04/장대추가 중국 군대의 횡포에 대해 언문으로 상변하다. [언서]
인조 06/1628/01/20/대비전이 대신과 육경에게 인성군 이공을 처벌할 것을 윤허받으라고 하교하다. [언서]
인조 06/1628/02/21/대왕대비가 언서로 인성군의 처벌을 원하는 하교를 내리다. [언서]
인조 06/1628/05/14/자전이 왕자들에게 역모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거듭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인조 06/1628/09/02/홍득일이 경상 감사의 비밀 장계(狀啓)와 언문으로 기록된 흉서 1통에 대해 아뢰다. [언록]
인조 06/1628/09/07/자전이 언서로 흉년의 백성을 위해 감손하라고 하교하다. [언서3]
인조 06/1628/09/11/자전이 언서로 양전의 진상 품목을 감손하라고 하교하다. [언서3]
인조 06/1628/12/18/송광유가 진인의 출현에 대한 변란의 조처에 대해 언문으로 상변하다. [언서]
인조 07/1629/02/06/김경현이 언문 편지(누이 동생 말치가 남편 김홍원 등을 거짓역모로 고발)로 김호원․윤우구․유인창 등이 역모한다고 고변하다. [언서2]
인조 07/1629/09/21/자전이 삼공과 육경에게 수연을 거행할 수 없음을 상께 아뢰도록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인조 07/1629/11/20/언서로 올린 ‘고변서’로 인해 진명생과 양경홍 등을 잡아다가 국문하다. [언서]
인조 07/1629/04#24/왜차가 중국 도와 오랑캐를 토벌하고 언문과 악장을 배우러 왔다고 하다. [국문]
인조 08/1630/01/02/정원이 변란을 고발한 언문서에 관해 아뢰다. [언서2*언문]
인조 09/1631/05/02/별청을 설치하여 ≪삼강행실≫을 새로 간행하게 하다. [삼강행실]
인조 09/1631/12/24/경성 유학 최상례의 상소로 경서와 언해를 북도에 하사하다. [언해3]
인조 17/1639/08/12/수호군이 홍득일에게 익명서를 투서하자 홍득일이 계문(啓聞)하였고 그로 인해 파직당하다. [언서]
인조 24/1646/03/23/4구인후가 임금에게 역모 관련 서류의 문체가 언문인가 아니면 섞어 썼는가를 묻다. [언문2]
인조 24/1646/03/25/임금이 언서로 척리에게 강씨 죄상 수십 가지를 적어 보내다. [언서]
인조 26/1648/03/02/순릉의 혼유석 및 문무석과 장군석 등이 훼손되고 익명의 언서 목패(木牌)가 날아들다. [언서]
❀효종
효종 02/1651/09/16/종묘 악장 가사책을 가져다 보았더니, 언문으로 해석한 인본(印本)에 그릇된 음이 많았고 악사들이 단지 언문으로 해석한 것에만 의거해 외우고 익히고 있다. [언석2]
효종 07/1656/07/28/지경연 이후원이 ≪내훈≫․≪경민편≫의 간행․반포를 건의하니 허락하다. [경민편]
효종 09/1658/05/03/임금이 예조판서에게 ≪용비어천가≫ 간행을 지시하다. [용비어천가]
효종 09/1658/12/25/완남부원군 이후원이 김정국이 해서관찰사로 있을 때 펴낸 경민편을 해서 지역에서 얻어 언해하여 시골 백성들을 교화한 경험을 얘기하며 이 책의 간행을 청하여 허락을 받다. [언해]
효종 10/1659/03/18/≪용비어천가≫를 간행하다. [용비어천가]
❀현종
현종 01/1660/09/05/상이 옥당의 관원에게 ≪대학연의≫와 ≪내훈≫을 언해의 향음도 일일이 정리하여 바로잡도록 지시하다. [언해]
현종 06/1665/09/05/좌참찬 송준길을 인견(引見)하여 원자의 교육, 자전에 대한 진연(進宴) 등의 일을 의논하면서 ≪훈몽자회≫추천하다. [훈몽자회]
현종 06/1665/10/05/함경감사가 ≪용비어천가≫ 등의 책을 보내 줄 것을 청하다. [용비어천가]
현종 07/1666/03/22/원자가 효경을 끝냈으니 소학과 더불어 ≪훈몽자회≫를 강하는 것이 좋다고 건의하다. [훈몽자회]
현종 07/1666/03/25/세자 교육에서 훈몽자회는 글자를 위한 것이므로 ≪동몽선습≫이 낫다고 하다. [훈몽자회]
현종 07/1666/07/15/청 사신이 언서로 번역한 조사 문건을 우상 허적에게 전하고 주문의 초안을 작성하라고 하다. [언서]
현종 07/1666/07/15/영접 도감이 칙사의 도망온 자에 대한 조사 문서를 언서로 번역하여 작성하라고 하다. [언서]
현종 07/1666/07/19/청나라 사신이 정한 죄를 감할 것을 요구하면서 조사문서를 언문으로 번역한 것을 언급하다. [언서]
현종 07/1666/10/11/좌상 홍명하가 세자의 소학 강독을 위해 이이 ≪집주≫에 의거하여 언해를 찬정(撰定)하도록 하여 상이 따르다. [언해3]
현종 08/1667/01/11/정태화가 유혁연이 흉측한 언문서찰을 써 준 사람을 가두었다고 아뢰다. [언찰]
현종 09/1668/02/09/대사간 이태연 등이 숙모를 긴 언문으로 헐뜯은 이류의 일을 아뢰다. [언문]
현종 09/1668/02/10/유학 이류가 언문으로 숙모 죄를 비열하게 나열하다. [언문]
현종 09/1668/08/06/종부시가 ≪소학≫ 및 ≪소학언해≫를 종친 교육용으로 인쇄하기를 청하다. [언해]
현종 09/1668/11/21/강연 후에 좌참찬 송준길 등이 자음의 고저와 말소리의 청탁, 고문의 구두법과 우리나라 언문의 법칙을 갖추어 논하다. [언문]
현종 10/1669/02/05/이민적 상차에 신덕왕후에 대한 기록이 ≪용비어천가≫에 있음을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현종 10/1669/03/04/춘당대에서 과거 시험으로 ≪용비어천가≫를 주제로 하다. [용비어천가]
현종 10/1669/03/07/이민서 상소에 제왕의 덕을 칭송한 용비어천가를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현종 10/1669/03/10/좌참찬 송준길이 ≪어록해≫의 발문을 응교 남이성이 짓도록 청하다. [해(언해)]
현종 10/1669/03/11/송준길이 ≪어록해≫의 발문 작성을 사양하다. [해(언해)]
현종 10/1669/04/20/좌참찬 송준길이 ≪어록해≫발문을 바치고 사직을 청하다. [어록해]
현종 11/1670/02#11/지평 이후징이 정시성과 최효건을 탄핵한 글에 잡스러운 언서(외조모의 언문서찰)를 베껴 놓았다. [언서]
[정재인의외조모]현종 11/1670/02#13/지평 이후징이 정재빈의 외조모 언문 서찰을 낱낱이 늘어놓은 일로 인해 인피(引避)하다. [언서]
현종 11/1670/04/03/임금이 비복 공초에서는 언서는 한문서와 달리 위조하기 쉬우므로 매우 분명하게 조사해야 함을 언급하다. [언서]
현종 11/1670/09/15/이세직의 무고로 인한 공초에서 언문을 아는 죄수 김백추가 무고를 부추겼다고 하다. [언서2]
현종 12/1672/10/06/김덕원․박천영 등 옥사에서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서]
현종 14/1673/01/21/김휘가 황해 감사로 있을 때 조정에서 애통해 하는 교서를 내려 언문으로 번역하여 덕의를 포고해 모두 감읍(感泣)했는데, 수개월도 안돼 정책이 바뀌는 것은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언석]
현종 14/1673/02/29/시강원이 ≪대학≫ 주각을 세자 교육을 위해 언해로 풀이할 것을 아뢰었으나 사부는 왕세자 문리가 뛰어나 언해는 제외하고 송독(訟讀)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아뢰다. [언석2*언해]
현종 15/1674/03/06/상이 증세가 있어 대왕대비가 언서로 약방에 하교하다. [언서]
현종 15/1674/03/07/약방 도제조 허적이 상이 편찮은 관계로 입진할 것을 계청하면서 대왕대비 언서를 언급하다. [언서]
현종 15/1674/08/17/대왕대비가 시약청에 언서로 하교하여 왕의 거처를 옮기게 하다.
❀숙종
숙종 00/1674/08/30/대왕대비전과 왕대비전에서 언서로 약방에 교지를 내려 대전이 권도에 따르기를 청하다. [언서]
숙종 00/1674/09/02/대왕대비가 약방에 내린 언서에서 임금이 권도에 따르게 되었음을 알리다. [언서]
숙종 00/1674/09/08/대행 대왕의 행록을 왕대비전에서 언서로 내리다. [언서]
숙종 00/1674/12/07/자전이 약방에 언서를 내려서 왕의 도성 밖 거둥을 중지하도록 권하다. [언서]
숙종 00/1674/12/09/자전이 반우(返虞)할 때 교외에서 지영(祗迎)한다는 언서를 약방에 내리다. [언서]
숙종 01/1675/03/18/윤휴가 임금에게 언해의 구절에 따르지 말기를 청하였는데, 시독관 권유․특진관 이홍연이 말하기를, “조종 때에 간행한 언해를 갑자기 변경할 수 없습니다.”하였으나, 임금이 윤휴의 말대로 읽었다. [언해2]
숙종 01/1675/03/18/임금이 어리니 대신이 보좌하여 이끌기를 바란다고 자전이 대신에게 언문교서를 내리다. [언서]
숙종 01/1675/05#13/이삼달이 그의 아버지 이유의 신원을 청하면서 외숙이 송시열에 붙어 아비를 헐뜯는 언서를 만들어 퍼뜨렸다고 하다. [언서]
숙종 01/1675/06/21/왕대비가 김우명의 상을 당한 뒤 음식을 절폐하고 자결코자 한다는 언문을 내리다. [언서2]
숙종 02/1676/11/01/요승 처경이 언서를 조작하여 소현세자 유복자 흉내를 내다. [언서]
숙종 03/1677/05/26/동래 부사 이복이 세속을 전해오는 ‘고공가(雇工歌)’를 선조의 어제(御製)라고 하며 언문으로 번역하여 올려 파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언어*언번]
숙종 06/1680/06/16/지경연사 김석주가 북도에 ≪소학≫과 ≪삼강행실≫ 각 20질을 보내도록 건의하다. [소학*삼강행실]
숙종 06/1680/07/24/왕대비가 임금이 날을 받아 경덕궁으로 옮겨 거처할 것을 청하라고 약방에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숙종 06/1680/12/23/왕대비가 언문으로 송시열에게 하교하니 도성으로 들어오다. [언서]
숙종 07/1681/01/03/왕대비가 새 중전의 간택에 관해 언서로 하교하자, 이에 관해 논의하다. [언서]
숙종 07/1681/01/04/송시열 등이 빈청(賓廳)에서 중전 간택 문제에 대해 아뢰자 왕대비가 언서로 답하다. [언서]
숙종 07/1681/03/21/왕대비를 방문하려고 하자 날짜를 늦추도록 약방에 언찰로 하교하다. [언찰]
숙종 07/1681/03/26/대내에서 삼간택을 거행하니, 병조 판서 민유중의 딸을 간택케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숙종 07/1681/06/27/기병 보인 허협이 언문으로 기록한 한 장의 쪽지를 정원에 바치다. [언록2]
숙종 07/1681/07/06/언서로 무고 죄인 허협․양국정을 참하다. [언서*언록]
숙종 07/1681/07/21/함경도 관찰사 윤지선이 김정국의 경민편과 정철의 권민가로 도내 부녀의 교화와 안무를 건의하다. [경민편*권민가]
숙종 08/1682/08/17/유배 죄인 노계신이 언문으로 오시항을 모함한 죄로 참형하다. [언서]
숙종 09/1683/04/19/박세채가 경연에서 용비어천가의 의미를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숙종 09/1683/10/13/성내에 두질이 크게 번지니, 왕대비가 궐중 왕래에 관해 언문으로 하교하다. [언서]
숙종 09/1683/12/05/자전이 언문으로 유서를 짓고, 상렴(喪斂)에 드는 의대와 물품을 봉해 두었는데, 승하함에 내리다. [언서]
숙종 10/1684/04/02/발인 전에 읽는 애책문은 한문과 언문으로 뒤섞여 있는 것으로 외어 익히기 위해서이다. [*언*]
숙종 10/1684/05/12/성균관에서 아뢰어, ≪사서≫․≪삼경≫․≪주자대전언해≫․≪심경≫․≪근사록≫을 간행하다. [언해]
숙종 10/1684/09/11/남구만이 젊은이들이 어려서 언문을 해득하여 구송만 하고 뜻을 알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다. [언문]
[경안군부인]숙종 10/1684/10/27/경안군 부인 허씨가 보낸 혼사에 관한 언서 청원을 해결하다. [언서]
숙종 10/1684/11/04/대왕대비가 언서로 임금 병에 대해 약방에 하교하다. [언서*언교]
[유두성누이]숙종 14/1688/11/25/유두성의 누이가 언서로 정장하여 그 어머니 음행을 증거하다. [언서]
숙종 15/1689/02/04/대개 주가의 상서는 언문을 쓴다. [언문]
숙종 15/1689/03#07/장희재 사건의 박정영 공초에서 이사명의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문]
[유두성누이동생]숙종 15/1689/04/18/유두성이 말하기를 이대헌이 누이동생에게 언문소장을 순찰사에게 바치게 하다. [언문3*언장2]
숙종 15/1689/04/24/임금이 언문으로 된 유지를 번역하여 ≪일기≫에 추록케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언문 유지를 삭제하다. [언지3]
숙종 15/1689/06/03/대비가 언찰로 만류하여 송시열이 돌아간 적이 있다. [언찰]
숙종 15/1689/08/29/이상이 어리석은 여인에게 언문 소장을 써주어 순영에 정고하게 하다. [언장]
숙종 15/1689/09/27/이원성 공초엣 청성이 “조빈의 노래를 모름지기 언문으로 대답하는 말밑에 써야 한다.”고 해서 썼다. [언문]
숙종 16/1690/08/17/전 복평군 이연의 일로 첩딸 공초에서 언문 서간에 약을 보냈다는 사실을 부정하다. [언간]
숙종 17/1691/09/13//≪소학≫․≪효경≫을 언서로 번역하여 보모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동궁에게 가르치게 하다. [언서]
숙종 18/1692/11/16/조정을 기롱한 언문 노래를 지은 정황에 대해 사간원에서 아뢰다. [언요]
숙종 18/1692/12/30/평안 감사 홍시주의 아들 홍이하가 언문으로 노래를 지어 조정 진신을 비방하다. [언요]
숙종 19/1693/08/30/이간이 아뢰는 말에 경덕궁 유래가 용비어천가에 나옴을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숙종 20/1694/03/29/언자로 된 고변서를 한자로 옮겨 임금에게 올리다. [언자]
숙종 20/1694/04/17/장희재의 언서에 근거하여 장희재를 엄하게 신문하라고 명하다. [언서]
숙종 20/1694/04/27/앞서 임금이 언찰의 일로 장희재 죄를 감정하라고 명한 일이 다시 문제되다. [언찰]
숙종 20/1694/05#02/옥중에서 민장도가 언서로 장희재와 내통하다. [언찰3*언서2]
숙종 20/1694/05#04/정언 박권이 장희재의 엄벌을 논핵하다. [언찰]
숙종 20/1694/05#07/정언 박권이 장희재의 엄벌을 건의하다. [언찰]
숙종 20/1694/05#11/양주 유학 박상경이 영숙․정숙 및 장희재의 엄벌을 강력히 요구하는 상소에서 장희재의 언간이 중궁과 세자를 모해하려 했다고 하다. [언간]
숙종 20/1694/05/11/송시열이 상소문 3벌과 효종의 어찰 3벌 및 명성 황후의 언문 편지를 바치다. [언서*언찰4]
숙종 20/1694/05#18/유득일․심극․김연 등이 장희재의 국문을 거듭 청하다. [언서]
숙종 20/1694/05#20/윤성교․이정겸이 안여익․안세정을 장희재와 결탁한 죄를 들어 논핵하다. [언찰]
숙종 20/1694/05#21/영의정 남구만이 박상경을 변론하여 정거(停擧)만 하게 하고 장희재의 추국을 논하다. [언서3]
숙종 20/1694/05#22/장희재가 언서 내용이 민암 부자에게서 나온 것을 들어 자신을 변명하다. [언서2]
숙종 20/1694/05#26/민암 공초에서 장희재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20/1694/05/20/장희재 판결과정에서 임금이 장희재 언서를 언급하다. [언서*언찰]
1694/05/21숙종 20/사간 정언 등이 장희재 언찰을 언급하며 국법으로 처벌할 것을 논핵하다. [언찰2]
숙종 20/1694/05/26/유학 이창규가 민암․장희재 등의 엄벌을 청하는 상소를 하다. [언찰]
숙종 20/1694/06/03/민암과 장희재를 각기 심문하다. [언서]
숙종 20/1694/06/04/좌의정 박세채가 별단의 계차(啓箚) 4본을 첨부한 차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희재의 언찰이 언급되다. [언찰]
숙종 20/1694/06/15/무장 유학 강민저의 상소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20/1694/07/19/박세채가 장희재를 처리할 것을 건의하자 임금이 장희재의 언서는 민암의 말을 듣고 한 것임을 언급하다. [언서]
숙종 20/1694/09/27/부사직 김세익이 영남의 사정을 상소한 내용 가운데 궁가의 절수(折收)에 관한 언서 공문이 대소의 주현마다 파급되지 않는 곳이 없었음을 아뢰다. [언서]
숙종 22/1696/05/28/북부의 유학 이만웅이 받은 박일봉의 언서 수적을 고하다. [언서]
숙종 22/1696/06/01/박일봉 공초에 고변 내용을 언서로 적어 신고하였다고 하다. [언서2]
숙종 23/1697/09/23/곽제숭이란 자가 언서로 거짓 상변하여 형신(刑訊)을 받다가 죽다. [언서]
[고참판부인]숙종 25/1699/04/03/고참판 부인이 언서 단자로 가난을 호소하여 진휼청에서 구제하다. [언서]
숙종 26/1700/09/09/의금부에서 김전이 그의 집에 밀통한 언서 3장을 얻어서 번역등서(謄書)하여 아뢰다. [언서]
숙종 26/1700/11/01/동의금 이돈이 과옥에 관련된 정순억․김전․나홍좌를 비호한 상소에 김전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윤씨부인]숙종 27/1701/04/25/소박맞은 윤씨부인이 남편이 죽자 최복을 입은 것을 매제가 구박하자 남편의 무덤에 가서 언서로 유서를 써서 묘목에 걸어 놓고 나뭇가지로 목을 찔러 죽다. [언서]
다. 이에 윤씨가 통곡하며 죽은 남편 무덤에 가서 언문 유서를 써 두고 자결하니, 조정에서 심익겸과 유씨 집안의 어른 유명겸을 옥에 가두고 문책하다.
숙종 27/1701/09/26/인정문에 나아가 궁녀 축생 등을 언문으로 국문하다. [언어]
숙종 27/1701/10/13/장령 윤헌주와 지평 이동언이 동평군 이항을 유배하라고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관련 언문서찰을 불사르라고 명하다. [언서2]
숙종 27/1701/10/16/국청 죄인 작은아기의 공초 내용에 장희재를 비방하는 익명서를 언급하다. [언서]
숙종 27/1701/10/18/국청 죄인 이항 공초에 왕자의 집에서 언문서찰로 문안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주상께 곧바로 주달하는 것의 문제를 언급하다. [언서2]
숙종 27/1701/10/20/국청 죄인 장성유는 비록 언문 편지로 치밀하게 꾸민 흔적이 있으나 모의가 현저한 정상이 없음을 아뢰다. [언서]
숙종 27/1701/10/22/집의 유명웅 등이 남구만․유상운을 파직시키라는 상소에서 장희재의 언문 서찰이 언급되다. [언찰*언서]
숙종 27/1701/10/23/국청 죄인 장천한 공초에서 언문 서찰이 언급되다. [언서]
숙종 27/1701/10/29/국청에서 이항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하게 함을 아뢰면서 언문 서찰을 언급하다. [언찰2]
숙종 27/1701/10/29/국청 죄인 장희재를 결안 취초하고 군기시의 앞길에서 복주시키다. [언찰7*언서2]
숙종 27/1701/11/05/동평군 이항을 법에 의해 처단하자는 논의에서 장희재의 편지를 언급하다. [언찰]
숙종 27/1701/11/06/국청대신 고하는 자리에서 장희재의 언찰이 언급되다. [언찰]
[익명]숙종 27/1701/11/11/시책문과 애책문은 마땅히 여관(女官)으로 하여금 진독해야 하므로 한문과 언문을 모두 섞어 써야 한다. [*언*]
도록 아뢰다.
숙종 27/1701/11/22/장희재의 혈당들을 더욱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지평 이동언이 상소하다. [언찰]
숙종 27/1701/11/25/장씨의 아비를 연좌시킴이 부당하다는 상소에서 장희재의 언찰이 언급되다. [언찰]
숙종 31/1705/08/27/정재륜이 중국 사신으로 가면서 역관들이 보고들은 것을 한문을 모르는 자는 언문으로 보고한 뒤 취합하도록 밀차를 올리다. [언서]
[태영]숙종 31/1705/09/12/태영이 언서로 공초하여 제 아비 유정기에 대해 망측한 말을 하다. [언서]
숙종 32/1706/06/02/우의정 김창집의 상소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2/1706/06/08/강이상 공초에서 장희재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2*언간*언찰]
숙종 32/1706/06/26/박태춘 공초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2/1706/07/19/강이상 공초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간]
숙종 32/1706/07/19/윤순명 공초에 장희재의 처가 김춘택과 간통한 것을 고백한 언문편지가 언급되다. [언찰*언서3]
숙종 32/1706/07/20/강이상 공초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2*언간]
숙종 32/1706/07/21/최석정이 죄인의 언문 편지의 특징을 아뢰다. [언찰]
숙종 32/1706/07/24/여필중 공초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3*언찰3]
숙종 32/1706/07/25//여필중 공초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찰]
숙종 32/1706/07/30/여필중․ 공초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2]
숙종 32/1706/08/01/윤순명 공초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2/1706/08/09/금성 현령 이의현의 상소에 장희재의 언문서찰이 언급되다. [언찰2]
숙종 32/1706/08/16/김춘택 공초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찰3]
숙종 32/1706/09/10/대신들이 강세귀의 복관을 건의하는 과정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언찰]
숙종 32/1706/09/17/이잠의 상소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2/1706/09/17/흉인 이잠의 상소에서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2/1706/09/18/이잠 사건에 대한 임금 말씀에 장희재의 언서가 언급되다. [언찰3*언서2]
숙종 32/1706/11/26/임부 공초에 외직나장(外直羅將)과 진술 방향에 대해 통서한 언서가 언급되다. [언간]
숙종 32/1706/12/04/임부가 김익광이 보낸 언찰에 속았다고 임홍이 공초하다. [언찰2]
숙종 32/1706/12/05/강이징의 공초에 임부 관련 언서가 언급되다. [언간]
숙종 32/1706/12/27/임부 관련 국청에서 괴상한 언서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2/1706/12/28/강이징․임부의 형신(刑訊)에서 국청이 임부 관련 언찰을 언급하다. [언찰]
숙종 33/1707/01/03/임부를 일곱 차례 형신(刑訊)하였으나 불복하고 국청에서 임부 관련 언찰을 언급하다. [언찰]
숙종 33/1707/01/10/국청의 대신들과 임부의 옥사를 다시 의논하는 과정에서 임부 관련 언찰이 언급되다. [언서*언찰]
숙종 33/1707/01/11/정언 한영조가 여필증을 엄히 국문하기를 청하는 과정에서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3/1707/02/06/영의정 최석정이 김창집의 상소로 인하여 진소해 스스로 변명하는 과정에 앞선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서*언찰]
숙종 33/1707/03/03/대교 이택이 김창집의 상소에 자신이 무고하다고 상소하는 가운데 앞선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찰]
숙종 33/1707/07/14/지중추부사 이광적이 임부의 상소에 자신의 무고를 상소 가운데 장희재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찰6]
숙종 33/1707/11/23/검토관 송정명이 ≪삼강행실≫․≪경민편≫․≪효경≫등의 책을 간행하여 해서의 여러 고을에 반포할 것을 청하였다. 삼강행실*경민편*효경]
숙종 33/1707/12/22/지사 이언강이 윤순명의 초사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상소에 장희재의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4/1708/02/14/지사 이언강이 스스로 변호하는 상소에 장희재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서]
숙종 34/1708/10/08/임금이 상소에 답하면서 용비어천가를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숙종 35/1709/08/20/임금이 열성들께서 비답하신 것을 언록한 것이 궁중에 있음을 언급하다. [언록]
숙종 35/1709/10/09/㉠인신을 위조한 죄인 이식을 문초하자 고변한 내용에 강재승 어미의 언문 서찰이 언급되다 ㉡경덕의 언서 내용에 협서하고 가서하고 말개한 흔적이 나타나다. [언서3*언찰]
숙종 36/1710/06/29/목장 혁파를 논의하면서 용비어천가를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숙종 36/1710/10/29/박필언 공초에 그가 영원군 이과매에게 언문 서찰을 보내 숙부 구명을 청탁하다. [언찰*언서]
숙종 37/1711/07/26/금부에서 권설 공초에서 적정을 탐지한 언문 고목이 언급되다. [언서*언문]
숙종 37/1711/10/13/윤진흥은 말하기를, 장천련이 언서로 수표를 만들어 주기에 발고했다. [언서*언문]
숙종 46/1720/06/08/중궁이 영의정 김창집에게 임금을 칭송한 언교를 내리다. [언교]
숙종 46/1720/06/09/중궁이 원상 김창집에게 은자를 내려 국장에 보태도록 하고, 어제(御製)를 동궁에게 보내도록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경종
경종 00/1720/06/21/대비전 언서 하교로, 장녕전에 있는 숙종의 어진을 벽상에 펴서 봉안하게 하다. [언서]
경종 00/1720/11/14/고부사 이이명 등이 중국연경에서 언문으로 쓴 서신을 인편에 부쳐 아뢰기를 청나라에서 트집을 잡아 왕후의 추봉과 요봉을 거부하였다고 하다. [언서]
경종 00/1720/11/27/김창집이 청나라에 가 청나라 문자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오다. [국문2]
경종 01/1721/08/20/㉠ 자성이 연잉군을 왕세제로 삼는다는 언문 교서를 내리다 ㉡이건명이 사관으로 하여금 자성의 언교를 번역하여 승정원에 내리고 승지에게 전지(傳旨)를 쓰게 하자고 건의하여 왕이 허락하다. [언찰*언교2]
경종 01/1721/12/23/왕세제(연잉군)를 살해하려는 궁인들 사건에 대한 자성이 언문 교서를 내리다. [언서2*언교2]
경종 01/1721/12/27/영의정 조태구가 대비의 언문교지의 수찰 문제를 상소하자 임금이 자성의 언교를 언급하다. [언교2]
경종 02/1722/03/27/목호룡이 상변한 내용에 김용택 사복 이희지가 언문으로 성궁을 헐뜯는 가사를 지어 궁중에 유입시켰다고 하다. [언문2]
경종 02/1722/04/13/김용택의 공초에 목호룡이 이희지의 언문 가사를 언급하다. [언문]
경종 02/1722/04/17/이희지의 공초에 목호룡이 말한 언문 가사를 언급하다. [언문]
경종 02/1722/04/21/역적 환관 장세상의 공초에서 목호룡이 말한 언문 가사를 언급하다. [언문2]
경종 02/1722/04/23/홍의인의 공초에서 목호룡이 말한 언문 가사가 언급되다. [언문]
경종 02/1722/05/05/사헌부에서 이이명․김창집을 수노 적산(收孥籍産)할 것 등을 청하는 과정에서 이희지의 언서와 이희지 어미의 언찰이 언급되다. [언서*언찰3]
희지의 어머니가 쓴 언문 편지를 찾아 조사한 사실을 언급하다.
경종 02/1722/05/05/이기지의 공초에 이희지 언문 가사가 언급되다. [언문]
경종 02/1722/05/15/사헌부 지평 김홍석이 자서의 언교 문제를 언급하다. [언교]
경종 02/1722/09/12/양사에서 합계하고 헌부에서 고 역적 김보택 관작 추탈 청원과정에서 그 아내의 언문 편지가 언급되다. [언찰]
경종 02/1722/10/27/목호룡의 공사에 이희지의 언문 가사가 언급되다. [언문]
종 02/1722/11/20/밤 2경(更)에 대비께서 임금의 치통 문제로 언문 교서를 정원에 내리다. [언교]
경종 03/1723/04/14/홍석보와 문덕린 등이 불순한 언찰을 주고받다. [언찰3]
경종 03/1723/06/01/조태구가 왕대비의 언문 교서를 봉환시킬 때를 당하여 송상기가 병조 판서로서 소장을 올리다. [언교]
❀영조
영조 00/1724/08/30/왕대비전과 왕비전에서 언문 교지를 왕세제(연잉군)에게 내려 왕좌에 나아가도록 권유하였다. [언교]
영조 00/1724/11/09/이봉명이 상소에서 조태구․유봉휘가 자성의 언교를 막아 반시(頒示)하지 못하게 하였음을 비판하다. [언교]
영조 00/1724/11/12/자성의 언교가 여러 번 언급되다. [언교7]
영조 00/1724/11/17/선묘조에 ≪벽온신방≫ 효묘조에도 그 책을 인쇄하여 반포했는데 언문으로 번역한 것은 쉽게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므로 옥당에 이 책이 있다고 하니, 팔도에 베껴 보내어 민간에 두루 보이기를 청하여 상이 따랐다. [언문]
영조 00/1724/11/29/이의연을 비호하고 대신을 무욕하는 박지혁 상소에 명성왕후 언찰이 언급되다. [언찰]
영조 00/1724/12/22/ 대왕대비가 언서로 약방 관청에 왕대비전 건강에 대해 하교하다.
영조 01/1725/01/02/전 도사 유응환이 상소에서 김일경이 자성의 언교 소통을 방해하였음을 고발하다. [언교3]
영조 01/1725/03/25/헌납 정택하가 상소에서 조태구가 언문교서를 봉환한 문제를 비판하다. [언교]
영조 01/1725/04/07/환관 손형좌 공초에서 박상검이 한문 또는 언서로 편지를 썼다. [언서]
영조 01/1725/04/26/삼사에서 조태구 등을 탄핵하며 언문 봉서사건을 언급하다. [언교]
영조 02/1726/05/08/기포에 잡힌 함우신이 흉패한 언문 서간 두 장을 지니고 있어 효수하다. [언서]
영조 02/1726/07/05/민진원이 효종 어필과 더불어 명성왕후(현종 비) 언찰을 바치다. [언찰]
영조 03/1727/02/22/부제학 이병태가 ‘불가기(不可磯)’의 의미가 언해에는 극진하게 되지 못함을 지적하다. [언해2]
영조 03/1727/05/29/수령들에게 교화를 행할 것을 신칙(申飭)하는 자리에서 신노가 경자년 대상 때 언문교서에서 백성을 헤아리는 뜻을 따를 것을 청하다. [언교]
영조 03/1727/07/13/조태구와 유봉휘에게 제사를 내리라 명하면서 자성의 언문 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영조 03/1727/08/20/병조를 시켜 연대(煙臺) 물건 절목을 만들어 팔로(八路)에 반포하고 또 언문으로 번역하여 모든 연대의 벽에 붙여서 강습(講習)하는 바탕으로 삼게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언문]
영조 03/1727/09/02/어사 이광덕이 과천에서 언문 방문으로 유민을 효유한 소식을 듣고 임금이 전라도의 을사년의 대동과 신포를 견감시키게 하다. [언서]
영조 03/1727/10/06/목호룡이 사건 공초 내용에서 흉패스런 ‘언서’내용이 언급되다. [언서]
영조 03/1727/10/20/목효룡 사건과 관련하여 이희지 어미 언찰이 언급되다. [언찰]
영조 04/1728/03/16/안호가 공술하면서 동생 안박이 언서로 장흠 적변소문을 들었다고 하다. [언서]
영조 04/1728/03/21/정우량에게 명하여 교서를 지어 언서로 번역해 백성을 효유하다. [언서]
영조 04/1728/04/22/난역을 평정한 후 비망기(備忘記)를 대제학 윤순에게 언자[언문]로 번역하여 널리 선포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언자]
영조 05/1729/07/16/목장 혁파를 논의하면서 용비어천가의 말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영조 05/1729/08/27/교서관에게 ≪삼강행실≫을 제도의 감영에 보내어 널리 배포하게 하다. [삼강행실]
영조 06/1730/08/06/≪삼강행실≫과 ≪이륜행실≫을 승정원․홍문관․예문관에 내려 주게 하다. [삼강행실*이륜행실]
영조 06/1730/10/28/옥중 목천임이 나졸과 짜고 옷보따리에 언문 편지를 본가에 전달하려다 발각되다. [언서]
영조 09/1733/02/06/봉조하 민진원이 아뢰면서 경종 때의 자전 언문 교서를 언급하다. [언교]
영조 09/1733/06/05/이예가 이위와 함께 언문으로 흉서를 짓다. [언문]
영조 10/1734/01/01/≪칠서≫의 언해는 옛날 해석을 따르도록 명하다. [언해]
영조 10/1734/02/05/경국대전의 사치를 금하는 조항을 비국(備局)에서 경조(京兆)에 분부하여 언문으로 번역하게 해서 방방곡곡에 효유하게 하다. [언역]
영조 10/1734/12/20/여사서 간행․반포하면 규범에 반드시 도움이 되나 언문으로 해석한 뒤에야 이해할 수 있다. [언석2]
영조 12/1736/01/27/합사해 대왕대비전에 진연례 행하기를 청하나 자전이 허락하지 않는 언서를 내리다. [언서]
영조 12/1736/03/18/도승지 윤혜교가 법질서를 논하면서 차세징이 박도창의 생질로서 언찰을 전해 준 것이 언급되다. [언찰]
영조 12/1736/05/21/성주목사가 죽자 그의 처가 언서로 겸관에서 소장을 올리다. [언서]
영조 12/1736/08/27/≪여사서≫의 서문을 내려 이덕수로 하여금 언문으로 번역하여 간행하게 하다. [언역]
영조 16/1740/01/27/죄인들이 언찰을 풀로 붙인 것을 임금이 언급하다. [언찰]
영조 16/1740/11/05/김복택을 임금이 추국하면서 언자 두 글자를 써서 내리다. [언자]
영조 18/1742/06/28/≪동몽선습≫서문을 지어 한문과 언문으로써 경서언해의 예대로 인출하여 제본하여 올리라고 명하다. [언해]
영조 18/1742/07/23/이연덕과 소리를 논하며 언서의 음과 율에 대해 논의하다. [언서3]
영조 18/1742/09/27/임금이 전경 문시강을 직접 시험하며, 언해가 없는 ≪예기≫․≪춘추≫로 강에 응해 수치를 느끼게 하다. [언해]
영조 19/1743/02/05/정몽주 후손 중 늙은 부인이 언단을 올려 제사지낼 것을 청하다. [언단]
영조 19/1743/07/17/대신들이 진연(進宴)을 극력 청하니 윤허하지 않다가 대왕대비가 언서로 타이름에 따라 윤허하다. [언서]
영조 20/1744/04/10/홍경보가 언문으로 기초하고 허태가 이를 번역하여 전파시키다. [언문]
영조 21/1745/01/22/송인명이 김안국의 경민편이나 선정신(先正臣) 이이의 ≪항약≫반포를 청하자 허락하다. [경민편*향약]
영조 21/1745/12/05/나원득 공초에 “정동 이태인 아들로 판서된 자가 사행으로 지나다가 먹을 것을 주었다.”고 언서로 기록되어 있다. [언서]
영조 21/1745/12/14/이유필 공초에 조카 이조행이 유배지에서 역모 관련 언서를 보내 왔다고 이르다. [언서]
영조 24/1748/11/30/어떤 서찰의 글씨는 한문인가 언문인가 언급되다. [*언*]
영조 24/1748/12/02/공승언 공초에 귀정이라는 나인 작부가 언책을 잘 읽었다고 언급하다. [언책]
영조 25/1749/10/07/서술 관의 경사라고 한 말은 한문과 언문으로 두루 쓰이는 ‘혀 밑에 도끼’인 것이다. [*언*]
영조 25/1749/12/17/임인년 사건 복권 과정에서 임금이 경종 때 자성의 언교를 언급하다. [언교]
영조 26/1750/09/18/예조로 하여금 ≪삼강행실도≫ 등을 널리 모아 속성토록 명하다. [삼강행실]
영조 28/1752/02/27/임금의 시위에 대하여 대비가 언서로 하교하다. [언교2*언서3]
[초정/이양제]영조 28/1752/04/18/이양제 공초에서 이경명 어머니가 언문 편지와 이양제 첩이 이양제에게 보낸 편지가 언급되다. [언서3]
영조 28/1752/04/18/초정이 이양제에게 언찰을 보낸 것은 공모가 아니라 전토 추심 때문이었다. [언찰]
영조 28/1752/04/18/초정이 언찰을 보냈고 요사스런 술법은 언문 책속에 있었다. [언찰*언문]
영조 28/1752/04/23/익명시가 나돈다는 대신 말에 영조가 온천갔을 때 익명 언서로 수령을 비방한 사건을 언급하다. [언서]
영조 28/1752/12/05/㉠대비가 언서로 임금의 송현궁 거둥에 우려를 표하다 ㉡임금이 언서로 돌아가겠다고 답하다. [언서]
영조 28/1752/12/08/임금의 시위에 대비가 언서로 마음을 돌리게 하다. [언서]
영조 28/1752/12/17/대왕대비가 임금에게 내린 언문 교지(언서)를 문제 삼다. [언서3*언교]
영조 29/1753/07/05/사족인 윤씨(여성)가 동기인 윤성동이 포청에 들어가자 종으로 하여금 언문 서장을 바치게 해 모함하여 벌을 내리다. [언장]
영조 29/1753/11/26/지난 신축년에 동조께서 언문 비망기(備忘記)를 빈청(賓廳)에 내렸다. [언문*언찰]
영조 31/1755/03/08/임금이 동조의 언교를 받아 환궁하다. [언교]
영조 31/1755/05/03/심정연이 공초에서 금산사 창업연기에서는 언책만 보았다고 하다. [언책]
영조 영조가≪천의31/1755/10/09/소감≫의 찬수자들을 인견(引見)하면서 경종 때 자성의 언문 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영조 31/1755/12/08/자전의 언문교서로 존호를 올리기를 윤허하다. [언서2]
영조 32/1756/02/24/중국에서 은사한 물품에 대해 자전이 언문으로 기록한 소지를 보관하게 하다. [언서]
영조 32/1756/07/09/동조가 임금 생신을 맞이하여 언서로 진하받기를 권하다. [언서]
영조 32/1756/09/05/동조께 문후하고, 대내 구장에서 ‘체천지보’ 등 인장 3매를 얻었는데 그중 언문으로 ‘상서사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있다. [언자*언*]
영조 33/1757/05/05/대행 대왕대비 빈전의 시책문과 애책문을 언문으로 쓰도록 명하다. [언서]
영조 37/1761/03/10/원인손에게 명하여 ≪열천자서합록≫의 언해서를 만들어 바치도록 하다. [언해]
영조 38/1762/02/03/정언 채위하가 한문으로 된 윤음(綸音)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방곡에 효유하기를 청했으나 영조는 그런 청은 도신(道臣)이 신칙(申飭)할 일이지 간신(諫臣)이 말할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언번2]
영조 41/1765/10/06/꿈에 자성의 언문교지를 보고 잔치(회갑)를 맞이함을 기뻐하다. [언교]
영조 43/1767/07/10/시임 원임 대신 등에게 용비어천가를 읽고 의견을 수렴할 것을 명하다. [용비어천가]
영조 43/1767/10/06/무사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용비어천가의 꿈 얘기를 하다. [용비어천가]
영조 44/1768/04/14/종신이 지금 한 사람이 경서 1장을 강하는데도 강하는 장의 언해도 잘 알지 못하니, 사체(事體)가 한심스러우니 종부시 제조를 중하게 추고하라. [언해]
영조 44/1768/07/21/금위영 상번군이 기총이 수렴하는 일을 언문으로 써서 건명문에 붙이다. [언서]
영조 45/1769/11/20/약방에서 중궁전에 상선을 회복하기를 청하니 언서로 비답을 내려 따르다. [언서]
영조 47/1771/06/03/한성부의 당상 등에게 ≪청암집≫찾기 현상공모 유시를 한문과 언문으로 번역해서 중외(中外)에 반포 유시하고 상금을 걸고 찾도록 하다. [언번]
영조 47/1771/12/03/임금이 이희장․이희충에게 서전, 시전을 언해와 함께 내려주도록 하다. [언해]
영조 47/1771/12/24/이명숙 종이 신문고를 두드린 사건에 대해 설원록을 언석하여 반포한지 10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개탄하며 관련자를 엄정처벌하게 하다. [언석]
영조 48/1772/09/26/임금이 일한재에 나가 경종 때 자성의 언교를 추억하다. [언교]
영조 51/1775/11/30/㉠홍인한은 언찰로 하여 영조의 의중을 알고 있었다. ㉡홍인한이 김중득․하익룡을 사주하여 익명서를 투서하게 하였다. [언찰*언*]
영조 52/1776/02/27/어사가 가요를 언서로 써 임금께 보고(入啓)한 것은 이상한 일임을 말하다. [언서2]
영조 52/1776/03/08/대신과 백관이 중궁전에 가서 왕세자를 설득해 줄 것을 청하여 중궁이 언서로 그러마고 답하다. [언서]
❀정조
정조 00/1776/03/12/왕대비가 은자 1천 냥을 유사에게 내리도록 언문으로 하교하다. [언교]
정조 00/1776/06/03/송환억이 바친 효종 명성왕후의 언문을 하교하다. [언교]
정조 00/1776/07/22/심상운을 국문하며 더없이 이치에 어그러지고 부도(不道)한 말을 한문과 언문으로 글을 만들어 몰래 궁중에 던지었다고 언급하다. [*언*]
정조 00/1776/07/23/하익룡과 김중득 등이 헤아릴 수 없는 말을 조작해 내고 한문과 언문으로 글을 지어 흉계를 짓다. [*언*]
정조 01/1777/08/11/역모 사건에서 홍술해 아내가 언찰을 통해 점방에서 비방과 저주를 일삼다. [언찰2]
정조 01/1777/10/26/효임이 정이(丁伊)를 시켜 언찰을 가지고 자주 무당의 집에 오가며 저주하는 일을 의논하도록 했다. [언찰]
정조 02/1778/05/02/빈어를 간택하라고 왕대비가 대신들에게 언문 교지를 내리다. [언서*언교2]
정조 02/1778/05/02/왕대비가 언문교지를 반포하여 금혼령을 내리다. [언교2]
정조 02/1778/08/07/명의록 원편과 속편을 한문과 언문으로 갖추게 한 것은 주화(周和)를 반포하여 내건 것을 상징한 것이다. [*언*]
정조 02/1778/08/17/부사직 윤면동의 역적 토죄(討罪), 충효 의열의 선양 상소에 ≪명의록≫의 원편․속편을 한문과 언문을 팔로에 등서(謄書)하여 내렸다고 하였으나, 향곡의 사람들 가운데 이것을 본 사람은 열에 한둘도 없다고 언급, 반드시 교원 선비들을 깨우쳐 다단계 방식으로 교화할 것을 건의하다. [언등]
정조 04/1780/02/21/왕대비가 언서로 대신에게 왕의 후사가 없음을 지적하며, 빈 간택을 청하다. [언서*언교3]
정조 04/1780/06/24/시강을 바꿔하면 언석에 얽매이지 않고 문의(文義)를 쫓게 할 수 있다. [언석]
정조 05/1781/06/20/㉠제주도에 반포할 선유문을 어사에게 한문과 언문으로 번역하고 베껴 가져가게 하다 ㉡속명의록 50건, 언해 100건, 원명의록은 언해 포함 3건을 가져가게 하다. [언번*언해2]
정조 05/1781/09/24/어사에게 임금의 전교를 강촌의 부로와 민인에게 한문과 언문으로 번역 풀이해 효유하게 하다. [*언*]
정조 06/1782/12/10/정감록을 소지했던 죄인 안필복․안치복 등의 방면을 황해도 관찰사에게 명하면서, 유시문과 결안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옮겨 써서 죄수들에게 주고 수령들이 조정의 뜻을 선포하여 유신의 효과를 다하기에 힘쓰도록 하라고 명하다. [언등]
정조 07/1783/07/18/중화의 정음이 신라․고려 이래 변하여 방법이 없어서 통습이 어려웠는데 훈민정음으로 인해 가능하게 되었다. [훈민정음]
정조 07/1783/09/07/구휼에 관한 윤음(綸音)을 한문과 언문으로 옮기고 베껴 방방곡곡에 포유하게 하다. [언번]
정조 09/1785/05/04/김한기가 상소에서 역적 홍인한․정후겸 등에 대한 일을 자전의 언교로 기록하여 반포하길 청하다. [언교]
정조 10/1786/05/28/양의사로 하여금 진역방을 한문과 언문을 섞어 번역하여 팔도에 내려 보내도록 하다. [*언*]
정조 10/1786/12/01/홍국영 상계군 이담 등의 역적됨을 왕대비가 빈청(賓廳)에 언문으로 승정원에 전하다. [언교8]
정조 10/1786/12/01/영의정 김치인 등이 왕대비에게 언문교서를 반포할 것을 청하다. [언교2]
회 더 나온다.
정조 10/1786/12/02/영의정 김치인 등이 왕대비 언문 교서를 받들며 왕대비에게 탕약을 드시도록 청하다. [언교]
정조 10/1786/12/02/홍국영․송덕상․이담 등의 처벌에 대한 영의정 김치인의 계사에서 왕대비의 언문교서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0/1786/12/02/홍국영․송덕상․이담 등의 처벌에 대한 대사헌 윤승렬․대사간 박천행의 계사에서 왕대비의 언문교서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0/1786/12/03/영의정 김치인의 상소에서 자전의 언문 전교를 기리다. [언서]
정조 10/1786/12/03/홍국영․이담 등의 처벌에 대해 영의정 김치인 등이 연명으로 올린 상소문에서 자전의 언문 전교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0/1786/12/04/이담의 조사와 처벌을 두고 임금과 여러 신하가 경연하는 과정에서 자전의 언문전교를 언급하다. [언교3]
정조 10/1786/12/07/추국을 행하여 이담과의 혼사를 도왔는지 등에 대해 김우진 등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자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4]
정조 10/1786/12/08/역모사건에 대한 구선복 문초에서 자전의 언문교지가 언급되다. [언교2]
정조 10/1786/12/16/삼사 역모 사건에 대한 상소에서 자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0/1786/12/17/역적의 처벌 완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판돈녕부사 김종수의 상소문에서 자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0/1786/12/20/반정에 관한 김종수의 계목(啓目)에서 자전의 언문전교를 언급하다. [언교2]
정조 10/1786/12/22/임금이 역적토벌에 관한 중앙과 지방에 반포한 교서에서 자전의 언문교서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0/1786/12/22/영의정 김치인 등이 역적 토벌과, 자전의 덕을 천양(闡揚)하여 공을 칭송하면서 자전의 언문전교를 언급하다. [언교3]
정조 10/1786/12/22/김치인이 왕대비에게 휘호 올리는 것을 윤허하기를 청하면서 왕대비 언문 교서를 언급하다. [언교2]
정조 10/1786/12/26/역적 토벌을 위해 엄중한 심문을 계속할 것을 김치인 등이 아뢰는 과정에서 자전의 언문전교가 언급되다. [언교]
정조 11/1787/01/08/역적토벌에 공을 세운 왕대비에게 존호를 더 올리면서 언문 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1/1787/01/14/동지중추부사 정술조가 역적 의원과 유모에 대해 국청을 설치하기를 바라는 상소에 영조 때 대비전 언교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1/1787/01/19/정언 유경․영의정 김치인이 조시위의 일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 자성의 언교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1/1787/01/25/이광운(대역죄인 구선복동조자)이 공초에서 구선복의 역절을 번등한 언교 및 관가의 하첩을 보았기 때문에 알 수가 있었다고 답하다. [언교]
정조 11/1787/06/14/김동익 등 여러 역적들의 역모에 대해 이유적이 언서로 아비 유학 이복운에게 보내오다. [언서]
정조 12/1788/03/02/괴수를 잡는데 김정운과 함만중이 주고받은 언문편지가 큰 역할을 하여 상을 내리도록 하다. [언찰2*언필]
정조 12/1788/08/02/정언 이경명이 서학을 엄히 가리기를 청하면서 어리석은 농부와 무지한 촌부까지 서학책을 언문으로 베껴 신명처럼 받든다고 하니 요망한 학설 폐단을 막기 위해 수령방백에게 신칙(申飭)하도록 상소하니 잘 헤아려 품처(稟處)하도록 지시하다. [언등]
정조 13/1789/09/01/왕대비가 약원에 내린 언문 교서에 대해 처리하다. [언교]
정조 13/1789/09/26/왕대비가 윤승렬과 이인 강화 유수의 일로 탕제를 도로 내리고 언서로 여러 대신들에게 하교하다 ///왕대비가 윤승렬과 이인 강화 유수의 일로 탕제를 도로 내리고 언서로 여러 대신들에게 하교하다. [언서*언교]
정조 13/1789/09/26/왕대비가 다시 언서로 엄한 분부를 내려 이인의 토죄(討罪)를 명하다. [언서*언교2]
정조 13/1789/09/27/규장각 제학 김종수가 윤승렬의 일로 차자를 올리다. [언교]
정조 13/1789/09/27/규장각 제학 김종수를 소견하다. [언교]
정조 13/1789/10/02/㉠혜경궁이 금성위 박명원에게 임금의 환궁을 바라는 언문 봉서를 내리다. ㉡임금이 그 언교를 열람하고 이에 응하다. [언교]
정조 13/1789/10/02/채제공이 자궁께서 미시에 왕 건강과 거둥문제에 대해 언문교서를 내렸다고 말하다. [언교]
정조 13/1789/10/12/영돈녕부사 홍낙성 등이 올린 차자에서 자전의 언문교서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3/1789/10/14/정언 신기현이 자전의 교서에 따를 것을 상소하다. [언교]
정조 13/1789/10/23/완성군 이의행이 자전의 교서를 이행할 것을 청하다. [언륜*언교]
정조 13/1789/10/24/태학 유생들이 권당하고 써서 올린 소회(所懷)에서 자성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4/1790/01/10/양사가 올린 상소에서 자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4/1790/04/29/≪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는데 언해 1권이 있어서 책은 모두 5책인데 어제서(御製序)를 권두에 붙여 이때에 이르러 장용영에서 인쇄하여 올리고 각 군영에 반포하다. [언해]
정조 14/1790/11/18/임금이 예정에도 없는 행차를 되돌리라는 자전의 언문교지가 있다. [언서*언교6]
정조 14/1790/11/19/좌참찬 김화진 등이 환궁을 청하는 자전의 언문교지를 바치다. [언교]
정조 15/1791/02/06/강원도 영월 사람의 괘서 사건에 대해 교화에 대한 유지(有旨)를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크게 한 장을 써서 큰 길거리에 내걸게 하다. [언번]
정조 15/1791/03/15/무원록을 능은군 구윤명에게 언해하게 하여≪무원록언해≫를 간행하다. [언해2]
정조 15/1791/04/02/용비어천가, 악장궤범 등을 교정해서 간행하도록 하다. [용비어천가]
정조 15/1791/06/20/채제공이 입법내용을 한문과 언문으로 써서 큰 길거리와 네 성문에 내걸어 항간의 백성들로 하여금 법을 몰라 죄에 걸려드는 근심을 면할 수 있게 청하여 그대로 따르다. [언서]
정조 15/1791/11/03/진산 군수 신사원이 예산의 촌백성들이 형리에게 맡겨 둔 책 중에 언문 번역서나 베낀 책으로 ‘성교천설’과 ‘만물진원’이 있다. [언번]
정조 16/1792/11/03/심상규에게 공문 회답 내용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주해를 달아 올리라고 해 올렸더니 그 재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언번]
정조 16/1792/11/20/형조 정랑 홍호원의 건의에 따라 교서관에 명하여 ≪증수무원록≫을 간행․반포하게 하다. [언해]
정조 16/1792/12/08/채제공이 차자에서 다시 구선복 사건에 대한 자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6/1792/12/09/부사직 이동욱 등의 상소에서 구선복 사건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
정조 17/1793/11/22/영의정 홍낙성이 자전과 자궁의 탄신일 의례 문제를 왕대비전에 호소하여 왕대비가 언문으로 비답을 내리다. [언교*언서]
정조 17/1793/11/22/ 신하들이 혜경궁의 탄신 의례 문제를 논하자, 혜경궁이 언문으로 답서를 내린다.
정조 18/1794/01/20/영의정 홍낙성 등이 경모궁 참배를 중지토록 혜경궁에 호소하여 혜경궁이 그리하겠다는 비답을 언문으로 내리다. [언서]
정조 18/1794/01/20/시임․원임 대신들이 경모궁 참배를 중지하고 환궁하도록 혜경궁에 호소하여 혜경궁이 언문으로 비답하다. [언서]
정조 18/1794/04/10/왕대비가 모든 신하들에게 언문 전교를 내리다. [언교]
정조 18/1794/04/10/영의정 홍낙성 등이 자전의 언문 전교를 받들고 강제로 합문을 들어와 문제되다. [언교3]
정조 18/1794/04/10/판중추부사 김희가 백관을 거느리고 구전으로 왕대비전에 아뢰자 언서로 꾸짖다. [언서]
정조 18/1794/04/11/왕대비가 언문 전교를 신하들에게 내려 충신을 벌주려는 임금을 만류하지 못하는 것을 꾸짖다. [언교]
정조 18/1794/04/12/대비가 모든 공상을 전부 물리칠 것이라는 언문 전교를 제신들에게 내리다. [언교2*언서]
정조 18/1794/04/12/사옹원 도제조 김이소를 소견하면서 공상거부의 왕대비 언문전교 내용을 언급하다. [언교2]
정조 18/1794/04/13/사옹원 도제조 김이소가 왕대비가 공상 받아들이기를 청하자 왕대비가 언문으로 올리지 말라는 비답을 내리다. [언서]
정조 18/1794/04/13/사옹원 도제조 김이소가 왕대비전에 공상을 받아들이시기를 재차 아뢰자 언문으로 비답을 내리다. [언서]
정조 18/1794/04/13/전 좌의정 김이소가 임금께 자전께서 역모 문제로 사제로 거동하겠다는 언교에 대해 말씀 드리다. [언교]
정조 18/1794/04/14/왕대비가 탕약도 안들고 내린 언문교서에 대해 임금이 내탓이라고 말하다. [언교2]
정조 18/1794/06/03/빈청(賓廳)에서 혜경궁에게 글을 올려 탄신 진하 허락을 요청하자 언서로 비답하다. [언서]
정조 18/1794/06/03/빈청(賓廳)에서 혜경궁에게 글을 올려 탄신 진하 허락을 재차 요청하였으니 그만두라고 언서로 답하다. [언서]
정조 18/1794/06/28/운관으로 하여금 ≪무원록언해≫를 인쇄 반포하게 하다. [언해]
정조 19/1795/08/21/영중추부사 김희의 상소에서 자전의 언문교지 문제를 논하다. [언교]
정조 20/1796/02/04/첩해신어는 방언을 주석하여 알기 어려워[첩해신어문석]을 반포․시행케 하다. [언자]
정조 20/1796/03/06/중국에 간 정사가 칙서를 미리 인편에 부친다는 소식을 언서로 의주 부윤을 통해 조정에 보고하다. [언서]
정조 20/1796/11/03/관서 양남 지역에 ≪무원록언해≫를 간행․배포할 것을 명하다. [언해]
정조 20/1796/11/15/임금이 보는 책의 언해를 살펴보았더니 내각과 옥당에 소장되어 있는 책의 현토(懸吐)가 본래부터 서로 다른 곳이 많았다. [언해]
정조 20/1796/12/15/임금이 주자소와 경적 인쇄를 전교하면서 용비어천가가 궁중 주자소에서 발간된 것임을 언급하다. [용비어천가]
정조 21/1797/01/01/임금이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같은 책도 정치를 돕고 세상을 권면하는 도구로서 하나로 정리하여 ≪오륜행실도≫라고 명명하다. [오륜행실도]
정조 21/1797/04/20/중용 언해를 통해 관찰하면 총명예지는 인의예지 네 덕 바깥에 있는데 그렇다면 어느 지위에 소속되어야 하는가를 임금이 묻다. [언해]
정조 21/1797/07/20/심상규 등에게 명하여 ≪삼강행실≫과 ≪이륜행실≫ 두 서적을 합하여 바로잡고 증정하고 언해하여 이름하기를 [오륜행실]이라 하고 주자소에 명하여 활자로 인쇄해서 널리 반포하게 하다. [언해]
정조 23/1799/12/21/홍양호가 용비어천가 등 여러 역사책을 편집하여 선왕의 업적을 기술한 흥왕조승을 올려 임금이 감동하다. [용비어천가*흥왕조승]
정조 24/1800/05/22/장령 권한위가 시골관리들에게 천주교책을 한문이나 언문으로 베껴쓴 책을 수거해 불태우라고 다른 내용과 함께 상소하다. [언번]
❀순조
순조 00/1800/07/04/대왕대비가 언문교지로 윤행임을 도승지로, 박준원을 어영대장으로, 황인점 등을 종척의 집사로 삼다. [언서*언교]
순조 00/1800/07/04/대왕대비가 심환지를 영의정으로 이시수를 좌의정으로, 서용보를 우의정으로 삼는다고 언서로 하교하다. [언서]
순조 00/1800/07/04/이조에 언교로 동돈녕 이언식을 수릉관으로 삼으라고 명하다. [언교]
순조 00/1800/07/04/대왕대비가 언서로 하교하여 홍용한, 홍준한 등을 종척의 집사로 삼다. [언서2]
순조 00/1800/07/20/대왕대비가 의리에 관한 언문교지를 반포하겠다고 하다. [언교2]
순조 00/1800/07/20/대왕대비가 조보(朝報)나 소장 등을 언서로 등서(謄書)해 들여오게 하다. [언서]
순조 00/1800/08/11/왕대비와 혜경궁의 명위에 관해 대왕대비가 언문교지를 반포하고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하교하다. [언교]
순조 00/1800/12/18/대왕대비가 정조시대를 회고하고 추모하는 언교 1통을 내리다. [언교5]
순조 00/1800/12/25/대왕대비가 의리 언교를 다시 강조하다. [언교]
순조 00/1800/12/25/대왕대비가 의리 언교를 들어 대신과 삼사를 질책하다. [언교]
순조 01/1801/01/06/대왕대비가 의리 언교를 다시 강조하다. [언교]
순조 01/1801/01/16/정순왕후가 김귀주에게 내린 봉서를 관찰사와 수령이 한문과 언문을 조금 아는 방기를 보내 뜯어보게 하다. [*언*]
순조 01/1801/01/25/대대왕대비가 의리 언교를 다시 언급하다. [언교]
순조 01/1801/04/25/이병모 등이 은언군과 홍낙임의 처벌을 요청하며 대왕대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2]
순조 01/1801/04/27/이병모등이 은언군과 홍낙임 처벌을 요청하며 대왕대비의 언문교지를 언급하다. [언교4]
순조 01/1801/05/10/성학, 의리 및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대왕대비가 언문 교지를 반포할 것을 청하는 원재명의 상소문이 있다. [언교]
순조 01/1801/05/12/자성 전하가 지난 겨울에 내린 언륜에 대한 찬사가 언급되다. [언륜]
순조 01/1801/05/19/대왕대비가 김치묵을 용서하겠다는 언문교지를 반포하겠다고 하다. [언교2]
순조 01/1801/05/20/우포도 대장 이한풍이 언문 흉서에 대해 아뢰다. [언찰]
순조 01/1801/05/29/대왕대비가 홍낙임을 사사하는 언문교지를 내리다. [언교]
순조 01/1801/07/27/윤승렬의 죄를 없애주라는 대왕대비의 언문교지를 반대한다고 승정원이 의계(議啓)를 올리다. [언서]
순조 01/1801/07/28/이원배의 죄를 없애주라는 대왕대비의 언문교지를 반대한다고 승정원이 의계(議啓)를 올리다. [언서]
순조 01/1801/08/16/노모가 유배 죄인 이근에게 언문 서찰을 보내다. [언찰]
순조 01/1801/10/27/이만수 사교(천주교) 비난 상소에 이승훈이 구입해 온 사서(邪書)를 이가환이 언문으로 번역하여 널리 전파하여 주관하였다고 하다. [언번]
순조 01/1801/10/30/시장가 괘서가 한문과 언문을 서로 뒤섞어 난잡하게 쓰다가 지워 버렸다. [*언*]
순조 02/1802/05/13/빈청(賓廳)에서 재차 존호에 대해 아뢰자 왕대비가 언서로 빈청(賓廳)에 하교하다. [언서]
순조 02/1802/05/14/대왕대비가 왕대비전의 언문교지를 따르라고 신하들에게 하교를 내리다. [언교]
순조 02/1802/05/15/빈청(賓廳)에서 왕대비전의 언교와 대왕대비전의 교지에 대해 말하다. [언교]
순조 02/1802/05/16/대왕대비가 그저께 내린 언교를 다시 강조하다. [언교4]
순조 02/1802/07/06/대왕대비가 며칠 전 언문교지를 강조하다. [언교]
순조 02/1802/10/05/대왕대비가 천둥한 재변 때문에 언서로 자중취지로 5일 감선하겠다고 하교하다. [언서]
순조 03/1803/12/28/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둔다는 언교를 내리고, 승지로 하여금 읽게 하였다. [언교]
순조 03/1803/12/28/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자 언서를 베껴쓰는 것을 중단하다. [언서]
순조 04/1804/01/03/대왕대비가 흉측한 상소를 올린 조진정과 패려하게 통문한 유생들의 초사를 받으라고 하교하다. [언서]
순조 04/1804/01/09/대왕대비가 좌의정 서용보에게 인의를 거두고 올라와 조정을 진정시키라고 언서로 유시하다. [언서]
순조 04/1804/06/23/대왕대비가 수렴한다고 하자 반대 신하들과 논의 중 언교조차 안 되느냐고 반문하다. [언교5]
순조 04/1804/06/24/대왕대비가 일관과 관계된 김노충의 일을 언서로 해명하다. [언서]
순조 04/1804/06/29/김관주가 일전 자성의 언교를 언급하다. [언교]
순조 04/1804/10/21/한해옥 사건 추안(推案) 1본을 언서로 베껴 자전께 올리다. [언서]
순조 04/1804/11/22/빈청(賓廳)에서 대왕대비를 칭송하면서 대왕대비의 언교를 만백성이 칭송했음을 언급하다. [언교]
순조 05/1805/06/20/지문:대행 대왕대비께서 언교를 통해 홍국영의 역모를 막다. [언교2]
순조 08/1808/12/01/궁 회갑의 의주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올리게 하다. [언번]
순조 09/1809/12/02/도해 역관 현의순 등이 아뢰기를, 일본에서는 남녀막론하고 6,7세부터 언문[가나]을 배운다고 하다. [언문]
순조 10/1810/02/06/궁인과 짜고 역관의 등제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변창감이 가짜 언교를 액례에게 주다. [언교2]
순조 10/1810/03/15/변창감의 언교 위조가 형률이 낮음을 의논하다. [언교]
순조 10/1810/06/05/왕대비가 꺼리는 일이 있으니 주상과 함께 잠시 경희궁으로 피하도록 언서교지를 내리다. [언서]
순조 10/1810/06/05/시임․원임 대신 및 옥당에서 청대하여 자전의 언교 환원을 청하다. [언교]
순조 12/1812/02/03/의병장에게 보내는 흉서가 한문과 언문 두 장의 종이였다. [*언*]
순조 16/1816/01/21/영묘께서 익정공을 명하여 ≪소학≫․≪내훈≫․≪어제훈서(御製訓書)≫등의 책을 별궁(別宮)에서 가르치게 하였는데, 빈(嬪)이 한 번 들으면 그 뜻을 이해하고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외우셨다. [내훈]
순조 16/1816/07/19/이재홍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언문으로 소통을 시도한 일을 보고하다. [언문*언*4]
순조 21/1821/08/07/1778(정조2년)년에 정순대비의 언교에 중전이 아이 낳을 가망성이 없다는 말이 있어 박재원이 양의를 구해 치료하자고 하자 홍국영이 질책하였다는 회상이 있다. [언교]
순조 23/1823/01/18/동지정사 김노경 등이 연경에서 중국조서를 언서로 치계(馳啓)하다. [언서]
순조 23/1832/09/29/금주 법령 시행 전에 법령 취지문(교지)을 미리 한문과 언문으로 방방곡곡에 효유하라고 하다. [언번]
❀헌종
헌종 01/1835/03/16/언서로 윤음(綸音)을 위조한 최공필을 베다. [언서]
헌종 02/1836/02/03/정광두 상소에서≪소학≫으로 훈의를 만들어 양반들을 교화시켰고, 언문으로 풀어 나라와 가정에서 깨우치게 하여 우부우부라도 소학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고 아뢰면서 소학 재구성본을 바치니 가상하다고 하다. [언해]
헌종 06/1840/01/27/동지 정사 이가우가 정월 십일일에 황후가 붕서(崩逝)하였음을 언서로 치계(馳啓)하다. [언서]
헌종 12/1846/05#16/대왕대비가 임금이 상중이라 수레를 수종하지 않게 대신들이 청하도록 언서를 내리다. [언서]
헌종 13/1847/07/18/대왕대비가 빈청(賓廳)에 언교를 내려, 왕실 자손을 이을 처자를 구하도록 하다. [언교2]
헌종 13/847/08/25/이승헌이 곤전의 병의 원인을 진찰하고 약제를 빨리 쓰도록 상소하면서 곤전 언교를 언급하다. [언교]
❀철종
철종 00/1849/06/09/대왕대비가 시․원임 대신을 소견하여 임금의 학업 증진에 대해 의논하다. [언교5*언계]
철종 00/1849/06/09/대왕대비가 임금에게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에 전념할 것 등을 하교하다. [언서]
철종 13/1862/08/27/칠서언해는 이명신의 필생의 정력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서, 그가 사문에 끼친 공로가 크므로 이상(貳相)에 더 추증시키고 경서에 힘쓰도록 풍동 권면하는 하교를 내리라는 조두순 청을 따랐다. [언해]
❀고종
고종 00/1863/12/08/대왕대비가 국상 중에 정사를 대리할 사람을 정하였고 철종의 뒤를 흥선군의 두 번째 아들로 정하다. [언교2]
고종 00/1863/12/13/대왕대비가 대신들에게 정사를 잘 돌볼 것을 부탁하는 언문교지를 내리다. [언교]
고종 00/1863/12/13/대왕대비가 언문으로 국왕을 훈계하다. [언서]
고종 00/1863/12/13/대왕대비가 언문으로 대신들에게 임금을 잘 보좌하라는 교서를 내리다. [언서]
고종 01/1864/06/15/대왕대비가 오래 된 죄에 연루된 자들의 혐의를 풀어 줄 것을 지시하는 언교가 다시 언급되다. [언교]
고종 01/1864/07/14/대왕대비가 죄인에게 내린 특전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고 언문으로 지시하다. [언교]
고종 01/1864/07/25/임금의 비답과 대왕대비의 언문 지시를 통해 의리와 법을 밝히다. [언교]
고종 02/1865/05/03/대왕대비가 경복궁 공사에 나오지 말고 농사를 짓는 것에 힘쓰라고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할 것을 지시하다. [언등]
고종 03/1866/01/24/대왕대비가 천주교를 금하는 교서를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하도록 지시하다. [언등]
고종 03/1866/02/13/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그만둔다는 언문 교서를 내리다. [언교]
고종 03/1866/02/25//외국 글자를 보고 언문이 아니라고 하다. [*언*]
고종 03/1866/02/27/법령을 엄격히 하고 토호(土豪)의 악습을 없애도록 한문과 언문으로 공문을 띄우라고 지시하다. [언등]
고종 03/1866/06/02/군정과 전정의 폐단을 바로잡도록 공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내리다. [언등]
고종 03/1866/08/02/서학을 하는 불순한 무리들을 제거하기 위해 윤음(綸音) 규례에 따라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반포하게 하다. [언등]
고종 03/1866/09/07/밭 면적을 조사할 때 백성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말도록 한문과 언문으로 교서를 반포할 것을 지시하다. [언등]
고종 04/1867/06/11/경기, 삼남, 황해도에 사창을 설치하는 교지를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하다. [언등]
고종 04/1867/06/11//의정부에서 4도에 구제곡을 내려주도록 한문과 언문으로 반포할 것을 제의하다. [언등]
고종 06/1869/11/23/북관의 변경 지역 백성들의 형편을 돌보아 주도록 하라는 교서를 한문과 언문으로 마을까지 반포하라고 하다. [언등]
고종 10/1873/05/16/㉠옷에 관한 오례편고를 일단 언문으로 서술하라고 하다 ㉡오례편고를 언문으로 번역하고 있다. [언서*언번]
고종 11/1874/01/13/영의정 이유원이 상소에서 용비어천가의 의미를 되새기다. [용비어천가]
고종 12/1875/01/04/중국에 간 동지사신이 중국 황제가 사망했다는 언문으로 쓴 장계(狀啓)를 보내왔다. [언서]
고종 16/1879/11/15/호포법 문란을 징계하는 내용을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반포하기를 청하다. [언등]
고종 19/1882/12/06/언문으로 주석을 단(현토) 일본어 교습서를 출판하여 팔도록 이규가 상소하다. [언문]
고종 20/1883/10/27/도박과 양곡유출을 금지하는 공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반포하도록 의정부에서 제의하다. [언번등]
고종 25/1888/05/10/아이를 납치하는 범인들을 잡는 법을 한문과 언문으로 공포하도록 지시하다. [언등]
고종 25/1888/05/17/북쪽의 환곡 정책을 안무사로 하여금 한문과 언문으로 베껴 모든 마을에 알리게 하다. [언등]
고종 25/1888/07/13/러시아 관리가 조선 관리들에게 각서로 보내는 문건은 잠정적으로 한문이나 조선국문으로 번역하여 노문과 함께 발송한다고 명시하다. [국문]
고종 31/1894/06/28/학무국 편집국에서는 국문 철자, 외국문 번역과 교과서 편집 등의 일을 맡아본다고 명시하다. [국문]
고종 31/1894/07/08/군국기무처에서 관청이나 개인의 문서에 씌어 있는 구라파 문자를 국문으로 번역하는 것 등의 안건을 올리다. [국문*석]
고종 31/1894/11/21/칙령 보고에서 1호 14조 법률(法律), 칙령(勅令)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漢文)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國漢文)을 섞어 쓴다는 내용이 보고되다. [국문]
고종 32/1895/03/25/법관 양성소 입학시험 과목에 국문 작문이 들어가다. [국문]
고종 32/1895/05/08/칙령 86호 공문규정 반포에서 제9조. 법률, 명령은 다 국문으로 기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첨부하며 혹은 국한문(國漢文)을 섞어서 쓴다고 규정하다. [국문]
고종 32/1895/09/28/소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에 국문이 포함되다. [국문]
고종 36/1899//08/22(양력)/임금이 “혜경궁의 ≪한중만록(閒中漫錄)≫은 언문으로 사실을 직접 기록한 것이어서 실로 오늘의 확증으로 된다.”라고 말하다. [언필]
고종 39/1902/02/05(양력)/김태제가 상서하길 사서와 삼경 언해본은 오직 우리 왕조에만 있는 것으로써 해석에 문제가 많고 사서도 이이의 언해본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습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아뢰다. [언해2]
고종 42/1905/07/08(양력)/의학 교장 지석영 상소: 우리나라 글 언문은 세종이 만든 훌륭한 글인데 혼탁해져 국문을 정리하고 성인들의 가르침을 번역해서 교화해야 한다. [정음*언문*국문3]
고종 42/1905/07/19(양력)/지석영이 제의한 대로 국문을 고치다. [국문]
❀순종
순종 02/1908/08/16(양력)/한국은행 설립 각서를 한글과 일본글≪韓日文≫으로 작성하다. [한일문]
순종 03/1924(양력)/경찰 사무를 위탁하는 한일 약정서가 한일문으로 작성되다. [한일문]
❀연도 날짜 없는 것
인조 부록/㉠≪삼경(三經)≫ 및 그 언해(諺解)와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 등의 서적을 양계(兩界)에 보급하여 문과(文科)에 오르는 자가 잇따르다 ㉡오륜가(五倫歌)를 번역하여 인쇄해서 중외(中外)에 펴게 하고 ≪삼강행실(三綱行實)≫도 아울러 간행하게 하시다. [언해]
정조 부록/정순 대비가 대신들에게 언문 교지를 내려 사족 중에서 빈어를 골라 두어서 널리 후사를 구할 것을 명하다. [언교]
정조 정조는 너댓부록/ 살 때 언서를 이미 다 알아 편지를 어른처럼 써내려갔다. [언서]
정조 부록/정조 대왕 행장 : 겨울에 자전이 언문교서로 홍국영의 죄상을 열거하고 죄인처벌에 늑장을 보인 대신들을 책하였다. [언교3]
정조 부록 속편/정조 대왕 천릉 지문(遷陵誌文) : 대왕대비가 의리에 관한 언문교서를 장차 반시하여 소견을 듣기로 하다. [언교]
헌종 부록/효유 헌서 왕대비가 선왕에 대한 언교(諺敎)에서 순조의 추모를 기술하다. [언교]
현종 부록/신해년에 기근들어 왕이 국내에 유시를 내려 해묵은 포흠은 일체 탕감하고 가벼운 죄수를 풀어주며 버려져 있던 인재를 다시 서용하게 하였으므로, 시골 아낙들이 그 유시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서로 외우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죽음이 있는 것도 다 잊었다. [언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