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탄생설화의 의미
부처님의 전기(傳記)를 보면, 부처님은 카필라국(지금의 네팔국 타라이 지방에 있던 나라)의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슛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왕이 였고, 어머니는 마야 왕비였습니다. 왕은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들이 태평한 세월을 즐길 수 있었지만, 왕권을 이을 왕자가 없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야 왕비는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눈이 부시도록 흰 코끼리가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왕비에게 태기가 있었습니다. 산월이 가까워지자 마야 왕비는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콜리성으로 가다가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무우수(無憂樹)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있었습니다. 왕비는 아름다운 꽃가지를 만지려고 오른손을 뻗쳤습니다. 그 순간 오른쪽 옆구리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갓 태어난 아기 태자는 일곱 발걸음을 걷고는 사방을 둘러보고 또렷한 소리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내가 오직 존귀하다. 3계가 고통 속에 쌓여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떻게 아기가 어떻게 옆구리에서 태어날 수 있으며,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르치며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내가 오직 존귀하다. 3계가 고통 속에 쌓여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불교경전을 읽어보면 신비적 내용이 전혀 없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져 있는데, 부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만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마명스님이 쓴 『불소행찬(원제 붓다 차리타)』란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 부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부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마명이란 분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지어낸 이야기를 가지고 진실여부를 알려고 헛수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 절에서 열리는 봉축법회에는 스님들이 한결같이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사실인양 법문하고 있습니다.
설화와 유사한 것으로 신화가 있습니다. 설화와 신화가 무엇이 다른가 하면, 설화 속에 신이 들어 있으면 신화라 하고(단군신화 그리스·로마신화), 신이 없으면 그냥 설화라고 한다고 합니다. 설화나 신화는 오래된 이야기라 대게 작자 미상인데 부처님 탄생설화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작자가 마명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마명이란 분은 부처님 열반 500년 후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인도전역을 다니면서 악기를 두드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며 불법을 널리 홍포한 분입니다. 마명과 같은 행적을 남기신 분이 원효 스님인데, 원효 스님 역시 신라전역을 뒤웅박을 두드리고 다니며 ‘나무아마타불’을 염송하여 열에 아홉은 따라 부를 정도로 불교대중화에 크게 이바지 하였습니다.
부처님 탄생설화는 마명스님이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부처님의 출현을 종교문학적으로 비유와 상징으로 아름답게 엮어 보인 것이며, 그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첫째, 부처님이 어머니인 마야 왕비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힌두교의 고전인 『리그베다』 문헌에 의하면 가장 상위 층인 브라만(사제계급)은 브라흐만 신의 정수리에서 태어나고, 그 다음 계급인 크사트리아(왕족 무사계급)는 부라흐만 신의 옆구리에서 태어나고, 그 다음 계급인 바이샤(평민계급)는 브라흐만 신의 허벅지에서 태어나고, 가장 하층계급인 슈드라(노예계급)는 브라흐만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로써 볼 때 부처님께서 마야 왕비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의 출신 성분이 크샤트리아 계급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중생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삼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ㆍ6도(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수라ㆍ천상)에 윤회한다고 합니다. 3계․6도은 어디까지나 고통의 세계이므로,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 말자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3계.6도의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처님께서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르치며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높다“라고 하신 말씀은?
부처님 당시 대다수 인도인들은 유일신교인 브라만교(힌두교의 전신)를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브라만교에서는 이 세상은 브라흐만(梵天)신이 창조하였으므로, 그 신에게 많은 재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면 살아서는 소원을 성취하고 죽어서는 천상세계에 태어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러한 신본주의 종교를 정면으로 배격하고, 자기 자신이 바로 만유(萬有)의 주체임을 주창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하늘 위 하늘 아래 스스로가 가장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신의 굴레로부터 ‘인간해방'을 의미하며 아울러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인간선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넷째, 온 세상이 고통에 휩싸였으므로 내가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말씀은?
부처님은 인간의 삶을 괴로움(苦)으로 보았는데, 이에 대해 사람들이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에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젊음과 희망, 사랑도 괴로움인가? 물론 그것이 기쁨일 수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인생의 젊음이나 희망, 사랑은 이윽고 사라지고 오히려 괴로움의 한 양상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괴로움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몸과 마음이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괴로움(오음성고(五陰盛苦)를 드셨는데, 이 중에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을 ‘근본 4고라 하고, 여기에 애별이고(愛別離苦)ㆍ원증회고(怨憎會苦)ㆍ구불득고(求不得苦)ㆍ5음성고(五陰盛苦)를 합하여 ‘8고(八苦)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생들의 괴로움이 어떻게 이 4가지, 8가지만 되겠습니까? 중생의 번뇌(煩惱)가 8만4천이라면 괴로움도 8만4천 가지이며, 8만4천이라는 숫자도 상징적인 의미로써 한량없이 많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괴로움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불교가 단순히 인생을 ‘괴로움’이라고만 말한다면 불교는 하나의 철학이나 사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증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는 철학이면서 고등 종교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 갈애입니다. 갈애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투신 까닭은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들로 하여금 하루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위없는 바른 깨달음)’를 얻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