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스런 딸 효원이에게
누가 “몇 살?”하고 물으면 이제 네 살은 넘어섰다는 것에서 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손을 번쩍 들어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 보이는 우리 효원이.
빨리 큰언니가 되어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싶고, 엄마의 눈길을 피해 조심스럽게 먹는 맛있는 과자도 맘껏 먹고 싶고, 이제 갓 백 일이 된 동생도 엄마처럼 업고 다니고 싶은 우리 효원이에게 아빠가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편지를 보낸다. 네가 글을 깨우치면 제일 먼저 읽게 되는 편지가 될 것 같구나.
노는 것이 마냥 활발발해서 넘어지고 부딪치어 예쁜 얼굴에 상처가 끊일 날이 없는 너이다. 넘어지고 부딪칠 때 마다 아빠의 심장은 어김없이 ‘쿵’하고 떨어진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수 없이 경험한 일이여서 단련이 될 만도 한데 매번 처음 겪는 것처럼 그렇다.
며칠 전에는 아빠가 밀고 가는 마트의 카트에서 장난치다 바닥으로 머리부터 꽝하고 떨어졌다. 너의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런 울음소리에 앞서가던 엄마가 먼저 달려와 너를 안았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멍하니 그 과정을 지켜만 봤다.
나중에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넋 나간 사람 같다고 그러더구나. 그나마 떨어지는 모습에 비해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였지만,
아빠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 여파가 남아있다. 그러면서 너와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떠오르는 분들이 세월호의 비극에 너무도 사랑스런 아들 딸을 잃어버린 엄마 아빠들이다. 그 분들이 겪고 있을 깊은 슬픔과 고통이 마음에 와 닿는다.
사실 십 수 년의 세월을 맘 졸이며 소중하게 키운 자식을 눈앞에서 원통하게 잃은 그 분들의 고통과 슬픔의 크기가 아빠는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위로의 말로 그 슬픔과 고통을 함께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라 생각된다. 네가 태어나고 너와 함께 살면서 이해된 사실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리 깊지 않은 물속에 수 백명의 어린 생명들이 갇혀 있기에 우리나라가 지닌 힘을 총 동원 하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첨단 특수장비와 고도로 훈련된 대규모 특수부대를 투입하면 다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빠가 짐작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속수무책으로 무능했고, 훨씬 더 절망스러울 정도로 거짓투성이였다.
이제 그 비극이 일어 난지도 9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의 총체적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영혼들이 바다속에 잠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서서히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옅어지는 것을 방치하고 심지어 조장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더 속상한 것은 아빠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세상흐름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일상 속에서 그 흐름을 뒤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오십보 백보이지.
효원아
아빠의 오래된 습성중 하나가 끈기있게 사태의 실상을 직시하지 않고 대충 보고 판단하여 일의 실체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인 동물을 보면 엄마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세하게 살피려 하는데, 아빠는 살짝 외면하거나 눈을 반쯤 감아 그 실상을 흐릿하게 하곤 했다. 아마 아빠가 청년시절에 몇 번의 큰 굴곡을 겪으면서 몸에 밴 태도라 짐작된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 불교를 새롭게 보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깊은 상처의 상흔처럼 일상속에서 무심결에 드러나곤 한다.
이런 습성이 용산참사 때도, 밀양과 강정 마을 때도, 쌍용차 때도 그리고 세월호 때도 그랬다. 그런 일들이 주는 아픔과 고통을 애써 피해 보려는 덜 성숙된 태도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 사랑스런 딸 효원이에게 아빠의 부끄러운 습성을 드러내어 그 오래된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많이 힘들어 하는 너의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이 편지를 아빠와 같이 읽을 때 쯤에는 동생 효진이도 너와 함께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겠지. 그 때 편지를 함께 보면서 세월호에 목숨을 잃은 언니 오빠들의 명복을 빌고, 그 엄마 아빠들의 깊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작은 바램이다.
2015년 1월 22일
첫댓글 효원이는 참 멋진 아빠를 두어서 좋겠네~! ^^
아빠는 효원이 때문에 더 깊어져서 좋겄네~!^^